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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80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1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80화

080 아이네스의 검(1)

 

 

 

 

 

중원이 혈랑성과 천기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미라크네의 왕궁에서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어서 와, 파레시아!”

 

아이네스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거의 5년 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며 반가워했다.

 

“아이네스, 너무 반가워!”

 

두 여인은 서로를 포옹하며 우정을 확인한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접객실로 향했다.

 

향긋한 차를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파레시아가 아이네스의 옆에 앉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아이네스 무슨 생각 속에 잠겨 있니?”

 

“응?”

 

아이네스가 그녀를 보니 파레시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눈을 살피며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파레시아 공주는 주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네스 공주와 5년 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사옵니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에 라에뮤 3세와 사이루스 대공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잠시 후 9별궁의 정원에 자리를 잡은 파레시아는 앨리가 차려준 탁자 위에 있는 찻잔을 들어 코끝으로 가져가 향을 음미한 후 눈을 들어 아이네스를 보았다.

 

“그런데 아이네스,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거야? 속일 생각은 하지 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피할 수 없을걸?”

 

그녀의 말에 아이네스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 무혼의 곁으로 다가가지만 홀로 중원을 떠돌고 있는 그에 대한 걱정이 언제나 아이네스의 마음을 잡고 있었다.

 

그러한 아이네스의 마음을 이제껏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일에 민감한 파레시아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가끔…….”

 

“응?”

 

“아주 가끔 연락이 되는 사람이 있어.”

 

“남자?”

 

파레시아는 아이네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환해지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도 그녀의 나라에까지 퍼진 아이네스의 소문을 듣고 있었기에 먼저 결혼한 것이 미안했었다.

 

“어떤 사람이니?”

 

“좋은 사람.”

 

파레시아는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보라는 듯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아이네스에게 눈길을 모았다.

 

“내가 위험할 때 언제라도 달려와 힘이 되어 준 그가 지금 홀로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그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어 위험한데도 나는 큰 힘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어.”

 

파레시아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녀의 친구는 벌써 6클래스에 이른 고위 마법사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 힘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닐 텐데?”

 

“그는 나보다 훨씬 강해. 능력도 강하고 정신도 강해. 그를 보면서 나도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지.”

 

파레시아는 아이네스가 안타까웠다. 아이네스가 말하는 그에게 도움을 주고 그녀의 근심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감각이 그녀가 아이네스와 그를 도와줄 수 없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연락이 되니?”

 

“응.”

 

“너와 하고 있는 연락이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을 거야.”

 

“그럴까?”

 

아이네스의 얼굴이 조금 펴지는 듯하자 파레시아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분명히 그럴 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을 믿어봐!”

 

“응.”

 

아주 조금이었지만 무혼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 아이네스였다.

 

 

 

 

 

다음 날, 어젯밤의 무도회에 관해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여인들이 있다.

 

미라크네 왕국의 왕비와 3명의 공주가 아폴라이아 왕국에서 온 숙녀들과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우리 왕궁의 내원을 감상하시겠어요? 왕궁의 내원은 겨울이 되었을 때 더욱 아름다워진답니다.”

 

왕비의 제안에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이미 결혼을 했거나 혼기가 가득 차 10대 중반의 소녀들 같은 쾌활함은 없었지만 한창 피어나는 꽃들처럼 화사한 움직임이 있었다.

 

왕비의 자랑처럼 내원은 아름다웠다. 같은 흰색이었으나 서로 다른 빛깔을 뿜어내고 있는 겨울꽃들이 여인들의 눈을 화려하게 채워주었다.

 

호위하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내원의 요처에서 경계를 하고 있을 때 여인들은 내원의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미라크네의 정원들은 모두 겨울에 가장 아름답다고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어요.”

 

파레시아가 주위를 돌아보며 감탄을 하자 왕비는 뿌듯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눈의 신이신 스노샤니의 축복이 미라크네 왕국에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여인들의 웃음이 가득한 내원을 노려보는 눈이 있었다. 엘세타는 아이네스를 노려보며 기나긴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 잡힌 지팡이는 우울한 빛과 밝은 빛을 동시에 발하며 주인이 마법을 완성하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마침내 주문이 마치고 지팡이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자 내원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마나의 막이 내원 전체를 감쌌다.

