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33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33화
133화 하필이면……(4)
***
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다.
이럴 땐 황궁 밖에서 머물고 있을 시안과 티오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황제의 장례는 무려 한 달에 걸쳐 치러진다고 한다.
각국의 사신단을 맞이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제라는 자리가 죽어서까지도 국익을 위해서 이용된다고 봐야 하나?
아무튼, 씁쓸하면서도 지루한 시간만 계속 흘러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놀지는 않았다.
황제의 죽음을 슬퍼할 의리도 그렇다고 친분도 없다.
남는 시간을 오롯하게 내공 수련에만 사용하는 중이다. 남의 눈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없다는 건 좀 아쉬웠지만 말이다.
어쩌면 황제의 죽음이 나에겐 커다란 이득을 주었다고 봐야겠다.
영지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 터.
느긋하게 나를 관조(觀照)할 여유를 얻었다는 건 의외의 소득이다.
딱히 원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예 탁 트인 곳에서 수련하는 중이다.
누군가 다가온다면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곳을 택하다 보니 황궁 뒤편의 후원(後園)이 안성맞춤이었다.
황궁 앞의 정원보다는 규모가 절반 정도지만, 그럼에도 눈 돌아갈 정도로 넓은 곳.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서 여유를 가지고 내 몸을 살피는 중이다.
이제껏 너무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
외부의 위협 때문에 필연적으로 강해져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된 결과다.
일 갑자의 내공을 완성할 때도 충분한 여유를 두고 작업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는 것을 통감한다. 조금 더 여유를 두고서 시도했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드래곤 하트가 중단전의 역할을 대신하는 중이다. 아니, 중단전과 드래곤 하트가 융합되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다.
원래는 이쯤에서 화경의 경지를 노려야 한다. 그렇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 갑자의 내공을 완성하면서 겪었던 고통이 기억에 확실하게 남아서다.
더군다나 이제야 겨우 안정화 단계인 상태기에 육체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후우우…….”
긴 한숨과 함께 내공 수련을 마쳤다.
벌써 열흘.
황궁에서 보낸 시간이 그렇게나 오래되었다.
영지는 잘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너가 잘 이끌고 세인트와 안토니가 보좌할 테니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세인트가 또 엉뚱한 짓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여자를 밝히는 것 말고는 딱히 사고치는 건 없으니…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건가?
어쨌거나 시간이 제법 흐른 모양이다.
새벽에 나와서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태양이 어중간한 위치에 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병사들이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해 온다.
병사들은 나를 이상한 놈 쳐다보듯 하고 있다. 새벽부터 눈으로 뒤덮인 정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연회장을 목표로 걸어갔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다.
황제의 장례 덕분에 귀족 대부분이 황성에 모여든 상태.
귀족들을 일일이 챙겨줄 여력이 없으니, 연회장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셈이다.
계속 마주친 덕에 상당한 숫자의 귀족들과 안면을 텄다는 건 좋은 점이다. 다만 지루하게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은 조금 곤혹스럽다.
“…….”
연회장에 들어서려는데 느낌이 싸하다.
들어가기가 꺼림칙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느낌이 안 좋다고 아침을 거르는 것도 좀 우습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서는데,
발을 들이기 무섭게 뻗쳐오는 살기.
나를 노려보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상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오랜만이군. 아이언 남작.”
“반갑다고는 얘기할 수 없겠군요. 발루아 공작.”
예전과 마찬가지로 두 명의 기사를 대동하고 온 그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전히 건방지군.”
“반가워해야 합니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대로 얘기했을 뿐인데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으니까.
지난번에 아이언 영지에 벌인 꼼수를 생각하면, 주먹을 날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마음에 안 들어, 아이언 남작.”
눈매를 좁히면서 더욱 살기를 집중하는 발루아 공작.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더욱 농도 짙은 살기를 집중해 쏘아 보낸다.
아마도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는 게 분명하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기대하는 것일 터.
단전에 힘을 주고서 이제껏 쌓아 온 살기를 일시에 개방했다.
“내가 왜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겁니까. 적당히 하시죠. 발루아 공작?”
“우웃!”
