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83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83화
83화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2)
***
다리안 산맥이 시작되는 지점.
길게 이어지는 산맥은 뱅크스 요새를 지나, 멀리 프레하 제국의 안쪽 깊숙이 뻗어 나간다.
산이 험하고 중간중간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프레하 제국과 엘튼 제국을 나누는 경계선과 같다.
그야말로 자연이 제공한 완벽한 방어막이라고 보면 맞겠다.
뱅크스 요새의 전투에서 죽은 조셉에게 속아, 쉬지도 못하고 행군하다가 짜증나서 쉬어 갔던 곳.
바로 그곳에 엘튼 제국의 병력이 모여 웅성대고 있다.
슬런더 요새의 사령관이 이끌고 온 병력과 뱅크스 요새에서 도주한 병력이 모두 집결한 상태다.
엄청난 숫자의 병사와 기사들이 바글거린다.
문제는 우리보다 몇 배나 많은 프레하 제국의 군대가 이곳을 지나칠 거라는 건 조금 답답한 상황이긴 하다.
놈들이 후퇴하는 아군을 노릴 거라는 건 생각해보나 마나다.
뱅크스 요새의 병력이나 슬런더 요새의 병력은 밤을 새워서 이동한 상황.
그렇다!
아군은 이틀이나 잠도 못 자고 이동해 왔다는 얘기다.
더 이상의 행군은 무리다.
프레하 제국의 추격에서 조금은 안전해졌지만, 병사와 기사들의 상태는 심각한 수준.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몸 상태를 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을 벌기 위해서 전투력을 포기했다고 보면 맞겠다.
비틀거리는 병사들의 앞에는 은빛의 갑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말 위에 앉아 병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입가에 회색빛 수염을 기른 인물로 전신에 흐르는 기운이 나름 한 가락 할 것처럼 생겼다.
바로 슬런더 요새에서 퇴각한 에이원즈 백작이었다.
그의 곁에는 뱅크스 요새의 사령관인 반데라스 자작이 서 있다.
두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더니, 에이원즈 백작이 전투마 위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많이 지쳐 있다는 걸 안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세 개의 요새를 통해 프레하 제국의 군대가 트럼벌 요새로 진격할 것이다.”
에이원즈 백작이 울분의 감정을 섞어 말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마나를 담은 음성이다. 기사와 병사들은 졸음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그의 음성에 몸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말처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에이원즈 백작이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병사들의 지친 모습이 애처롭게 보일 지경이다.
약간의 웅성거림마저도 사라지고 정적이 감돌았다. 그저 간간이 전투마의 푸르륵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우리는 이제부터 다리안 산맥에 들어가 몸을 숨길 것이다. 앞으로의 전투는 철저하게 프레하 제국의 뒤를 노리게 될 것이다. 명예도 자부심도 없는 전투를 벌이겠다는 얘기다.”
[…….]
에이원즈 백작의 입에서 비장한 각오가 묻어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기사는 물론 병사들까지 동요하는 듯 느껴진다.
나 역시 의외다.
물론, 뱅크스 요새에서 퇴각하기 전, 에이원즈 백작과 통신으로 대화한 내용을 듣기는 했다.
그래서 고리타분한 생각을 고쳐먹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명예와 자부심도 없는 싸움을 할 거라고 얘기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에이원즈 백작은 자신의 말에 기사와 병사들이 동요할 것을 예상했던 것 같았다.
병사들이 혼란스러워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허리춤에 꽂힌 검을 뽑아들었다.
채앵!
소리가 나도록 멋들어지게 뽑은 검을 치켜들자, 짙은 푸른색 마나 블레이드가 피어났다.
내가 저 세상으로 보내 준 휴스턴 백작보다 반수 정도는 우위에 설 정도의 실력으로 보인다.
“이 검은 이디오트 공작 각하께서 직접 하사하신 ‘윙스타’라는 검이다. 공작 각하께서는 내게 슬런더 요새를 지켜달라 명하셨다! 하지만 나는! 슬런더 요새를 버렸다!”
[…….]
피를 토하는 듯한 그의 음성에 기사와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뚝 끊겼다.
“아닙니다! 명령 때문이었잖습니까!”
