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스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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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카르미스 22화
제8장 패치 (2)
푸슝~!
캡슐에서 나온 나는 그대로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9시라…….”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주머니에 들어 있는 수정을 선반 위에 올려둔 나는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2차 전직이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요할지 알 수 없었지만, 날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중으로 해결할 작정이었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이제는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은 메시지를 들으며 판월에 접속한 난 곧바로 전사 길드를 찾아갔다.
끼이익.
“어서 오세요. 루펜 전사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길드 안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얼굴의 안내원 NPC가 날 맞이했지만, 무시하며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길드장 보모스만 만나 전직 퀘스트를 받으면 되는데, 괜히 상관도 없는 NPC랑 인사치레하며 시간 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딸칵.
“음? 자네는?”
2층 보모스의 방에 도착한 난 먼저 아는 척하는 보모스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전직하러 왔습니다.”
“허! 벌써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판월의 NPC들은 유저들의 명성에 따라 그 반응이 달랐다.
명성이 높은 유저에게는 더욱 친근하게 행동하며 퀘스트도 잘 주지만, 반대로 명성이 낮은 유저에게는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심지어 물건도 팔지 않는 NPC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NPC들 중에서도 각 길드를 담당하고 있는 마스터들은 유저들의 능력까지 확인 가능하도록 시스템 되어 있기에 보모스도 내 레벨을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대단하군. 자네는 내가 주는 시험을 받을 자격이 있네. 하겠는가?”
[2차 전직 퀘스트 ‘보모스의 시험’이 발동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네.”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 창을 통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전직 퀘스트를 받은 나는 다시 보모스를 바라보았다. 퀘스트 창을 열어 확인하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 내가 주는 세 가지의 시험만 통과한다면 봉인되어 있는 자네의 힘을 이끌어주지.”
“알겠습니다.”
세 가지라면 꽤 시간이 걸린다는 뜻. 때문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나는 이어지는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 시험은 오우거를 잡는 것일세. 동료들과 함께 잡아도 상관없지만 그 증거로 ‘오우거의 어금니’를 가져와야 하네.”
판월에서는 한 번도 오우거를 잡아본 적이 없었지만, 절대 혼자서 잡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조금씩 불안해졌다.
‘첫 번째 시험이 저 정도라면, 두 번째랑 세 번째는 어느 정도라는 거야?’
오우거는 파티를 통해 어찌어찌 잡는다 해도, 만약 그보다 강력한 몬스터나 던전의 보스를 처치하라고 하면 하루 이틀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시험은 그렇게 얻은 오우거의 어금니를 이용해 반지를 만들어오게. 이것 역시 동료들이나 마을 세공사에게 부탁해도 상관없네.”
내 우려와는 달리 두 번째 퀘스트는 꽤 무난해 보였다. 아니, 그냥 세공 NPC에게 가져다주면 되는 일이기에 너무 쉬워 보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세 번째 퀘스트가 문제였으니…….
“마지막 시험은 그렇게 세공된 반지에 마법적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네. 마법 부여는 마탑을 찾아가면 되지만, 그 길목이 험난하여 상당한 끈기가 필요할 걸세.”
“…….”
마탑이란다.
마법사들조차 마탑이 어디 위치해 있는지 모르는 이때. 도대체 무슨 수로 마탑을 찾아간단 말인가? 그것도 검사인 내가.
그런 내 걱정을 알았는지 보모스의 추가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굳이 마탑을 가지 않더라도 고위 마법사라면 충분히 마법 부여를 받을 수 있다네.”
“고, 고위 마법사라면…….”
“그야 6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들이지.”
“…….”
6클래스 마법사. 마법사가 2차 전직을 해야 가질 수 있는 클래스.
한마디로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마탑을 찾아가든가, 유저들 중 2차 전직을 마친 마법사가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게 마법이 부여된 반지를 가져다주면 그곳에 기사의 인장을 새겨주겠네. 그것을 착용하면 자네의 몸속에 봉인되어 있는 새로운 힘이 눈을 뜰 걸세.”
이미 내 머릿속은 공황상태에 빠져 보모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 마탑을 발견한 유저가 있다면 문제없겠지만, 그 많은 유저들도 지금까지 단 두 개의 도시만 발견했을 정도로 광활한 대륙이 바로 판월이었다.
때문에 마탑을 찾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2차 전직한 마법사 유저를 기다리는 것도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했다.
“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내 설명은 여기까지네. 이후로는 자네의 능력에 달려 있겠지.”
“윽…….”
털썩!
