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64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64화
164화 속 쓰린 패배 (2)
***
“톰, 이리 와서 불 좀 쬐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춥냐.”
베링 요새의 성벽을 지키는 고참병이 화톳불을 쬐며 엄살을 떨었다.
“추위를 너무 많이 타시는 것 아니에요? 이 정도면 견딜만하잖아요. 한 달 전만 해도, 어휴!”
톰은 화톳불에 뛰어들 것처럼 바싹 다가선 선임병 휴림에게 헛웃음을 흘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벽 위의 빙판을 제거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추운 것도 아니다.
“너도 인마, 내 나이 되어 봐라. 삭신이 쑤셔서 추위도 많이 탄다는 거 아니겠냐.”
“훗! 그 얘기 삼 년 전에도 하셨거든요? 저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무슨…….”
“이 자식이? 딱 너 같이 뺀질거리는 놈이 후임으로 들어와 봐야,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 거다.”
휴림이 눈을 위아래로 부라리면서 톰을 위협했다.
그러나 장난이라는 걸 알기에 톰은 키득거릴 뿐이었다.
“크크큭! 알았습니다. 추우실 텐데, 불이나 팍팍 쬐세요. 제가 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요.”
“흐흐흐… 자식, 누가 오면 알려 줘야 한다. 저번처럼 졸다가 둘 다 깨지면 이번엔 답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땐 너무 졸려서 그런 거라고 했잖습니까.”
톰이 콧잔등을 일그러뜨리면서 툴툴거렸다.
“그래, 이따 교대해줄 테니까, 부탁 좀 하자.”
휴림은 톰을 등 뒤에 세우고 화톳불에 손을 대며 따스함을 즐겼다.
후두둑!
“응? 톰 왜 물을 뿌리고 지랄…….”
갑옷의 뒷면과 뒷목에 떨어지는 따뜻한 물(?)의 감촉에 휴림이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하지만 곧 말끝을 흐리며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머리가 사라진 톰의 몸체에서 핏물이 솟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상황을 인지했을 땐, 하얀빛이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허무하게 그의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바닥을 굴렀다.
“좋군.”
경계병의 목을 날린 발루아 공작이 성벽 위의 상황을 살피고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부하들이 경계병들을 소리 없이 해치운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횃불을 들고 크게 원을 그렸다. 경계병을 해치운 다른 부하들도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아군에게 무사히 성벽을 접수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이제 장벽의 문을 여는 일만 남았군.’
횃불로 원을 그리던 발루아 공작이 성벽을 기어서 올라오는 부하들을 내려다보며 살기가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
뱅크스 요새 장벽.
‘프레하 제국 놈들이 출병했다면 지금쯤 기습해야 정상일 텐데…….’
하이든 백작이 요새 너머의 잘 닦인 길을 노려보았다.
시커먼 어둠이 내려앉은 탓에 그저 밤하늘과 시커먼 그림자로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무언가 움직임을 찾으려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틀 전 황궁의 마법사로부터 프레하 제국이 군대를 움직였다는 소식을 접한 뒤부터 야간 경계를 도맡아 하는 중이다.
병사들을 믿을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프레하 제국 놈들을 믿을 수 없어서다.
‘선전포고도 없이 병사들부터 보냈을 정도면 일반적인 전투 방식을 택할 리가 없겠지.’
하이든 백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직접 야간 근무를 자청한 이유다.
병사들을 세웠다가 적의 기사단이 기습을 가하면 대응이 늦어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스스스…
“……!”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미약한 소리에 하이든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레나 작은 짐승들이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소리라기에는 어쩐지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의심스러운 느낌을 받고서 귀에 마나를 집중하는 그때,
스스스… 툭!
무언가 장벽에 부닥치는 소리를 들은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기습이다! 기사들은 대비하라!”
하이든 자작은 인기척을 감지하기 무섭게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조용하던 뱅크스 요새가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장벽 위에서 약간은 방만하게 경계를 서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고 살기를 뿌려 댔다. 기사들이 뽑아든 롱소드의 검 면에는 기도문이 새겨진 은빛 글자가 화톳불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뱅크스 요새의 모든 병사에게 흑기사 대응 병기를 지급하기보다는 기사에게 집중한 결과다.
“놈들의 침입을 막아라! 한 놈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
하이든 백작이 전투 도끼를 두 손으로 쥐었다. 도끼의 몸체에 새겨진 은색 기도문이 마나를 받아 번쩍였다.
텁!
장벽의 벽돌을 움켜쥐는 검은색 건틀릿.
