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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61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1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61화

061 군단장 베트란(3)

 

 

 

 

 

어느덧 정오가 지나 아이네스 공주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화려한 방의 천장이었다. 몸을 일으켜 옆을 보니 그녀를 보고 있는 중년의 고상한 여인이 보였다.

 

“아이네스 공주님, 괜찮으신가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아이네스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다.

 

“뉴파냐 공주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에요, 의사도 공주님이 많이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니 푹 쉰다면 곧 회복할 것이라 알려주었어요.”

 

“공주님, 제가 어릴 때처럼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그게 더 좋아요.”

 

그 말에 케이브 후작 부인은 빙그레 웃더니 천천히 말을 했다.

 

“네가 무사해서 정말 기쁘단다, 아이네스.”

 

“고마워요, 고모님.”

 

공주와 후작 부인이라는 신분이 아닌 가족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네가 벌써 6클래스의 마법사라니, 10여 년 전에 봤을 때도 놀라운 실력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따라가기 힘들겠구나?”

 

“아니에요, 고모님.”

 

오랜만에 만나는 고모의 이야기에 쑥스러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얼굴을 붉히자 그 모습을 보던 후작 부인은 인자한 눈빛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시집을 가도 충분하겠구나. 이미 나이는 차지 않았니?”

 

그 말에 아이네스는 잠시 멈칫하였으나 곧 무혼이 생각났다. 중원의 언어로 된 부드러운 자장가를 불러주는 무혼의 모습을 회상하던 아이네스는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아바마마도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솔직히 어느 멍청이 때문에 결혼이 멀리멀리 날아갔어요.’

 

어차피 포기한 결혼이었고 이제는 굳이 마음을 쓰지 않기로 한 아이네스는 곧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를 바라보던 후작 부인은 모레스 성까지 알려진 소문이 실제로 사교계에 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했더니 그 소문의 여파가 생각보다 큰 모양이구나. 혹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도 그 소문만으로도 귀족 집안에서는 아이네스를 받아들이기가 힘들겠지.’

 

잠시 말이 없을 때 아이네스의 얼굴에 떠오른 행복한 모습을 본 후작 부인은 곧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아이네스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을 떠올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문 때문에 이어지지 못한 것이리라.

 

아이네스가 측은하게 느껴진 후작 부인은 조용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다른 화제를 꺼냈다.

 

“네 동생이 너를 보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단다.”

 

그 말에 아이네스는 활짝 웃었다. 갓난아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케이브 후작 공자인 사촌 동생 오가덴을 떠올렸다.

 

“케이브 후작님이나 고모님을 닮았다면 기대가 돼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네가 좀 더 회복이 되어서 의사가 허락을 하면 볼 수 있을 거란다.”

 

 

 

 

 

이틀이 지난 후 아이네스는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질 무렵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맑은 날씨에 그녀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는 듯했다.

 

“모레스 성은 처음인데 성 주위를 돌아보고 싶어.”

 

시녀를 불러 샤워를 한 뒤 단장을 한 아이네스는 3일간 머물렀던 방을 나왔고 긴 복도를 따라 걸어 정원으로 나오니 아이네스를 마중 온 뉴파냐 공주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가진 사내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네스, 몸은 괜찮니?”

 

“예, 고모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이제 아픈 곳은 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내아이를 보고서 빙긋 웃으며 물어보았다.

 

“네가 오가덴 후작 공자니?”

 

그러자 옆의 사내아이도 빙긋 웃으며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예, 그렇습니다. 아이네스 공주님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나도 만나서 기쁘구나.”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뉴파냐 공주는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살짝 넘기더니 말을 했다.

 

“아이네스, 정원에 나가서 쉴까? 식사가 준비되면 시종들이 부르러 올 거란다.”

 

“그리하겠습니다.”

 

뉴파냐 공주와 함께 성을 거닐고 있던 아이네스는 내성의 밖으로 보이는 외성에 여기저기 무너진 곳들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피해를 입었었지.’

