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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전설 1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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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4,9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룡전설 102화

신룡전설 5권 - 2화

 

 

 

 

 

스르릉.

 

장추진의 손에 철혈신도가 들렸다.

 

‘처참하게! 가장 처참하게 죽인다!’

 

천외당 무인인 왕무적을 상대로 도를 뽑아 싸운다는 부끄러움도, 체면도 없었다. 이미 왕무적의 주먹에 맞고 바닥을 나뒹굴었을 때, 장추진의 자존심과 체면은 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많이 아팠소?”

 

희미하게 웃으며 물어오는 왕무적의 모습에 장추진은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장추진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그의 손에 들린 철혈신도에서 터져 나온 검붉은 광채가 왕무적을 향해서 빠르게 다가갔다.

 

왕무적은 자신의 전신을 노리고 다가오는 검붉은 광채, 엄청난 도기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어내며 힘 있게 진각(震脚)을 밟았다.

 

쿵!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오른 주먹을 앞으로 내미는 왕무적.

 

 

 

 

 

초풍건룡권(超風乾龍拳)!

 

 

 

 

 

단순하게 내민 주먹에서 하나의 작은 바람이 일어나는 듯싶더니 곧바로 거대한 돌개바람이 되어서 장추진이 뿜어낸 검붉은 도기들을 모조리 집어 삼켜버렸다.

 

“……!”

 

단순한 주먹질.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 위력!

 

장추진은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와해되자 철혈신도를 들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반면, 왕무적은 처음 사용해보는 ‘초풍건룡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의 안배로 배우게 된 9가지의 무공 중 초풍건룡권은 오늘에서야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일백한 가지의 초식…….’

 

초풍건룡권은 총 101가지의 초식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그 101가지의 초식들은 그 하나하나가 또다시 적게는 2개, 많게는 4개까지의 변초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말 그대로 지르고, 찌르고, 뻗고, 후려치는 주먹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단 말이다.

 

‘다시 한 번!’

 

왕무적은 멍하니 서 있는 장추진을 향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단순하게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가볍게 손목을 비틀어 뻗어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파- 앙!

 

손목이 돌아가니 주변 바람이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문제는 그 바람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왕무적이 주먹을 뻗어냄과 동시에 그의 팔과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강대한 내공이 실린 바람이라는 것이었다.

 

사방을 압박하며 짓쳐들어오는 강맹한 바람에 장추진은 급히 정신을 차리며, 철혈신도를 휘둘렀다. 놀란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도를 휘두르는 몸짓은 더없이 침착했다.

 

수천, 수만 번을 휘두르며 수련해온 도!

 

마음은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을지 몰라도, 도를 들고 휘두르는 몸만은 지금까지 수련을 해온 대로 침착하다 못해 여유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파파파팡!

 

물결처럼 일렁이며 밀려들던 강맹한 바람은 횡으로 휘둘러진 장추진의 일도(一刀)에 사정없이 짓이겨졌다.

 

‘도대체 이런 권법은 어디서?’

 

천외당 무인 주제에 어디서 이런 대단한 권법을 익혔는지 장추진으로서는 궁금할 따름이었지만, 당장은 또다시 휘둘러진 왕무적의 주먹질을 막기에 바빴다.

 

여전히 단순하기만 한 주먹질!

 

파팡!

 

그러나 앞전과는 다르게 단순하게 뻗어낸 것도 아니었고, 손목을 비틀지도 않았다. 그저 한차례 팔을 뻗어냄과 동시에 허공을 두 번 때렸을 뿐이다.

 

육중한 바람이 중첩되어 밀려들자 장추진은 도를 가슴어림으로 끌어올리고는 두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보기에도 결코 평범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피하자니 도저히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어차피 밑바닥으로 떨어진 자존심과 체면이지만, 이런 공격마저도 피한다면 왕무적을 이기더라도 누가 자신을 추켜세워 주겠는가?

 

‘쓰레기의 공격 따위에 물러날 내가 아니다!’

 

장추진은 왕무적이 쏘아 보낸 권풍이 지척으로 다가오자 그대로 철혈신도를 내리그었다.

