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스 1화
무료소설 카르미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카르미스 1화
프롤로그
어두운 동굴 안.
그 넓이와 높이만도 학교 운동장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동굴 속에서 그것조차 좁다는 듯 몸을 웅크린 거대한 존재가 바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허허… 수천 년간의 연구결과가 이럴 줄이야…….”
존재가 바라본 바닥에는 알 수 없는 도형과 기호들이 복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이제 나도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거늘… 다른 차원을 경험하는 것은 결국 꿈이란 말인가…….”
이 거대한 존재는 바로 드래곤이었다.
이미 9천 살을 넘긴 최고룡 에이션트 블랙 드래곤 클랑베르크는 다른 드래곤들이 광룡이라 부를 정도로 차원 마법진만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특이한 드래곤이었다.
오랜 연구가 빛을 발했는지 드디어 차원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드래곤 하트가 필수였던 것이다.
그것도 드래곤 하트 특유의 마나를 집합시키는 능력이 필요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몸속에서 드래곤 하트를 직접 꺼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몸속에 존재하는 이상 마나를 집합시키는 능력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계산 결과 최대한 드래곤 하트의 능력을 이용하지 않으면 차원의 문 또한 열리지 않았기에 이토록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에게 있어 드래곤 하트는 생명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할 수 없는 건가…….”
클랑베르크는 고민 끝에 결국 자신의 드래곤 하트를 꺼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이제 몇 년 후면 대지의 품으로 돌아갈 몸이다. 그 전에 차원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안식이 몇 년 앞당겨진다고 억울할 것도 없었다. 결심한 클랑베르크는 곧바로 자신의 긴 목을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쿠아아아~!
드래곤의 포효에 일대 영역을 돌아다니는 모든 몬스터들이 두려움에 떨었고, 인간들을 피해 산맥 안에 자리 잡은 이종족들 역시 불안한 마음으로 클랑베르크의 레어가 위치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길고 긴 포효는 차츰 줄어들었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몬스터들도, 이종족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시간이… 없군.”
거대한 포효와 함께 몸 안에 있는 드래곤 하트를 꺼낸 클랑베르크는 곧바로 자신이 연구한 차원 마법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든 자료가 모이자 거대한 손톱으로 자신의 드래곤 하트에 무언가를 새겨 넣었고, 이내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손톱으로 한데 모아둔 자료를 가리켰다.
“카피(Copy)!”
파앗~!
마법이 발동함과 동시에 바닥에 놓인 드래곤 하트와 연구서류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이내 서서히 사라졌다.
평생을 바친 연구 자료가 주변에 널려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드래곤 하트에만 따로 새겨놓았다.
자신을 괴짜나 광룡이라고 부르는 다른 드래곤들에게 자신의 연구 자료를 보여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아니, 오히려 중요한 키워드를 뺀 나머지를 남겨놓았으니, 앞으로 여러 드래곤들이 달려들어 머리 싸맬 생각을 하자 오히려 통쾌했다.
마지막 작업까지 마친 클랑베르크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서둘러 차원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파아아앗~!
“드디어…….”
마법진에서는 방금 전과는 격이 다른 엄청난 빛이 생성되더니, 그 중앙에 놓인 드래곤 하트 주변에 점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빛과 함께 놓여있던 드래곤 하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스팟~!
“오오~!”
하지만 클랑베르크는 차원 마법이 성공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연구했던 과정과 그 예상결과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은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9천 년간 연구한 결과가 이뤄지자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차원 너머에 있을 이계의 존재여… 부디 내 뜻을 이어주길…….”
만족한 미소를 지은 클랑베르크는 이내 바닥에 몸을 뉘이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시간이 다 된 것이다.
그렇게 에이션트 블랙 드래곤 클랑베르크는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다.
제1장 기이현상 (1)
“에휴… 오늘도 지루하게 흘러가네.”
저녁 7시쯤 되었을까?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러 돌아가던 나는 쌀쌀한 날씨에 검은색 정장 코트를 바짝 당겨 입으며 투덜거렸다.