“사령관 각하의 탓이 아닙니다!”
.
.
.
침묵을 깨고 기사와 병사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에이원즈 백작을 옹호해 주었다.
“나는!”
[…… ]
에이원즈 백작이 단호한 음성으로 짧게 소리치는 순간, 그를 옹호하며 소리치던 기사와 병사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 굉장한 말을 꺼낼 것만 같은 분위기가 팍팍 풍겨 나온다.
저 아저씨…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높은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말 빨이 좋은 건지, 말 빨이 좋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른 건지…
아무튼, 대단한 말솜씨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단순히 말을 잘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잘 잡는다.
저런 점은 좀 배우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 검을 받을 때, 공작 각하께 맹세했다. 슬런더 요새를 지키겠노라고 말이다. 명령을 받았다고는 하나 지키지 못한 것은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하여 나는 결심했다!”
[…… ]
일부러 그랬을 것이 분명한 에이원즈 백작의 침묵.
나도 그의 다음 말이 궁금해질 정도니, 다른 사람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
“프레하 제국 놈들을 끝까지 괴롭혀 주겠다고 말이다! 나의 결심을 이룰 수 있게 그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도와주겠는가!”
[돕겠습니다!]
[에이원즈 사령관 각하 만세!]
거의 반쯤 죽어 가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서 머리 위로 치켜든다.
별다를 거 없는 넋두리에 불과한 연설이 가져다준 힘은 대단했다. 반쯤 시체와 같았던 기사와 병사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으니까.
“제국을 위하는 그대들의 뜨거운 충정에 나 ‘필립 에이원즈’는 감동했다. 자! 모두 다리안 산맥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도록 한다. 기사들은 전원 남아서 흔적을 지우고 이동한다!”
[예! 에이원즈 사령관 각하!]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기사들과 병사들.
아 놔!
귀찮은 일을 하게 생겼다.
병사들이 지쳐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래,
어차피 할 거라면 웃으면서 하자, 웃으면서!
쓰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진짜로.
***
“척후병은 어찌 되었는가!”
냉기가 쏟아지는 듯한 눈을 하고서 잉젤거 백작이 으르렁거렸다.
솟구치는 짜증을 해소할 길이 없었다.
뱅크스 요새에서 튀어나온 기사들의 뒤를 쫓아갈 때까지만 해도 통쾌했었다.
야습에 대비해 병사들을 대기시킨 자신의 작전이 제대로 들어맞아 희열을 느꼈다.
엘튼 제국의 기사가 장벽 안으로 쫓겨 가는 걸 보면서 몇 번이나 주먹을 움켜쥐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밉살스러운 기사 놈 하나가 튀어나와 아군 기사단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광경에 기가 막혔다.
그래서 총공격을 명령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뱅크스 요새를 변변한 공성 무기 없이 도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명령을 받아 다리안 산맥을 넘어가는 병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뱅크스 요새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을 땐, 그의 분노도 치솟았다.
요새 전체가 불타오르는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버린 다음이었다.
그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장벽을 부수고 드디어 지긋지긋한 뱅크스 요새를 함락했을 때, 남은 것은,
상처뿐인 승리.
분명 뱅크스 요새의 적이 퇴각한 것이니 승리한 것은 맞다.
문제는 이렇게 허무한 승리를 챙기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사령관이자 친우인 앙부아즈 백작이 사망했다. 거기에 기사단 전력의 대부분을 잃었고 병력의 손실은 더 극심했다.
1/3가량의 병력이 뱅크스 요새의 장벽을 넘으려다가 희생되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수치스러운 기분이라니…….’
잉젤거 백작은 뱅크스 요새를 지키던 병력이 도주한 방향을 노려보았다.
명색이 전략가인 자신이 이토록 허무하게 농락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앙부아즈 백작이 우격다짐으로 명령을 내린 것은 권한 밖이라서 자신의 책임은 없다.
그 외에는 잘못된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앙부아즈 백작이 전투를 주도하던 초반을 제외하고는 실수한 적도 없다. 실수가 적은 쪽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건 당연한 진리.
