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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71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1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71화

071 운명과 만남(1)

 

 

 

 

 

며칠간 무혼의 집에서 머물며 회포를 푼 중손면인은 공야패의 환송을 받으며 무혼과 함께 중원으로 출발했다.

 

“이번이 두 번째 중원행이지요?”

 

“그렇습니다.”

 

중손수연의 물음에 무혼은 공손히 대답을 했다.

 

“우리는 산동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 말에 중손면인이 대신 대답을 했다.

 

“아니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자네를 데려간다면 무림맹의 추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네.”

 

“예?”

 

자신이 추적을 받는다는 말에 무혼은 의아한 듯 중손면인을 보았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혈랑성의 주인을 관심 깊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네. 그리고 혈랑성을 보고 자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추성자의 능력을 지닌 자들도 있지.”

 

“그렇다면 제가 동행하는 것이 중손세가의 분들께 위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중손면인은 무혼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웃음을 띠었다.

 

“하늘은 공평하다네. 저들에게는 추성자가 있지만, 천기는 흑도를 돕기 위함인지 중원 천지의 누구보다도 천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 가문에서 나타났다네. 자네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을 걸세.”

 

“다행이군요. 그럼 혈랑성의 주인이라는 의미를 알 수 있겠습니까?”

 

“가는 동안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 충분히 있네.”

 

무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은 날이 밝아 보이지 않았지만 혈랑성이 떠 있을 자리를 향해 잠시 고개를 들었다.

 

 

 

 

 

‘무혼 경이 적들에게 항상 추적을 받는다고?’

 

그것은 아이네스로서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 중원은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다.

 

몇 년 내에 아이네스가 보았던 어떠한 전쟁보다 더욱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무혼 경이 무사할 수 있을까?”

 

잠에서 깬 아이네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서니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녀 자신이 무혼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쉰 아이네스는 창문을 열며 친구를 떠올렸다.

 

5년 만에 오는 친구였다.

 

얼마 전 아폴라이아 왕궁에서 온 사신이 왕제인 사이루스 대공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사이루스 대공과 함께 프레세이 왕자와 파레시아 공주가 함께 방문한다는 것이다.

 

“파레시아는 더 예뻐졌을까?”

 

파레시아와는 15년 전 리누오스 왕국의 파티에서 만난 후로 계속 친한 친구로서 지내왔다.

 

작년에 결혼식을 올려 로히사 백작 부인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아이네스에게는 아직 익숙지 않은 호칭이었다.

 

그리고 친구라고 해도 3년에 한 번 보는 정도이지만 한 왕국을 다스리는 왕을 아버지로 둔 동등한 공주로서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해 주고 있었고 아이네스는 친한 친구가 드물었기에 그녀의 방문은 더욱 반가웠다.

 

“내가 직접 골라볼까?”

 

파레시아 공주를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은 앨리에게 말을 하면 쉽게 받을 수 있었지만 아이네스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고르고 싶어졌다.

 

몇 시간 후 아이네스는 라에뮤 3세의 집무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직접 골라보고 싶다고?”

 

“그러하옵니다. 오랜만의 친구인데 제 손으로 손수 준비를 하고 싶사옵니다.”

 

“허락하겠노라. 하지만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경호기사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니 비밀경호기사들을 몰래 보내시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전장을 다녀온 후 그 충격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전장의 충격이 짧은 기간에 사라지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 지속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라에뮤 3세는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네스가 대견스러웠다. 모레스 성에서 온 보고를 처음 받았을 때 아이네스의 걱정을 많이 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면 어지간한 왕자들도 그 충격을 쉽게 뿌리치기 힘들 터인데 여자인 아이네스가 쉽게 떨칠 수 있을까 하여 한동안 매일 그녀의 생활에 대해서 보고를 받던 그였다.

 

그러나 아이네스가 쉽게 전쟁의 충격을 떨쳐내고 평소의 생활로 돌아가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돌아오려무나.”

 

“명심하겠사옵니다.”

 

쾌활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는 라에뮤 3세도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네스의 모습을 눈에서 놓치지 않았다.

 

 

 

 

 

날씨가 화창한 오후, 평복을 입은 기사들과 함께 미라쉘든의 거리로 나온 아이네스는 문득 왼손에 쥔 마법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무기…….’