 

쾅!

 

“큭!”

 

단단히 대비를 하고 도를 휘둘렀음에도 팔을 넘어 어깨마저도 미미하게 떨릴 정도의 충격파는 장추진은 물론,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들마저도 놀라게 했다.

 

벌써 몇 차례나 놀랐던가?

 

천외당 무인인 왕무적이 혈천대에 올라선 그 순간부터 놀라지 않은 순간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은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음… 저런 권법이 있었던가?”

 

용당운은 두 눈에 이채를 띠고 혈천대 위의 왕무적을 바라봤다. 그 역시도 이미 왕무적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권법을 익히고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여러모로 절 놀라게 만드는 자입니다.”

 

용당운의 곁에서 석당진이 대꾸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용당운이 말했다.

 

“대단한 만큼 펼치기 쉽지 않은 권법이군.”

 

“그렇습니다. 내공 소모가 극심한 권법입니다. 위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효율성 면에서는 결코 좋다 말하기 어려운 무공입니다.”

 

“그렇군. 소모하는 내공에 비해 저 정도의 위력이라면 풍가의 혈왕진혼권(血王鎭魂拳)이 확실히 낫군.”

 

용당운의 말에 석당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용당운과 석당진 정도의 고수가 되면 상대가 펼치는 무공만 보고도 그것의 장단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이 보기에 왕무적이 펼치는 권법은 간결한 움직임 속에 커다란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기에 어찌 보면 대단히 비효율적인 무공이었다.

 

본래부터 장법과 권법을 펼치는 이들은 검법과 도법 등의 병기를 이용하는 무인들보다 내공이 깊고, 정순한 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검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단순히 검기와 비슷한 장력이나 권력을 뿜어내는 것은 그만큼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 검기와 장력, 권력의 위력은 같다.

 

그러니 자연히 장법과 권법을 익힌 이들은 검법과 도법 등을 익힌 이들보다 내공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법이다. 대신, 일정 거리 안에 들어서면 병기를 든 이들보다 맨손인 그들이 행동력과 위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내공 면에서 보다 큰 노력을 기울였기에 딱히 누가 더 강하다고 섣부르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왕무적이 펼치는 초풍건룡권은 그 위력에 비해 내공 소모가 너무나도 극심했다. 같은 위력을 발산할 수 있는 권법과 비교해 배에 가까운 내공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자고로 권법과 장법이란, 최소한의 내공 소모로 가장 큰 위력을 떨쳐야 하는 법이지.”

 

용당운은 자신의 그러한 생각에 비추어볼 때, 왕무적이 펼치는 권법은 그런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무시했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었다.

 

석당진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다. 왕무적이 대단한 절기들 외에 저런 또 다른 절기라 부를 수 있는 권법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이 꽤 놀랍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니 자연스레 고개를 흔들었다.

 

장추진은 차분히 호흡을 가라앉히고는 자신의 정면에 서서 예의 꼴 보기 싫은 웃음을 짓고 있는 왕무적의 모습에 이를 갈아붙였다.

 

“어디서 비급이라도 얻어 무공을 익힌 모양인데… 꼴을 보아하니 오래가지 못하겠군.”

 

장추진 역시도 고수의 반열에 오른 무인이니, 왕무적이 펼친 권법의 위력과 그 내공 소모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풍가의 혈왕진혼권을 한 번 겪어보지 않았던가?

 

혈왕진혼권과 방금 마주한 왕무적의 권법은 뚜렷하게 그 내공 소모가 느껴졌다. 한순간에 힘을 응축했다가 가장 짧은 순간에 그 힘을 폭발시키는 혈왕진혼권과 처음부터 강맹한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왕무적의 권법은 뚜렷하게 그 내공 소모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장추진은 허공을 철혈신도로 가볍게 내리긋고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놈 따위가 무얼 믿는지 궁금했더니… 제법 한 수가 있긴 있었군. 아깝군. 차라리 그 한 수 재간을 잘 살려 쓰레기 같은 천외당에서 빠져나올 것이지. 하긴, 그런 생각을 했다면 네놈이 내게서 쓰레기란 소리를 듣지도 않았겠지만.”

