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스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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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카르미스 11화
제4장 이계(異界) (2)
그 순간.
쉬리릭~!
돌아간 허리를 펴며 순식간에 몸을 돌린 나는 그대로 그 회전력이 더해진 공격력으로 눈앞의 오크들을 베어버렸다.
서거걱~!
“꾸에엑~!”
“취익! 끄르륵…….”
거의 발도와 비슷한 자세로 단번에 오크 두 마리의 목을 날린 나는 밀려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와우~! 이거 대단한데?”
스킬 설명을 확인할 때만 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직접 사용해 보니 상당히 쓸 만한 스킬이었다. 다만, 처음 등을 돌릴 때 허점이 많아 좀 더 신중을 요구하였다.
이미 돌격과 혼신의 일격으로 MP가 0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남은 오크 정도는 굳이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우하하~! 다 덤벼라!”
“취익~! 강하다! 인간!”
“취익! 도망가자! 취익~!”
“엥? 이것들이 어딜~!”
굳이 쫓아가 잡을 필요는 없었지만, 너무 쉽게 오크 세 마리를 잡아서인지 흥분이 최고로 오른 나는 그대로 등을 돌린 두 오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쉭~!
서걱!
“끅…….”
털썩!
남은 두 마리마저 정리한 나는 순간 머리를 울리는 메시지에 경악하였다.
[레벨 업 하였습니다. 상태 창과 스킬 창에서 보너스 포인트를 확인하세요.]
“헐…….”
몬스터를 사냥한 이유는 이 세계에서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레벨 업이라니? 분명 1차 전직 후 단 한 번도 사냥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오크 한 마리당 20%의 경험치를 줬다는 뜻이다.
“말도 안 돼…….”
원래 판월에서 10레벨 유저가 오크를 잡을 경우 1.5%가 고작이었다. 물론 레벨이 오를수록 필요한 경험치량도 증가해 점점 힘들어지지만, 그래도 다른 동렙 몬스터들보다 경험치를 많이 주는 편이라 15레벨까지는 오크를 잡는 것이 가장 빠른 레벨 업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게임 경험치를 준다는 것도 황당한데, 그 차이도 어마어마했기에 충분히 놀라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하…….”
오크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편하게 광렙 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하하~!”
더욱 큰 소리로 웃음 짓던 나는 이내 바닥에 싸늘하게 쓰러져 있는 오크를 바라보았다.
“맞아! 아이템도 확인해 봐야지!”
몬스터가 아이템을 드랍할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하지만, 시체를 뒤질 수 없다는 판월 세상과는 다르게, 이곳은 또 다른 현실이었다.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후후… 전부터 이 몽둥이가 탐이 났다니까.”
죽은 오크들에게서 무기를 회수한 나는 곧바로 확인해 보았다.
“아이템 확인!”
[낡은 몽둥이]
공격력 5~7
내구력 5/15
오크들이 애용하는 둔기.
[오래된 도끼]
공격력 10~25
내구력 1/30
오래되어 금방 부셔질 듯한 도끼.
날만 갈면 꽤 유용해 보인다.
“오호~?”
두 종류의 아이템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낡은 몽둥이를 버리고 두 자루의 오래된 도끼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괜찮은데? 수리만 하면 전직 무기보다 좋고.”
어차피 나는 검사라 도끼를 사용하면 페널티가 적용된다. 때문에 이대로 팔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좋아. 로그아웃!”
[10초 뒤 로그아웃 합니다. 취소를 원하시면 ‘취소’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10, 9, 8… 삑! 로그아웃합니다. 판타지 월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푸슝~!
캡슐에서 나온 나는 서둘러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붉은 수정을 선반 위에 올려놓은 뒤 다시 판월로 접속하였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후~ 전사 길드인가?”
주변을 둘러본 나는 성공적으로 판월로 접속했음을 확인하자마자 인벤토리 창을 열어보았다.
“역시!”
인벤토리 창에는 내 예상대로 다른 세상에서 넣어두었던 오래된 도끼 두 자루와 가죽 주머니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돈도 변했을까?’
생각과 동시에 1론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나는 영어로 멋들어지게 ‘Fantasy World’라고 적힌 동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대박이다!’
아이템과 돈까지 공유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인벤토리를 이용하면 양쪽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물건을 팔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이보다 손쉬운 돈벌이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저쪽 세상. 즉, 이계(異界)에서는 폭렙도 가능했으니 보다 쉽게 물품들을 구비할 수 있었다.
‘현실, 판월, 그리고 이계라…….’
아무리 원인을 알았다지만, 이계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다. 그렇다고 이런 기회를 놓칠 나도 아니었다.
이계에서 얻은 물건을 판월에 가져갈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판월에서 얻은 물건도 이계에 가져갈 수 있으리라.
‘결국 어느 쪽에서든 돈만 벌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
지금의 가난함을 탈피할 수 있는 길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바로 광장에 위치한 경매게시판으로 향하였다.
“음… 얼마 정도에 올리면 되려나?”
경매게시판 앞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아이템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선 나는 인벤토리 창에 있는 오래된 도끼 두 자루를 꺼내 등록시켰다.
“어디 보자~ 최소 경매금액은 그냥 1론으로 하고, 기간은 하루가 좋겠지. 좋아. 내일이 기대되는데?”
현재 10~20레벨이 사용하는 무기의 시세가 10실버 정도 되었다.
사실 저마다 전직무기를 받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무기는 사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 내구력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구력을 다시 수리한다고 해도, 대장장이의 능력에 따라 최대치가 감소했던 것이다.
초보마을에도 실력 좋은 대장장이 NPC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한 번 수리하는데 보통 1~3의 내구력이 깎였던 것이다.
