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90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90화
90화 트럼벌 요새(4)
브리엔 자작이 쾌재를 불렀다.
‘병사들 때문에라도 멈춰야지! 이놈들, 쓴맛을 보여 주마!’
그는 눈에 살기를 담으면서 엘튼 제국의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도주하는 병사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라도, 자신과 기사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예상이 이제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엘튼 제국의 기사단이 꼬물거리면서 속도를 줄여 크게 회전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제대로 싸움을 벌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브리엔 자작이 살기를 피워 올렸다.
“워! 워! 워!”
미친 듯이 달리던 브리엔 자작이 말고삐를 천천히 당기면서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뒤따르는 기사단을 멈추게 하고서 대열을 정비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비겁한 자식들! 이제야 제대로 싸울 마음이 생긴 것인가!”
적당한 거리에서 기사단과 멈춰 선 브리엔 자작이 흥분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나는 엘튼 제국의 ‘필립 에이원즈’ 백작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대열을 정비한 에이원즈 백작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이제껏 후퇴만 거듭하던 사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브리엔 자작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이름을 밝히면서, 이제라도 제대로 싸우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으니 응해 주는 게 예의다.
“프레하 제국의 자작 ‘실베르 드 브리엔’. 그게 내 이름이오.”
브리엔 자작은 마나를 담아 소리치면서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이 놓인 것이다. 병사들이 드디어 몰려오고 있었다.
병사들의 앞에서 기사단의 위용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비록 기사단의 숫자는 엘튼 제국이 우위에 있으나, 불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난전을 벌이는 거라면 약간의 부담을 느꼈을 일이다. 그러나 기사대전이라면 거리낄 것이 없었다.
상대는 기껏해야 롱소드와 단창 정도의 무장이 고작.
그에 반해 자신과 뒤를 따르는 기사들은 랜스로 무장한 상태다. 격돌한다면 아군 기사가 먼저 상대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랜스가 훨씬 길고 위력적인 병기니까.
<정렬하라! 정렬하라!>
<밀집 대형을 갖춰라! 적 기사단이 도주할 수 없게 방패를 세워라!>
.
.
.
뒤에서 들리는 보병 중대장들의 일사불란한 명령들.
‘흐흐흐… 더는 도망칠 수 없을 거다.’
브리엔 자작의 입가에 살기 짙은 미소가 걸렸다.
놈들이 도주한다고 하더라도 따라잡는 건 어렵지 않은 상황이니까 말이다.
자신은 평지에서부터 가속도를 붙이면서 쫓아갈 수 있다. 반면에 놈들은 언덕에서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
도주한다고 해도 금세 쫓아갈 수 있는 데다가 놈들은 반전해야 하기에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는 상황.
결코, 기사대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까지 따라오느라 수고하셨소! 그러니 이만 편히 쉬시오!”
에이원즈 백작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긴다는 듯이 그렇게 말이다.
브리엔 자작은 자신도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마나를 잔뜩 끌어 올린 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 그대를 저 세상에 보내놓고 편히 쉴… 편히 쉴…”
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마나를 있는 대로 퍼부어 소리치던 브리엔 자작이 눈을 크게 떴다.
상대를 향해 있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위로 올렸다.
여섯 개의 검은 점이 언덕 너머에서 솟구치는 것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단순한 점이 아니라는 건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솟구치는 물체가 수십 갈래로 분리되면서 넓게 퍼진다.
“투, 투석기 공격이다! 병사들은 흩어져라! 기사단은 나와 함께 돌격하라! 돌격하라!”
브리엔 자작이 기겁한 얼굴로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들도 투석기 세례를 받을 판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랴아!”
브리엔 자작이 서둘러 전투마에 박차를 가했다.
[돌겨억!]
기사들이 복명복창하면서 뒤따르는 걸 확인할 사이도 없이 달려나갔다.
“네 놈들만큼은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겠다아!”
분노에 사로잡힌 그가, 랜스를 갑옷의 레스트(Lance rest : 랜스 고정쇠)에 걸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이내 당혹감에 물들어갔다.
두두두두두…
흙먼지를 피워 올리면서 언덕을 내려오는 기사들.
적어도 200은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그들의 손에 하나같이 랜스가 쥐어져 있는 건 더 당황스러웠다.
