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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88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21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88화

088 흉계(凶計)(3)

 

 

 

 

 

“혈랑환검 공야무혼. 도제를 꺽은 마도의 후기지수. 이곳에서 만나다니 의외군.”

 

난데없는 목소리에 객잔 안은 술렁였고 뒤로 물러나던 비응문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혈랑환검의 이름이 이미 중원에 온통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한상의 옆에서 무혼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사내들은 얼굴이 굳어지며 뒤로 한 걸음을 물렀고 무혼이나 고명우는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소한상의 얼굴은 더 이상 구겨질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구겨지고 있었다. 그는 무혼의 정체를 밝힌 자의 시선을 따라 무혼의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

 

2층에서 내려온 그 사내는 무혼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사천 땅은 정파의 긍지가 서린 땅이라 알고 있소. 그런데 칠제의 한 사람인 도제의 생명을 앗은 자가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니 용납할 수 없지 않소? 이 금천을 지키고 있는 비응문은 저자를 그냥 놔둘 생각이오?”

 

소한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자가 누군지는 모르나 저자의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몰랐으면 모르되 이미 귀로 들은 이상 그와 그의 사제들이 모두 죽을 지경이라 해도 무혼을 곱게 보내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혈랑환검 혼자도 아니고…….’

 

이미 상대들이 그들보다 좀 더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다. 특히 비조검의 경우 화룡마편의 화룡편에 혼쭐이 난 뒤라 앞으로 나서기에 망설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뒤로 물러날 기회를 저자가 박살내어버린 것이다.

 

‘제길,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보고 아예 죽으라는 소리를 하는군.’

 

비조검은 다시 눈앞에 있는 자들을 훑어보았다. 괜히 술기운에 한 마디 내뱉은 말이 이렇게 큰 사건으로 번지게 될 것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제 그의 문파의 자존심을 걸고 덤벼들어야 했다.

 

‘차라리 저자를 죽이고 그냥 무마를 시킬 수 없을까?’

 

하지만 비응문의 제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 전 비응문을 도와준 정파의 무사들도 있었다.

 

게다가 객잔의 밖에서 몰래 훔쳐보는 자들도 꽤나 보이는 상황이라 소한상의 머리로는 발을 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비응문이오. 나도 비응문에 한 팔을 거들겠소이다.”

 

그자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에 찬 검을 뽑았고 그 모습을 본 소한상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저 개자식, 지가 혈랑환검과 겨루고 싶다고 우리를 모두 죽음에 몰아넣다니 내가 오늘 살아남는다면 필히 네놈의 목을 따고 말 것이다.’

 

그러한 소한상의 속마음을 모르는 사내는 검으로 무혼을 겨누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네놈이 아무리 대단한 사술을 지녔다고 하나 사술은 사술. 나의 검을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서는 뒤를 보면서 외쳤다.

 

“백도의 협사들이여, 백도의 정기가 서려 있는 사천의 긍지가 어떤 것인지 보여줍시다.”

 

그의 말에 모두들 검을 뽑으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소문이 무성했던 무혼의 모습에 별다른 위협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무혼의 수수해 보이는 복장과 평범한 얼굴에서 고수다운 면모가 그다지 풍겨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도제의 위협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그들로서는 도제를 꺾었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지 못했으니 망설임 없이 무기를 빼들 수 있었다.

 

슈캉!

 

그의 검이 무혼을 향해 쏜살같이 질주하는 것과 동시에 비응문의 제자들이 일제히 무혼과 흑도의 사내들에게 쇄도해 들어왔다.

 

비록 처음의 대결에서 비응문의 제자들이 상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아직도 흑도의 무사들보다 두 배는 더 많았다.

 

그들의 사형제가 기습을 받아 낭패를 당한 것이라 생각하는 비응문의 제자도 많았기에 복수의 기회가 생기자 기세등등하게 덤벼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응문 제자들의 오판이었다.

 

흑도의 무사들은 사천에서 그들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었었다.

 

하지만 무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숨길 것이 없어지자 고명우와 공극소를 필두로 거침없이 살수를 펼쳐 그들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한 두 무리의 싸움은 순식간에 결말이 보이고 있었다.