적의 야습도 충분한 대비로 오히려 반격을 가했다. 실수는커녕 오히려 대비가 잘된 편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뱅크스 요새의 전투는 괴상하다.
자신이 아무리 대비를 해도 상황이 계속 꼬이기를 반복하니까.
‘그 자식! 그 자식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어!’
잉젤거 백작이 입을 꽉 다물었다.
앙부아즈 백작을 죽인 놈.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게 바로 그놈이었다.
투석기 탄환을 탈취해 아군의 트레뷔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분해 죽을 맛인데, 탈취한 투석기 탄환으로 아군 병사들을 짓이겨 죽였다.
야습을 역으로 이용하던 상황에서도, 그 가증스러운 놈은 투석기 탄환을 뿌려 앙부아즈 기사단의 추격을 막았다.
공격 실패의 중심에는 항상 그 놈이 끼어 있다.
“척후병은 어찌 되었는지 묻지를 않았던가!”
잉젤거 백작이 분노해 소리쳤다.
“사령관 각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돌아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삐에르 남작이 안절부절 못 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으음… 미안하군. 내가 너무 예민해졌어. 내가 제 정신이 아니니 이해하게.”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령관 각하.”
잉젤거 백작의 말을 들은 삐에르 남작이 그제야 조금 안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나저나 지독한 놈들이 아닌가! 모조리 불태우고 퇴각하다니…….”
“저들로서는 당연한 조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프레하 제국군의 병력이 월등하니까 말입니다.”
“하긴, 베링 요새와 슬런더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테지.”
“베링 요새는 물론 슬런더 요새도 뱅크스 요새와 다를 바 없이 모든 물자를 불태우고 퇴각했다고 합니다. 아! 척후병이 돌아오는 듯합니다.”
맞장구를 치던 삐에르 남작이,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말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잉젤거 백작이 시선을 돌려, 미친 듯이 말을 몰고 오는 척후병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척후병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단 한 차례도 시선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두두두두두!
마침내 척후병이 앞에서 멈췄으나, 잉젤거 백작은 그새를 못 참고 다가갔다.
“보고하라!”
“예! 사령관 각하! 적은 산맥의 길을 따라 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척후병은 계속 흔적을 따라 이동 중입니다. 급하게 이동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으음… 우리의 추적을 피해보겠다는 건데… 놈들이 무리하는군.”
잉젤거 백작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놈들은 기껏해야 4천이 채 되지 않는 숫자야. 손실이 있었다고는 해도 우리가 최소 3배는 넘지. 기사단의 숫자가 아쉽지만, 대신에 정예만 남은 셈이니…….’
속으로 깊이 고민했다.
새벽을 틈타서 도주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했다는 의미다.
정면으로 상대할 자신이 없으니 시간을 벌기 위해서 요새에 불을 질렀다는 계산이 나온다.
“추격한다!”
“사령관 각하! 아니 되옵니다.”
같이 보고를 듣던 삐에르 남작이 기겁한 얼굴로 만류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것인가?”
“아직 3사단과 4사단이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잘 된 일이 아닌가! 그들에게 뒷수습을 맡기고 우리는 전력으로 놈들을 쫓아가 주살하면 될 일일세. 놈들과 달리 우리는 푹 쉬었지 않은가.”
잉젤거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뱅크스 요새가 거센 불길에 휩싸인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푹 쉬었다.
그에 반해 뱅크스 요새의 적은, 퇴각을 준비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도주했을 게 뻔했다.
뒤를 추격해서 놈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뱅크스 요새에서 받았던 수모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오나, 군대를 반으로 쪼갠다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인 듯합니다. 부디, 명령을 거둬 주십시오.”
“삐에르 남작!”
“옛! 사령관 각하!”
“그대는 앙부아즈 백작을 죽인 원수를 이대로 보내 주자는 말인가? 나중에 발루아 공작 각하를 뵐 면목이 있겠나? 나는 자신 없다네.”
“…뜻에 따르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삐에르 남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혈질에 소드 마스터의 무력까지 지닌 발루아 공작이다. 존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앙부아즈 백작은 발루아 공작의 장남.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놔주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저 역시 앙브아즈 백작 각하의 원수를 놓아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출발을 명하게.”
“네! 사령관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