 

장추진의 말이 끝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왕무적이 가볍게 물었다.

 

“다 떠들었소, 장 공자?”

 

“……!”

 

“장 공자는 도전자를 맞이할 생각이 있기나 한 거요? 도전자는 올라오라고 해서 올라왔더니 이거야, 원.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만담가(漫談家)를 불렀어야 할 것 아니오. 지금이라도 말을 하시오. 내 기꺼이 만담가를 부르고 나는 도전자가 필요할 때 다시 올라오겠소.”

 

왕무적의 말에 혈천대 주변의 무인들 몇이 ‘킥!’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를 밖으로 뱉어내고 말았다. 사실, 많은 이들이 왕무적의 입심에 놀라면서도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몇 사람으로 인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푸! 푸하하하!!”

 

“크하하하! 입심 하나는 대단한 놈이로군!”

 

“큭큭큭! 무공도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

 

“하하하하하!!”

 

사실, 왕무적은 이러한 성격이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철저하게 오월상으로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격이 변하고 말았다. 본래의 순수함에 오월상이라는 인물의 넉살이 붙어버리니 지금의 성격이 되고야 만 것이다.

 

장추진은 많은 이들 앞에서 놀림거리가 되어버리자 얼굴이 잘 익은 대추처럼 잔뜩 붉어졌다. 태어나서 지금처럼 치욕스러웠던 날이 있었던가?

 

결단코 없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떠받듯이 대접을 받고 자란 사람이 바로 장추진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자리는 혈천신교의 교인이라면 누구나 우러러보는 교주를 뽑는 자리가 아니던가. 이런 꼴로는 교주가 되어도 한동안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피가 역류할 정도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장대성은 장추진의 상태가 결코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급히 전음을 날렸다.

 

[진정하거라! 상대의 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장추진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과 강경파의 뜻을 거스르고 있지만, 근본도 알 수 없는 천외당 무인에게 치욕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장대성 역시도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혈천대로 달려가 왕무적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 결국은 자신을 대신해서라도 장추진이 그를 죽여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기에 장대성은 어떻게 해서라도 장추진의 마음을 진정시켜 왕무적을 죽이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놈의 무공은 결코 대단치 않다. 위력에 비해 그 내공 소모가 극심할 테니, 섣부르게 상대할 생각보다는 기회를 노리도록 해라.]

 

이어진 장대성의 전음에 장추진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무적은 성난 소처럼 다짜고짜 달려들 줄 알았던 장추진이 의외로 잘 견뎌내자 제법이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사실, 왕무적은 장추진을 쉽게 상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 수모를 당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기에 최대한 그를 놀린 후에 단단히 그 수모를 갚아줄 생각이었다. 이 역시도 성격이 변해버린 왕무적의 단편적인 모습 중의 하나임이 분명했다.

 

만약 오월상으로 살아가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 달여의 시간 동안 전혀 다른 사람으로서의 삶은 무엇이든 빠르게 받아들이는 왕무적에게는 커다란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언제까지 그 더러운 주둥이로 짖어댈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말과 함께 장추진은 장가의 절기인 팔연환비도공(八連環飛刀功)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후아아앙-!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보완되고 보완되어 가장 완벽에 이른 팔연환비도공의 정수를 모조리 이어받은 장추진의 도는 가장 먼저 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고, 강력한 힘을 뿜어내기 이전에 사납게 상대를 휘몰아치며,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를 잃어가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무서운 무공, 팔연환비도공! 장가가 어째서 혈천신교의 삼 가문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장추진이 팔연환비도공을 펼치기 시작함으로써 왕무적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과 체면을 다시금 서서히 부상(浮上)시키기에도 충분했다.

 

“대단하군!”

 

“역시 팔연환비도공인가.”

 

“보는 내가 다 무서울 지경이라니…….”

 

사납게 몰아치며 왕무적을 압박해 들어가는 장추진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혀를 내둘렀다. 한순간에 모든 이들의 시선을 돌려놓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정도의 무공이 바로 팔연환비도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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