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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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62화
162화 전력 강화(3)
***
“후우… 피곤하구나, 피곤해…….”
프레하 제국의 디리온 황제가 침대에 걸터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이트 홀에서 귀족들에게 카리스마를 풍기며 호령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귀족들을 이끌 던 때보다, 순식간에 십 년은 늙어 버린 것 같은 모습이다.
“그대가 떠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구려.”
디리온 황제가 넓은 침대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프레하 제국의 흉사(凶事).
두 명의 황자가 있었으나, 이 년 전쯤 괴이한 사고로 인하여 앞다투어 죽었다. 연이어 두 황자를 잃은 충격 때문인지, 황후가 앓아눕고는 삼 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황제는 홀로 침대에 앉아 먼저 간 황후와 황자를 그리는 일이 반복하고 있었다.
황제가 침울한 얼굴로 침대를 쓰다듬는 그때,
드르륵!
아무런 인기척도 내지 않고 황제의 침소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또 그러고 계십니까.”
“시종장께서 오셨군요.”
황제는 이러한 일이 당연한 것처럼 고저 없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놀라운 것은 황제가 시종장에 예의를 다해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감하게 전쟁을 선포한 황제께서, 이렇듯 상심한 모습을 하고 계시는 걸 다른 귀족들이 안다면 의아해 할 것입니다.”
시종장은 걱정이 가득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에선 묘하게도 ‘폐하’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차라리 그대가 황제를 하시지 그랬습니까.”
황제는 처연한 얼굴로 시종장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시종장이 굽은 허리를 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재미없게 만드는군. 좀 더 역할에 충실할 순 없나, 황제?”
“대체 나를 어디까지 나락에 떨어뜨려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시종장의 말에도 황제는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나락에 떨어졌다고? 크극! 진짜 나락이 뭔지 구경도 못 한 주제에 배부른 소리 지껄이지 마라, 황제.”
“후우… 나는 지쳤습니다. 소중한 지금의 시간만큼은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부탁도 들어줄 수 없는 것입니까?”
황제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시종장과 눈을 맞췄다.
“으음… 많이 힘든 모양이군.”
“…죄송합니다.”
시종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황제가 고개를 툭 떨궜다.
“그렇게 힘들어하니, 네게 자유를 주도록 하지.”
“저, 정말이십니까?”
황제가 늘어뜨렸던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물론이지. 아! 그 전에 소개해줄 친구가 있어.”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빙그레 미소 짓는 시종장.
그러자 시커먼 기운이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와 덩어리지기 시작했다.
츠즈즈즈즈…
“괴, 괴물…….”
황제가 입을 떡 벌렸다.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는 존재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허! 모욕적인 발언은 자제했으면 하는데, 황제?”
“죄, 죄송합니다.”
시종장이 눈살을 찌푸리자, 황제가 찔끔해서 어깨를 움츠렸다.
“뭐 상관없겠지. ‘안드라스’라는 친구에게 인사하도록 하라.”
“알겠습… ‘안드라스’라면 설마…….”
겁을 집어먹고 대답하던 황제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설마가 맞을 거야. 마계 서열 63위의 마왕이지.”
“크흐흐흐… 반갑군. 이게 얼마 만에 인간계에 나온 것인지 모르겠어.”
완전히 형체를 갖춘 안드라스가 재미있다는 듯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인간의 몸에 깃털을 지닌 날개와 새의 머리. 황제의 눈에는 괴기스러움을 넘어서 공포감을 심어 주었다.
상대가 마왕인 바에야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
“잘 왔다. 데리고 다니던 개새끼는 어디 있지?”
“개새끼라니! 늑대라구 늑대! 엄연히 ‘티라스’라는 이름까지 있는 최고 혈통의 근사한 늑대란 말이다!”
질문을 받은 안드라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아! 알았으니까 됐고, 네가 데리고 다니는 늑대 어디 있어?”
시종장이 귀찮다는 듯 인상을 쓰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해댄다.
“‘티라스’라니까!”
안드라스는 툴툴거리면서도 손을 들어 검지와 엄지로 겹쳐 ‘딱’ 소리가 나게 튕겼다.
그러자 시커먼 기운이 순식간에 엉기면서 검은 털을 지닌 늑대가 나타났다.
“크워헝!”
“허엇!”
황제는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검은 늑대의 무시무시한 송곳니에 기겁했다.
“자! 불렀다. 뭐 어쩌라고?”
안드라스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꼴통 마왕 새끼! 이래서 부르기 싫었는데…….’
시종장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의 정체는 마계 서열 5위의 ‘마르바스’다. 서열로만 따지만 안드라스는 63위에 랭크 된 까마득한 존재.
그럼에도 속으로만 분노를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안드라스’는 마계의 이단아와 같은 존재다. 파괴 본능에 충실한 마왕이라 미친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혈질이다.
수틀리면 일단 들이받고 보는 존재였으니, 괜한 성질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마계에 돌아갔을 때 녀석과 문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은 것이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나조차 물어뜯을 놈이지.’
마르바스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선 안드라스가 더 적격일 것도 같았다. 성질머리가 개떡 같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마계가 아니라 인간계라는 다행이다. 소환의 주체가 자신이었기에 안드라스도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을 어쩌지 못할 테니까.
“황제가 자유를 원하고 있으니, 네가 해결해줘야겠다.”
