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74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74화
174화 치명적인 선물(2)
***
“지금… 무어라 하셨소?”
듀카스 대공은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인마’라는 상스러운 호칭을 들어본 기억은 20세 이전.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까마득한 오래전의 일이다. 당시의 친구들조차 이제는 나이가 들어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게 보통이다. 물론 가끔 사석에서는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상스러운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하면서 이런 식의 호칭은 들어 본 적이 없는 듀카스 대공이다. 전쟁터와 같은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자식아, 반갑다고.”
“…….”
듀카스 대공은 괜히 물어봤다는 후회와 함께 멍한 얼굴로 세인트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듀카스 대공 전하! 이 녀석이 인간 세상과 등지고 산 지가 오래되어서 예의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윌슨이 당황해서 끼어들었다.
“허, 허허! 그, 그런가?”
듀카스 대공이 허탈하게 웃으면서 질문을 취하는 형식으로 어이없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으로야 불쾌했으나, 상대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해 이동해 오고서도 피곤한 기색조차 없는 고위 마법사.
전쟁이 발발한 지금 상황에서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다. 그런 세인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았다.
마법이 전장에서 발휘하는 위력을 생각하면 약간의 불쾌함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세인트! 엘튼 제국 유일의 대공 전하시다. 예의를 지켜라.”
“난 왕인데?”
세인트가 눈을 껌뻑거렸다.
리치였던 시작에도 ‘죽음의 대지’에서 몬스터들의 왕이었고, 마계에서는 마왕의 자리를 꿰찬 몸이었다.
제국의 대공과 끗발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세인트였다.
“왕국에 사람은 있고?”
“…없어.”
윌슨이 혀를 차면서 한마디 툭 던지자, 세인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휘하에 몇몇 마족은 있으나,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럼 알아서 기어, 자식아! 사람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끄응… 거 미안하게 되었소.”
세인트가 한차례 앓는 소리를 하고는 듀카스 대공에게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하하하! 괜찮소. 그런데 올해 나이가…….”
듀카스 대공이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겉으로 보이는 세인트의 얼굴은 아무리 잘 쳐줘봐야 서른을 넘지 않는 듯하다. 물론 자신 역시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개척하면서 40대에서 노화가 멈춘 상태.
마법사 역시 일정 수준을 개척하면 노화가 멈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것이다.
“굳이 세어 보진 않았지만…….”
―최대한 낮춰! 천 살이 넘었다고 하면 수상하잖아!
세인트가 입을 열기 무섭게 윌슨이 전음을 사용해 경고했다.
“대략 100년은 넘게 산 듯하오.”
“아! 오래전에 경지에 드신 분이셨군요.”
듀카스 대공이 탄성을 발했다.
어려 보이는 얼굴로 6서클의 마법인 텔레포트를 쉽게 사용하기에 의심하기는 했었다. 엘튼 제국의 천재 마법사인 자이론 후작도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면 지친 얼굴을 했었으니까 말이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무려 100살이 넘는다고 한다. 최소 70년 전에 6서클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의미가 되겠다.
‘실력을 짐작하기가 어렵군.’
듀카스 대공이 속으로 감탄했다.
6서클의 마법을 개척하고서 70년 동안 마법을 더 수련했다면, 세인트는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사일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묘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에서 상대의 수준이 최소 7서클은 넘어섰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될 사람이야. 아이언 백작은 어디서 이런 굉장한 마법사와 친분을 쌓은 거지? 하여간 알면 알수록 사람 놀라게 하는 친구야.’
듀카스 대공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윌슨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이다. 지난번에 터진 제국 전쟁이 아니었다면 이런 인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어떻게 해서든 세인트라는 마법사를 엘튼 제국과 엮어 놓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듀카스 대공이었다.
“세인트, 뱅크스 요새는 어떻게 됐지?”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아주 끝내주게 해결했지.”
“뭘 어떻게 끝내주게 처리했다는 건데?”