 

 

 

 

 

챙그랑!

 

“꺄아아아아아!”

 

올해가 지나면 스무 살이 되는 아이네스의 이복동생인 이스헤나 공주가 얼굴이 창백해지며 찻잔을 떨어뜨리더니 곧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보고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린 다른 여인들도 얼굴이 굳어지며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곳에는 검은 유령과 같은 존재들이 내원의 끝에서 일어서며 찬란한 빛을 발하던 꽃들을 짓밟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도 끈적거리는 듯하고 탁한 검은색의 점액질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들이 지나친 내원은 꽃과 땅이 까맣게 죽어 있었다.

 

“이쪽으로 피하십시오.”

 

내원의 여인들을 지키던 경비대장이 황급히 달려와 그녀들을 안내하고자 했으나 내전궁으로 이어진 복도의 벽을 녹이며 나타나는 괴물들의 모습에 이만 꽉 깨물어야 했다.

 

이미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길이 막혔음을 알자 병사들은 성벽의 한쪽에 모인 왕실의 여인들 앞에 포진하였고 기사들은 앞으로 나서며 손에 쥔 검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미라크네의 자랑스러운 기사들이여! 추악한 괴물들로부터 숙녀분들을 지켜라!”

 

내전궁 경비대장의 명령에 스무 명의 기사들은 일제히 괴물들을 향해 달렸다.

 

몸을 숨긴 채 그것을 보고 있던 엘세타의 눈이 살짝 찌푸렸고 우울한 빛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의 지팡이가 날카로운 선을 만들어 내자 괴물의 눈이 검게 빛나며 빠른 속도로 기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죽어라!”

 

한 미라크네의 경비기사가 괴물의 머리를 노리며 휘두른 검은 괴물의 머리를 호쾌하게 가르고 지나갔으나 팔은 이미 기사의 가슴 부위의 갑옷을 붙잡고 있었다.

 

기사는 괴물을 떨치기 위해 팔을 향해 다시 한번 휘둘렀다. 두 번의 공격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괴물은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는 듯하였으나 서서히 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기사는 괴물의 몸을 다시 조각내고자 다가서다 그의 몸에서 나는 검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으헉!”

 

기사의 갑옷에 달려 있던 괴물의 팔이 신성한 스노샤니의 문장을 지우고 기사의 갑옷을 모두 녹이고 있었다. 재빨리 손으로 쓰다듬었으나 부글거리는 검은 거품은 멈추지 않고 계속 파고들자 그것을 본 경비대장이 외쳤다.

 

“갑옷을 던지고 뒤로 물러나!”

 

그러나 기사는 상관의 명령에 대답할 수 없었다. 어느새 몸으로 파고든 검은 거품이 심장을 죄어오고 있고 눈앞에서 되살아난 괴물은 기사의 목에 손톱을 깊숙이 넣은 후 목을 잡아 뜯었다.

 

‘대체 저것들의 정체가 뭐지?’

 

기사들을 이끌고 뒤로 물러서고 있는 델베라 경비대장은 눈앞의 상황이 믿을 수 없었다. 접전을 벌이자마자 순식간에 대부분의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기사들도 다시 싸우기 힘든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를 포함한 소드익스퍼트 5명은 검은 거품에게 침투를 당해 둘이 죽고 세 명은 온몸의 마나로 거품을 막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물러선 델베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왕궁의 안전을 위해 튼튼하게 지어둔 성벽이 갑자기 원망스러워지는 그였다.

 

‘어째서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냐?’

 

비명 소리, 그리고 접전을 벌이는 소리가 이미 널리 퍼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아무도 달려오지 않는다.

 

‘혹시… 봉쇄 마법?’

 

그의 상식으로는 내원 전체를 봉쇄할 만한 마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또한, 그런 마법을 있다고 해도 왕궁 내에 설치된 수많은 마법진들이 막아내었을 것이다.

 

 

 

 

 

기사들의 공격이 극심한 피해만 입고 뒤로 물러나자 병사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은 새파랗게 질려가며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미라크네의 정예병력으로 발탁되어 왕궁으로 배치된 그들은 아무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그들의 빈틈을 노리며 다가오는 괴물들을 말없이 노려볼 뿐이었다.

