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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미스 18화

무료소설 카르미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카르미스 18화

 제6장 광렙을 향하여 (3)

 

그때였다.

 

[‘신카이’님께서 귓속말을 요청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엥? 웬 귓속말?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내 아이디를 아는 사람이라고는 예전부터 같이 게임했던 태현이 뿐이었다. 그 외에는 내가 카르미스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것도, 현재 판월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렇다고 지인들을 사칭한 사기라고 보기에도 힘들었다. 판월에서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아이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락! 누구야?”

궁금증 때문이라도 귓속말 요청을 승낙한 나는 이내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려야했다.

[아, 카르미스님이시죠?]

“그런데, 누구……?”

상대방의 목소리가 나보다 어려 보이지는 않았기에 내 말투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신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아이디는 어떻게……?”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이상 존댓말을 하기도, 그렇다고 반말을 하기도 뭐했기에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경매 게시판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를 공개로 설정해 두시고 등록하셨기에…….]

“아차!”

그제야 경매 게시판에 물건을 등록시킬 때, 아이디를 비공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런 실수를…….”

[아, 역시 실수셨군요. 아무튼 방금 전에도 카르미스님 아이디로 몇 개의 경매물품이 등록되었기에 확인해 봤더니 전에 올리셨던 것처럼 상당히 괜찮은 무기더라고요.]

“그, 그런가요?”

이쯤 되면 아무리 상대방에 대한 정체를 모른다 하여도 언제까지 말을 얼버무릴 수가 없었다.

결국 똑같이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나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저한테 귓속말을 주신 거죠?”

[그게… 혹시 방금 등록하신 경매물품을 취소해 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네? 그게 무슨……?”

한 번 등록한 경매물품은 그 가격에 따라 일정액의 수수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취소할 시 그것을 돌려받지 못했다.

물론 물품의 경매가가 비쌀수록 수수료도 오르지만, 그리 부담되는 액수도 아니었고, 구매자 측에서도 일정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그 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수수료 시스템이 적용된 이유는 너무 싼 물품을 등록시키거나, 아니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올리는 유저들 때문이었다.

현재 내가 등록한 무기들의 경매 시작 가격은 10실버.

이미 0.2%의 수수료가 책정되었기에 취소할 경우 2론을 지불해야 했다.

상대방도 그것을 알았는지 보다 자세한 설명이 들려왔다.

[수수료 문제라면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현재 10실버에 올리셨던데… 그냥 저한테 파시면 한 개당 50실버 드리겠습니다.]

“헉! 저, 정말요?”

[물론입니다. 혹시 지금 올리신 것 외에도 가지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그, 그렇긴 한데…….”

[그럼 전부 사겠습니다. 종류에 상관없이 개당 50실버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라 생각되는데요.]

“그게…….”

실제로 내 인벤토리에 있는 모든 무기가 전직무기보다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도끼였지만, 그중에는 인간들로부터 빼앗았을 것이 분명한 한손 검이나 방패도 있었고, 상당히 뛰어난 무기도 몇 개 존재했다.

나 역시 이미 쓸 만한 검으로 바꿔 찬 상태였다.

‘일단 괜찮은 무기 몇 개는 비공개로 올리고, 오래된 도끼와 그 비슷한 것들만 팔아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바로 경매된 물품들을 취소시켰다.

“좋습니다. 전 지금 초보마을 경매 게시판 앞인데, 오실 수 있나요?”

[하하. 저도 경매 게시판 앞입니다. 혹시 근처에 손을 든 유저가 보이시나요?]

생각해 보니 상대방도 경매물품을 보고 귓속말을 했으니, 근처에 있는 것이 당연했다.

“아, 보이네요.”

역시 처음 예상대로 신카이라 소개한 자는 30대 초반의 양손무기를 사용하는 유저였다.

[그게 저입니다. 거래를 걸어주시겠어요?]

“네. 거래 신청.”