발루아 공작이 흠칫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를 수행하는 두 명의 기사는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거린다. 나의 살기는 오롯이 발루아 공작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발루아 공작과 나의 살기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치열한 전장에서 직접 인간의 살과 뼈를 가르면서 쌓아 온 살기.
최근까지도 전장에서 뒹굴었기에 신선함(?)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게다가 나는 생존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굴러 왔다. 그에 반해 발루아 공작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싸워 왔을 터.
비등한 경지를 구축한 상태에서라면 나의 살기가 더 짙은 게 당연한 현상이다.
지난번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주화입마 직전까지 몰렸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해소되는 기분이다.
“지난번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발루아 공작.”
“서, 선물?”
발루아 공작이 말을 더듬는다.
예상치 못한 나의 반격에 당황한 것이 분명하다.
“데리앙이었던가? 영지 앞에서 알짱대길래 잘 묻어 줬습니다. 다음부턴 그런 선물은 사양하고 싶습니다만.”
“…….”
발루아 공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패잔병을 이끌었던 기사의 롱소드에 새겨진 이름을 말해 본 것인데 맞는 모양이다.
“조용히 있다가 떠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발루아 공작.”
살기를 거두면서 빙그레 웃어 주었다.
자꾸 쓸데없이 살기 따위를 풍기면서 귀찮게 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자 발루아 공작이 입술을 씰룩이면서 조금 더 다가왔다.
“반드시 네놈만큼은 내 손으로 죽여주겠다. 아이언 남작.”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속삭이는 발루아 공작.
“마음대로 해, 등신 같은 새꺄.”
나 역시 목소리를 죽이고서 곧바로 대꾸해 주었다.
겁먹을 거로 생각했나?
“…….”
“그럼 이만.”
멍한 얼굴로 서 있는 그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주고서 지나쳤다.
“멈춰라!”
연회장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의 고함.
걸어가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발루아 공작?”
놈에게 욕을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지만, 놀란 척 연기했다.
“방금 무어라 했는가!”
발루아 공작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덕분에 연회장의 귀족들이 일제히 나와 발루아 공작을 쳐다보았다.
연회장에는 엘튼 제국의 귀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황제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보내온 사신들도 여럿이다.
황제의 장례 기간에는 엄숙하고 경건해야 하는 게 상식.
그것을 깨고 버럭 고함을 지르는 발루아 공작을 이상하게 보는 게 당연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이러십니까. 발루아 공작.”
최대한 당황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귓구멍에 뭘 박고 다니는 거야? 등신 새끼라고 했잖아,
그러나 전음으로는 잔뜩 비아냥거려 주었다.
열심히 전음을 연습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
발루아 공작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이곳 세상에는 ‘전음’이라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
누군가 메시지 마법으로 욕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어딜 봐? 나 아이언 남작이다. 멍청한 자식아.
다시 한 번 전음을 보내면서 곤란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 이노옴! 감히! 나에게 욕을 하다니!”
이마에 핏대까지 세울 정도로 잔뜩 화가 난 발루아 공작이 삿대질한다.
“발루아 공작, 아무리 내가 당신의 아들을 죽였다고는 해도, 그건 전쟁터에서 벌어진 일 아닙니까! 어째서 제가 욕을 했다고 억지 트집을 잡는 것입니까.”
―쫌팽이 같은 새끼. 너 같은 놈 때문에 다른 기사가 욕먹는 거다. 애새끼가 실력 없어서 뒈졌으면 쪽 팔린 줄 알아. 등신아!
후와아!
이거 진짜 통쾌하다.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분노에 휩싸인 발루아 공작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나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갈등하는 태가 역력하다.
제법 멘탈이 튼튼한 인간이라는 건 인정해 줘야겠다.
그런 욕을 얻어먹고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 말이다.
“아, 아… 정말 왜 이러십니까. 발루아 공작.”
당황한 얼굴을 유지하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쳐 봐! 쳐 봐! 못 때리면 더 등신인 거 알지?
물론 전음으로는 잔뜩 상대를 비웃어 주는 중이다.
결정타.
발루아 공작의 눈이 훼까닥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놈이 달려들면 턱을 박살 내버릴 생각이다.
“죽여 버리겠다!”
짐승의 포효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달려드는 발루아 공작.
