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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87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12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87화

087 흉계(凶計)(2)

 

 

 

 

 

밤새도록 술을 같이 마신 남궁장천과 헤어지고 마을을 벗어난 지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무혼은 금천의 끝에 도착을 했다.

 

사천의 북부는 빽빽한 침엽수림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기에 매서운 바람과 차이가 심한 기온에도 굳건히 자라는 것이다.

 

또한, 높고 수려한 산과 벌판을 만끽할 수 있는 낮은 언덕들이 사천의 매력을 한층 더 하고 있었다.

 

‘아이네스 소저가 이 모습을 봤다면 몹시 좋아했을 터인데……. 그러고 보니 아이네스 소저를 만나지 못한 것도 벌써 오 일이 지났나?’

 

아이네스의 영향 탓인지 무혼도 풍경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긴 듯했다.

 

생각해 보니 아이네스의 영향을 받은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목욕, 옷매무새 그리고 말하는 법, 그 외에도 많이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무혼은 쓴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지난 며칠간 특별한 일이 없이 중원 유람을 다닌 기분이다.

 

“예 소저는 분명 내가 다니다 보면 가야 할 길을 알게 될 것이라 하였으니 걷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의 발은 어느덧 금천에 들어서고 있었다. 크지는 않지만 알찬 마을이라 했다.

 

간혹 독특한 건물들도 만날 수 있다고 들었던 무혼은 주위의 건물들을 모두 훑어보며 길을 걷다 자신을 찾는 춘전을 발견하였다.

 

약 한 달 전 춘전을 통해 암림의 음암단창을 처치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던 무혼이었기에 그려진 춘전이 낯설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드디어 예 소저가 말한 새로운 운명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약속 장소를 향해 길을 걷던 무혼은 좋은 냄새를 풍기는 작은 찬관(餐館 : 음식점)을 보았다.

 

주방이 훤히 보이고 그 주방을 둘러싼 탁자에 앉아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그곳에서 좋은 냄새가 풍겨져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숙박을 같이 할 수 있는 객잔과 다르게 오직 음식만을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찬관에는 무혼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대단한 움직임이다. 어떻게 저런 동작이 나오는 것이지?’

 

치익!

 

지글지글.

 

탁탁탁.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조리기구들이 간혹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찬관의 주방에 있는 노인의 손놀림을 지켜보던 무혼은 그의 손에 조리기구가 아닌 단검이 쥐여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긴 해도 어지간한 무사들은 기습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목숨이 사라질 듯했다.

 

‘만류귀종(萬流歸宗)…….’

 

어떠한 길을 걷더라도 최후에는 하나의 길에서 만난다는 그 가르침이 노인의 손동작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저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 하는 요리는 그 맛에도 그만한 깊이가 있을 것이다.’

 

무혼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노인의 찬관을 향했다. 주방을 둘러싼 탁자에는 좌석이 몇 개는 없었지만, 다행히 끝에 두 개의 좌석이 비어 있었다.

 

“어서 옵쇼.”

 

“이곳에서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담담면(擔擔面)을 드셔보십쇼. 이 늙은이가 가장 자랑하는 음식이라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혼의 시원스러운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노인은 흥얼거리며 식칼을 들었다.

 

노인의 손동작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기를 다듬는다 싶었는데 어느새 잘게 자른 고기를 초작(炒勺 - 챠오샤오: 볶음용 조리기구)에 담아 볶기 시작했다.

 

다른 손으로 몇 개의 양념통을 낚아채어 고기에 뿌려대자 짭짤한 냄새와 매콤한 냄새가 어우러지며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양념을 다 뿌린 후에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흔들며 고기가 타지 않도록 흔든다.

 

그사이 다른 손으로 한쪽에 곱게 말려있는 면을 짚어 작은 그릇에 넣더니 아주 빠른 속도로 솥에 있는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건져냈다.

 

노란색의 면은 살짝 물기만 어렸을 뿐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노인은 마지막으로 하나의 그릇에 면을 두고 그 위에 고기와 양념으로 어우러진 볶음을 얹었다.

 

무혼은 손뼉이라도 치고 싶었다. 한 명의 고수가 펼치는 무예를 본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자랑할 만큼 맛깔스럽게 만들어진 담담면은 맛도 무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음식을 만난 무혼이 천천히 음미하며 그릇을 비워갈 무렵 찬관을 향해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망설임도 없이 무혼의 옆에 빈자리에 앉더니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이 친구, 무슨 일이 생겼나?”

 

“어이구 어르신 말도 마십시오. 오늘 대장간 장 씨가 나에게 대접을 한다고 천애객잔(天涯客棧)에 가지 않았겠습니까요?”

 

그 말은 들은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사내를 질책했다.

 

“뭐라고? 천애객잔? 아니 이놈아! 대접을 받으려면 당연히 이곳으로 와야지 그곳에는 왜 가?”

 

“어르신, 이곳은 거의 매일 와서 먹는데 여기서 무슨 대접입니까요?”

 

“이놈이 그래도?”

 

사내는 손사래를 치더니 다시 물을 한잔 마셨다.