 

자신의 무기와 무혼의 무기가 함께 있는 그 지팡이를 잡을 때마다 언제나 힘이 솟는 듯했다.

 

왕궁에 납품하는 상인의 가게에 들른 아이네스는 원하는 것을 모두 고르자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자가 있었다.

 

“엘라드, 오랜만이군요?”

 

아이네스는 모레스 성에서 적의 전대가 몰려왔을 때 무혼이 중얼거리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모레스 성에서의 도움은 정말 감사해요. 잘 지내고 계셨나요?”

 

“하하, 네스 씨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아직도 미라크네의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타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네스는 웃는 얼굴로 눈이 가늘어지면서 엘라드에게 물었다.

 

“내가 공주인 것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죠?”

 

그러자 엘라드는 잠시 얼굴이 어색해지는 듯하더니 다시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휘감으며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한다.

 

“죄송합니다. 아이네스 공주님, 사실은 그동안 아이네스 공주님의 칭호에 꽤나 난감했었습니다.”

 

그의 솔직한 말에 아이네스는 웃었고 쾌활한 목소리로 엘라드에게 말했다.

 

“감사의 뜻으로 제가 대접을 해 드리죠. 뭘 드시고 싶으세요?”

 

“맥주를 마시고 싶군요.”

 

장난스러운 말투의 엘라드를 보며 아이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엘라드는 전에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맥주를 상당히 즐기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제가 근사한 곳으로 안내해 드리지요.”

 

 

 

 

 

공주가 주문한 맥주가 나오자 엘라드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네스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세련된 장식과 호화로운 가구들은 일반인들이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곳은 귀족들에게 유명하죠.”

 

엘라드도 속으로 동의를 하며 거품이 다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 모금 더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네스의 물음에 기침을 토해야만 했다.

 

“그런데 왜 늦게 도와준 거죠?”

 

“콜록! 크음… 그게 무슨 말이신가요?”

 

“제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분명 엘라드는 저를 처음부터 도와줄 수 있었을 거예요.”

 

얼굴에 심각한 빛을 띤 엘라드는 머릿속부터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동안 다른 곳에서 그들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늦게 도착을 한 것이죠.”

 

아이네스는 엘라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군요. 오해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엘라드는 마음속으로 사과의 말을 했다.

 

‘아이네스 공주님, 당신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실 엘라드가 미라크네의 기사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신경 써서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그가 세상을 나온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 때문에 기나긴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드디어 해답의 단서를 그녀에게서 찾았기에 이렇게 아이네스의 주위를 머물고 있는 것이다.

 

“훗날 아이네스 공주님에게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 테지요.”

 

엘라드의 말에 아이네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엘라드와 헤어지고 왕궁을 향해 길을 걷던 아이네스는 앞을 막아선 덩치를 보았다.

 

“……?”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결코 그녀에게 호의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네스는 살짝 뒤로 걸음을 옮기며 마법 지팡이를 꽉 쥐었다.

 

“너, 엘라드와 무슨 사이지?”

 

머리를 짧게 깎았고 날카로운 눈매에 근육질의 대단한 덩치였지만 목소리나 몸매를 봤을 때 여자가 분명했다.

 

기사처럼 잘 단련된 그녀의 모습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으나 아이네스는 당당히 그녀를 마주 보았다.

 

“엘라드? 그냥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인데요? 그런데 당신은 누군데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지?”

 

처음에는 존칭을 해주었으나 문득 눈앞의 여자가 반말을 했다는 것이 떠오르자 곧 말을 낮추었다.

 

그러나 엘세타의 생각은 틀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여자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그녀에게 반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엘라드, 세상으로 나온 이유를 잊고 있는 이유가 이딴 여자에게 정신을 팔려서 그런 거야? 대체 이 여자는 뭐야?’

 

가소롭다는 듯이 아이네스를 보던 엘세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눈 두 개, 입 하나, 코 하나, 귀 두 개. 나랑 차이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엘세타가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을 본 아이네스는 기가 막혔다.

 

‘그럼, 사람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나?’

 

“조금 전 가게에서 엘라드와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이지?”

 

“내가 대답을 해야 할 이유가 없을 텐데?”

 

“훗.”