 

특히 공극소와 고명우의 활약은 대단했다. 두 배에 가까운 인원들의 싸움에서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적과 싸우면서도 주위의 흑도의 무사들을 도와주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었다.

 

“으아아악.”

 

“커헉!”

 

“끄아아아.”

 

비조검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비록 예상을 하였다고 하지만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실력의 차이는 더 컸다.

 

조금 전의 격렬한 싸움이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화룡마편을 봉쇄하고자 그와 옆의 사제가 합공을 시도하였으나 화룡마편은 두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며 다른 무사를 공격하기도 했다.

 

비조검은 그가 아는 모든 초식을 펼치며 화룡마편을 저지하고자 했지만 모든 힘을 개방한 공극소의 손에서 펼쳐지는 화룡마편은 오히려 두 사람이 움직이기 힘들게 압박하여 왔다.

 

비조검과 그의 사제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 사이에 다른 정파 무사의 목을 휘감아 공중으로 내동댕이친 공극소는 두 사람을 보며 피식거렸다.

 

“그따위 실력으로 검을 들고 날뛰다니 그 용기가 가상하구나.”

 

소한상은 얼굴을 뻘겋게 달아올랐으나 화룡마편을 막아내는데 전력을 다하느라 대꾸를 할 여유가 없었다.

 

퍽!

 

크아아악.

 

쿠당.

 

한순간에 화룡마편을 막아내지 못하고 탁자를 부수며 구석으로 튕겨 나간 소한상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던 그는 얼이 빠져버렸다.

 

조금 전에는 흑도의 무사들이 실력을 감추고 싸운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흑도의 무사들은 무시무시한 실력을 과시하며 그들 앞에 있는 자들을 도륙해 가고 있었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자들이 비응문의 제자들과 정파의 무사들뿐이었다.

 

마치 시장판에서 어른들에게 덤벼든 꼬마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듯했던 것이다.

 

‘제, 제길 이건 삼 할의 실력을 감춘 것도 아니잖아? 보인 실력이 삼 할이었던 거냐?’

 

이리저리 둘러보니 흑도의 무사 중 고수 아닌 자가 없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마기로 비응문의 제자를 두 명 이상 상대하면서 전혀 흐트러지는 기색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바로 비응문의 제자들이었다. 급소를 맞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 사제들을 보면서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이, 이거, 청성파 같은 대문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혈랑환검이 이끌고 오던 고수들과 싸우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금천의 패자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천의 한 귀퉁이에서나 통하는 말일 뿐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이 비응문을 공격한다면 그날로 비응문은 불에 타다만 벽돌을 몇 개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제길 이런 경우가…….”

 

그때 비조검은 자신의 눈앞에 한줄기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혈랑환검의 정체를 밝히고 겁도 없이 그에게 덤벼든 얄미운 자가 무혼의 검에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자 그것을 신호로 흑도의 무사들이 거센 공격을 가한 후 썰물처럼 객잔을 빠져나갔다.

 

“살았다.”

 

비조검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늘이 그의 제삿날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이 난 듯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났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걸음을 걸으며 무혼의 정체를 밝힌 자의 앞에 섰다. 그리고 침을 퉤하고 뱉은 후 참아온 욕을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개자식아! 지옥에 가고 싶으면 혼자 가란 말이다.”

 

욕설을 내뱉을수록 힘이 나는지 나중에는 발로 걷어차기까지 한다.

 

그리고 주위에 무사한 사제들을 보았다.

 

“모두들 부상자들을 도와줘라.”

 

“그럼 도망친 저자들의 추격은 어떻게 합니까?”

 

그 말은 들은 소한상은 눈을 꿈틀거리더니 말을 꺼낸 사제를 노려보았다.

 

“너 미쳤냐?”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객잔 앞쪽으로 내려서는 자들이 있었다. 노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무복을 입은 비응문의 무사들이었다.

 

“비응문의 제자 소한상,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제야 무혼의 일행이 왜 물러났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그 와중에 비응문의 응원군이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괴물 같은 놈들.’