 

아이네스는 기묘한 생명체들을 노려보며 다른 여인들과 함께 뒷걸음질 치다 멈추었다. 이 이상 뒤로 물러서면 자신과 같이 있는 여인들이 위험할 것이다.

 

‘무혼 경은 어떠한 때라도 물러서지 않았어.’

 

오직 검 하나만 들고 모든 난관을 뚫고 가는 무혼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지만 지금 자신과 함께 있지 않다.

 

그러나 무혼과 함께 연습했던 몸은 있다.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무혼의 수준 높은 검술을 몸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네스는 검을 뽑았다. 붉은 기류는 없었고 무혼만큼의 실력을 발휘할 자신은 없었지만, 그동안 수련하여 몸에 익은 자세를 취하고 오른손에 쥔 검을 앞으로 내밀며 괴물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왼손으로는 마법 지팡이를 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무혼 경이라면 나의 위험을 알아채고 달려와 줄 거야.’

 

믿었다. 그 믿음이 아이네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왕비와 다른 공주들 그리고 아폴라이아의 여인들은 아이네스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눈빛이었다.

 

보기만 해도 질릴 것 같은 괴물들을 똑바로 보며 투지를 불태우는 아이네스를 이해할 수 있는 왕궁의 여인은 없었다. 다만 그녀의 소문을 들었었기에 마음속으로 응원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주문을 마친 아이네스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며 시동어를 나직이 읊조렸다.

 

“헤이스트!”

 

그리고 끈적거리는 액체로 이루어진 듯한 괴물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놈이 앞으로 나선 아이네스를 노리고 빠르게 다가오며 팔을 휘둘렀을 때 아이네스의 입에서 두 번째 시동어가 흘러나왔다.

 

“스트랭스!”

 

옷이 바람에 펄럭이며 괴물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네스의 모습은 적들 속으로 뛰어드는 기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한 손으로 검을 든 채 급속히 돌진하더니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괴물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푸앗!

 

쿠오오오.

 

아이네스의 염원이 담긴 검은 하얗게 빛나며 괴물의 팔을 갈랐고 아이네스를 놓친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잘린 팔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잘린 팔의 단면에서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속 녹아내리자 괴물은 다른 손으로 그 부분을 뜯어내어 버렸다.

 

‘된다. 무혼 경의 검술을 흉내라도 낼 수가 있어.’

 

바닥에서 완전히 녹고 있는 괴물들의 팔을 보며 한층 자신감을 가진 아이네스는 오랜 시간 무혼을 보며 익혔고 그가 자신의 몸을 움직였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혈랑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네스의 손에 있는 검은 아이네스의 의지와 신성을 받아들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저, 저것은?”

 

엘세타는 그 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백색의 신검, 엘라드가 가진 두 자루의 신검 중 하나이며, 엘라드가 봉인해 둔 흑색의 신검과는 달리 그가 즐겨 사용하는 신검이다.

 

“그래, 엘라드. 저 여자에게 그토록 아끼던 백색의 신검을 주었단 말이지?”

 

엘세타는 분했다. 오랜 시간 엘라드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했건만 그에게서 선물 하나 받은 것이 없었는데 엘라드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가 엘라드가 아끼는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자 속에서 알 수 없는 열기가 솟아나는 것을 느껴졌다.

 

“제, 제길! 힘을 마음대로 쓸 수만 있어도 저런 계집애쯤은!”

 

엘세타는 이를 갈더니 허락된 힘만을 뽑아 올리며 손에 찬 반지 중 갈색의 반지를 문질렀다.

 

그러자 반지는 옅은 빛이 흘러나왔고 액체의 괴물 뒤에 있는 진흙에서 새로운 괴물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처음 나타난 괴물들이 반질반질한 그림자 같았다면 검갈색의 진흙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들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온몸을 곱지 않은 진흙이 몸을 휘젓고 다녔고 얼굴이 있는 부위에는 커다란 입이 보였다. 그리고 긴 팔 끝에 있는 커다란 손에는 진흙으로 된 얇고 긴 손톱이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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