 

아이네스의 당당한 대답을 들은 엘세타는 허리를 살짝 숙여 얼굴을 내밀더니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경고하지. 엘라드와 같이 있는 모습이 눈에 다시 뜨인다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어.”

 

그 말에 아이네스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이야기를 했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 그건 내 자유다. 네가 간여할 바가 아니야.”

 

그러자 엘세타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녀의 허리춤에서 작은 지팡이를 꺼냈다.

 

비록 크기는 작고 그 끝에 종류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돌이 붙어 있었지만 아이네스는 그것이 마법 지팡이인 것을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법사.’

 

아이네스가 즉시 걸음을 뒤로 물리며 엘세타와의 거리를 확보하고 그녀의 마법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경계를 하자 뒤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평복의 기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엘세타는 손에 쥔 지팡이를 지그재그로 그었고 주위에 회색의 기운이 두 사람을 기준으로 넓은 원을 그렸다.

 

고고고고고공.

 

그러자 주위의 풍경이 변했다. 사람들과 건물들이 뿌옇게 변하며 이질감이 있는 모습이 되어가더니 멈추었다.

 

사람들의 모습은 연해지며 사라졌고 주위의 풍경들이 보이는 듯하였지만, 거리감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된 형상이 없었고 오직 길만 무한히 넓어져 있었다.

 

‘특수한 공간인가?’

 

“감히 내게 건방진 목소리로 입을 놀리다니, 죽을 각오는 되어 있겠지?”

 

아이네스는 그녀를 다시 한번 살폈다. 손에 쥔 작은 지팡이를 제외하고는 무기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네가 더 건방져! 아이스 볼!”

 

그러자 아이네스의 마법 지팡이에 하얀 얼음의 마나가 재빠르게 모여들더니 둥글게 뭉쳤고 엘세타를 노리고 빠르게 날아갔다.

 

“훗!”

 

그것을 보고 있던 엘세타가 코웃음을 치며 지팡이를 쥔 손을 휘두르자 아이스 볼은 그녀의 코앞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얼음의 속성을 가진 마나가 급속히 풀려갔다.

 

“말도 안 돼!”

 

그것은 정말 아이네스가 생각하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지배를 받는 마나가 어느 순간 자신과의 의지가 끊어진 것이다.

 

엘세타는 얼굴에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더니 아이네스를 마법 지팡이를 향해 내밀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무혼과 합격을 수련하는 동안 기세라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한 그녀였다. 아이네스는 살짝 입술을 움직여 시동어를 읊었다.

 

“블링크.”

 

수백 번도 더 연습을 해온 마법이다. 그녀의 몸이 사라진 순간 3개의 회색 마나구가 그녀가 있던 공간을 뚫고 지나갔으며 마나구들은 다시 방향을 바꿔 몸을 드러낸 아이네스에게 달려들었다.

 

“프로즌 스파이크(Frozen Spike : 차가운 파편으로 대상을 얼린 후 파괴하는 마법)!”

 

그러자 아이네스의 온몸을 감싸며 흰색의 기류가 나타났다. 기류를 자세히 살펴보니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길이에 날렵하게 생긴 수많은 침들이 하얀빛을 발하며 기류를 형성하고 아이네스의 마법 지팡이의 인도에 따라 마나구를 뒤덮으며 날아갔다.

 

3개의 회색 마나구가 하얗게 얼어 갔고 곧 균열을 일으키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프로즌 스파이크는 기세를 멈추지 않고 엘세타에게 밀려들었다.

 

엘세타가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린 채 다시 그녀의 지팡이를 휘두르자 프로즌 스파이크를 감싸는 회색의 빛이 나타나더니 흰색의 기류를 삼켰다.

 

“귀찮군.”

 

엘세타는 중얼거리며 다시 몸을 날렸다. 그녀의 발아래에서 수많은 얼음의 손이 나타나 그녀의 다리를 잡고자 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엘세타를 놓쳤다.

 

그러나 아이네스도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즌 스파이크를 삼킨 회색의 빛이 그녀 앞에 나타나더니 흰색의 기류를 다시 뱉어냈기 때문이다.

 

아이네스는 그녀가 펼친 마법이 조금 전에 서 있던 대지를 얼려가는 것을 흘깃 본 후 엘세타를 노려보았다.

 

그때 엘세타는 얼음의 손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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