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19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19화
119화 방문자들(1)
프레하 제국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브뜨아 요새.
요새 중앙의 사령탑 5층에는 주요 지휘관들을 위한 숙소로 꾸며져 있다.
그중에서 가장 넓은 숙소의 침대에 발루아 공작이 눈을 감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펄럭!
갑작스럽게 이불이 걷히고 발루아 공작이 눈을 번쩍 떴다.
“도저히 잠을 못 자겠군!”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발루아 공작.
그의 전신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붕대를 붉게 물들인 핏물은 상처를 입었을 당시의 흉험한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 빌어먹을 물건이라니…….”
이를 뿌드득 갈아붙인 그는 아직도 욱신대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물건의 정체조차 가늠되지 않는다.
‘분명 둥근 쇠뭉치 같았는데, 그런 위력이라니… 마나로 몸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군.’
롱소드로 쇠뭉치를 베는 순간에 안에서 튀어나오던 화염(火焰).
수십 년간 수련한 검술이 아니었다면…
전신에서 솟구치는 강력한 마나가 아니었더라면…
강력한 화염 폭발에 몸이 타 버렸을 테고,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쇳조각에 전신이 꿰뚫려 죽었을 것이다.
어떤 원리에 의해서 그런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도대체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물건이 여러 개가 동시에 터진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대단한 위력의 물건이 흔할 리가 없겠지. 만약 여러 개가 있었다면 동시에 던졌을 테고… 내가 소드 마스터라는 걸 놈도 알고 있었을 테니.’
발루아 공작이 눈에 독기를 드러내고는 천천히 몸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붕대를 풀자 불긋불긋한 상처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육체가 완성된 소드 마스터의 몸이었기에, 일반 사람과 차원이 다른 회복력이 발휘된 것이다.
옷장의 문을 열어 정갈하게 다림질 된 옷을 입었다.
헤벌쭉 웃음을 흘리면서 마나 블레이드를 완성했다고 기뻐하던 아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빌어먹을 엘튼 제국 놈들!”
으드득!
끓어오르는 분노에 발루아 공작은 엘튼 제국이 있을 방향으로 눈을 부라렸다.
똑, 똑, 똑!
“들어와라!”
매섭게 치켜뜬 눈으로 출입문에 시선을 던지는 발루아 공작.
“공작 각하!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방비하고 있었다면 당하지도 않았을 일이지. 자리에 앉게.”
오를레앙 공작의 인사에 발루아 공작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생소한 물건이라 위험을 인지하지 못해서 당했을 뿐이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두 번은 당할 생각이 없다.
두 사람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자, 병사가 들어와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차와 간식을 내왔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차와 간식만 내려놓고 군례를 올린 후 사라지는 병사.
“향이 좋군.”
“공작 각하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몸에 좋다는 샤론드 왕국의 특산 차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고맙네. 향기만 맡아도 기운이 나는 것 같아.”
발루아 공작이 찻잔을 들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들끓어 올랐던 분노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은 그는, 찻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훌륭한 맛이로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빙그레 웃었다.
‘발루아 공작도 사람이었어. 무쇠로 만들어진 괴물인 줄 알았는데…….’
오를레앙 공작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찻잔을 손에 쥐었다.
부상당하던 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투기를 발산하며 소리치던 발루아 공작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사령탑에 잠입한 인물은 놓쳤지만, 발루아 공작이 얼마나 괴물인지는 확실하게 알게 된 사건이었다.
“만약이지만 놈이 엘튼 제국의 첩자라면 심각한 문제일 수 있네.”
“저는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루아 공작 각하.”
오를레앙 공작이 찻잔을 내려놓고는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놈’이 누굴 말하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사령탑에 침투했던 존재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어째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겐가?”
“우리 프레하 제국은 휴전협정을 한 것이지 종전 협정을 한 것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디까지 엿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단지 저와 발루아 공작 각하의 사담에 불과한 얘기이지 않습니까?”
“흐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발루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들을 소집한 정식 회담도 아니었고, 그저 국경 인근 요새에서 사적으로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
무려 공작의 작위를 지닌 두 사람이 나눈 대화였기에 잡담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조금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야 우기기 나름이다.