“망할… 차라리 군대 있을 때가 편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어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나왔지만, 막상 나와 보니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처음에는 젊은 혈기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번듯한 회사원으로도 일했었지만, 직장 동료들과의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못해 취직과 동시에 사표내기가 일쑤.
뒤늦게 정신 차리고 다시 취직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이번에는 나이 어린 상사에게 찍혀 고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지금 직장을 그만두면 앞으로 먹고살기도 빠듯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썅! 지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꼬박꼬박 반말이야?”
현재 다니는 직장은 영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중소업체였다.
사장은 50대 초반의 성격 좋은 아저씨 스타일이었지만, 자식 교육은 잘못 시켰는지 20살짜리 딸에게 전무이사 자리를 주고는 모든 일을 맡겨버린 것이다.
그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중소기업이라지만, 누가 20살짜리 여성이 회사의 전무라고 생각하겠는가?
때문에 입사 첫날부터 반말하는 개념 없는 여자한테 쓴소리 한 번 했던 것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사장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참았겠지만…….
아무튼 그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갈굼을 당해왔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몸은 고생했을지언정 차라리 마음고생 없는 군대가 더 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어? 이현중~!”
“응?”
집 근처에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사던 나는 내 이름을 부른 녀석을 바라보았다.
“태현이냐?”
“그래.”
싱글벙글한 모습으로 다가온 태현이라는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벌써 8년째 함께해 온 사이였다. 즉, 나와 태현의 나이가 24살이라는 말이다.
“오늘도 갈굼 당했냐?”
“아아…….”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방금 전 산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 일단 들어가자.”
“네 집? 내 집?”
“거기서 거기잖아.”
“하긴…….”
태현의 집은 내가 머무는 원룸 바로 옆집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생활할까 생각했지만, 태현이 곧 일본으로 유학 갈 예정이라 따로 전세를 잡아야 했다.
“후~ 살 것 같다.”
“요즘 날이 많이 쌀쌀해졌어.”
집에 도착해서야 움켜진 코트를 벗은 나는 소파에 기대앉은 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였다.
“휴~ 오늘은 커피 안 타온다고 갈굼 당했다.”
“에엑~?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커피 심부름이래?”
“내 말이.”
“그래서? 타줬어?”
“미쳤냐? 욕이 턱까지 차오른 걸 간신히 참았다.”
“흑흑. 불쌍한 우리 현중이.”
“말도 마라. 진짜 그딴 여자랑 결혼하게 될 남자가 불쌍하다.”
“그래도 예쁘잖아? 나 같으면 커피도 타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겠다. 우히히~!”
“미친놈. 내가 너냐?”
“하긴… 너는 아니다 싶으면 절대 안 하는 녀석이지?”
태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어우러지는 능글능글(?)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욕하고 비꼬아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상대의 비위를 맞출 줄 아는 부러운(?) 녀석이었다.
뭐, 그렇다고 닮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나저나… 김태현, 너 어제도 날 샜냐?”
“응? 아아. 판월? 당연하지.”
“그러다 폐인 된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부럽긴 개뿔…….”
판월이라는 것은 ‘Fantasy World’라는 게임의 줄임말로, 최근 등장한 가상현실게임이었다.
미국의 (주)프리즈에서 만든 야심작으로, 대형 캡슐을 설치해 들어서면 가상세계와 연결되어 직접 움직이며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캡슐의 가격은 1,2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였지만, 이미 완벽한 가상현실게임이라는 메리트 때문인지 대한민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캡슐을 구입해 너도나도 판월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전세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1,200만이라는 거금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회사에서도 툭하면 야근을 했기에 게임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 태현이 녀석이 그 캡슐을 구입해 버린 것이다.
얼마 안 가 일본으로 유학 갈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비싼 캡슐을 산 건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지만, 처음 캡슐에 들어갔다 나온 녀석의 상기된 얼굴표정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으면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만약 캡슐에 인식기능이 없었다면 나도 같이 즐겼을 것이다.