멍해 있는 황제를 마르바스가 손으로 가리켰다.
“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제는 자신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 감격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껏 낮이 되면 시종장의 인형이 되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하고 행동했어야만 했다.
‘그래, 이렇게 끔찍한 상황에서 황제의 허울만 쓰고 있으면 무얼 하겠는가. 발루아 공작에게 황제의 위를 물려주고 물러나는 것도 나쁘진 않지.’
황제는 커다란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얼굴이 편안해졌다.
지금처럼 사느니, 황제의 자리를 내놓고 쉬고만 싶었다. 정신이 점점 황폐되어 이러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차라리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안드라스를 바라보는데,
“뭘 어쩌라고?”
안드라스가 눈을 껌뻑거리면서 툴툴거렸다.
“…망할 자식.”
그럴싸하게 분위기를 잡았던 마르바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녀석이 돌대가리라는 걸 깜빡했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래서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해먹는다는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후우… 늑대더러 황제가 되라고 해.”
“아!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말을 빙빙 돌려?”
안드라스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덜댔다.
“저기… 황위를 발루아 공작한테 이양하는 것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황제가 의아한 얼굴로 마르바스에게 물었다.
“아, 아! 그건 너무 번거롭지 않겠나? 조금 있으면 본격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런 시기에 황위를 이양한다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그렇군요.”
황제는 마르바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저는…….”
황제가 의문을 느끼고 마르바스에게 질문하려는 순간,
“타라스, 먹어!”
“크훠훵!”
콰직! 우둑! 으드득! 와작, 와드득!
황제의 질문은 이어질 수 없었다.
안드라스가 길들인 검은 늑대 타라스가 통째로 입에 넣고서 씹어 대었으니까 말이다.
꿀꺽!
핏물을 질질 흘리면서 황제를 씹던 검은 늑대의 목울대가 꿀럭이는 순간,
츠즈즈즈즈…
검은 늑대가 두 발로 서더니 점차 황제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황제의 모습을 형체를 바꾼 검은 늑대가 안드라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마르바스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구십 도로 접었다.
“마르바스님과 함께 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네가 안드라스보단 낫구나.”
마르바스가 가볍게 혀를 차면서 검은 늑대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은근슬쩍 안드라스를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을 한 것이다.
“빌어먹을! 지금 그거 욕한 거지?”
“갑자기 똑똑한 척하지 마라. 부담스럽다. 안드라스.”
마르바스가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으으으… 다음에 내가 네놈을 소환하면 그때 두고 보자!”
“네놈이 소환해도 안 나오면 되지?”
“큭!”
안드라스가 주먹을 말아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놈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데, 그랬다간 고스란히 고통이 자신에게 옮겨져 올 것이라서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망할! 어떤 놈부터 조지면 되는 거냐 마르바스!”
화풀이할 대상을 찾는 게 가장 현명했다.
***
아이언 성의 외부 훈련장.
“헉, 허억, 헉! 하, 하나!”
“잘했다, 시안!”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는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시안의 뒤로는 아직도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기사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력 강화를 위한 일환으로 기사들을 빡 세게 굴리는 중이다. 물론 친절하게 기사들의 혈을 막아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기본 옵션.
독기와 끈기, 그리고 체력을 측정하여 정예를 고르기 위함이다.
방식이야, 언제나 그렇듯 선착순.
강인한 체력이야말로 마나를 더욱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하는 바탕이다.
전투 중에 마나 고갈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 체력이 강한 녀석을 선별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순위에 따라 세인트가 만든 명품 갑옷을 지급할 예정이니까. 나머지 놈들에게는 순위에 따라 드워프가 틈틈이 제작한 갑옷을 주기로 했다.
강한 놈을 더욱 강하게 하는 편이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시안 녀석, 무식할 정도로 체력이 좋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겠다. 녀석이 도착했으나, 두 번째로 도착할 녀석은 아직도 멀으니까.
<윌슨 놈아! 어디있냐아!>
기사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데 트와토른의 목소리가 아이언 성에서 들려온다.
평소와 달리, 약간은 들뜬 것 같은 음성이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보는 편이 낫겠다.
제때 가지 않으면 또 뭔 심술을 부릴지 모를 놈이니까.
“시안!”
“예, 영주님!”
“네가 도착하는 순서대로 갑옷을 줘야겠다.”
“충!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호흡을 가라앉힌 녀석이 군례를 올리면서 크게 대답한다.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쓸데없이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어쨌거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녀석이니 믿고 맡길 수 있겠다.
“그럼 부탁한다.”
녀석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들겨 주고는 영주성을 향해 경공을 발휘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터라,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파릇한 순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따스한 계절이 오고 있지만, 딱히 반가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트와토른이 성벽 위에서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발견하고 성벽을 내려가는 게 틀림없다.
“충!”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군례를 받아 주고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트와토른이 빨빨거리면서 성벽에 만들어 놓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녀석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흐흐흐… 드디어 완성되었다.”
“진짜?”
트와토른이 실실대면서 턱을 치켜드는 모습에 놀라서 되물었다. 분명 완성하려면 멀었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따라와라!”
“그래, 빨리 가자.”
“우와악! 놔라! 윌슨 놈아아아!”
트와토른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을 옆구리에 까고서 달렸다. 짧은 다리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걸 따라갔다가는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드디어 강력한 전략 병기가 완성된 것인가?
심장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