 

비조검이 장로를 보고 포권을 하자 비응문의 장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객잔 안을 살펴보았다.

 

“그놈들은 어디에 있는가?”

 

“도망…쳤습니다.”

 

“왜 쫓지 않았느냐?”

 

장로가 꾸짖듯이 묻자 비조검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불평을 내뱉었다.

 

‘젠장 그자들이 물러나 준 것을 감사해야 할 판인데 그들을 쫓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하지만 문파의 장로에게 감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저 주위를 가리키며 침울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본문의 제자들이 너무 많이 상했기에 그들을 구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말에 장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침음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혈랑환검을 잡는다면 비응문의 명성이 중원에 퍼졌겠지만, 문파의 명성도 제자들이 많아야 유지가 되는 법이다.

 

주위를 보니 중상자들이 많았다. 혈랑환검을 잡기 위해서 제자들을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즉시 쓰러진 제자들을 도와주고 자네는 무림맹에 전서를 보내라 전해라.”

 

장로는 그를 따라온 제자들에게 명을 내린 후 쓰러진 제자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래, 무슨 일로 그들과 부딪쳤는가?”

 

비조검은 망설이지 않고 무혼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여 바닥에 쓰러진 자를 가리켰다.

 

“이자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비조검은 상황을 약간 바꾸어 설명을 하였다. 물론 그가 처음에 시빗거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빼놓았고 그로 인해 처음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숨겼다.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장로는 비조검이 가리킨 자를 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비응문에서 알지 못했던 혈랑환검의 정체를 아는 자가 객잔에 있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혈랑환검이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체를 밝힌 행동으로 볼 때 비응문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정도의 피해로 끝났다는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나?’

 

모르긴 해도 만일 혈랑환검이 이곳에서 죽었고 그것이 비응문과 연관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면 마교의 칼날이 비응문을 향했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장로는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제자를 보았다.

 

“너는 즉시 본문으로 돌아가 문주께 들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아뢰고 추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노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제자는 비응문으로 달려갔고 그 모습을 보던 장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로만 얘기해도 문주께서 그 의미를 알아차리시겠지. 이 일은 우리 비응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다.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면 체하는 법. 잘못하면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한 사내가 걸음을 옮겨 숨어 있던 자리를 떠났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말을 타고 달리던 사내의 눈앞에서 다가오는 세 사람과 만났다.

 

“사형!”

 

“현 사제냐? 그래, 혈랑환검은 지금 어디 있느냐?”

 

공동파의 추청령은 눈앞의 사내를 반기며 입을 열었으나 곧 그의 설명을 듣고서 얼굴을 찡그렸다.

 

“멍청한 놈에게 부탁을 했군. 아무리 늙었어도 도를 쥐면 중원천하에서 손에 꼽힌다는 도제를 쓰러뜨린 혈랑환검이다. 그자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하다니 자신에 대한 자만이 하늘을 찔렀군. 할 수 없다. 스스로 죽으러 들어간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그자에 대해서는 잊어버려라.”

 

멋대로 사고를 친 자에게 욕설을 내뱉은 후 제갈두휘에게 고개를 돌렸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나?”

 

“아닙니다. 오히려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그들을 계곡으로 몰아야 하니 이번 일로 더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추청령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옆에 있는 사제를 보았다.

 

“그래 혈랑환검은 어디로 갔나?”

 

“그게… 금천에서는 이미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합니다. 아무래도 마을을 빠져나간 듯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감시의 눈을 피해 달아날 수 있단 말이냐? 금천은 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마을일 텐데?”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에 모두가 함께 사라져서…….”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추격을 뿌리치고 빠져나갔다는 것은 금천의 하오문이 협조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감쪽같이 사라질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럼 어찌해야 하지?”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하오문이 이용하는 통로에 대해서는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금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3군데 밖에 없습니다. 그곳을 조사하면 곧 추적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추청령과 문종후는 제갈두휘가 알려주는 곳으로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던 제갈두휘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끝내 혈랑성을 도우려 하는 모양이지만 난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제갈두휘의 머릿속에는 무혼을 궁지에 몰아넣을 방법이 다시 하나씩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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