윌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밑도 끝도 없이 ‘끝내주게 처리했다’고 하는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흐흐흐… 내가 뱅크스 요새에 가서 무얼 했느냐 하면 말이지…….”
음흉하세 웃으면서 세인트가 얘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듀카스 대공과 윌슨은 그의 얘기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집중해서 들었다.
“…라는 말씀이시다. 멋지지 않아?”
세인트가 잇몸을 드러내면서 웃었다.
“‘죽음의 대지’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모조리 뱅크스 요새에 밀어 넣었단 말이야?”
윌슨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미친놈아!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쩌려고?
식겁한 얼굴로 전음을 날리는 윌슨.
그러자 세인트가 씨익 웃었다.
―인마, 단순히 몬스터만 불러다 집어넣은 것뿐이잖아. 흑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야? 8서클 마법을 사용할 일만 없다면 아무도 내가 흑마법을 사용하는지도 모를 거다.
세인트가 메시지 마법으로 의지를 전달하면서 턱을 치켜들었다.
“과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것이오?”
불만스러워하는 윌슨과 달리, 듀카스 대공은 탄성을 발했다.
프레하 제국이 흑마법을 동원해 흑기사와 같은 부정한 존재들을 이끌고 온 마당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당한 방법만 고집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세인트의 과감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아군의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퇴로를 확보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듀카스 대공이 세인트를 인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윌슨이 찜찜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세인트, 그런데 말이다. 포털을 사용해서 뱅크스 요새의 전력을 이곳으로 이동시켰으면 간단하지 않았어?”
“…어? 그러네?”
세인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후딱 돌아오는 것만 생각했지, 뱅크스 요새의 병력을 포털로 이동시킨다는 건 생각지 않은 것이다.
귀찮았으니까.
‘허당 끼가 있군.’
듀카스 대공 또한 윌슨의 말을 듣고서 세인트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인상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허당스러운 면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빡빡한 인물은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엘튼 제국 최고의 마법사로 소문난 자이론 후작이 좋은 예다.
‘자이론 후작, 그 친구는 다 좋은데 재미가 없었는데, 저 친구는 유쾌한 사람이군.’
듀카스 대공이 티격태격 말싸움을 벌이는 세인트와 윌슨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한편 베링 요새에서는 오를레앙 공작이 난처한 얼굴로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대체 이 고집스러움은 뭔가. 나를 가르칠 때와는 딴사람이 된 것 같아.’
오를레앙 공작은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발루아 공작에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술을 전수하던 때의 발루아 공작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궁금한 점을 물었을 때, ‘오를레앙 검술’을 바탕으로 설명하면서 깨달음을 계속 유도했다.
약간의 소득을 얻을 때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면서 더욱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발루아 공작이다.
마치 진짜 자신의 스승처럼 친숙했으며, 어떤 때는 친부모처럼 의지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현재 눈앞의 발루아 공작은, 그저 나이만 먹은 꼰대에 불과할 뿐이었다.
함께 진격하자는 제안 따윈 깡그리 무시한다. 흑기사와 무아를랑 부사령관을 데리고 뱅크스 요새로 구원하겠다는 고집만 피워댄다.
“어째서 고집을 부리시는 것입니까, 발루아 공작.”
지친 얼굴로 오를레앙 공작이 발루아 공작에게 진정성을 담아서 다시 한 번 만류했다.
그러나 발루아 공작 또한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3군의 6만 병사는 함부로 포기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오. 만약몬스터가 우리 제국으로 넘어온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제국민이 지게 될 터요. 잇따른 전쟁에 지쳤을 제국민에게는 가혹한 일이요.”
“…….”
오를레앙 공작은 일순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까 통신하면서 베르나르에게 들었던 얘기를 발루아 공작에게서 들을 줄은 몰랐다.
‘마치 프레하 제국의 사람처럼 행동하다니… 정체가 누군지 궁금하군.’
오를레앙 공작이 감탄하는 한편, 발루아 공작의 진짜 정체가 알고 싶었다.
