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3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32화
132화 하필이면……(3)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가?”
존슨 자작이 굳은 표정을 풀고서 재미있다는 듯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당연한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애초에 심각한 질문을 던질 생각이 없는 것도 같다.
“어려운 질문이십니다. 저는 누가 황태자로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후우… 그건 좀 위험한 생각이군. 제국을 누가 이끄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법일세. 아무나 해도 좋다는 생각이라면 자네에게 좀 실망이군.”
“죄송합니다만… 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건 삼황자 저하와 황녀 저하밖에 없습니다.”
마치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듯한 존슨 자작의 얘기에 조금은 욱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말로 어떤 놈이 황제가 되든 무슨 상관이지?
황제의 측근 따위가 될 생각이 없으니 관심도 없다. 국경 부근의 남작 따위를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그런 고민은 적어도 백작 정도의 작위를 가진 사람쯤 되어야 영양가 있는 고민 아닌가?
“하, 하하하! 이거 미안하게 되었군. 같이 전쟁터를 뒹구느라, 자네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져서 오해했군. 맞아, 그랬어. 자네는 귀족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걸 내 깜빡했군.”
존슨 자작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조언이 있으시다면 귀담아듣겠습니다. 존슨 자작님.”
자세를 바로 했다.
내가 어딜 택할지 미지수긴 하다.
그러나 존슨 자작이 일부러 기다렸을 만큼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
상대의 성의를 봐서라도 얘기는 들어 봐야겠다.
“알겠지만, 우리 제국의 귀족들은 세 개의 파벌로 나누어져 있다네. 내가 속한 강경파와 온건파, 그리고 중립파가 있지.”
“네.”
“우리 강경파는 일황자를 지지하고 있다네. 온건파는 이황자를, 그리고 중립파는 삼황자를 지지하고 있지.”
“후우… 일황자 저하는 어떤 분이십니까.”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질문을 던졌다.
코너 때문에 온건파와도 한 다리 걸치고는 있으나, 마음이 기우는 쪽은 강경파다.
존슨 자작이 먼저 황제의 장례에 참석하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는 건 많은 의미를 담은 행동이다.
강경파가 어째서 일황자를 밀고 있는지 알아 둬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혹시라도 황제의 장례가 끝난 다음에 나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온다면…
최소한의 정보는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존슨 자작의 입술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일반적인 대답을 원하나? 아니면 솔직한 대답을 원하나?”
“가능하면 둘 다 들어 보고 싶습니다. 존슨 자작님.”
될 수 있으면 두 가지를 다 듣는 게 유리하다.
정보라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판단할 근거가 탄탄해지는 거니까 말이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음인지, 존슨 자작이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일반적인 세간의 평가는 야심가일세! 지도력이 뛰어나고 호전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철혈정치를 지향하는 분이시지.”
“그렇군요.”
“솔직한 평가로는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네.”
“무엇입니까?”
“미친놈이지.”
“…….”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어, 어찌 일황자 저하를 그런 식으로…….”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제국의 황족을 ‘미친놈’이라고 지칭하는 게 과연 이치에 타당한가?
황족 모욕죄의 범주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위험한 발언이다.
“우리밖에 없잖은가? 난 아이언 남작을 ‘전우’라고 생각하네만?”
“그야…….”
사람을 이런 식으로 엮어 버리니 할 말 없게 만든다.
“어차피 입에 담을 수 있는 얘기도 아니잖나. 그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일세. 물론 당사자나 다른 귀족 앞에서는 절대로 솔직해질 순 없겠지.”
빙그레 웃는 존슨 자작.
대담한 건지, 아니면 나를 믿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해도 발뺌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귀족이 된 남작 나부랭이의 말보다는, 정통성 있는 존슨 자작의 말에 더 무게가 실릴 테니까.
“제법이군. 내가 어째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파악한 것인가?”
“네, 존슨 자작님.”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파라고 해서 단순하고 무식하며 다혈질인 줄로만 알았는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온건파건 강경파건 정치판에서 오래도록 굴러먹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귀족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보고 듣고 배웠을 터.
나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괜스레 상대를 깔보다가, 뭐에 얻어맞았는지도 모르고 당할 수도 있을 테니.
