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5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52화
152화 회복 (2)
주변의 세계는 허상(虛像)…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세계다.
궁핍한 상상력 때문에 이따위 불구덩이 속에서 둥둥 떠 있는 거다.
아니, 육체에 가해지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자연히 이런 공간을 상상하게 된 것일 터다.
괴물딱지 같은 발루아 공작과의 전투에서 내상을 크게 입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담되더라도 화경의 경지에 일찍 도전했어야만 했다는 후회가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무림 세계에서도 온전한 몸 상태에서 화경의 경지를 개척할 때도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 망아(忘我)의 경지에 접어들 줄이야!
이제 슬슬 꼴 보기 싫은 자식이 등장할 때가…
츠즈즈즛!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다, 젠장!
“여어! 신삥! 요즘 개김성이 투철해졌어. 그치?”
허공에서 기운이 어리더니 형상이 채 갖춰지기도 전에 짜증을 유발하는 거지 같은 목소리부터 들린다.
제길!
무림 세계에서 화경을 개척할 때와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또다시 저 인간이 등장하다니…
이전 생에서 저 인간을 해치우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는 거.
“신삥, 씨바랄 새끼야, 눈 안 깔지? 눈깔에 먹물을 쪽 빨아줄까?”
점점 더 형체를 완성해 가는 인간의 입에서 험악한 욕설이 흘러나온다.
어느새 주변도 바뀌어 간다.
한국에서 군 생활할 때 지냈던 신형 막사의 뒤편.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여름이다. 용암에 휩싸여 있을 때보다야 낫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열기가 심하다는 건 똑같다.
“나 때는 새꺄, 고참들이 거시기로 밤송이를 까라면 깠어! 아직도 내 거시기에 구멍이 숭숭 뚫렸어, 이 새꺄! 보여 줘?”
형태를 완전하게 갖춘 상대는 군복을 입은 김정훈 상병.
눈썹이 없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인간이다. 키는 헌병답게 180 언저리.
어깨가 넓고 역삼각형의 상체를 지닌 근육질이다. ‘신삥’이라는 건 나를 가리키는 단어.
자대 배치를 받아 삼 일쯤 되었을 때, 저 인간에게 모진 구타를 당하던 날의 기억.
이전 생에서도 깨달음의 벽에서 저 인간이 등장했었다. 살면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대상을 극복하는 게 바로 화경의 경지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다.
내게는 김정훈 상병이 가장 괴로웠던 기억이었다.
“…….”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저 인간은 말년 제대할 때까지도 날 괴롭히던 악질 고참.
무림 세계에서 저 인간을 어떻게 처치할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분명 화경에 올라섰으니 해치우긴 했던 것 같은데…
“박성우 병장님이 귀여워 해준다고 일과 시간에 침상에 발라당 까져? 군 생활 누구랑 오래 할 것 같냐? 응? 이 개념 없는 새끼야!”
김정훈 상병이 눈을 부라린다.
쓰바!
대체 언제 적 기억인데, 이렇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놈의 대사를 생생할 수 있는 건지.
손에 쥐어진 것은 K-1 소총의 개머리판.
헌병대에서 사용하는 소총은 기관단총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휴대가 K-2보다 조금 편하다는 점을 빼면 그다지 장점이 없다. 명중률도 엉망이고 기관단총이라기엔 형태도 별로다.
결정적으로 개머리판이 자주 흉기로 사용된다는 게 괴롭다.
강철 고정대를 손에 쥐면 개머리판 자체가 망치와 같은 형태로 변한다. 저런 걸로 머리를 얻어맞으면, 은하계의 별자리 구성을 한순간에 깨우치게 된다.
그런 흉기(?)를 들고서 노려보는 김정훈 상병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만다.
빠악!
“큭!”
정신이 번쩍 난다.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탓이다.
분명 나의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고통은 똑같다.
이상하게도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무림에서 화경의 경지를 개척하려던 초기에도 이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를 얻어맞고서 구타가 시작되어, 거의 실신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던 것 같다.
당시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김정훈 상병의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심마(心魔).