결국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한 나는 그대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굳이 2차 전직을 하지 않더라도 레벨 업은 가능했지만, 그래도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법이기에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새로운 능력치와 스킬도 생기고, 그 한계치도 높아지기에 여러모로 기대했건만…….’
지금도 이계의 오우거라면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에 보았던 기사 단장과 같은 자를 상대하려면 더 강한 힘과 스피드가 필요했다.
물론 레벨 업에 따른 오감상승도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힘과 스피드가 빨리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자…….”
복잡한 머리도 풀 겸 그대로 로그아웃한 나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난다고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질 리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충격은 덜어낸 상태에서 고민할 수 있으니 심적으로도 한결 편했기 때문이다.
* * *
“오랜만이군.”
이른 아침.
가장 먼저 회사에 출근했다고 생각한 나는 의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 안녕하셨습니까. 사장님?”
“그래. 일찍 출근하는구먼?”
“아, 네…….”
50대 초반의 인자한 얼굴을 가진 사장님은 사무실을 청소하고 계셨는지 한 손에 빗자루를 드신 채 날 반겨주셨다.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허허. 아닐세. 자네는 걸레로 책상이나 좀 닦아주겠나?”
“네? 아, 알겠습니다.”
황급히 부엌에서 걸레를 들고 온 나는 열심히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사장님과는 가끔 술자리를 하며 사적으로는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긴장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니, 최근 사장님 따님과의 관계가 완전 하극상이나 다름없었기에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의 입에서 절대 거론되지 않았으면 했던 얘기가 흘러나왔다.
“요즘 수정이가 불평이 많더구나.”
“그, 그, 그게…….”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아무리 큰 실수를 하더라도 웃어넘기실 분이 우리 사장님이셨다.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 자신의 딸을. 그것도 엄연히 직장상사에게 하극상을 벌인 내 태도는 결코 용납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네. 해코지 하려는 게 아니니.”
“네?”
“나야 아비 된 입장에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그동안 우리 딸이 자네를 괴롭혔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어쩌겠나? 선인선과 악인악과라 하지 않나.”
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
선업을 쌓으면 반드시 좋은 과보가 따르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불교의 업보론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사장님은 기독교 신자시다.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계시면서 저런 말씀을 하실 줄이야.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죄송합니다.”
“자네가 사과할 게 뭐 있는가? 하지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아, 아닙니다. 제 잘못이 큽니다.”
“허허. 볼수록 아깝단 말이야.”
“네?”
저건 또 무슨 뜻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자 사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자네. 우리 수정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예?”
“음. 그렇게 인상 찌푸리지 말고, 직장상사가 아닌 여자로서 어떠냐는 말일세.”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나보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나는 여자로서의 임수정을 생각해보았다.
“같은 직장동료들 중 애인이 없는 남자들 대다수가 수정… 아니, 전무님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럼. 여자로서 매력은 있다는 말인가?”
어째서 저런 걸 묻는 걸까? 의아하긴 했지만 난 계속해서 대답했다.
“네. 솔직히 또래의 여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고, 저 외의 다른 직원들에게는 상냥한 편이니까요.”
“그럼. 자네의 생각은 다르다는 건가?”
“저, 저요?”
“난 처음부터 자네의 생각을 물은 거라네.”
“그건…….”
내가 임수정을 여자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 머릿속에 각인된 그녀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철부지 마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장님 앞에서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법. 결국 약간은 이미지를 미화해야 했다.
“하하… 저한테는 그저 철부지 여동생일 뿐이죠.”
음. 미화한다고 한 건데, 내가 봐도 듣는 아버지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할 것 같다.
인자하신 사장님의 얼굴도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찌푸려져 계셨다. 이거 이러다 혼나는 거 아냐?
“그런가? 험험…….”
“죄송합니다.”
“아니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다행히 내 걱정과는 달리 사장님은 약간 당황하셨을 뿐. 화내거나 하시지는 않으셨다.
“이크! 난 이만 가봐야겠네.”
“네? 이제 곧 수정… 아니, 전무님이 오실 텐데. 만나보지 않으시고…….”
“그것 때문에 서둘러 가려는 걸세.”
“네?”
“아, 아무튼 그런 게 있네. 그럼.”
“아, 안녕히 가십시오!”
대화를 마친 사장님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왜 오셨던 거지?”
설마 청소하러 왔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결국 나와 같이 청소하고 대화한 것이 전부인데, 날 만나러 왔다고 보기에도 대화내용이 특별하거나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내 하나둘씩 출근하는 직장 동료들로 인해 더 이상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