“들어가라. 난 이만 씻으련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아아.”
태현을 돌려보낸 나는 그대로 침대로 몸을 눕혔다.
아직 저녁도 안 먹었고, 몸도 씻어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너무 피곤했기에 그대로 눈을 감았다.
“끄응~ 내일은 부디 무사하길…….”
전혀 이뤄지지 않을 소원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기도하며 잠이 든 나는 그대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이현중 사원! 이건 뭐지?”
“하아…….”
또 시작이다.
이른 시간에 잠을 자서인지,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난 나는 곧바로 샤워를 하고 평소보다 빠른 시간에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다.
시간이 남아 사무실 청소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그게 화근이었다.
빌어먹을 여상사가 청소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자마자 구석에 쌓인 먼지를 가리키며 비꼬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가…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청소하기 싫다지만 이런 식으로 해서 어디 일이나 제대로…….”
소리치던 어린 상사는 뒤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내가 이래봬도 사원들 중 가장 우수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미 거물급 예식업체들과 제휴를 맺은 것도 대부분 내 능력이었고, 날 쫓아내면 그쪽과의 제휴도 파기될 정도로 돈독한 사이를 맺어두었기에 함부로 쫓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식적인 인간관계가 짜증나 회사를 그만두고 그랬는데, 눈앞의 여상사 덕분에 억지로라도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어찌 보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일만 제대로 하면 뭐 해!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윽…….”
역시 고단수였다. 설마 저런 식으로 비꼴 줄이야. 그래도 평소보다는 비꼬는 강도가 많이 낮아서인지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하지만 절대 참지 못하는 말이 있었다. 아니, 내 앞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었다.
“흥! 역시 대학 못 간 티가 나네.”
“이런 썅!”
쾅!
“꺄악~!”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은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전교회장을 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런데 왜 대학을 안 갔냐?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IMF로 인해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도 부도나 누나랑 셋이서 집안을 꾸려 나가야 했다.
그런 상황의 내게 대학은 사치였다.
군대를 일찍 간 이유도 최대한 빨리 제대해서 본격적으로 회사에 취직하기 위함이었다. 취직한 뒤 군대를 가면 말짱 도루묵이었기에.
때문에 대학 갔다고 거들먹거리는 녀석이나, 대학 못 갔다고 비꼬는 놈이 있으면 주먹이 먼저 나갔다.
아무리 상대방의 사정을 몰랐다지만, 그런 걸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무시하는 것부터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씨팔~! 더러워서 관둔다! 카악~! 퉤!”
이미 머리끝까지 열이 뻗힌 나는 차마 여자에게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었기에 욕과 함께 주변 책상과 의자 등을 발로 차며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하아~ 또 취직자리 알아봐야 하나…….”
막상 회사를 나오고 나니 걱정이 들어섰지만, 책상을 발로 걷어찰 때 새파랗게 질려하던 여상사의 얼굴을 생각하자 왠지 흐뭇했다.
“태현이 녀석 얼굴이나 봐야겠다.”
지금쯤이면 집에서 한창 판월을 즐기고 있을 시간.
그 녀석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그만두었다고 말한다면 분명 엉뚱한 말을 할 게 분명했다.
‘푸하하~! 이현중 너 대박인데? 그 장면을 보지 못한 게 한이다. 혹시 동영상 촬영 안 해놨냐?’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마다 저런 식으로 웃어넘기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기에 내 발걸음은 더욱 서둘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툭!
“응?”
지하철로 향하던 나는 발에 무언가 차이는 느낌에 의아한 시선으로 밑을 바라보았다.
“뭐지?”
돌멩이라고 생각한 그것은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붉은색 수정이었다.
“액세서리인가?”
목걸이나 귀고리에 쓰이는 것이라면 어디엔가 구멍이 뚫려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흠집조차 나 있지 않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수정 안쪽에 무언가 알아볼 수 없는 기호와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신기하네.”
