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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미스 9화

무료소설 카르미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카르미스 9화

 제3장 전혀 다른 세상 (3)

 

푸슝~!

캡슐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서둘러 나온 나는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욱~!”

정신적인 혼란 때문일까?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나는 그대로 정면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나는 방금 전 있었던 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진짜 사람처럼 행동하는 NPC들. 그리고 완벽하다 못해 실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생생한 풍경.

“하하… 요, 요즘은 인간도 복제 가능하다고 할 정도니까…….”

말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이미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제길…….”

처음 오크에게 죽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진짜 판월에 접속한 뒤, 감도를 확인해 봤지만 10% 그대로였다.

사슴을 잡으며 그 뿔에 여러 번 맞아봤지만, 그때마다 ‘아프다’라는 느낌만 있을 뿐. 그 고통 때문에 정신적 타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는 진짜 오크에게 죽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 생생한 느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진짜… 다른 세상인가……?”

이미 마음속으로는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이성적으로는 자꾸 부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믿을 수 없는 현상이기도 했고, 혹시라도 진짜 그런 세상이 있다면, 자신이 어째서 그곳으로 이동되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원인을 모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만약 다른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렇게 되면 현실에 있는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남아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캡슐…….”

문득 캡슐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 나는 그대로 화장실을 나와 거실로 향하였다.

하지만 기계치인 내가 본다고 달라질 게 있겠는가? 결국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던 나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뒤 서랍장을 뒤졌다.

“여기 있군.”

서랍장에서 꺼낸 것은 공구세트였다.

나는 1,200만이나 하는 고가의 캡슐을 분해해 볼 생각이었다.

그로 인해 캡슐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혼란스런 내 기분을 풀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다.

딸칵! 딸칵!

한 30분쯤 지났을까?

조심스레 나사 하나하나 풀어내며 외견을 이루고 있는 판을 뜯어낸 나는 이내 복잡하게 엉켜 있는 내부를 바라보며 어디부터 손을 놀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치겠군. 뭐가 뭔지 알아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캡슐의 전원코드도 전부 빼둔 상태였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전문가가 아니면 건드리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선들이 내 손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응?”

수많은 선들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느낌에 그곳을 주시한 나는 이내 익숙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건…….”

분명 며칠 전 길에서 주운 붉은 수정이었다.

이게 왜 여기 들어 있는 것일까? 선반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그곳에 있어야 할 붉은 수정이 보이지 않자,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청소할 때 흔들려서 떨어진 것인가? 그래도 이 안으로 들어갈 줄이야…….”

선들을 옆으로 헤치며 수정을 꺼내든 나는 다시금 선반 위에 올려두려다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호, 혹시?”

문득 든 생각.

설마 이 붉은 수정이 또 다른 세상과 연관된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처음 판월에 접속할 때, 분명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들어갔었다.

“내 바지 주머니에 이 수정이 들어 있었지…….”

두 번째 접속할 때는 샤워한 뒤 옷까지 갈아입고 나서야 캡슐에 들어갔다. 그때는 수정이 들어 있는 바지를 밖에 벗어두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청소모드를 해둔 뒤 샤워하고 나서 편안한 복장으로 들어갔지만, 선반에 올려둔 붉은 수정이 캡슐로 떨어졌고 그로 인해 이상한 세계로 접속하게 되었다.

“서, 설마. 진짜로?”

분명 붉은 수정의 유무에 따라 판월과 또 다른 세상으로의 접속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우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었기에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꿀~꺽!

상당히 긴장했음을 보여주듯 마른침을 삼킨 나는 붉은 수정을 선반 위에 올려두고 다시 캡슐을 조립했다. 어차피 외관만 뜯어낸 거라 다시 조립하는 것쯤은 기계치인 나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윽고 다시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린 나는 곧바로 전원을 연결한 뒤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인식과정을 거치고 마지막 접속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눈을 뜬 나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전사길드?”