뒤이어 검은 투구가 쑥 올라오는 순간, 하이든 백작이 전투 도끼로 내려찍었다.
파캉!
전투 도끼에 맞은 흑기사의 머리가 투구째 반으로 쪼개지고 시커먼 피를 터트리며 밑으로 추락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방에서 고개를 들이미는 흑기사들.
“막아라! 놈들에게 엘튼 제국의 위용을 보여 주어라!”
하이든 백작이 장벽 위로 올라오려는 흑기사의 목을 전투 도끼로 끊으면서 소리쳤다.
기도문이 새겨진 전투 도끼에 목을 잃은 흑기사는 그 와중에도 장벽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피와 함께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사방에 흩어졌다.
‘진정 흑마법으로 부활한 놈이라는 건가!’
목을 잃은 흑기사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습한 기운에 하이든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언 영지의 얘기를 들었지만,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었다. 하지만 흑기사의 절단된 목에서 흘러나오는 이질적인 기운의 사악함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캬아악!”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성벽을 오르는 흑기사.
하이든 백작은 목이 잘린 흑기사의 시체에서 시선을 거두고, 장벽을 넘으려는 또 다른 흑기사의 머리를 전투 도끼로 후려쳤다.
퍼걱!
“크아아아아!”
흉갑을 부수며 도끼날이 파고들자, 흑기사가 고통에 젖은 괴상한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흑기사가 롱소드를 휘둘러 왔다. 하이든 백작은 전투 도끼를 쥐었던 왼손을 떼고서, 공격해오는 흑기사의 팔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텁!
“키에에에엑!”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흑기사가 괴성을 지르면서 안간힘을 썼다.
“이놈은 그냥 괴물이군.”
하이든 백작이 발버둥 치는 흑기사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는 발을 들어 걷어찼다.
퍼걱!
“크에에에엑!”
비명과 함께 장벽 밖으로 떨어지는 흑기사에게 시선을 거두고 다시금 전투 도끼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또 다른 흑기사가 장벽을 넘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어라, 괴물!”
하이든 백작이 마나를 잔뜩 품은 전투 도끼로 반원의 궤적을 만들면서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
앞선 두 명의 흑기사 덕분에 대답 따윈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하이든 백작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성 따윈 없는 괴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말대꾸를 해왔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놀랐을지언정 당황하진 않았다. 오히려 전투 도끼를 휘두르는 두 팔에 더 힘을 보탰다.
카앙!
“이놈!”
하이든 백작이 눈을 부라렸다.
흑기사가 영리하게도 맞받아치지 않고 전투 도끼의 궤도를 바꾸었던 것이다.
휘두르는 사용법에 특화된 전투 도끼를 회수한다는 건 미친 짓. 그랬다간 상대의 역습에 걸려 어이없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터였다.
생각은 길지만, 행동은 빨랐다.
전투 도끼가 엉뚱한 궤적을 그리는 걸 느끼는 순간, 하이든 백작이 훌쩍 뒤로 몸을 날렸다.
파앗!
허공에 뜬 채로 하이든 백작의 몸이 360도 회전했다.
“가라아!”
거친 노호성과 함께 전투 도끼가 하이든 백작의 회전을 따라 높이 솟구쳤다가 사선을 그리면서 다시 전방을 베었다.
파가각!
전투 도끼를 튕겨 내고서 반격을 하려던 흑기사의 팔과 목이 한꺼번에 썰려 나갔다.
“어딜!”
하이든 백작은 막 장벽 위에 발을 들이는 흑기사에게 달려가 투구를 발로 걷어찼다.
“키에엑!”
구슬프게 들리는 괴상한 비명과 함께 장벽 밑으로 떨어지는 흑기사.
그러는 사이, 이번엔 두 명의 흑기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벽 위로 올라섰다. 두 명의 흑기사는 장벽에 올라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더러운 발을 들이는가!”
하이든 백작이 분노해 소리치며 흑기사에게 달려들었다.
“후퇴하라! 흑기사단은 후퇴하라!”
장벽 위에 올라선 흑기사는, 장벽 위에 살아남은 아군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함을 지르면서 장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도망치지 마라! 이놈!”
하이든 백작이 전투 도끼를 들고 달려갔으나, 나머지 흑기사도 미련 없이 장벽 밑으로 몸을 던졌다.
“불을 질러라! 놈들을 살려 두지 마라! 활을 날려라!”
하이든 백작이 분노해 소리쳤다.
기사라는 놈들이 야간 기습을 벌인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 판에, 싸우지도 않고 후퇴하는 꼴을 눈뜨고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와아아! 불을 놓아라! 화살을 쏘아라!]
