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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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05화
신룡전설 5권 - 5화
第三章. 속고 속이고
<자네가 이 서찰을 읽을 수 있을지…….>
서찰의 가장 첫 글귀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자네가 서찰을 읽을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기대를 걸고 이렇게 서찰을 보내네.
석당진 장로는, 아니 혈천신교의 온건파 인물들은 나쁜 이들이 아니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苦衷)이 있으니, 최대한 자네가 그들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네.
이야기는 들었네. 자네가 석당진 장로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 혈천신교로 들어갔다는 것 말이세. 사실, 자네의 능력이라면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었겠지.
내 생각이 맞는다면, 자네는 분명히 혈천대전에 강제적으로 참가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온건파의 혁력신 공자를 교주로 만들기 위한 방패막이가 되겠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도록 하게.
자네는 절대로 방패막이로써만 혈천대전에 참가해서는 안 되네. 석당진 장로와 온건파에서 어떤 말을 하든지, 자네가 혈천대전에 참가를 하게 된 이상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교주가 되어야만 하네.
선택의 여지는 없네. 그것이 자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
내가 앞서 말했듯이 석당진 장로와 온건파 인물들은 그리 나쁜 이들이 아니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면 가장 먼저 자네를 죽이려고 할 것이네. 이유라면 자네가 혈천신교의 교인이 아니기 때문이네.
정식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반드시 숨겨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석당진 장로와 온건파 인물들의 고충이네. 자네는 결국 그들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네.
살려거든… 교주가 되게!
교주가 되거든 혈천…….>
문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왕무적은 읽던 서찰을 급히 품속에 집어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찰을 집어넣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석당진의 심복인 왕정이었다.
“어쩐 일이오?”
왕무적의 딱딱한 음성에 왕정은 인상부터 찡그렸다.
“당신이야말로 무슨 생각이오?”
“무슨 말이오?”
“몰라서 묻는 거요?”
“알면 물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니오?”
태연하게 되묻는 왕무적의 모습에 왕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이내 눈을 사납게 뜨며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마음대로 혈천대에 오른 것이오? 어째서 당신 마음대로 혈천대에 올랐냔 말이오? 어디까지나 당신은 우리의 말에…….”
왕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무적이 그의 말을 잘라버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난 혁련 공자를 교주로 만들기 위한 목적 아니었소? 내가 언제 혈천대에 오르든 어차피 당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적은 장추진과 풍도백이라는 사람뿐 아니었냔 말이오. 내 말이 틀렸소?”
“…….”
왕정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온건파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상대는 왕무적의 말대로 장추진과 풍도백뿐이었다. 그 외에는 누가 혈천대에 오르든지 혁련신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장추진이 혈천대에 올랐기에 내가 나섰던 것뿐이오. 당신들의 뜻대로 말이오.”
“좋소.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그토록 압도적으로 실력을 행사한 것이오? 만에 하나라도 강경파 쪽에서 의심을 하게 된다면 어쩌려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이오? 아니, 벌써 강경파 쪽에서는 당신에 대한 모든 것들을 캐내고 있으니, 벌써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해야겠지.”
왕정의 질책 어린 시선에도 왕무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 신분은 완벽하니 그들이 제아무리 의심을 해봐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오? 오히려 나는 당신이 이렇게 날 찾아온 것이야말로 강경파 쪽을 자극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왕무적의 말에 왕정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왕무적이 있는 곳은 그날의 혈천대전 승리자가 머무는 곳으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상대의 암수를 철저하게 막아내기 위한 장소였다. 수백 명의 혈천신교 무인들이 주변을 철저하게 보호를 하고 있었기에 웬만해서는 왕무적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왕정이 왕무적을 만날 수 있는 이유도 만에 하나라도 왕무적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대장로인 용당운과 2장로인 석당진이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혈천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왕무적은 교주와 맞먹을 정도의 신변을 보호받는다고 할 수 있었다.
“당신이 이미 강경파 쪽을 심각하게 자극시켜 놓았기에 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오.”