내가 위치한 이곳이 판타지 월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전사 길드장 보모스. 그의 머리 위에 보이는 ‘N’표시가 이곳이 판월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또한 주변에 전직하러 오는 유저들 또한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목검과 천 옷을 입고 있었다.

“로그아웃!”

 

[10초 뒤 로그아웃 합니다. 취소를 원하시면 ‘취소’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10, 9, 8… 삑! 로그아웃합니다. 판타지 월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로그아웃한 나는 이내 캡슐에서 나와 선반 위를 주시하였다.

“음…….”

붉은 수정은 그 자리 그대로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제 이 수정을 몸에 지닌 채 접속해야 했다.

“만약 이 수정이 원인이라면, 아까의 그 세상으로 이동되겠지.”

이번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이라면 자신이 전혀 다른 세상. 실존하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된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왜 하필 판월 캡슐에 의해 이동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원인 정도는 확인 가능했으니 다소 불안감을 덜 수 있으리라.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역시나 접속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어디론가 이동됐음을 느낀 나는 서서히 감았던 눈을 떠보았다.

“역시…….”

이번에 있는 곳은 방금 전 NPC로 알았던 사내에게 멱살을 잡혔던 식당 안이었다.

“히익~!”

“꺅~!”

“뭐,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마, 마법사인가?”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 때문인지 주변에서 상당한 소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곳이 진짜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충분했다.

아마 내 멱살을 잡던 사내도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저기 있군.”

아까 보았던 종업원 소녀를 발견한 나는 그녀가 겁을 먹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앞까지 다가갔다.

“이봐.”

“네, 네! 마, 마법사님…….”

그저 로그아웃하고 다시 로그인 한 것뿐인데, 날 마법사 취급하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가 추구하는 길은 오직 검이었다. 마법사는 예전부터 적성에 맞지 않아 거들떠보지도 않는 직업 중 하나였다.

“죄, 죄송합니다.”

찌푸린 내 인상 때문일까? 소녀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됐고, 방 하나 있지?”

식당과 여관을 겸하고 있으니 빈방 정도는 있을 것이다.

“네? 네…….”

“방 하나 줘. 한동안 머물 생각이니까.”

내 말에 머뭇거리던 소녀는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려주자 부리나케 카운터로 달려가 열쇠를 가져왔다. 진작 그럴 것이지.

아무래도 이 세계는 마법사라는 존재가 두려움의 대상인 듯,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 여기요.”

“계산은 후불로 하마. 며칠 묵을지 알 수 없으니.”

“아, 알겠습니다.”

열쇠를 받아든 나는 곧바로 2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후우… 이걸 믿어야 하나?”

방에 놓인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원인을 알았지만 왠지 불안한데…….”

그냥 그 정체 모를 붉은 수정을 팔아치운 뒤, 판월만 즐기면 이런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기가 싫었다.

세상에 그 누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겠는가? 이건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 봤던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상황.

“아무래도 일단은 좀 더 지켜봐야겠어.”

좀 더 생각한 뒤 결정하기로 결심한 나는 그대로 로그아웃하였다.

사실 방을 잡은 이유도 로그아웃과 로그인 할 때 아까와 같은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푸슝~!

“휴우…….”

캡슐을 나온 나는 그대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붉은 수정을 꺼내들었다.

“이 괴상한 글이 뭔가 관련이 있을 듯한데…….”

처음엔 그저 멋들어진 표식을 새긴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표식이라고 하기에는 고대어 같은 글씨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 세계의 언어인가?”

그러고 보니 자신은 그 세계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않았던가?

판월은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즐기기에 최첨단 동시번역기가 탑재되어 상대가 외국인이라도 의사소통 가능했다. 하지만 또 다른 세계는 아니었다.

“분명 한글이 아니었는데…….”

상대는 그들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자신은 한글로 말했는데도 서로 간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런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한데, 더 이상 혼란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잠이나 자자.”

결국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나는 그대로 소파 위에 누웠다. 당분간 캡슐 안에서 자는 것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접이식 침대 하나 마련해야겠네.”

투덜거리던 나는 이내 몰려오는 수마에 순응하며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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