화경의 경지로 가는 길목을 막는 게 어이없게도 악질 고참이라니…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악연(惡緣)이다. 악연!
생각해내야 한다.
전에는 어떻게 이 위기를 넘겼는지!
“대답 안 해? 새끼가 빠져 가지고 고참이 말하는데 씹어? 개념 상실한 새끼가 뒈질라고!”
퍽! 퍼버벅! 퍼벅!
고민하는 동안에도 김정훈 상병이 눈을 부라리면서 개머리판을 마구 휘두른다.
***
아이언 영지의 성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후끈한 열기가 흐르고 있었다.
영주 성 내부에 흥건했던 핏물은 바짝 말랐고, 그늘진 곳에 쌓였던 눈도 열기에 증발되었다.
그 이유는 영주 성 내부에 임시로 만든 천막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이다.
“후우… 대체 언제 깨어날 것이냐, 윌슨.”
세인트가 안쓰러운 얼굴로 벌겋게 달아오른 윌슨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윌슨의 몸이 열기에 타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천막 내부의 열기를 외부로 배출해 주는 중이다.
가만히 놔뒀다가는 천막이 타 버릴까 걱정되어서이기도 하다. 아이언 영지의 주인이 홀라당 벗은 채로 누워 있는 모습이 과히 보기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가릴 필요는 있었다.
윌슨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평범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제는 거의 푸른색으로 진화한 불꽃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신기하군. 저런 열기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세인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체온 유지 마법을 자신의 몸에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끈한 열기가 침습해 온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가 윌슨의 몸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다.
죽은 듯이 꼼짝도 안 하는 윌슨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
안타까운 눈으로 윌슨을 바라보는 그때,
투두둑! 투둑!
윌슨의 몸에서 미약하게 이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단순하게 소리만 난 것이 아니라, 육신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발생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세인트가 미간을 좁히고서 주시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 윌슨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정하겠습니다.”
윌슨이 거의 죽어 가는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의식이 돌아온 줄 알고 눈에 이채를 발했던 세인트가 이내 입맛을 다셨다.
의식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혼미한 상태에서 헛소리한 것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윌슨이 ‘시정하겠습니다.’라는 신음을 남발한다. 그럴 때마다 윌슨의 전신에서 연달아 폭발음이 발생한다.
폭발음이 발생할 때마다,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키면서 몸을 들썩인다.
‘버텨라! 이렇게 죽을 순 없잖아.’
세인트는 괴로워하는 윌슨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윌슨의 몸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갔다. 심지어 입가에 피를 흘리기까지 한다.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음에도 피가 증발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한 노릇이다.
“으으으…….”
피에 범벅된 이를 드러낸 채로 윌슨이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렸다.
화르르륵!
“우웃!”
세인트가 갑자기 증가하는 열기에 당혹성을 흘렸다.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했다.
변화가 생겼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암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시정하겠… 습니다. 김정훈 상병님.”
계속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주절거리는 월슨.
‘분명 이곳의 언어는 아닌데… 그렇다고 마계의 언어도 아니야. 대체 뭐냐, 윌슨.’
세인트는 생소한 언어에 의문을 느꼈다.
계속 비슷한 느낌의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다. 이상한 언어에 깃든 감정은 너무나 복잡하기만 하다.
짜증과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감정과 두려워하는 감정이 묻어난다.
하지만 점차 분노의 감정이 더 많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하겠습니다.”
.
.
.
윌슨의 음성에 분노의 감정이 커질수록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언어가 역시 변화가 일어났다.
“으윽!”
세인트가 신음을 흘리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뜻 모를 소리를 할 때마다 열기가 더욱 커지면서 버티기 힘든 정도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시도 윌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전신이 붉게 달아오른 윌슨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도 견디기 힘들어지는군.’
세인트가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순간,
괴로운 얼굴을 하던 윌슨이 눈을 번쩍 떴다.
“니미!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 이 X새끼야!”
쿠구궁!
뇌성벽력과도 같은 고함과 함께 이제까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렬한 열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천막이 대번에 재가 되어 날아가고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 퍼졌다.
