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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72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2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72화

072 운명과 만남(2)

 

 

 

 

 

“전투마법사였나? 하지만 그 실력으로 나를 이기긴 어려울 것이다.”

 

엘세타의 말에 아이네스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분하지만 그녀의 말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마법이 상대에게 모든 것이 파악되는 데 비해 상대의 마법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내가 봤던 어떠한 마법서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마법이다. 대체 저 여자는 어디서 저런 마법을 익힌 것일까?’

 

아이네스는 냉정해지려고 했다. 무기력하게 상대에게 제압이 된다는 것이 이젠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주위를 둘러싼 공간이 중원의 진식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도 깨달았다.

 

‘마나로 펼친 진식.’

 

어떻게 가능한지는 문제가 안 되었다. 지금 아이네스는 상대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것으로 생각되는 이 공간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

 

마음을 단단히 먹은 아이네스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네스에게 가장 필요한 마법은 ‘클레어보얀스’였으나 지금 당장 펼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아이네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힘인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신성마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상대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지금 아이네스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아이네스가 마법 지팡이를 천천히 내리자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엘세타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져 갔다.

 

“리버스 타임(Reverse Time : 상대의 신체의 자유를 빼앗고 움직임을 멈추게 만드는 신성마법)!”

 

‘젠장!’

 

갑작스러운 신성마법에 엘세타는 당황했다. 아이네스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신성력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신성력을 몸에 지니고 있는 고위사제도 몇 명이 되지 않을 터인데 어떻게 이 여자가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제야 흥분을 하여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고 아이네스를 공격한 엘세타는 후회를 했다. 그녀의 힘이 신성력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아이네스가 뿜어내고 있는 막강한 신성력이라면 그녀가 생성해 둔 결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결계가 파괴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녀를 압박해 가는 신성력을 가두기 위해 힘을 끌어올리던 엘세타는 외부에서 돌진해 오는 마법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건 또 뭐야? 젠장 하필이면 저 여자가 신성마법을 사용했을 때 공격해 오다니.’

 

결계의 한 점을 노리고 날아드는 수계의 마법에 엘세타는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신성마법만 아니었다면 아이네스의 공격을 피하며 수계마법을 막을 수 있었겠으나 동시에 벌어진 공격은 엘세타로 하여금 아이네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두 개를 막을 수 없으니…….’

 

그녀는 눈앞의 아이네스를 노려보며 신성력을 봉인할 것을 포기하고 마법 지팡이를 휘둘렀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 그때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엘세타가 사라졌을 때 수계마법은 결계를 가르며 파고들었고 아이네스의 신성력이 결계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계마법이 뚫고 들어온 곳에 번득이는 도끼가 결계의 한쪽을 무너뜨리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결계가 급속히 사라지자 주위의 풍경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아이네스의 눈에 결계를 공격했던 자들이 보였다.

 

“엘프와 드워프들……?”

 

남녀 엘프와 3명의 드워프가 아이네스 앞에 서 있었다. 그중 한 드워프의 손에 쥐여 있는 도끼가 결계를 파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네스 공주님?”

 

여성 엘프가 입을 열자 옆에 있던 드워프는 엘프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베레스카, 아는 사람이니?”

 

“응 엘프의 숲에 오셨던 공주님이시지. 아이네스 공주님 어찌 된 일입니까?”

 

베레스카는 아이네스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엘프의 숲을 불태우고도 만년목의 도움을 받은 인간의 여성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저를 공격했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엘프와 드워프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심각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이네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엘세타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엘세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녀의 옆으로 평복을 입은 호위기사들이 달려왔다.

 

“아이네스 공주님, 무사하셨사옵니까?”

 

“예, 다친 곳은 없어요.”

 

살짝 웃어주며 대답을 한 아이네스는 엘세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강한 여자였어. 엘라드와 잘 아는 사이 같던데, 정체가 뭘까?’

 

그녀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엘라드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네스는 기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에 덩치가 큰 여자를 만난 것은 보셨죠?”

 

“그러하옵니다. 그래서 황급히 달려왔사온데 갑자기 공주님의 모습이 사라져 걱정을 하고 있었사옵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해요. 일단 성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보신 그대로 자세히 말해 주시기 바래요.”

 

주위의 사람들이 시선이 몰려들자 아이네스는 서둘러 왕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녀의 모습을 보던 기사들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들도 아이네스를 따라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에는 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있고 또한 6클래스의 마법사가 둘이나 있다.

 

그리고 그녀가 두려워하는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신관전사들도 있으니 왕궁에서 아이네스가 엘세타를 상대한다면 엘세타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그 여자, 분명히 신성력에는 놀라는 눈치였어. 그것을 해결해야 해.’

 

길을 걸으며 고개를 끄덕인 아이네스는 우선 9별궁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을 정리해 볼 생각인 것이다.

 

 

 

 

 

9별궁의 정원에서 엘세타에 대한 생각에 잠겼던 아이네스는 앨리가 향긋한 차를 들고 오자 생각에서 깨어났다.

 

“고마워, 앨리.”

 

아이네스에게 싱긋 웃어준 앨리는 차 시중을 들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엘프와 드워프들이 아이네스 공주님에게 무슨 볼일이옵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아이네스가 앨리의 얼굴을 보자 앨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네스 공주님과 같이 온 그들이 전하께 아이네스 공주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였사옵니다.”

 

“나도 모르는 사실인데?”

 

“그렇사옵니까?”

 

자신의 주위에서 끊임없는 일들이 일어나자 아이네스는 피곤한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이네스는 왕궁의 담장 너머 보이는 산의 정상을 새하얗게 장식한 만년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뒤 무혼은 산서지방의 양천(陽泉)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마을의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었으나 산들 사이로 많은 길이 보였다. 그러나 비교적 외진 곳이었고 주위의 산세도 험해 중손세가의 일행을 따라오지 않았다면 이곳에 마을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곳은 넓은 중원에서도 몇 군데 되지 않는, 별이 추적을 받지 않는 곳이지.”