기사들의 싸움에 휘말릴까 뒤로 물러나 있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장벽 끝에 다가가 불붙은 기름병을 던지고 화살을 준비했다.
새카만 갑옷을 입은 흑기사들이 장벽을 기어오르다가 뛰어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럴 수가…….”
장벽 아래를 내려다본 하이든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기어오르다가 뛰어내리는 흑기사는 물론, 자신을 피해서 장벽 밖으로 몸을 던진 흑기사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도망친다.
‘괴상한 놈들이군. 이성이 있는 놈과 없는 놈이 뒤섞여 있다니…….’
하이든 백작은 인간 같지 않은 흑기사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큭…….”
새삼 두 손에 저릿한 느낌을 받고 인상을 썼다.
장벽 위에서 유리한 싸움을 벌였음에도 전투 도끼를 쥐었던 두 손에 아릿함이 남는다.
만약 같은 조건에서 싸웠더라면 이렇게나 쉽게 흑기사들을 해치우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흑기사 놈들이 장벽 아래에서 꼬물거리며 도주한다. 숫자만 해도 대략 2~300은 되어 보인다.
“햅슬러! 햅슬러 어디 있나!”
하이든 백작이 부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충! 부르셨습니까, 사령관 각하!”
“당장 아이언 영지에 통신을 넣어 프레하 제국의 침공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라!”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부관인 햅슬러 남작은 대답과 동시에 장벽을 벗어났다.
‘이런 놈들이 대체 얼마나 몰려온 것인가. 프레하 제국 놈들… 사악하구나, 사악해!’
하이든 백작은 정신없이 도주하는 흑기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를 갈았다.
***
“윌슨! 윌스은!”
쓰바…
가뜩이나 정신없어 죽겠는데, 코너가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달려온다.
확 기절시켜버릴까?
어째 놈이 가져온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더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다.
“또 뭐야!”
“뱅크스 요새에 프레하 제국이 침공했데요. 하이든 백작께서 지원을 요청해 왔어요. 윌슨!”
코너가 숨을 헐떡이면서도 빠르게 말을 끝맺었다.
좋지 않은 소식일 줄은 예상했지만, 벌써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줄이야!
머리가 복잡해진다.
듀카스 대공이 4만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어제다.
프레하 제국에서 정보를 통제한 채로 병력을 보냈다나 뭐라나?
그래도 며칠 정도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침공 소식을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잠깐…
“어디가 공격당했다고 했지?”
“뱅크스 요새라고 했잖아요!”
코너가 다급한 얼굴로 크게 대답한다.
이 자식이?
지가 안달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다른 곳은?”
“네?”
“다른 곳에선 연락 없었어?”
“네, 아직… 아!”
코너가 뜨악한 얼굴로 품에서 수정구를 꺼낸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깨달은 게 틀림없다.
“빨리 확인해 봐!”
녀석을 재촉했다.
뱅크스 요새는 프레하 제국에서 가장 진격로가 길다. 그럼에도 뱅크스 요새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른 곳에선 연락이 없다?
문제가 생기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다. 프레하 제국이 가까운 베링 요새와 슬런더 요새를 놔두고 뱅크스 요새로만 진격해 왔다면 모르지만,
“윌슨!”
“말해!”
“베링 요새는 연락을 받지 않아요.”
“그럼 슬런더 요새와 연결해!”
“알았어요!”
어째 불안하다.
만약 세 개의 요새가 전부 공격당한 거라면 골치 아프게 될 터다.
프레하 제국이 세 개의 요새를 모두 격파하고 침공해온다면, 중간에 위치한 아이언 영지로 적군이 전부 몰리게 될 터다.
“코너!”
수정구를 붙들고 마나를 집어넣는 코너의 이름을 불렀다.
이 정도까지 통신을 시도했음에도 연락되지 않는다는 건 통신 마법사가 사망했다는 얘기가 되겠다.
어쩌면 가장 먼저 통신 마법사를 노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뱅크스 요새는 일부러 통신 마법사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빌어먹을! 이 자식들 노린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하고 세인트 어디 있어?”
“그, 그게…….”
당황한 얼굴로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걸 보니, 이 와중에도 또 영지민 거주지를 찾아간 모양이다.
“통신구는 가져갔어?”
“아니, 그냥 내려갔어요.”
“제기랄! 알았어!”
집무실의 창문틀을 밟으면서 코너에게 대답했다.
직접 찾는 수밖에 없겠다.
“위, 윌스은!”
“금방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
코너에게 짧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