***
온몸을 K-1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려 대는 김정훈 상병의 구타에 견딜 수가 없었다.
계속 용서를 빌어 보지만 가차 없이 구타를 이어 간다.
제길…
김정훈 상병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눅이 들 줄은 예상 밖이다.
그래 봐야 이곳 세상에 눈을 뜨고서 싸웠던 몬스터와 기사들의 수준도 안 되는 인간일 뿐인데.
문제는 몸뚱이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어째서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눈앞의 김정훈 상병이 허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어째서 움직일 수 없는 건데!
놈이 내게 남겨 준 트라우마가 이렇게나 엄청났다는 의민가?
맞을 때마다 짜증과 분노가 솟구친다.
몸에 K-1소총의 개머리판이 고통을 줄 때마다 열기가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다.
“시정하겠습니다!”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혹시라도 김정훈 상병이 구타를 멈추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퍼버버벅!
하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정? 신삥 새끼가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시저엉? 시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눈깔아! 안 깔아? 이런 씨벌럼이!”
김정훈 상병이 비아냥거리면서 쉬지 않고 구타를 이어 간다.
완벽한 인격적 모독.
자대 배치를 받고서 내가 당했던 일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억울하냐? 억울하면 소원 수리 써! 그래 봐야 고참이 다 본다는 거 알지? 너같이 개념 없는 새끼 때문에 내가 뺑이 치는 거야, 썁새야!”
퍼버벅!
구타는 더욱 집요해졌다.
그렇다.
저 인간의 말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소원 수리를 써도 고참의 손에 들어갈 터다.
헌병대에서 소원 수리를 취급하니까.
그래서 더 짜증이 확 밀려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하지만 더는 못 참겠다!
“니미!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 이 개새끼야!”
눈을 부릅뜨고 다시금 개머리판을 휘두르는 김정훈 상병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놈의 턱을 강타하는 것과 동시에, 개머리판이 나의 정수리를 노리고 떨어진다.
빠박!
K-1소총의 개머리판에 정수를 격타당하는 그 순간,
우우우우웅!
이제껏 나를 괴롭히던 뜨거운 열기가 한꺼번에 백회혈로 빨려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중단전과 하단전에서도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와 백회혈을 뚫고 밀려드는 열기와 뒤섞였다.
최후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시원한 청량감이 전신에 퍼진다.
“아…….”
탄성을 터트렸다.
이제야 기억났다.
무림 세계에서도 김정훈 상병의 허상을 이겨 내는 순간, 백 년 내공을 완성했었다는 기억 말이다.
워낙 김정훈 상병에 관한 기억이 좋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감추어졌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안에 틀이 깨졌다.
놈을 패버리면 찾아올 뒤처리 문제.
고참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규범.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행동 제약이 나의 의식을 억압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래서 허상인 줄 알면서도 김정훈 상병에게 감히 대들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었을 것이다.
종횡무진(縱橫無盡).
진의문의 내공심법인 진의심공(眞意心功)의 주요 골자다.
김정훈 상병을 때려 부순다는 건, 놈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잠재의식 속에 남았던 자잘한 굴레들을 한꺼번에 벗어났다는 걸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
무림 세상에서 배웠던 진의문의 무공이 추구하는 도(道).
마침내 진의문 무공의 이치를 다시 깨우친 것이다.
그래서 또 불안하다.
무림 세계에서처럼 각성하자마자 또 죽는 건 아니겠지?
주변의 세상이 먼지처럼 흩어진다.
마치 영화 속의 오버랩 기법처럼 내가 있는 곳을 자각하게 된다.
시야를 완전히 되찾았을 때,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헉, 헉, 허억, 헉! 위, 윌슨 괜찮나?”
세인트가 숨을 헐떡이면서 지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것도 알몸으로.
“여, 영주니임!”
병사와 기사들이 소란을 떨면서 달려오다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멈춰 선다.
나도 알몸…
숨을 헐떡이면서 나를 내려다보는 세인트.
“쓰바…….”
상황 참 더럽게 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