“이, 이런!”
슈슈슈슉! 슈슈슉!
당혹성을 지르면서 달려가는 그의 귀에, 벌떼가 날아드는 듯한 파공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투다다당! 우적! 꽈드득! 터더덕!
괴상한 타격음이 뒤를 잇는다.
“끄아아아!”
“커헉!”
“우왁!”
.
.
.
뒤에서 들리는 병사들의 처참한 비명이 브리엔 자작의 귀를 괴롭혔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언덕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적 기사단의 숫자에 기가 질린 상태였으니까.
“이럴 수가…….”
브리엔 자작이 침음성을 흘리면서 랜스를 꽉 움켜쥐었다.
절망스러운 얼굴로 말끝을 흐리는 사이, 또다시 여섯 개의 검은 점이 언덕 위에서 솟구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
에이원즈 백작은 자신과 기사단의 곁을 스치고 지나는 아군 기사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다.
“부탁한다! 엘튼 제국의 기사들이여!”
격정이 차올라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후워어!]
스쳐 가는 엘튼 제국의 기사들이 화답하듯 함성을 내질렀다.
내리막길을 이용해 가속도가 붙은 기사단의 위용은 장관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언덕을 달려 내려간 기사단이, 마주쳐 오는 프레하 제국의 기사단과 마침내 격돌하고야 말았다.
‘대단해! 정말 대단하군!’
에이원즈 백작이 속으로 탄성을 발하면서 기사단의 격돌을 지켜보았다.
그의 시선은 아군 기사단의 선두에 고정되었다.
자신이 남작의 작위를 약속해 준 윌슨 단장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랜스 차징에 이어,
클레이모어와 비슷한 형태의 검을 뽑아들고는 순식간에 서너 명의 적 기사를 베었다.
격돌이 벌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말이다.
적 기사단은 아군 기사단과 격돌하는 사이에 사라지듯 궤멸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윌슨 단장이 기세를 꺾어 놓았기 때문에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었어.’
에이원즈 백작이 흐릿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식하게 커다란 덩치를 지녔던 ‘실베르 드 브리엔’ 자작이라는 기사단장을 윌슨이 일격해 해치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놈을 해치우지 못했더라면 귀찮은 일이 생겼을지도 몰랐다.
“이거, 대기한 보람이 없군 그래.”
피식하고 허탈한…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에이원즈 백작.
“사령관 각하의 신기막측한 작전 덕분입니다. 하하하!”
그의 곁을 지키던 하이든 자작은 목청이 보이도록 호탕하게 웃었다.
[돌격하라! 프레하 제국 놈들을 죽여라!]
다리안 산맥 양쪽에서 함성과 함께 엘튼 제국의 병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약속했던 대로 두 번의 투석기 공격 후, 아군 보병들이 프레하 제국군을 압박하는 것이다.
투석기 탄환을 부수어 그물에 담은 투석기 탄환.
그런 탄환으로 두 차례나 커다란 타격을 입은 탓에, 프레하 제국군은 혼비백산해서 도주하는 중이다.
후방에선 이백 명의 기사단이 압박하고 좌우에선 엘튼 제국의 병사가 매복 공격을 해온다.
거기에 더해 프레하 제국군이 도주하는 방향에는 이전에 숨겨 두었던 병사들이 들이칠 것이다.
“윌슨 단장… 정말 대단한 친구야, 아니 그런가?”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신들린 사람처럼 프레하 제국의 병사를 해치우는 윌슨을 바라보면서 에이원즈 백작과 하이든 자작이 감탄성을 발했다.
***
한편, 엘튼 제국 최후의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트럼벌 요새.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으나, 불안하구나, 불안해.”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듯한 사내가 트럼벌 요새 밖에 진을 친 프레하 제국군을 둘러보면서 침음성을 흘렸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으나, 주변에 같이 선 귀족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젊어 보이는 사내의 정체 때문이었다.
스텔론 듀카스 백작.
엘튼 제국의 검.
엘튼 제국 최강의 검사(劍士).
이미 나이 서른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개척해 나이가 들어도 젊음을 유지하는 인물.
황제가 공작의 자리를 약속했으나, 정치판에 끼어들어 구정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아버지.”
“이곳은 전장이다. 총사령관이라 부르도록.”