“그렇소?”
태연하게 묻는 왕무적의 모습에 왕정은 좀처럼 인상을 풀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 건가?’
왕정은 과연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왕무적이 처음 만났던 왕무적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유야 어쨌든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잊지 마시오. 만에 하나라도 우리의 뜻을 거스를 적에는…….”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기에 왕무적의 얼굴이 절로 굳어졌다.
“두 사람에게 어떠한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때는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오.”
“…….”
누가 누구를 협박하는지 모를 상황.
왕정은 굳은 얼굴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 정도로 왕무적이 뿜어내는 기세는 그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당신이 제대로만 일을 해, 해준다면 어느 누구도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오.”
“…….”
왕무적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자 왕정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뜻을 전했으니 더 이상 볼일이 없기도 했지만, 방 안을 짓누르는 왕무적의 기세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왕정이 방을 빠져나가자 왕무적은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가 조용히 품속에서 서찰을 꺼냈다.
혈천대전이 있기 전에 왕정이 건네주었던 만박귀자의 서찰.
만박귀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서찰이 왕무적에게 전해지기 전에 석당진이나 왕정에게 그 내용이 읽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서찰의 봉투에 교묘한 장치를 해놓았다.
봉투의 안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안부만을 묻는 가벼운 내용의 서찰과 지금 왕무적이 읽고 있는, 제법 놀랄 만한 내용의 서찰.
봉투를 봉(封)하고 처음 봉투를 열게 되면 가벼운 내용의 안부 서찰을 꺼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봉투를 봉하고 다시 열게 되면 전혀 다른 서찰을 꺼낼 수 있게 된다. 일종의 눈속임인데, 그것이 얼마나 교묘한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석당진이 아무리 만박귀자를 믿더라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었기에 그는 만박귀자가 보낸 서찰을 열어보았다. 그리고는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서찰 내용을 확인하고는 다시 봉투를 봉해서 왕무적에게 전해주었던 것이다.
이미 서찰을 받은 날에 그 내용을 확인한 왕무적이지만, 너무나도 놀랄 만한 내용이었기에 그는 시간이 날 적마다 그 내용을 다시 읽고, 읽었다.
서찰을 품에 넣은 왕무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교주.”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왕무적의 두 눈이 번뜩였다.
쾅!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현인정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를 제외한 4명의 인물이나 한 탁자에 모여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럽지 않은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놈이 천외당 무인 오월상이라고 했소?”
뱀과 같은 눈이 섬뜩한 빛을 터트리자 40대 초반의 여인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조사를 했습니다만… 천외당 소속의 무인이 맞습니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탄력 넘치는 둔부는 색기가 철철 넘쳐흘렀다. 하지만 몸과 다르게 얼굴은 청초함이 가득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나이는 이미 60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40대 초반의 외모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만의 독특한 주안술(駐顔術)을 익혔기 때문이다.
혈천신교 8장로인 민소희의 대답에 현인정이 다시 물었다.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소?”
“의심스러운 점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민소희의 대답에 현인정은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자가 지금까지 자신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대략적인 조사를 마친 결과, 그가 온건파의 석당진과 모종의 연이 닿아 있음을 어렴풋이 추측해낼 수 있었다. 혈천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석당진의 심복인 요문락(왕정)이 그를 만난 것이나, 지금도 용당운과 석당진의 약속을 받아낸 후에 요문락이 다시 그를 만났다는 보고를 받은 후였다.
“석당진…….”
이가 갈리며 현인정의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그가 그런 고수와 연이 닿았는지 궁금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왕무적만 아니었다면 강경파의 뜻대로 풍도백은 어려움 없이 교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장추진의 행동으로 어긋나긴 했지만 그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아니었다.
사실, 소문과는 다르게 풍도백은 이미 진즉에 폐관 수련을 마친 상태였다. 단지 몸 상태를 보다 최상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즉! 아무리 장추진이 머리를 굴렸다고 해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혈천대전이고, 중요한 일인 만큼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철저하게 준비가 끝난 상태였으니 그의 욕심은 그저 욕심으로 끝날 운명이었다.