 

“하여튼 말입니다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보는 천층우육병(千層牛肉餠)이라는 요리에 침을 흘리며 한 젓가락을 뜨는데 글쎄 칼이 날아다니지 뭡니까요?”

 

“주방장이 칼을 놓쳤다냐? 웬 칼이여?”

 

“그게 아니라 갑자기 비응문(飛鷹門)의 무사들이 칼을 뽑으며 낯선 자들과 칼부림을 하는데 칼에서 뿜어내는 빛이 객잔을 가득 메웠습니다요.”

 

“훌훌. 대단한 고수들이 있었나 보구나.”

 

“지금 목이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더라고요.”

 

사내는 아직도 목이 붙어 있는 것이 의심스러운지 연신 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금천 땅에서 비응문과 맞설만한 문파가 있었나?”

 

“아닙니다요. 비응문과 싸우는 무사들의 몸에서 검고 붉은 기운이 언뜻 보이는 것으로 보아 흑도의 무사들이 틀림없었습니다요.”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노인의 얼굴도 굳어지며 중얼거린다.

 

“허참, 어찌 이곳에 흑도의 무사들이 나타난 것일까?”

 

흑도의 사내들이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신경을 쓰기 시작한 무혼은 그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였다.

 

“정사대전이라는 것이 곧 일어나리라는 것이 소문만은 아닌 모양입니다요.”

 

“쯧쯧. 그럼 흑도의 무사들이 행패를 부린 건가?”

 

“글쎄요. 솔직히 몸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느낌만 아니라면 그들이 흑도의 무사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준수한 청년들인데 그럴 것 같진 않았습니다요.”

 

“하긴, 흑도의 무사들이 그렇게 나쁜 자들은 아니었네. 아니, 오히려 흑도의 무사들 중에 좋은 사람들도 참 많았지.”

 

“에구 어르신, 혹여 무림맹의 무사들에게 그런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십쇼.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초를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요.”

 

그러자 노인은 사내를 보며 푸근하게 웃어주었다.

 

“자네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도록 하지.”

 

“천애객잔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무혼은 잠시 고민을 했다. 춘전의 옆에 분명 천애객잔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이 그곳에서 기다리다 곤란을 겪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이구 형씨도 척 보아하니 무림인인 모양인데 섣불리 다가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무림인들도 그들의 기세에 눌려 다 도망쳤을 정도이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검을 쥔 자로서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도무지 무림인들의 생각은 알 수가 없다니까요?”

 

사내는 포기를 했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객잔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설명을 자세히 들은 무혼이 은전을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음식점의 노인이 무혼을 살펴보았다.

 

“몸조심하시오. 무림은 도산검림의 세상이라오.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있으니…….”

 

노인을 보던 무혼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노인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했다.

 

그의 눈빛에서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이 느껴졌기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명심하겠습니다.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노인도 같이 웃어주었다. 보통 무림인들은 고집이 세고 다른 자들로부터 충고를 받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 강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무림인을 만나기 어려운 탓이었다.

 

“잘 가시구려.”

 

노인은 멀어져가는 무혼을 계속 지켜보면서 중얼거렸다.

 

“좋은 청년이군.”

 

그 말을 사내는 눈에 이채를 띄우고 무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르신의 마음에 들었다니 놀라운뎁쇼?”

 

“비영(飛影).”

 

노인이 부르자 사내의 얼굴이 굳어지며 눈빛에 정광이 서리기 시작했다.

 

“예!”

 

노인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찬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던 손님들이 모두 비영이라 불린 사내와 같이 자세를 똑바로 하고 있었다.

 

“땅으로 내려온 혈랑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겠지?”

 

“혈랑환검……. 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노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제를 베었을 정도라면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안하무인이고 자만하는 성격이라는 등 좋지 못한 소문들도 많은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조금 전의 젊은이가 안하무인으로 보였나?”

 

“예? 아닙니다. 그 젊은이는 상당히 예의 바르고…….”

 

이상한 생각이 든 비영은 말끝을 흐리며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그 젊은이가……?”

 

“쯧쯧,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면 어찌하려고 그러는가?”

 

비영은 무혼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영!”

 

“옙, 문주님!”

 

“혈랑환검을 따라가 그가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라. 필요하다면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해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비영은 그 말을 끝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모두들 들어라. 우리가 숨을 죽인 지 어언 1갑자의 시간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제 천마신교의 중원 진출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사내들의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울분, 기쁨 등의 복잡한 감정의 빛이 그들의 눈에 떠돌고 있다.

 

“그때가 된다면 우리 하오문(下午門)은 천마신교의 앞을 막을 개방을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잠시 말을 끊었던 노인이 다시 눈을 뜨자 눈에서 붉은 정광이 폭사되며 옷이 일렁였다.

 

“중손세가가 이미 대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무림맹에 가담한 지부들을 빨리 손을 봐야 한다. 대가리만 썩은 곳은 대가리를 잘라낸 후 지하로 잠적시키고 완전히 썩은 지부는 축출하라.”

 

“예, 문주님!”

 

찬관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하고서 비영처럼 사라졌다.

 

“흑백공멸이 아닌 흑백공존의 길이 있었다니…….”