발루아 공작의 옆에 앉은 두 명의 소드 마스터는, 용병 출신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발루아 공작도 근래에 목숨을 잃은 타국의 소드 마스터쯤 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프레하 제국을 걱정하는 발루아 공작의 모습을 보니, 타국 출신의 소드 마스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억측일지도 모르지. 프레하 제국이 승리해야 저들도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오를레앙 공작은 괜한 생각을 했다면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알기로 흑기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싱싱한 상태의 시신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무아를랑이 이전 전쟁에서 희생된 기사들의 시신을 아공간에 보관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알겠습니다. 대신 흑기사를 모조리 데려가십시오. 슬런더 요새의 2군에도 알려 흑기사를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피닉스 기사단이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번거롭소.”
발루아 공작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소수의 인원으로 뱅크스 요새를 지원하려 했는데, 이러면 지나치게 일이 커지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제겐 스승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스승을 사지에 몰아넣는 제자는 없습니다.”
오를레앙 공작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나머지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다른 지휘관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발루아 공작은 어쩐지 뭉클한 느낌을 받고 아련한 눈빛으로 오를레앙 공작을 바라보았다.
흑마법의 힘으로 부활하면서 자신에게 분노와 광기만 남은 줄 알았는데, 아들 녀석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녀석도 나처럼 이끌리는 것인가?’
발루아 공작이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혈육이라는 강력한 유대감은 존재 자체가 달라졌음에도 서로에게 이끌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를레앙 대공… 사적인 감정은 자제해 주십시오. 그가 오를레앙 대공을 되살린 걸 안다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잠시 찾아온 옅은 설렘을 방해한 것은 건너편에 앉은 무아를랑이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알았다는 의미로 가볍게 손을 들어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다시 오를레앙 공작에게로 향했다.
***
“서운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오. 베르나 백작, 엘란트 백작.”
듀카스 대공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에 아이언 영지 성의 영주관 집무실은 잠시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슬런더 요새와 베링 요새에서 후퇴한 병력을 아침 일찍 트럼벌 요새로 이동한 일 때문이다.
아이언 영주성이 비좁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베르나 백작과 엘란트 백작의 얼굴이 어두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군을 거느린 사령관의 위치에서 일개 지휘관으로 강제 강등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총사령관의 지휘에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놈들에게 받은 수모를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병사의 신분으로 참전하라고 하더라도 싸울 것입니다.”
베르나 백작과 엘란트 백작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하고서 듀카스 대공과 시선을 맞췄다.
후퇴하면서 당한 치욕과 굴욕,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지휘할 병사를 잃었다는 박탈감을 채운 것이다.
“두 분 백작, 이해해 줘서 고맙소. 그리고 이번 기회에 여러분께 소개할 사람이 있소. 아이언 백작의 친우라는 세인트라는 사람이오. 최소 7서클의 경지를 구축한 마법사요.”
듀카스 대공이 윌슨의 곁에 앉은 세인트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집무실에 모인 지휘관들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지휘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7서클의 마법사라면 엄청난 경지다. 현자급 마법사가 고작 윌슨의 친구라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든든한 느낌이었다. 흑기사의 존재는 이번 전쟁의 커다란 변수.
흑마법사가 사악한 방법으로 시체를 일으켜 세웠다는 걸 알기에 마법지원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무려 7서클이나 되는 마법사가 이런 촌구석 전방 영지에 주둔해 있다는 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일이었다.
집무실에 모인 귀족들이 경외심 가득한 표정으로 듀카스 대공이 지목한 세인트에게 일제히 시선을 던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히자, 세인트가 겸연쩍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듀카스 대공에게 먼저 시선을 맞췄다.
“8서클입니다만?”
[…….]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지껄이는 세인트의 음성에, 지휘관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귀족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적을 깬 것은 집무실의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음이었다.
쿵, 쿵, 쿵!
“들어오라!”
먼저 정신을 차린 듀카스 대공이 묵직한 음성으로 명령했다.
그러자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병사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프레하 제국군으로 짐작되는 기마 전력이 아이언 영지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