 

[상대방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카이’님이 거래를 승낙하였습니다. 거래하실 물건을 올리신 후 확인을 눌러주세요.]

 

신카이와 나 사이에 생긴 반투명한 창에 가지고 있는 무기들 중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올리기 시작했다.

“헉! 생각보다 많으시네요.”

“그, 그런가요?”

내가 봐도 확실히 많긴 많았다.

유난히 공격력이 좋은 무기를 제외하고도 전직무기보다 좋은 게 스물세 자루였으니, 상대방도 충분히 놀랄 만했던 것이다.

“11골드 50실버. 맞으시죠?”

10골드가 넘어가는 가격에 자연스레 내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 네.”

“확인 부탁합니다.”

내 웃음을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건지 상대방은 여전히 침착한 어조였다.

“네, 확인했어요.”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11골드 50실버가 인벤토리에 추가되었습니다.]

 

씨익!

거래를 마친 나는 그대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경매 게시판을 통해 팔기 귀찮았는데, 예상 외로 비싼 가격에 처분했으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신카이 역시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무기를 구해서인지 고마움의 인사를 하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생각 있으시면 길드에 가입하지 않으시겠어요?”

“네? 길드요?”

갑작스런 길드 얘기에 의아함이 든 나는 이어지는 설명에 왜 그렇게 많은 무기를 구매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제가 ‘로저스’라는 길드의 마스터를 맡고 있거든요. 이번에 신입 길드원들에게 좋은 무기라도 마련해 주려고 경매 게시판을 찾아온 건데, 운 좋게 카르미스님을 만나서…….”

“아, 그렇군요.”

아무리 가족 같은 길드라 할지라도, 마스터가 친하지도 않은 신입 길드원들을 위해 돈을 지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예전부터 태현이와 함께 길드를 만들었었고, 사람들을 받으며 여러모로 도와주곤 했지만, 금전적인 도움은 별로 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 내 눈길이 부담되어서일까? 신카이의 입에서는 묻지도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하하… 사실 저번에 길드원들과 같이 던전에 들어갔는데, 레어급 방어구가 나와서요. 길드원들의 강압에 할 수 없이 제가 가지긴 했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에…….”

그런 사정이라면 충분히 이해되었다.

혼자 사냥하거나 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길드원들과 같이 사냥해서 얻은 거라면 나 또한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길드원들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를 가입시키려고…….”

신카이와 나는 그저 거래 한 번 한 사이일 뿐이었다.

내 성격도 모를 텐데, 친목 길드로 예상되는 곳에 넣으려 하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사실 저희 길드가 규모는 큰 편이지만 제련사 쪽 직업이 없어서요.”

“엥?”

결국 날 무기나 방어구를 만드는 제련사로 봤다는 말이었다.

하긴, 갑자기 전직무기보다 좋은 무기를 대량으로 판매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죄송하지만 전 검사인데요.”

“헉! 저, 정말인가요?”

내 말이 그렇게 놀랄 정도였나? 떡하니 벌어진 입이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그리고… 저는 길드에 들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이었다.

차라리 내가 창설하고 말지, 능력도 없는 길마 밑에 있는 것은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카이? 친목 길드의 마스터로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자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어디까지나 친목 길드일 뿐이었다.

내가 이끄는 길드는 무조건 최강을 목표로 했다.

난 상당히 까칠한 편이었다. 누구든지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내 성격상 손윗사람이라도 가만있지 못했기에 예전부터 길드를 운영하면 길드원들이 내 눈치를 볼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길드가 유지되냐?

그게 다 태현이 덕분이었다.

태현이 녀석 성격은 나와는 정반대. 즉, 상대가 누구든 간에 쉽게 다가서며 즐거움을 주는 녀석이었다.

