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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최강 군바리 8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0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82화

82화 튀어! 이 자식아!

 

 

 

장벽 위를 걸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피비린내가 너무 짙다.

날씨가 더워진 탓에 장벽 밖에 쌓인 시체에서는, 슬슬 역한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중이다.

그런 곳에 끓는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댔으니 고약한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아군 병사들은 동료의 시신을 옮기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병사들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아무튼, 프레하 제국이 개자식들이다.

엘튼 제국을 침공해 오는 거니까.

전쟁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이유가 결국, 돈과 여자로 귀결된다.

제 아무리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본질은 그거다.

다른 놈들보다 잘살고 싶고, 근사한 여자를 그냥 막… 확 그냥…

험, 험…

아무튼, 그런 저열한 욕망을 충족하려는 놈들이 보통은 전쟁을 일으키곤 한다.

오랜 시간 전쟁이 이어지다 보면, 최초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그저 악감정이 폭발해 싸우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말이다.

함께 떠들고 웃던 동료가 참혹하게 죽는 모습을 본다면 악에 받치지 않을 리가 없겠다.

결국은 악순환.

정말 궁금한 건…

프레하 제국의 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장벽 앞에 프레하 제국 병사들의 시체가 그득한 데도 전혀 기가 꺾이지 않는다는 게 놀랍다.

거의 뱅크스 요새의 모든 병력과 맞먹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병사가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모르겠다.

내가 적 지휘관이라면 벌써 후퇴를 결정했을 것 같다. 무의미하게 병사들이 희생되고 있으니까.

하긴…

까라면 까야 하는 게 군대니, 명령 때문에 악착같이 버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참담한 광경을 보면서 걸으니 어느새 뱅크스 요새 중앙의 성이 나타났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아군 지휘관들이 힘없이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저들도 괴로울 거다.

상당한 적을 처치했음에도 아직 전투의 끝이 보이지 않으니, 지치는 게 당연하겠다.

나로서도 이런 대규모 전투는 처음 경험하는 거라, 자괴감이 드는 상황이다.

인간의 목숨을 너무 쉽게 지워나가고 있으니, 맨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지경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어가는 아군 지휘관을 따라 집무실에 들어갔다.

 

“충!”

 

간단하게 군례를 올리고 역시나 반데라스 자작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코너는 역시나 반데라스 자작의 옆에 앉아 있다. 나와 기사단이 야습에 나선 까닭에 반데라스 자작이 직접 코너를 데리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뭐, 살아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회의에 참가한 지휘관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

 

“자!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네.”

 

[네, 사령관 각하.]

 

무겁게 입을 여는 반데라스 자작의 음성에 지휘관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데…

이게 다 모인 거라고?

야간 전투에서 지휘관급 인물들이 이렇게나 많이 죽었던가?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소집 명령을 내렸소. 코너 통신관!”

 

반데라스 자작은 옆자리에 앉은 코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녀석은 어두운 얼굴로 한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베링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

 

축 처져 있던 지휘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레하 제국과 엘튼 제국을 가로막는 요새들은 하나같이 절묘한 지역에 세운 천혜의 요새라고 들었다.

당장 뱅크스 요새만 하더라도, 다리안 산맥을 방패삼아 장벽으로 적의 진입을 막는 형태다.

중요도가 더 높은 베링 요새라면 뱅크스보다 몇 배나 더 견고할 테고 병력도 많이 배치되었을 터.

 

“베링 요새가 무너졌다는 게 사실입니까?”

 

존슨 자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소. 현재 베링 요새를 방어하던 병력은 트럼벌 요새로 이동 중이라 하오. 슬런더 요새는 물론 우리 뱅크스 요새에도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오.”

 

“빌어먹을! 대체 에블렌 후작 각하께서 어쩌다가 베링 요새를 빼앗긴 것이라는 겁니까!”

 

“전면전에 응했다가 매복에 당했다고 하오.”