“후후후… 좀 더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군.”
존슨 자작이 조금 더 자세를 방만하게 하고서 나직하게 웃는다.
그의 커다란 머리가 더 이상 우습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판에서의 노련함으로 따지면 나는 햇병아리나 마찬가지다.
배울 수 있는 건 배워두는 게 좋다.
“자네의 가장 큰 장점은 말을 아낀다는 점이야. 나와 얘기하는 동안에도 그런 습관은 그대로더군. 보통 젊은 나이에 귀족이 되면 오만해지기 십상인데 말일세.”
“칭찬 감사합니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일부러 말을 아끼는 습관이 빛을 발한 것인가?
“마음에 드는군. 얘기를 계속 하지. 이황자의 일반적인 평가는 지략가라고들 하네. 신중한 성격에 의회정치를 추구한다고 알려졌지만, 솔직한 평가로는 양아치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군.”
“…평가가 심하군요.”
쓰게 웃었다.
일황자나 이황자나 존슨 자작의 평가만 놓고 보면 황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
그렇다면…
“삼황자 저하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겁니까?”
“그렇기는 하네만, 쉽지 않아.”
“어째서입니까.”
“삼황자 저하는 황제가 되려는 욕심이 부족하거든.”
존슨 자작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삼황자를 지칭할 때만이 ‘저하’라는 호칭을 붙였다. 존슨 자작이 누구를 지지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의문이 든다.
분명 강경파는 일황자를 지지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이군.”
“강경파는 일황자를 지지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그런데 어째서…….”
또 존슨 자작의 얘기가 이상하게 흐른다.
“강경파의 노선이 일황자의 손을 들고 있을 뿐이지. 모든 강경파의 귀족이 일황자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네. 모리스 공작 각하께서 삼황자 저하를 지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일세.”
“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존슨 자작과 시선을 맞췄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건지, 도저히 핵심을 모르겠다.
“누구의 편에도 서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서 자네를 기다렸지.”
“…네?”
“자네와 나는 국경을 방어하는 귀족이라는 걸 명심하게. 우리마저 진흙탕에 발을 들이면 국경 요새가 흔들리는 법.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제국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해서 자네를 보자고 한 거네.”
“……!”
존슨 자작의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이거 그냥 머리만 큰 우스꽝스러운 아저씬 줄 알았는데, 오늘 나에게 두 번이나 감동을 준다.
“기사… 라는 겁니까?”
“그렇지, 우린 기사일세. 명심했으면 하네. 아이언 영지는 자네와 같은 용맹한 기사가 지켜 주는 편이 제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 잡스러운 일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존슨 자작의 묵직한 음성을 듣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명심하겠습니다. 존슨 자작님.”
가슴에 오른 주먹을 대고서 군례를 올렸다.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하, 하하! 자넨 사람을 낯 뜨겁게 하는 재주도 있었군 그래. 일어난 김에 같이 제도로 출발하세.”
“알겠습니다. 존슨 자작님.”
그가 먼저 앞장서기를 기다렸다.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존슨 자작의 어깨.
지금 이 순간만큼은 머리보다 어깨가 몇 배나 넓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
순백의 나무관이 그레이트 홀에 놓여 있다.
나는 굳은 얼굴로 존슨 자작과 같이 걸어가 조심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그러고는 옆으로 몸을 틀었다.
거기에는 하얀 국화가 잔뜩 꽂힌 항아리가 놓여 있다.
국화를 한 송이 뽑아 순백의 나무관 옆에 조심스레 꽂아주고는 뒷걸음질로 물러 나왔다.
제도 전체가 슬픔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다.
황궁에 들어서기 전에 보았던 제국민들은 대부분이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여유가 되지 않는 하층민들은 하얀 천이라도 몸에 걸치고 다녔을 정도다.
제국 전체가 황제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다는 의미다.
황제의 시신이 안치된 황궁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천둥처럼 느껴질 만큼 정적에 휩싸인 황궁.
숨 쉬는 것마저도 조심스러워 해야 할 판이다.
존슨 자작을 따라 그레이트 홀을 벗어날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숨이 다 막히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연회장으로 가세. 다른 귀족들은 전부 그곳에 모여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존슨 자작님.”
