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스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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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카르미스 26화
제9장 2차 전직 (3)
“으음…….”
대략 한 시간 정도 정신을 잃었던 나는 힘겹게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윽!”
조그마한 오두막집 안에 누워 있다는 걸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오우거에게…….”
분명 부러졌어야 정상인데 나뭇가지와 붕대로 고정해 둔 걸로 봐서는 누군가가 치료해 줬다는 뜻.
“그 화살 쏜 녀석인가?”
내 팔을 치료해 준 것은 고맙지만, 팔이 부러지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기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나마 가만히 있으면 별다른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할 뿐.
끼이익!
“어머! 일어나셨네요.”
“…….”
누군지는 몰라도 돌아오면 단단히 한마디 하려던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베네시아를 바라보며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다.
‘천사?’
내 눈에 비친 베네시아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브라운 빛 머릿결이 유난히 눈부셨고, 호수같이 맑은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그리고 선홍빛의 조그마한 입술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몸매는?’
남자라는 동물이 그렇듯, 일단 얼굴이 합격점이라면 당연히 몸매 확인이 필수 아니던가?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몸매 또한 환상이었다. 옷으로 너무 가리긴 했지만 잘록한 허리와 흉터 하나 없는 매끈한 다리, 전체적인 비율 등을 따져 봐도 이보다 완벽한 몸매는 찾기 힘들 정도였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 아닙니다.”
분명 몸매를 감상하고 있었지만, 베네시아는 내가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걸로 착각하였다.
실제로 눈동자는 베네시아의 아름다운 얼굴에 고정해 둔 채, 0.1초 간격으로 살짝살짝 몸매를 감상했기 때문에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일단 팔목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치료까지 해주셨잖습니까? 하하하.”
난 아무리 상대가 미인이라 할지라도 화난 것은 풀어야 했다.
하지만 천사를 상대로는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헤벌린 얼굴로 베네시아의 얼굴을 감상(?)하던 나는 이내 의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응? 귀가…….”
“네?”
“아뇨. 그게… 귀, 귀가 조금…….”
여인에게 대놓고 귀가 이상하다고 말하기 뭐했기에 살짝 끝부분을 얼버무린 나는 그녀의 입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저는 엘프니까요.”
“에, 엘프?”
엘프라면 분명 판월에도 존재하는 NPC였다.
엘프의 숲 위치도 이미 파악이 된 상황이었지만,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숲의 수호자들 때문에 자격이 없는 유저는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했다.
그런 엘프를. 그것도 이계에서 직접 마주할 줄 몰랐던 나는 상당히 놀랍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반문하였다.
“그럼 이곳이 엘프 마을인가요?”
판월에서 엘프 마을에 다녀온 유저들의 말을 들어보면 선남선녀가 사는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실제 존재하는 이계의 엘프 마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 기대감에 물어본 것이지만, 베네시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여기는 엘프 마을과 약간 떨어진 오두막집이에요. 회복되실 때까지 이곳에서 안정을 취하세요. 결계의 범위 안이라 몬스터의 침입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까요.”
“결계요?”
“네. 몬스터나 다른 종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결계요.”
“아, 그렇군요.”
한마디로 마법사의 실드 마법 같은 거라고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저를 왜 이곳으로……?”
“그게… 다치신 곳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왔어요. 그곳은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히얀 산맥의 중심지라서요.”
“히얀 산맥이요?”
“네. 혹시 모르고 들어오신 건가요?”
“그게… 그냥 수련도 할 겸 무작정 들어온 건데…….”
“대단하네요.”
“하하… 그, 그런가요.”
계속되는 내 질문에 귀찮을 법도 하건만 베네시아는 화사한 미소로 친절히 답변해 주었다.
어차피 팔목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이곳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기에 나도 편한 자세로 계속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고, 10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눈 뒤에야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였다.
“아차! 제 이름은 카르미스입니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는 숲의 일족 베네시아라고 해요.”
“베네시아라… 정말 좋은 이름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베네시아님, 엘프들은 다들 활을 사용하나요?”
“대부분 활을 사용할 줄 알아요. 어릴 때부터 활과 정령술에 대한 교육을 받거든요.”