“칠 장로의 말에 의하면,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혈천신교의 6장로 예도준은 자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모인 누구도 모르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럼에도 그가 말을 꺼낸 이유는 왕무적이 누군지, 그가 어떻게 온건파와 연이 닿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자는 뜻이었다.
예도준의 의도대로 현인정은 분을 누그러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보았으니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겠소. 누가 그를 상대할 수 있다 생각하시오?”
장추진을 철저하게 농락하고, 7장로인 장대성에게 내상을 입힌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장추진을 패배시켰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대성에게 단순히 철혈신도를 날림으로 내상을 입혔다는 것은 심각한 사항이었다.
“…….”
“…….”
“…….”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혈천신교의 장로라는 위치에 있는 대단한 인물들이지만 당장은 그들로서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었다.
혈천신교의 장로라는 신분이 어디 장난이던가?
막강한 무위를 지닌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런 장로 중 한 사람인 7장로 장대성이 단 한 수만에 내상을 입었으니 누가 왕무적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 장대성 이상의 무위를 지닌 사람이 그를 막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커다란 제약이 뒤따르고 있었다. 왕무적을 상대하는 일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정식으로 혈천대전을 치르는 일이다.
혈천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며 중요한 조건인 혈천신교의 교인이라는 것도 있지만, 교주가 되어 오랜 시간 교를 다스려야 한다는 의무가 있기에 35세를 넘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장대성의 무위를 뛰어넘는 사람 중엔 35세 넘지 않는 인물이 있을 수 없었다.
“사 장로.”
현인정의 부름에 풍소동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풍 공자의 실력은 어떻소?”
현인정의 물음에 풍소동이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백이는… 풍가 역사상 최고의 기재입니다.”
자부심 가득한 풍소동의 음성에, 현인정은 물론 주변의 모든 장로들이 감탄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사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풍도백의 무에 대한 천재성은 혈천신교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더군다나 풍도백은 타고난 무재에다 끊임없이 자신을 혹독하게 수련시키는 노력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경파에 있어서도 그를 교주로 추대하려고 장추진을 과감히 포기한 것이었다.
“오월상과 비교하면 어떠리라 생각하시오?”
현인정의 물음에 풍소동은 섣부르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역시도 풍도백이 나이에 비해 커다란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만 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그가 장대성보다도 강하리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뭐라 대답을 드리기 힘듭니다. 백이가 동년배에 있어서는 감히 최고라 말씀을 드릴 수 있지만, 과연 7장로보다도 높은 경지를 이룩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백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지라…….”
“확실하지 않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확실하지 않다면 굳이 모험을 걸 필요가 없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혈천신교 11장로인 모연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이는 8장로인 민소희보다 한 살 어렸지만, 실질적인 외모로 봐서는 족히 열 살은 많아 보였다.
모연화의 말에 현인정을 비롯한 모든 장로들이 두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무엇이오?”
현인정의 물음에 모연화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첫 번째는 온건파에서 혁련신을 혈천대로 올려보낼 때까지 저희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혁련신을 교주로 추대하려고 한다면, 어찌 되었든 일곱 번째의 도전자가 지나기 전까지는 그를 혈천대로 올려보낼 것입니다.”
모연화의 말에 현인정이 탁자를 가볍게 내려쳤다.
탁!
“하! 그렇군! 그 방법이 있었어! 온건파가 혁련신을 교주로 추대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오월상이 일곱 명의 도전자를 다 물리치기 전에 혁련신을 올려 보낼 것이라는 걸 왜 잊고 있었던가! 하하하하!”
굳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설마 오월상을 교주로 추대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7명의 도전자가 모두 패하기 전에 혁련신을 올려보낼 것이다.
물론 드러난 결과로는 오월상의 무공이 혁련신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온건파 쪽에서는 그를 단순히 강경파를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막이로 사용할 뿐인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오월상을 교주로 추대한다면 어쩔 생각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