 

전쟁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아이네스가 불길에 휩쓸렸던 7구역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은 불에 까맣게 탄 곳이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수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이번 전쟁으로 피해가 많은가요?”

 

“구역 하나가 불길에 휩쓸렸고 성의 방어 마법진도 많이 훼손된 모양이더구나. 그리고 적들이 침범했던 7구역 앞의 숲에서는 마수와 마물들이 나와서 적들의 진입을 막기 위한 덫을 설치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나 보더구나.”

 

“마수라니요?”

 

그러자 뉴파냐 공주는 얼굴색을 조금 흐리며 말을 이었다.

 

“최근 국경지대에서 마수와 마물들의 출현이 빈번해지고 있단다. 강한 마물들이 아니라서 처리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나오고 있으니 다들 걱정이 많구나.”

 

뉴파냐 공주의 말에 아이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성들에 비해 전략적으로 공격의 위협이 적은 성들은 상대적으로 방어에 대한 준비가 적다.

 

이번처럼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나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마수라면 마계에서 간혹 넘어오는 맹수들을 이야기한다. 동맹군 측에서는 그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기에 전쟁에 이용하기도 하는 존재들이다.

 

“저도 성의 복구 작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아이네스, 몸이 이제야 회복되었잖니? 당분간 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몸은 이제 충분히 회복되었어요, 고모님. 그리고 저의 능력은 그저 가지고 있으라고 공부한 게 아니라는 것을 고모님도 잘 아시지 않으세요? 미라크네에 도움이 된다면 몸이 허락하는 한 돕고 싶어요.”

 

뉴파냐 공주는 아이네스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대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성의 보수작업과 마수 퇴치를 고위 마법사들이 도와준다면 훨씬 일이 수월해진다. 특히 아이네스처럼 6클래스의 마법사들의 도움은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훌륭하고 고마운 생각이구나. 내가 후작께 말씀드려 볼 테니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된다.”

 

뉴파냐 공주가 흔쾌히 승낙하자 아이네스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식사 시간에 케이브 후작은 뉴파냐 공주의 말을 듣고 아이네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공주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성의 보수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시 몸이 불편해진다면 저는 국왕 전하께 얼굴을 들지 못할 터이니 건강에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고모부님.”

 

강인해 보이는 케이브 후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이야기하자 아이네스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을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아이네스는 활동하기 편한 승마복으로 갈아입고 케이브 후작을 따라갔다.

 

후작이 방어 마법진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주위에 눈길을 쉬지 않고 돌리던 아이네스는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큰 피해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불러오는 참혹함은 왕궁에 있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성내 주민들과 많은 병사들의 모습에 왕족으로서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방어 마법진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케이브 후작은 아이네스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서 입을 열었다.

 

“방어 마법진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네스도 답례를 취하며 후작에게 말을 꺼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 밖의 마수들도 곤란한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공주의 말에 후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했다.

 

“마수들은 충분한 준비 없이 일부 병력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선은 성의 보수를 끝낸 후, 많은 마법사들과 병사들을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이네스는 케이브 후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 안쪽에 펼쳐진 거대한 방어 마법진의 위에는 많은 마법사들이 마법진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복원을 하고 있었다.

 

후작과 아이네스가 다가가자 그들을 지휘하며 스스로도 한 부분을 맡아 복원을 하고 있던 스테월 궁정 차석 마법사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공주마마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사옵니까?”

 

그 말을 후작이 대신 대답을 하였다.

 

“공주님께서 성의 보수를 도와주겠다고 하셨소. 그래서 마법진의 복원을 부탁드렸지요.”

 

스테월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과 대등한 마법 이론을 가지고 있는 공주가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다만 공주에게 그러한 부탁을 하기가 어려워 포기하던 차에 스스로 도와주겠다니 고맙기까지 했다.

 

아이네스가 스테월 백작의 안내를 받아 마법진의 일부분을 맡자 그 부분을 맡고 있던 5명의 5클래스 마법사가 물러나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다른 곳으로 갔다.