아는 게 없으니 존슨 자작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게 속 편하다.
“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 곁에 서게.”
“네.”
뒤로 조금 물러서서 걸으려는데, 존슨 자작이 옆에서 걸으라고 손짓한다.
그레이트 홀에서 연회장으로 이동하는 것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전에 찾아왔을 때와 달리 아무런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연회장이 가까웠을 즈음해서야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예전에 나를 연회장에 소개했던 시종장이 있으나, 그저 고개만 까딱여 알은체 할 뿐이었다.
문이 열려 있는 연회장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흰옷을 입은 귀족들이 비무장 상태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음식이라고는 간단한 종류의 것들이 전부다.
빵과 수프와 같은 것들.
황제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인지 고기와 같은 기름진 음식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존슨 자작과 안으로 들어서는 그때,
익숙한 얼굴의 나이 든 남자가 손을 들어 나를 부른다.
바로 모리스 공작이었다.
황제의 장례가 치러지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크게 할 수 없는 법.
서둘러 걸어가 모리스 공작의 앞에 섰다.
“모리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코너는 어찌하고 혼자 왔는가?”
“영지를 관리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군.”
금세 수긍하는 모리스 공작.
내가 신흥 귀족인 만큼 인적자원이 부족하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을 터.
코너를 데려오지 못한 이유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깨달은 게 틀림없다.
그와 대화라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얘기를 나누는 사이, 이디오트 공작이 다가왔다.
어째서 두 거물이 잇따라 나를 찾는지 모르겠지만, 주목받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중요인물이 되어 버린 건가?
“이디오트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역시나 인사는 간결하게 해 주었다.
“반갑네, 아이언 남작.”
“오랜만에 뵙습니다.”
“존슨 자작에게 얘기는 들었을 거라고 보네.”
사전에 얘기가 되었던 것인지, 이디오트 공작이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자 모리스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디오트 공작, 이럴 겁니까?”
“진정하시오. 모리스 공작.”
“진정하게 되었습니까? 내 아들과 함께하는 사람한테까지 손을 뻗쳐야 속이 시원하셨습니까.”
모리스 공작이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모리스 공작 각하, 국경 방어에 충실하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입니다.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가만히 있으면 언쟁이 벌어질 것 같아서 무례라는 걸 알면서도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행동으로 인하여 몇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리스 공작이 나처럼 변방의 남작마저도 아쉬울 정도로 입지가 좁아졌다는 점.
이디오트 공작은 황제의 장례 기간 중 황자들이 뭔가 일을 터트리려 한다고 확신한다는 점.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존슨 자작에 이어서, 내게 정치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당부할 이유가 없었을 터다.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모리스 공작 각하.”
“허, 허허! 모리스 공작, 굳이 분란은 일으킬 생각이 없습니다.”
난처한 얼굴로 오해를 풀고 싶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이디오트 공작.
“흠, 흠!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이디오트 공작.”
“아닙니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서두른 제가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이디오트 공작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일부러 모리스 공작과 내가 얘기하는 것을 다 듣고서 끼어들었다는 느낌이다. 오해가 풀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말이다.
상대를 흥분하게 만들어 놓고서 자연스럽게 사과를 받아 낸 듯한 것 같다고 할까?
“이왕에 얘기를 나눈 김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의논을 했으면 합니다. 모리스 공작.”
이디오트 공작이 모리스 공작과 시선을 맞추었다.
역시나…
조금 전에 일이 의도적이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오해가 풀리기 무섭게 따로 대화하자고 제안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앞으로의 일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가령 황태자 책봉 문제와 같은 일 말입니다.”
일부러 상체를 기울여 은밀한 얘기를 하듯 목소리를 한껏 낮추는 이디오트 공작.
“험, 험… 미리 의견을 나누는 것도 바람직 한 일이라 할 수 있겠소.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자리를 옮깁시다. 이디오트 공작.”
“그러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가시지요.”
“…….”
두 사람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서 떠나는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뭐야?
저 인간들, 나 때문에 싸우던 거 아니었어?
그나저나,
대체 누가 강경파 수장이고 누가 온건파 수장인지 아주 많이 헷갈린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