서류로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니까.
생각이 정리된 발루아 공작은 그제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차의 맛과 향기를 음미할 수 있었다.
“폐하께서 드디어 허락하셨습니다.”
“…정말인가?”
발루아 공작이 급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여기 황제 폐하의 친서입니다. 확인 후 소각하라는 명령입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밀납으로 봉해진 서신을 꺼내 발루아 공작의 앞에 놓았다.
서둘러 밀납 봉인을 부러뜨리고 서신을 꺼내 읽어 내려가는 발루아 공작.
서신을 읽는 동안에 그의 입술이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자네라면 미리 준비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내 예상이 틀렸나?”
“당연히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패하고 곧바로 말입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잇몸을 드러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큭… 자네, 그러다가 반역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걸세.”
“폐하의 허락을 받은 뒤에 무아를랑과 협상을 벌이면 제가 불리해질 것 아닙니까. 그래서 미리 준비해 둔 것뿐입니다.”
“하긴 그 음흉한 마법사 놈은 폐하의 허락이 떨어진 다음에 다루기엔 상당히 귀찮지. 그래서 진척은 있었나?”
“물론입니다. 조만간 완성한 흑기사 다섯을 보내오기로 했습니다.”
“빠르군. 무아를랑이 계획한 흑기사는 전부 몇이나 되는가?”
“500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이럴 게 아니라, 술이나 한잔 하지. 어떤가?”
발루아 공작이 단숨에 차를 입에 털어놓고는 눈을 빛냈다.
“찬성입니다. 공작 각하와 마시는 술은 각별하니까 말입니다.”
오를레앙 공작 역시 단번에 차를 마시고는 빙그레 웃고는 출입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비병!”
“부르셨습니까, 공작 각하!”
“술을 준비하라!”
“충!”
경비병이 나가자, 두 공작이 시선을 맞추면서 음습한 미소를 교환했다.
“그럼 본격적인 시작은 다음번 사신단이 엘튼 제국으로 넘어갈 때부터인가?”
“네, 무아를랑의 수제자와 동행하기로 얘기가 되어 있습니다.”
“좋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할 수 있겠어.”
발루아 공작이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오는 경비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한편,
엘튼 제국의 성도 빅토리아 자치구의 고급스러운 주점.
“겨우 그것 때문에 대가릴 박고 있었다는 거냐?”
“네…….”
“염병헐! 사람 쪽 팔리게 다른 놈들 있는 데서… 어휴!”
시무룩한 티오와 달리 시안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구시렁거린다.
“시끄러워, 이 자식아!”
“…험, 험!”
툴툴거리던 시안이 헛기침하면서 딴청을 부린다.
이 녀석들에게 물어보는 건 시에트가 했다는 개인적인 부탁이 뭐였나 하는 거다.
웃기게도 그녀가 했다는 부탁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라는 거라고 한다.
문제는,
“글을 모르는 게 죄는 아니잖습니까…….”
“알았으니까, 입 다물라고.”
시안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인상을 썼다.
가뜩이나 머리 복잡해 죽겠는데, 옆에서 툴툴거리고 있으니 두통이 오는 느낌이다.
시에트 그녀가,
굳이?
왜?
어째서 시안과 티오… 아니, 나를 제외한 시에트 기사단 녀석들 전원에게 어디 가든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한 것이지?
하나같이 글과는 담쌓은 녀석들한테?
정작 유일하게 글을 아는 나한테는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고서 말이다.
그리고 어제!
난 졸지에 약혼식을 올렸다.
무려 황족의 축복을 받으면서 약혼식을 거행했다.
이상한 것은 시에트의 태도였다.
그 얼음덩어리 같던 여자가!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서약의 키스를 할 줄이야…
결정적으로 레이놀드 남작은 시에트에게 축하한다고까지 했다.
뭔가 되게 어색한 상황이다.
시에트라는 여자…
날 싫어하던 거 아니었나?
“이해가 안 되네…….”
“뭐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까, 영주님?”
역시나 그 새를 못 참고 시안이 호기심을 드러낸다.
조금 전에 내가 입 다물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시에트 그 여자, 얼음 공주 아니었어? 남자한테 관심도 없는 여자잖아.”