수정의 모양도 타원형으로 반듯하게 깎아져 있어서 상당히 고가품으로 보였다.
“나중에 보석상에 가서 확인해 봐야지.”
보석을 볼 줄 모르기에 손에 들린 이 붉은 수정이 싸구려 액세서리의 부품일지도 몰랐지만,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보석보다 맑고 선명한 빛깔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횡재했군.”
멋대로 고가품일 거라 확신하며 주머니에 챙겨 넣은 나는 그대로 지하철을 차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평상시와는 집안 모습이 달랐다. 아니, 가구배치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응? 누나가 왔다 갔나?”
내 집 열쇠가 있는 곳은 가족들과 태현이밖에 몰랐다. 더욱이 집안 가구에 손을 대는 인물은 누나밖에 없었다.
“엥? 저건……?”
혹시 몰라 누나에게 전화를 걸려던 나는 뒤늦게야 침대가 있었던 장소에 전혀 다른 물건이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해야 했다.
“파, 판월 캡슐?”
그랬다.
인터넷에서 15만원 주고 샀던 침대는 어디 갔는지 온데간데없이 안 보이고, 대신 1,200만 원짜리 캡슐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 땡잡았다! 아, 아니지. 도대체 누가……?”
순간 15만원과 1,200만원을 비교하며 좋아하던 나는 그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고가의 캡슐을 사준 건지 이해되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가구의 배치만 바뀌었을 뿐. 침대와 캡슐을 제외하면 새로 추가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캡슐 위에 놓인 편지를 제외한다면.
“웬 편지?”
편지라고 보기에는 이면지에 그냥 글자를 끼적여 놓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내용만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어이, 나 태현이다.
아마 집에 들어오고 깜짝 놀랐을 텐데, 멋대로 가구를 배치한 건 용서해라. 대신 5년간 캡슐을 빌려줄 테니 그동안 판월이나 즐겨봐.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사실 일주일 후에 일본에 갈 예정이었는데, 마침 신주쿠 쪽에 좋은 집이 났지 뭐야? 다른 유학생이 차지하기 전에 서둘러 계약을 맺다보니 너한테 제대로 말도 못하고 떠난다.
뭐, 6개월에 한 번 정도는 한국에 올 테니 울지 말고.
참고로 네 침대는 일본에 있는 내가 살 집으로 보냈다. 내 침대가 워낙 삐걱대서 말이야.
어차피 캡슐 안도 편안하니까 거기서 자라. 판월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나에겐 유학 이 더 중요하니…….
아, 그리고 내 캐릭터는 삭제했으니까 캡슐에 들어가서 새로 등록하면 돼. 보아하니 조만간 회사도 멋지게 박차고 나올 것 같은데, 판월이나 즐기면서 돈이나 벌어라.
참고로, 판월에서 평범하게 사냥해서 번 돈만 팔아도 네가 생각지도 못한 액수를 받을 거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판월을 하려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돈벌이가 가능한 거지.
하지만 점점 유저들이 수가 평균화 되면 시세도 떨어질 거니 그 전에 왕창 팔아둬.
참고로 내가 한 달간 모았던 돈과 장비 값이 현금으로 천만이었다. 놀랍지?
내가 판월 랭킹 1위였거든. 직업은 상인이었고. 뭐, 예전부터 다크게이머로 살았던 전적이 있으니까 당연한 결과지. 너라면 적어도 한 달 300만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다.
아무튼, 점점 시세가 떨어지고 있으니까 서둘러 시작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럼 6개월 후에 보자.
아디오스.>
태현의 편지는 짧지만 엄청난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이 자식이!”
감히 딸랑 편지 한 장 남겨두고 떠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내 사정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앞으로의 생활까지 준비해둔 채.
“썅! 무지 고맙잖아!”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곧 유학 갈 녀석이 왜 이런 고가의 캡슐을 구입했는지에 대한 이유. 아마 이런 내 모습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흐흐… 6개월 후에 돌아오기만 해봐라.”
적어도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양주를 먹여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