“정령이요?”
솔직히 예전부터 온라인게임을 해온 내가 정령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묻는 이유는 베네시아와 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주었고, 계속 듣다보면 최근 일어나는 여러 기이현상과 그걸로 인해 찾아온 혼란이 단숨에 정리되는 듯 정신이 맑아졌던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저, 정말인가요?”
“네. 저희 엘프들은 성인이 되면 검술과 마법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어요. 저도 3년 뒤면 마류스님께 마법을 배울 예정이고요.”
“그, 그러니까. 6클래스 이상이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마류스님은 이미 8클래스에 오르신 분이에요. 제 우상이기도 하고요.”
“오오!”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바로 2차 전직 퀘스트 때문이었다.
이미 오우거의 어금니를 얻었으니, 세공 장인을 찾아가 반지로 만든 다음 이곳에서 마법으로 능력을 부여하면 굳이 마탑을 찾을 이유도, 마법사 유저를 기다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베네시아가 내 부탁을 들어줘야겠지만.
“베네시아님!”
덥석!
“에? 저, 저기. 카르미스님. 소, 손 좀…….”
“응? 아차!”
너무 흥분한 나머지 베네시아의 손을 잡고 부탁하려던 나는 서둘러 놓으며 사과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하실 말씀이 뭐죠?”
“그게… 제 부탁을 좀…….”
“네, 말씀하세요.”
꿀~꺽!
2차 전직의 실마리가 보아서인지 마른침을 삼킨 나는 이내 긴장된 어조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혹시… 제가 가진 물건에 마법부여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인첸트(Enchant) 말씀이신가요?”
“아, 아마도…….”
“음…….”
내 부탁이 상당히 어려운 걸까? 꽤 오랜 시간 고민하던 베네시아는 미안한 얼굴로 답해주었다.
“죄송해요. 그건 저 혼자서 결정한 일이 아니라… 마류스님의 허락이 있어야 해요.”
“네? 그럼 마류스라는 분을 제외하면 6클래스 마법사가 없는 건가요?”
“아뇨. 다섯 장로님들도 6클래스에 오르셨지만, 인첸트 마법은 8클래스 마법이에요.”
“헉!”
그제야 베네시아가 그렇게 고민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판월과 이계가 똑같을 리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만났던 몬스터들과 세계관이 판월과 흡사했기에 무의식적으로 두 세계가 똑같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이런… 결국 그 마류스인가 뭔가 하는 엘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거잖아?’
희망이 상당히 사라져서일까? 상당히 침울한 얼굴로 앉아있던 나는 이내 무언가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마법 부여에 따른 대가를 드리겠습니다.”
“도움을 드려야 할 분께 대가를 받을 수 없어요. 일단 제가 마류스님께 잘 말씀드려 볼게요.”
“그럼. 혹시 그분이 거절하더라도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그건 어렵지 않아요.”
대가를 받지 않는다면 나야 좋지만, 8클래스 마법 부여를 공짜로 해줄 리 없었다.
결국 내가 생각한 대가라는 것은 내일 이뤄질 판월 패치와 관련 있었다.
패치가 이루어지면 세리안의 내기 퀘스트가 자연적으로 완료되고, 그로 인한 보상이 잡화상점의 모든 마법주머니였으니 그중 하나만 쥐어줘도 대가로는 넘칠 것이 분명했다.
“그럼. 만약 거절하신다면 내일 이 시간에 대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네. 그럼 인첸트할 물건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반지입니다. 사정이 있어 지금 보여드릴 수 없고, 내일 보여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쉬세요.”
대화를 마친 베네시아는 곧바로 오두막집을 나서며 자취를 감추었다. 엘프 마을로 돌아간 것이다.
홀로 남은 나는 그대로 인벤토리를 열어 오우거의 어금니를 꺼내들었다.
“일단 세공부터 해둬야겠군.”
아무리 마법주머니를 대가로 준다고 해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좋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로그아웃!”
친구 태현이가 항상 하는 말을 외치며 로그아웃한 나는 서둘러 잠을 청했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어느새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