“아닌데요?”
“…아니야?”
“친절한 분입니다. 단지 영주님 앞에서만 이상하게 냉정했던 겁니다.”
시안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이건 또 무슨 상큼한 개소리란 말인가!
“영주님 혼자 시에트님을 얼음 공주라고 불렀던 거, 모르셨습니까?”
“말이 돼?”
기가 막혀서 시안에게 눈을 흘겼다.
이건 좀 억울하다.
“여자들 내숭 모르십니까? 어제 만난 여자도 그만하라길래 그만했더니, 계속 하라고 난리 피우던데요, 뭘.”
“그거랑 이거랑 같냐? 이걸 확!”
주먹을 쥐고서 나머지 손으로 손바닥을 두들기는 시안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자식이 비교해도 꼭 이상한 쪽으로만 비교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거 생각을 해 보십쇼. 레이놀드 영지에서 눈코입 제대로 붙은 놈이 누가 있습니까? 시에트님이 봐줄 만한 놈팡이라곤 영주님 밖에 없었잖습니까!”
“…응?”
시안이 뒤로 물러나면서 손사래를 치는데, 이유가 왠지 그럴싸하다.
하긴…
레이놀드 영지에서 멀쩡한 얼굴을 한 인물이 없기는 했다.
왠지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좀 말이 안 된다.
“시에트 호위기사가 날 좋아했던 거라고?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있었어? 그게 말이 돼? 그랬으면 누군가는 내게 얘기를 해 줬을 거잖아.”
“우리도 남잡니다. 레이놀드 영지의 병사나 기사치고 시에트 님을 안 좋아하는 사람 없었단 말입니다. 저처럼 억울해서라도 말 안 해준 거겠죠.”
“…쪼잔한 자식들.”
“췟!”
“이걸 그냥!”
“워어! 다 지난 일 아닙니까!”
다시 한 번 주먹을 드는 순간, 시안이 상체를 젖혀 거리를 벌리면서 손사래를 쳐댄다.
그렇지 다 지난 일이긴 하지.
어쨌든 지금이 중요한 거니까.
시에트 정도의 여자라면 불만 없다.
병사 시절에도 기사가 된 다음에도 그녀를 마음에 두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내가 슬그머니 주먹을 내리자,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
“시에트 님은 노처녀도 한참 노처녀 아닙니까.”
“노처녀는 무슨! 그 정도면 어디 가도 안 빠지는 외모지, 검술 실력 좋지! 훌륭한 거야, 인마!”
“훗!”
녀석의 말에 엄지를 치켜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초야권 문제로 만났던 여자들이나 황녀를 직접 눈으로 봤더라면 저런 말 못할 거다.
“와… 저 같으면 파릇파릇한 여자와 결혼할 텐데 말입니다. 이왕이면 시에트 님보다야 어린 여자가 낫잖습… 나은 건데… 나은 게 맞는 건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던 시안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 간다.
나의 등 뒤에서 전해져 오는 미약한 살기(殺氣).
대충 무슨 상황인지 감 잡았다.
사람이 많은 주점이라 딱히 주변의 기운을 감지하지 않고 있었기에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친숙한 시에트의 기운을 말이다.
“여, 영주님! 저, 저는 이, 이마안…….”
말을 더듬으면서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안.
“앉아, 시안!”
차가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상큼한 음성이 뒤에서 들려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오셨습니까, 레이놀드 남작님, 시에트 님.”
나름 최대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표독스러운 눈으로 시안을 노려보는 시에트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는 레이놀드 남작.
“하하하! 그렇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습니다. 아이언 남작.”
레이놀드 남작이 고개를 흔들면서 나의 인사를 받는다.
“아이언 남작님!”
“네, 네! 시에트 님.”
잔뜩 굳은 얼굴의 시에트가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황녀 저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혼식을 하게 되었다는 건 알고 계실 테죠?”
“무, 물론입니다. 저도…….”
그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하는 바람에 뭐라 머릿속이 뒤엉켜서 선뜻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약혼은… 무를 수 없습니다.”
비장하게 말을 꺼내던 시에트는 마지막에 가서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서 나의 시선을 피했다.
대체 뭐지, 이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