 

하오문주 모장독(茅長毒)은 주머니에서 작은 종잇조각을 꺼내어 다시 훑어보았다.

 

“더 이상 꺼릴 것은 없다. 이차 정사대전이 끝난 후에는 그 누구도 하오문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는 지난 세월의 회한이 묻어나고 있었다.

 

 

 

 

 

비영이 알려준 길을 달린 무혼은 천애객잔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천애객잔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멀찍이 떨어진 곳에는 삼삼오오 모여 객잔 안을 살펴보고 있는 무림인들이 꽤나 보였다.

 

보아하니 객잔 안의 싸움에는 뛰어들 실력과 용기가 없는 무인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신경을 끈 무혼이 담담히 객잔으로 들어서니 객잔 안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만 보였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팽팽한 긴장감과 온몸을 찌르는 듯한 투기가 객잔을 가득 메웠고 그들은 검을 뽑아 든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본 것만으로도 비응문과 흑도의 사내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노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주축이 된 무리와 통일되지 않은 옷을 입은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었다.

 

‘고형님? 그리고 저 사람은……?’

 

흑도의 무리라 생각되는 곳에 마천태풍도 고명우와 화룡마편 공극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외당 무술대회 이후로 처음 보는 화룡편이 붉은 기운을 넘실거리며 상대를 노리고 있었으며 화룡마편의 앞에 선 자들은 화룡편을 질린 눈으로 흘깃 보고 있다.

 

‘한차례의 싸움을 끝내고 대치 중인가?’

 

양측은 팽배한 분위기였으나 비응문의 무리 뒤쪽에는 심하게 부상을 입은 자들이 다른 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물러서고 있었다. 아마도 첫 접전에서 당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비응문의 무사들이 약한 자들로 보이진 않았다. 대문파가 여럿이 있는 사천에서 한 마을을 제패하고 있는 문파가 약할 리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 정광이 서려 있었고 몸짓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움직임은 높은 강도의 수련을 긴 시간 동안 쌓아온 무림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고형님!”

 

무혼이 한 걸음을 나서며 고명우를 부르자 그곳에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무혼을 쳐다보았다.

 

고명우는 무혼을 발견하자 반갑다는 듯이 환한 얼굴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 아우, 반갑네.”

 

다른 사람들이 눈을 의식한 듯 공야 아우라 하지 못하고 공아우라고 부르자 이를 눈치챈 무혼도 다른 말 없이 고명우에게 다가서며 비응문의 무사들을 경계했다.

 

“당신들은 누구요?”

 

비응문의 제자 중 가장 앞에 선 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무혼을 노려보았다.

 

“이분은 나의 의형이시오. 그러는 소협은 누구시오?”

 

“나는 비응문의 비조검(飛鳥劍) 소한상(邵寒霜)이라 불리는 자요. 무슨 오해로 우리를 습격했는지 모르겠으나 피차 피를 흘렸으니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소?”

 

무혼은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찬관의 사내도 비응문과 싸우는 무리가 흑도라는 것을 알아챘는데 비응문의 고수인 그가 못 알아봤을 리 없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의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

 

무혼의 귀에 고명우의 전음이 흘러들어왔다.

 

[조금 전의 싸움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자들은 비응문과 그에 동조한 정파의 무사들뿐이네. 지금 저자는 우리가 흑도의 무사임을 모르는 척해서 무마하고 싶은 것이네.]

 

그 말을 들은 무혼은 상황을 쉽게 풀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춘전을 날릴 정도라면 무엇인가 급한 일이 있을 텐데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살짝 뒤를 훑어보니 흑도의 무사 중 크게 다친 자는 없었다.

 

“이만 서로 사과를 하고 끝내는 것이 어떻겠소?”

 

소한상은 재차 물음을 던졌다. 이 마을의 패자로서 항복을 선언하고 자리를 피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만들어야 물러설 수 있었다.

 

고명우는 무혼과 눈짓을 한 후 앞으로 나서서 포권을 하였다.

 

“저희도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서로의 오해를 덮고 이만 물러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천마태풍도의 말을 들은 소한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을 탓했다.

 

낮술에 취해 주위에 앉아 있던 스무 명가량 되는 무사들이 흑도의 정예들인지 모르고 그들이 흥분할 만한 말을 큰 소리로 마구 떠들었으니 실수라면 큰 실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피해가 너무 크다.’

 

겨우 일각 남짓한 시간 동안 그의 사제가 무려 열 명이나 중상을 업고 간신히 목숨만 구할 수 있었다.

 

급하게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같이 온 사제들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대체 저들은 누구지? 혹시 마교의 작전대라도 되나? 하지만 마교의 작전대가 사천에 나타날 일은 없을 텐데?’

 

소한상도 마교의 작전대가 멸문을 시키고 다닌다는 것을 들었으나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무림맹에 붙은 흑도의 문파들이라 알고 있다.

 

“우리 역시 그대들을 상하게 하였으니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좋은 사이로 만났으면 합니다.”

 

사실 사과 같지는 않았지만, 이것으로 명분은 생겼으니 두 무리는 서서히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마 2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자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그대로 헤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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