듀카스 백작은 자신의 아들인 ‘데이비드 듀카스’에게 근엄한 얼굴로 대답했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서 말이다.
그러나 너무나 젊어 보이는 모습이었기에 한두 살 많은 형이 동생에게 갑질하는 것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데이비드는 찔끔한 얼굴로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다.
“흠, 흠… 총사령관 각하.”
“말하라.”
그제야 고개를 돌려 데이비드를 바라보는 듀카스 백작.
“우리 트럼벌 요새에는 8만에 이르는 병사와 천이백 명이 넘는 기사가 있습니다. 아울러 엘튼 제국 최강의 기사인 총사령관 각하께서 지키는 곳입니다. 무엇이 불안하다는 것입니까.”
데이비드가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면서 호기를 부렸다.
트럼벌 요새는 그야말로 철옹성(鐵甕城)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트레뷔셰만 하더라도 10대나 배치되었다. 프레하 제국군이 섣불리 대형 투석기 공격을 해오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거리 안에 자신들도 노출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급격히 거리를 좁힌다고 하더라도 20대의 캐터펄트와 15대의 발리스타가 대기 중이다.
거리를 좁힐 때까지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크로스 보우라 부르는 최신형 활을 1,200대나 보유 중.
적의 숫자가 아군보다 많다지만, 트럼벌 요새의 장벽은 저들에게 절망의 벽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프레하 제국군이 아직 후방에 남아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야. 뱅크스 요새의 승전보는 의외다만, 2만 정도의 숫자가 더해지지 않았다고 해서 저들의 전의를 꺾지는 못하겠지.”
씁쓸한 얼굴로 듀카스 백작이 대답했다.
트럼벌 요새 앞에 진을 친 프레하 제국군의 숫자는 어림짐작으로 가늠해 보아도 10만을 훌쩍 넘긴다.
‘저런 숫자로 밀고 들어왔으니 베링 요새가 그렇듯 쉽게 함락되었을 터. 슬런더 요새를 넘어오는 적이 대략 3만이라고 했던가? 거기에 뱅크스 요새를 넘어서 합류할 병력도 최소 1만 5천…….’
듀카스 백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슬런더 요새의 병력이 트럼벌 요새로 복귀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번 제국 전쟁에 최초로 승전보를 울렸던 뱅크스 요새의 병력은 그렇다 쳐도 말이다.
“자이론 후작!”
“네, 말씀하십시오. 총사령관 각하!”
듀카스 백작의 뒤에 서 있던 귀족 중의 한 명이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베링 요새에서 병력을 이끌고 퇴각한 6서클의 마법사 ‘이안 자이론’ 후작이었다.
“슬런더 요새의 에이원즈 백작에게선 전해 온 소식은 없었소?”
“그렇습니다. 프레하 제국군의 후방을 교란하겠다는 연락을 끝으로 소식이 없습니다.”
자이론 후작은 자신이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군. 에이원즈 백작이 고난의 길을 택할 줄은 몰랐는데…….”
듀카스 백작이 말끝을 흐리면서 침음성을 흘렸다.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똘똘 뭉친 무식한 귀족.―
강경파 귀족에 대한 듀카스 백작의 평가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평가를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강경파의 대표급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이원즈 백작이, 게릴라식 전투를 하겠다고 보고할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와아아아! 프레하 제국 만세! 만세!]
고민하는 듀카스 백작의 귀에 파고드는 함성.
“저, 저! 프레하 제국의 병력이 양쪽 길에서 동시에 오고 있습니다!”
적진을 살피던 듀카스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마나를 담은 음성으로 크게 소리쳤다.
“이런…….”
듀카스 백작이 기사의 외침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프레하 제국의 본진을 중심으로 양쪽 옆에서 대규모 군대가 진군해오고 있었다.
진군해오는 두 개의 군대는 각각 프레하 제국의 상징인 붉은색 피닉스가 그려진 깃발을 앞세운 채였다.
그들을 발견한 프레하 제국의 본진에서 함성을 지르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듀카스 백작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엘튼 제국의 기사들이여! 병사들이여! 때가 다가왔다! 모두 무기를 들고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마치 천신의 음성처럼 듀카스 백작의 목소리가 트럼벌 요새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