 

“이제 공사가 좀 더 쉬워지겠사옵니다. 5클래스의 마법사 5명이면 공사가 훨씬 빨리 진척이 될 것이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이네스는 자신이 맡은 부분을 보았다. 거대하고 복잡한 마법진의 중앙에서 주위의 마나를 고려하여 손수 마법수식으로 풀어야 하는 부분이다.

 

다른 자들에게 문제를 넘겨받아 점검을 하며 그려야 했기에 이 작업에만 5명의 5클래스 마법사가 투입되었으나 공주의 능력을 알고 있는 스테월 백작이 신뢰를 하고 맡긴 것이다.

 

그녀가 일부 외우고도 있고 재빠르게 마법수식으로 풀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방어 마법진을 구축하는 마법사들의 호위를 위해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기사와 병사들은 계산에 여념 없는 승마복 차림의 그녀를 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미라크네 왕국의 사람이라면 아이네스의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이 없었다. 물론 국경에 있다고 하지만 모레스 성의 사람들도 아이네스 공주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다.

 

붉은 기류의 공주, 혹은 붉은 마기의 마녀라고 불렸으나 왕궁기사들에게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소문에 따르면 아주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말도 많았다.

 

확실히 아이네스 공주의 모습은 왕궁이나 높은 직위의 영애들과는 달랐다.

 

부옇게 흩날리는 먼지와 따가운 햇볕이 피부에 좋지 않다 하여, 파괴된 성의 복원 작업에 참여한 귀족의 영애를 본 적이 없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공주의 신분으로 돕기 위해 나온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월감에 빠진 공주의 모습도 아니었고 고위마법사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까다롭고 변덕이 심한 모습도 아니었다.

 

미라크네 왕국에서 출발하면서 처음 본 아이네스 공주는 아무리 정성껏 마련하였다고 하지만 투박할 수밖에 없는 야전의 음식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고 불편한 잠자리에도 불평스러운 말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해 주는 모습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런 그녀의 여정이 불편하지 않도록 노력을 했고 아이네스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 주었다.

 

그들에게 아이네스 공주는 놀라움과 공주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자진해서 성의 보수까지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같이 고생을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눈길이 부드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아이네스는 자신이 맡은 방어 마법진을 완성하고서 성벽 위로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모레스 성은 한쪽에는 숲과 이어져 있고 그 옆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죽음이 감도는 황량한 대지를 지키며 빛의 연합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던 아이네스는 옆으로 다가온 스테월 백작과 로누스 백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성 밖에도 마법진을 펼쳐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며칠 전에도 저 숲을 통해 적들이 공격을 해왔잖아요.”

 

아이네스의 말에 같이 있던 6클래스의 마법사인 로누스 백작이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곳에 와서 숲에 마법진을 펼치기 위해 불을 질러보았사옵니다. 그러나 나뭇잎들만 타고 나무들은 타지 않았사옵니다. 그리고 울창한 숲이기에 병사들을 동원해서 벌목하기에도 어렵사옵니다.”

 

그리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마물들이 있기에 불가능하옵니다. 따라서 마법진도 함부로 설치하는 것이 힘드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버려둔 것이옵니다.”

 

“하지만 저 숲을 방치한다면 모레스 성의 사람들에게 많은 위험이 되지 않을까요?”

 

“숲의 경계를 좀 더 신경을 쓰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사옵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마법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지금은 마물들을 처리한 뒤 덫을 놓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해서요?”

 

순간 아이네스의 머리에서 중원에 있는 진식이 생각이 났다. 나무와 돌을 이용해서 강력하게 펼칠 수 있는 진식은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클레어보얀스(Clairvoyance: 일정한 거리 내의 사물을 마음으로 보게 해주는 마법)를 펼쳐 마나의 흐름을 본다고 해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게다가 마법수식과는 다른 수식과 철학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적들도 쉽게 통과할 수 없을 테지.’

 

“저곳에 설치할 좋은 마법진이 떠올랐어요.”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네스를 로누스 백작과 스테월 백작은 서로 마주 보고 의문을 표시했고 케이브 후작도 의문스럽다는 듯이 아이네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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