그것도 1이 깎이는 경우는 아주 운이 좋을 경우였고, 대부분 2~3의 내구력이 깎였으니 아무리 아껴 사용한다 해도 몬스터를 사냥과 수리를 병행하다 보면 금세 최대 내구도가 바닥나는 것이다.
물론 최대 내구도가 깎이지 않게 수리하는 방법도 존재했다.
바로 리페어 스톤을 사용하는 것.
하지만 이 리페어 스톤이라는 것을 상점에서 파는 것도 아니었고, 현존하는 고렙들 사이에서도 가지고 있는 이가 드물 정도로 극악의 드랍률을 자랑했기에 가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실상이 이러하니 내구력이 빵빵한 무기를 사려는 유저들이 늘어났고, 전직무기보다는 공격력이 낮더라도 10실버라는 거금에 거래되는 것이다.
“적어도 20실버는 가겠지?”
전직무기보다 좋고, 최대 내구도 역시 더 높았다. 때문에 두 배로 계산한 나는 내일을 기대하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잡화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잡화점에 들어서자 NPC라는 것을 증명하듯 머리 위에 ‘N’마크를 띄운 세리안이라는 여성이 날 맞이했다.
“마법주머니를 사려고 하는데.”
“아, 마법주머니 말씀이신가요? 여기 목록을 보시고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곳 판월에서의 잡화점은 이계의 잡화점처럼 일일이 물건을 살필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필요한 물건을 눈앞의 NPC에게 말만 하면 허공에 그와 관련된 물건들이 가격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흐음… 역시 꽤 비싸네.”
마법주머니란, 말 그대로 마법으로 만들어진 주머니였다.
인벤토리의 수납공간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렙 유저들이라면 저마다 한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것이 바로 이 마법주머니였다.
물론 최소 10골드라는 엄청난 가격이 뒤따랐기에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 사지 못했지만, 이미 공개된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바로 잡화점 NPC가 주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
마법주머니라는 엄청난 보상으로 주는 반면 퀘스트의 내용은 싱거운 편이었으니, 많은 이들이 찾는 퀘스트이기도 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렇게 받은 마법주머니는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지만, 어차피 내가 팔려는 곳은 판월이 아닌 이계였다. 그곳이라면 거래불가 아이템도 거래가 가능할지도 몰랐기에 확인도 해볼 겸 퀘스트를 받으러 온 것이다.
“너무 비싸군.”
“어머! 손님. 마법주머니는 최소 8클래스의 현자님이 아니면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답니다. 그래도 그만큼 실용성이 높아 충분히 만족하실…….”
“그래도 비싸군.”
내가 자꾸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퀘스트를 받기 위함이었다.
판월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퀘스트가 언제 어느 상황에 맞춰 발생될지 몰랐기에 많은 유저들이 자신들이 수행한 퀘스트를 공유하였고, 아무리 공개된 퀘스트라 하더라도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발생되지 않았기에 나 또한 일부러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마법주머니를 보상으로 주는 ‘세리안과의 내기’라는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바로 세리안을 화나게 하는 것!
화가 난 세리안은 곧바로 내기할 것을 제안해 오고, 그것을 받아들여 이겼을 때 마법주머니를 보상으로 얻는 것이다.
그 내기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내용이 바뀌지만, 대부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것들이라 지금 내 수준에도 문제 될 것 없었다.
“저, 손님. 그렇게 말씀하셔도…….”
“흥! 이깟 마법주머니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10골드씩이나 해? 거기다가 제일 비싼 건 50골드잖아? 겨우 외형만 다를 뿐인데.”
“외, 외형만 다르다니요. 당연히 수납 가능한 공간도 더욱 늘어나는…….”
“설마 10골드짜리 마법주머니 다섯 개보다 공간이 넓은 것은 아니겠지?”
“그, 그건…….”
“거봐. 결국 10골드짜리보다 약간 더 넓은 걸로 다섯 배나 비싸게 받으려는 거잖아?”
“…….”
내 말에 세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NPC들이 인벤토리라는 것의 개념을 모르는 이상 내가 한 말이 결코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세리안의 그런 모습에 나 또한 당황했으니…….
‘미치겠네. 왜 화를 안 내는 거야?’
그랬다. 이쯤 되면 세리안도 고함을 지르며 대들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한 내용에서 반박할 수 없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할 수 없어 고개만 숙일 뿐, 화를 내어 대들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모른 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도대체가 말이야! 이딴 물건을 10골드나 받고 파는 것도 문제지만, 여태껏 유저들을 농락한 그쪽이 더 문제라고. 알아?”
“…….”
이번에는 약간 언성을 높여 시비를 걸었음에도 세리안은 여전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환장하겠네.’
퀘스트 공유 게시판에서 본 바로는 세리안의 성격이 다혈질이라 조금만 시비를 걸어도 바락바락 대들며 내기를 제안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뭘까?
숙인 고개로 인해 얼굴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목 밑이 붉어진 것만 보더라도 상당히 분노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도 대들지 않는다는 것은 퀘스트를 받지 못한다는 뜻.
‘이판사판이다!’
결국 더욱 사악해지기로 결심한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인간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하고 말았다.
“네 부모는 뭐 하는 사람이야? 자식교육도 제대로 못하고 말이야. 쯧쯧~!”
휙!
남의 부모 욕이 가장 심하다는 것은 어느 나라를 가든 똑같은 법.
내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린 세리안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날 노려보았다.
“훗! 그렇게 노려봐서 어쩌겠다는 거지?”
부들부들.
분노의 경련을 일으킨 세리안은 이윽고 표독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저랑 내기 하나 하죠.”
[퀘스트 ‘세리안과의 내기’가 발동하였습니다. 퀘스트 창을 통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