 

“멍청한… 험, 허험!”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던 존슨 자작은 헛기침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같은 파벌의 에블렌 후작을 욕하는 건 누워서 침 뱉는 격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자신보다 작위까지 높은 인물이고 보면 무척이나 위험한 발언이다.

그래서 겨우 튀어나오는 욕설을 참아낼 수 있었다.

 

“에블렌 후작이 전사하고 자이론 후작이 병력을 수습해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이오. 명령에 따라 우리도 퇴각해야 하오.”

 

“하지만 그리되면 베링 요새와 슬런더 요새를 넘은 프레하 제국의 군대와 조우할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존슨 자작이 눈살을 찌푸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

뱅크스 요새에서 트럼벌 요새까지 밤낮으로 진군한다고 해도 거리상 다른 두 요새보다 한참이나 늦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뱅크스 요새에서 후퇴한다면 아주 뒷맛이 더러워질 거다. 지금까지 싸우던 프레하 제국의 2만 대군을 뒤에 달고 도주해야 하니까.

이래저래 또 상황이 제멋대로 꼬이는 느낌이다.

당장 퇴각을 해야 하는 데, 퇴각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반데라스 자작으로서도 머리가 아픈 게 틀림없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심각한 상황 때문에 대화가 잠시 끊어진 사이, 어디선가 진동음이 일어난다.

누가 휴대폰을 진동으로 맞춰 놓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이런 낙후된 세계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겠다. 잠시 한국과 혼동한 거다.

그나저나 진짜 휴대폰 진동음과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나 모르겠다.

코너가 눈치를 보면서 품속을 뒤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품에서 주먹만한 수정구를 꺼내는데, 진동음은 거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거 신기하네…

코너가 수정구에 손을 대면서 마나를 불어넣는 게 느껴진다.

녀석의 손에서 살짝 푸른빛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수정구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뱅크스 요새의 통신관 코너 모리스입니다.”

 

<슬런더 요새의 사령관 ‘필립 에이원즈’ 백작일세. 뱅크스 요새의 사령관을 부탁하네.>

 

어쩐지 비장감마저 묻어나는 음성이 수정구에서 흘러나왔다.

 

“에이원즈 백작 각하! ‘빅터 반데라스’입니다.”

 

침묵을 지키던 반데라스 자작이 화색이 도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오! 반데라스 자작, 내 뱅크스 요새에서 그대가 맹활약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열심히 싸워 준 덕분입니다.”

 

말과 달리 반데라스 자작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파벌이 달라서 그런지 둘 다 잔뜩 예의를 지키는 듯하다. 만약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낯간지러운 수식어를 잔뜩 늘어놓았을 게 분명하다.

한 등급 윗줄의 귀족이라면 말을 편하게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또 조금 의외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 슬런더 요새의 병력도 제 시간에 트럼벌 요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뱅크스 요새라면 더 거리가 멀 테지요.>

 

“맞습니다. 이대로 요새를 버리고 퇴각하다가 앞뒤로 포위당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반데라스 자작이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처음에도 들었던 얘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상황이 오면 끔찍할 것 같기는 하다.

새벽에 놈들이 몰려오는 기세에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치 흉기로 뒤덮인 파도가 뒤에서 밀려오는 기분이라고 할까?

저놈들만으로도 끔찍한데, 베링 요새를 함락한 프레하 제국군까지 가세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원즈 백작이라는 사람은 왜 우리에게 연락한 것인지 궁금하다.

일부러 약이나 올리겠다고 연락해 온 것은 아닐 터.

그래서 수정구를 주목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이다.

회의실에 모인 지휘관들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반데라스 자작과 에이원즈 백작의 대화에 다들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반데라스 자작이 걱정하는 바를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해서 한 가지 제안하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에이원즈 백작의 말은 반데라스 자작의 얼굴을 활짝 펴게 해 주었다.

그것은 나와 나머지 지휘관들도 마찬가지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병력을 합쳐서 프레하 제국의 후방을 어지럽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방을 어지럽힌다 하심은…….”