뒤로 물러나면서 주먹에 내공을 집중했다.
진룡권법(眞龍拳法) 다섯 번째 초식 승룡포(乘龍砲).
상대의 턱을 타격해 뇌를 흔들어 버리는 수법이다.
달려드는 발루아 공작의 움직임에 타이밍을 맞추고 오른쪽 어깨를 슬쩍 낮추었다.
“!”
하지만 이내 내공을 거두어야만 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팟!
순간적으로 눈앞에 사람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발루아 공작을 가로막으면서 두 손을 뻗어 공격을 차단해 버리는 존재.
엘튼 제국이 자랑하는 듀카스 대공의 등장이었다.
터덕!
“으윽! 놓으시오!”
작정하고 달려들었다가 방해를 받자, 발루아 공작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진정하시오. 발루아 공작. 엘튼 제국에 오셔서 이 무슨 행패란 말이오!”
그러나 듀카스 대공은 오히려 발루아 공작의 두 팔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으으으… 듀카스 대공이었구려.”
그제야 자신을 막아선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은 발루아 공작이, 슬그머니 두 주먹에 힘을 뺀다.
“대체 왜 이렇게 흥분한 것이오. 발루아 공작.”
듀카스 대공이 다독이듯 말을 걸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문제가 생기질 않게 하려는 배려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계속 하지그래? 듀카스 대공한테 겁먹었냐?
분위기 다운되려 할 때 한 번 더 건드려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으윽!”
“발루아 공작!”
눈에 힘을 주고서 발끈하는 발루아 공작을 다시금 듀카스 대공이 막아선다.
“저놈이 내게 상스러운 욕설을 했소. 듀카스 대공!”
이를 뿌드득 갈면서 내게 삿대질하는 발루아 공작.
그러자 듀카스 대공이 내게 시선을 던진다.
“아이언 남작, 어찌 된 일인가?”
“제가 그럴 리가 없질 않습니까, 듀카스 대공 전하.”
억울하다는 감정을 듬뿍 담아서 대답했다.
“거짓이오! 조금 전에도 분명 내게 욕을 했단 말입니다.”
발루아 공작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소리쳤다.
“발루아 공작, 황제 폐하의 장례 기간이오. 감정을 다스려 주시길 바라오.”
“험, 험… 그 점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저놈이 내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한 것만은 사실이오.”
발루아 공작이 헛기침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나름 진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이언 남작은 아니라지 않습니까.”
듀카스 대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제국의 귀족이 나를 이놈 저놈이라고 불러 대니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
“분명 내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했단 말입니다. 교활하게 메시지 마법을 사용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다시 화가 나는지 발루아 공작의 음성이 조금 커졌다.
“황궁에서는 마법사용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혹시 모르십니까? 게다가 아이언 남작은 기사입니다. 마법이라니…….”
“…….”
듀카스 대공이 기가 막힌다는 듯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발루아 공작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모습이 가관이다.
자식…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전음을 사용했을 것 같아?
으드득!
발루아 공작이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아댄다.
황궁은 황제와 황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안티 매직 마법이 설치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 곳에서 메시지 마법 운운했으니, 미친놈 취급당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
“으으으…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듀카드 대공.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억지로 화를 참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 돌아서는 발루아 공작.
엘튼 제국의 귀족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파견된 귀족들이 수군거린다.
대부분은 치매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었다. 간간이 미친놈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아이언 남작, 놀랐나?”
“조금 당황스러웠을 뿐입니다. 대공 전하.”
“전쟁에 패하더니 상심이 컸던 모양일세. 아들이 죽은 것도 충격이었겠지.”
“아마도 그런 듯합니다.”
혀를 끌끌 차는 듀카스 대공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속이 다 후련하다.
오늘 아침은 아주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을 듯싶다.
“같이 식사나 하지.”
“영광입니다. 대공 전하.”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이번 전장에서 보여 준 듀카스 대공의 작전 구사능력과 자제력은 본받을 가치가 충분하니까.
막 음식에 손을 대려는 그때,
<카가강! 카강, 카강!>
아련하게 들려오는 병장기 부닥치는 소리.
“…….”
“…….”
나와 듀카스 대공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 막 음식 좀 먹으려는 데, 하필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