내 행동이나 말투에 불만 있는 길원들도 신기하게 태현이 녀석이 나서면 알아서 수긍하였기에 원활한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둘이 길드를 운영하면 길드 마스터로서의 내 위엄도 세울 수 있고, 그로 인해 길드전이나 공성전 시에도 명령체계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 언제나 최강의 자리를 유지했던 것이다.

아무튼, 내 말에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보이던 신카이는 이내 내 직업이 검사라는 것을 떠올렸는지 더 이상 길드가입을 요구해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죠. 그럼 즐판(즐거운 판타지 월드) 하시기 바랍니다.”

“네. 그쪽도…….”

그렇게 신카이와 헤어진 나는 다시 경매 게시판에 다가가 남겨두었던 좋은 무기들을 등록시켰다. 물론 아이디는 비공개로 한 채.

“좋아. 내일 회사 끝나고 확인하면 되겠군.”

모든 물품을 등록시킨 나는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남은 1레벨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내일 회사에 출근하려면 적어도 1시 전에는 자야 했는데, 이미 밤 12시를 지난 상태였기에 내 발걸음은 서둘러질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 도착한 나는 대부분 수면모드로 상점을 켜둔 모습에 주변을 돌아다니며 원하는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십여 분.

가격을 비교해 가며 시장을 두 바퀴 둘러본 나는 이내 가장 싸게 파는 상점으로 향하였다.

“호랑이 가죽이 장당 20론이라…….”

이계에서 10골드에 팔 생각을 하면 정말 거저먹는 가격이었지만, 판월에서는 이것도 비싼 편이었다.

장당 10론에 파는 유저도 있었지만 아쉽게 매진된 상태라 살 수 없었고, 결국 할 수 없이 그 두 배나 되는 이곳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다음에 살까? 어차피 한 달 후에 주기로 했는데…….”

잠깐 고민하던 나는 이내 1실버를 주고 호랑이 가죽 다섯 장을 구매하였다.

내가 돈에 관해 짠돌이도 아니었고, 다음에 다시 사러올 정도로 귀찮음을 감수할 성격도 아니었기에 그냥 질러버린 것이다.

“풉! 레이지 할 때가 생각나네.”

가상현실게임이 나오기 전, 태현이와 함께 레이지라는 온라인 게임을 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온라인 게임이 그렇듯이 무기나 방어구를 강화하는 것이 가능했고, 일정 이상으로 강화할 경우 해당 장비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게임들 중에서도 레이지라는 게임은 강화에 특화된 게임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무기가 거기서 거기였고, 레벨 업에 따른 능력치도 HP, MP와 명중, 회피 상승효과밖에 없었기에 오직 강화만이 강해지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레이지에서의 강화는 무기는 6까지가, 방어구는 4까지가 깨지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적정수치였다. 그 이상 강화하면 거의 90%라는 극악의 확률로 깨지는 것이다.

때문에 8짜리 무기만 등장해도 모든 유저들이 부러워했고, 현으로 몇 백에 거래되어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8짜리 무기를 가진 유저가 없는 서버가 과반수였으니 말 다한 것이다.

그런 내게 생긴 세 장의 강화 주문서.

그때 당시만 해도 6까지가 안전하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태현이가 마련해 준 6짜리 무기에 세 장을 전부 질렀던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한 짓이지만, 그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9짜리 무기가 탄생하였다.

이에 처음으로 지존이라는 타이틀을 가지며 온갖 공성전에 용병으로 초청되어 수많은 유저들에게 두려움을 주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태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강화 주문서를 질러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레이지라는 게임을 접어야 했다.

“쿡쿡!”

옛 생각에 다시 웃음을 흘린 나는 어느새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로그아웃하였다.

원래대로라면 다시 이계로 가 지브에게 늑대 가죽을 팔아야 했다. 가져다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망으로 인한 24시간 페널티도 있었고, 이미 새벽 1시를 넘어가는 시각이라 찾아가 깨울 수도 없었다.

그저 회사에 지각하지 않게 곤히 자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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