 

<말 그대로입니다. 무리하게 트럼벌 요새로 퇴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프레하 제국군의 뒤를 치자는 얘기입니다. 저들은 우리 때문에라도 병력을 둘로 나눌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진심… 이신지요?”

 

반데라스 자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더듬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슬런더 요새의 사령관인 에이원즈 백작은 강경파에 속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강경파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사도를 숭상하고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존재들.

후방 교란과 같은 비겁한(?) 짓을 먼저 제안해 올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진심입니다. 이대로라면 엘튼 제국이 위험합니다. 나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황제 폐하와 제국민의 위기에 처했는데 언제까지 기사도만 고집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에이원즈 백작 각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의아해 하던 반데라스 자작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럼 프레하 제국군에게 도움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파괴하고 후퇴해 주시길 바랍니다. 중간중간 연락을 취할 터이니, 상황에 따라 합류지점을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에이원즈 백작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통신을 연결한 마법사가 마나 공급을 중단한 게 틀림없다.

 

“자! 에이원즈 백작 각하께서 하신 얘기를 들었을 것이오. 당장 퇴각해야 하오. 우선은 성 안의 기름을 모조리 장벽 위와 장벽 안쪽에 뿌려 불을 지를 것이오. 군량은 모든 병사에게 넉넉하게 지급하고 남는 것은 불태워야 하오. 윌슨 단장!”

 

“네! 사령관 각하!”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장벽의 출입문에 투석기 탄환과 남는 군수물자를 잔뜩 쌓아주게. 조금이라도 적의 추격을 늦춰야겠어.”

 

“하지만 그리하면 놈들이 대형 투석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만…….”

 

“그걸 노리는 걸세. 대형 투석기와 탄환을 가지고 가야 할 테니, 행군 속도가 더 느려지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어려운 명령도 아니었기에 냉큼 대답했다.

프레하 제국군이 대형 투석기를 트럼벌 요새까지 끌고 가려면 뱅크스 요새의 출입구를 부숴야 한다.

대형 투석기의 높이가 장벽보다 훨씬 더 높으니까.

가장 취약한 곳은 거대한 문이 설치된 부분이다. 그곳에 투석기 탄환을 가득 쌓아 놓는다면, 골탕 좀 먹을 거다.

탄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치워야 할 테니까.

뱅크스 요새를 불바다로 만들어 놓을 테니, 적들은 여러모로 고생 좀 하겠지.

 

“자, 자! 지휘관들은 서두르시게!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해야 에이원즈 백작 각하의 병력과 합류할 수 있을 것이오!”

 

[예! 사령관 각하!]

 

***

 

“서둘러라! 잠을 줄여서라도 뱅크스 요새에 드뤼포 남작보다 일찍 도착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배아르 남작이 나직하게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피곤한 얼굴로 일제히 대답했다.

험한 다리안 산맥을 타고서 뱅크스 요새를 기습하라는 명령을 받고서 이동하는 중이다.

삼일을 예상했으나 배아르 남작은 시간을 단축시킬 생각이었다. 존경하는 앙부아즈 백작의 허무한 죽음이 그를 미치게 해 버렸다.

기습 임무에 그래서 자원했다.

감히 앙부아즈 백작의 목숨을 앗아 간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뱅크스 요새까지 험한 산을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지극히 괴로운 일이다.

무장조차 최소한으로 하고 이동하는데도 겨우 하루 만에 낙오자가 속출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배아르 남작의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복수심을 꺾을 순 없었다.

 

“출…… 응?”

 

막 출발 명령을 내리려던 배아르 남작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어스름한 새벽의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발견한 탓이다. 그것도 자신이 목표로 한 뱅크스 요새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말이다.

 

“퇴각한 것인가…….”

 

배아르 남작은 뱅크스 요새에 불을 질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큭!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상거지 꼴을 한 자신과 부하들을 번갈아 보면서 배아르 남작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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