 

중손면인의 말에 무혼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자 손으로 마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라네. 이곳으로 접어들면 추성자들이 자네를 찾지 못할 거네. 물론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된다면 찾아낼지도 모르겠지만 말일세.”

 

그 말에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어떻게 아신 건가요?”

 

그러자 중손면인은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추성의 능력은 없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추성자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나의 외손녀가 있다고 했지 않았는가. 직접 만나본다면 알게 될 것이야.”

 

예소소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중손면인의 얼굴에서 떠오르는 표정에서 무혼은 그가 외손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손수연과 다른 중손세가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그녀의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소저일까?’

 

10여 년 전부터 혈랑성을 바라보았다는 소저를 잠시 후면 만나볼 수 있으리라. 무혼은 그녀의 입에서 들려올 자신의 운명이 궁금하였다.

 

 

 

 

 

무혼이 중손면인을 따라 마을의 한쪽에 있는 평범한 작은 장원으로 들어갔다.

 

장원으로 들어서니 하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타고 온 말들을 끌고 갔으며 무혼은 계속 중손면인을 따라 장원의 중앙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곱게 차려입은 한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소저가 예소소 소저인가?’

 

“소아야, 오래 기다렸느냐?”

 

“아니에요. 소녀 역시 어제 도착을 하였답니다.”

 

다소곳이 입을 여는 외손녀를 보며 중손면인은 안면에 웃음을 가득히 띠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혈랑성의 주인과 외손녀의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우선 이곳에 결계를 펼쳐두었습니다. 당분간 추성자들도 공야 소협의 행방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외손녀인 예소소라네. 자네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지. 소아야, 혈랑성의 주인인 공야 소협이란다.”

 

“어서 오세요. 혈랑성의 주인이시여.”

 

예소소가 다소곳이 인사를 하자 무혼은 허리를 살짝 숙이고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잡고서 포권을 했다.

 

예소소는 눈앞에 있는 무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10여 년 동안이나 상상을 했던 사람이 드디어 그녀의 앞에 나타나자 무혼에게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수수한 차림의 복장에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눈에서는 정광이 서려 있었고 온몸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던 중손수연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공야 소협은 오랜 여행을 하셨으니 우선 여장을 풀고 식사를 하시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그 말에 생각에서 깨어난 예소소는 그녀가 무혼을 너무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살짝 숙여 붉어진 얼굴을 숨겼다.

 

“소아야, 네가 공야 소협의 거처를 안내해 주려무나.”

 

중손면인도 웃으며 말을 꺼내자 예소소는 더욱 얼굴을 붉혔지만 앞서서 무혼을 안내했다.

 

‘흥!’

 

예소소를 보고 있던 아이네스는 못마땅했다. 중손세가의 사람들이 눈앞의 여자를 무혼에게 붙여주려는 듯한 느낌이 들자 기분이 나빠졌던 것이다.

 

- 무혼 경, 여긴 어디죠?

 

- 아, 아이네스 소저.

 

자신을 유심히 보는 낯선 소녀의 다소곳한 행동에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던 무혼은 아이네스의 질문에 정신을 차렸다.

 

- 이곳은 중손세가라 하여 흑도의 두뇌들이 모인 곳입니다.

 

- 그런데 앞의 여자는요?

 

- 중손세가 가주의 외손녀라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식사 준비가 되는 대로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소저.”

 

어느새 무혼에게 배정된 방에 도착하자 예소소는 아직도 붉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서 물러난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방에 깨끗한 침상과 갈아입을 옷이 준비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맑은 물이 담겨 있는 커다란 물통에서 하얀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오랜 여행으로 옷과 몸이 더럽혀져 있던 무혼은 내심 반가웠으나 아이네스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옷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 저기… 아이네스 소저.

 

- 예, 무혼 경.

 

조금 전에 본 예소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네스는 무혼이 부르자 자신도 흉내를 내어 다소곳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 제가 이제 목욕을 해야 하는데요.

 

- 예, 그러세요.

 

하지만 아직 머릿속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예소소의 몸가짐을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있느라 무혼이 하는 말의 뜻을 생각지 않고 대답을 했다.

 

아이네스의 대답에 무혼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을 감고 귀까지 막으면서 목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목욕을 하지 않자니 중손세가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물통의 위에 걸린 거울에 무혼의 난감한 얼굴이 잘 나타나 있었다. 계속 생각에 잠겼던 아이네스는 눈앞에 있는 거울을 보였다. 꽤 오랜만에 무혼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후훗, 어릴 때의 모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그런데 무혼의 얼굴이 좀 이상해 보였다. 상당히 난감하고 고민스러워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다 문득 조금 전에 무혼과 주고받았던 말이 머리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조금 전 예소소의 생각을 밀어내고 머리를 차지했다.

 

‘목욕…….’

 

그 말을 떠올리자 아이네스는 얼굴이 온통 붉어지는 듯했다. 지금 무혼의 앞에 있는 커다란 물통은 목욕통일 것이다.

 

비록 무혼의 몸으로 며칠을 지내기는 했지만, 그의 몸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지금은 무혼이 보고 있는 상태였으니 몹시 민망했다.

 

- 무, 무혼 경, 미안해요. 다른 생각을 하다가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어요.

 

- 하하, 아닙니다.

 

-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죠? 마음대로 가이오스트로 돌아가지 못하는데…….

 

- 그렇군요.

 

무혼과 아이네스는 말없이 눈앞에서 점점 식어가고 있는 물통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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