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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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96화
신룡전설 4권 - 21화
사실, 왕무적은 많은 고민을 했었다.
자신의 성격대로라면 이런 수모는 절대로 참을 수가 없다. 아니, 애초부터 이런 식으로 혈천신교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혈천신교에 들어온 순간에 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한바탕 뒤집어놨을 것이다.
하지만 왕무적은 그럴 수 없었다.
혈천신교에 들어온 순간, 아주 작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 힘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혼자의 몸이라면 아무런 문제 될 것 없겠지만, 진평남과 백서린이 곁에 있는 이상 자신의 뜻대로만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욱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왕무적은 철저하게 오월상으로 혈천신교 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진평남과 백서린을 위하는 길이기도 했으며,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오월상으로 움직이다가 기회를 엿보면 뜻하지 않은 싸움과 살인은 피할 수 있다. 굳이 싸움과 살인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지만 섬을 떠난 후, 왕무적은 자신의 고집대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조금씩 느끼며 배워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불필요한 싸움과 살인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 좋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왕무적은 지금의 수모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퍽퍽퍽퍽!
왕무적은 신체 중요 부위만을 내공으로 보호하고는 나머지는 어느 정도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추진의 눈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 끝을 보겠다면 나도 더 이상은 참지 않는다!’
만약 장추진이 자신을 정말로 죽이려고 한다면, 그때는 왕무적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흥! 목숨은 질긴 놈이로군!”
스릉-!
웬만하면 실신해버릴 만도 하건만 살집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특이한 외공을 익혔기 때문인지 도통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장추진은 결국 허리춤에 매어 놓은 도를 빼들었다. 어차피 죽이려 했던 터,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던 진평남과 백서린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장추진이 도까지 뽑아든 이상 상황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가 원한다면 그대로 해주지!’
웅크리고 있는 왕무적의 눈이 차갑게 빛을 발했다.
장추진이 도를 날리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이 나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놈!”
비릿한 외침과 함께 도를 막 휘두르려는 순간!
“장 공자님!”
허공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외침이 장추진의 도를 멈추게 만들었고, 어느새 쥐어져 있던 왕무적의 주먹을 다시금 풀게 만들었다.
“부, 북궁 소저! 여, 여긴 어인 일로…….”
장추진은 냉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북궁연의 모습에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웬만해서는 내원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는 그녀였다. 그렇기에 마음 놓고 굳이 다른 장소를 찾지 않고 외원에서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더 없이 차가운 북궁연의 음성에 장추진은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구애를 거절하면서도 저런 음성을 들려준 적은 없었다.
“그, 그것이…….”
“파파.”
북궁연이 곁에 서 있는 광한파파를 바라보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람같이 신형을 날려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왕무적을 안아들었다.
“쯧쯧쯧! 삼 가문의 후계자나 되는 사람이 자신의 상대도 아닌 자를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광한파파는 왕무적을 안고 북궁연의 곁으로 돌아갔다.
“장 공자님과 같은 분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으니, 더 이상은 저를 찾아오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럼.”
매몰차게 말을 마친 북궁연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부, 북궁 소저! 내, 내 말을…….”
“흥!”
광한파파 역시도 어떻게든 북궁연에게 말을 붙이려는 장추진의 모습에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돌려 북궁연의 뒤를 따라 내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북궁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장추진의 입에서 거친 호흡이 뿜어져 나왔다.
“하악! 하악!”
극도로 분노한 장추진의 모습에 남은 천외당의 무인들만 불안할 뿐이었다.
‘북궁연! 감히… 감히! 나 장추진을 모욕하다니……! 빌어먹을 계집! 어디 두고 보자! 반드시! 반드시! 그 잘난 얼굴을 짓뭉개주마!’
장추진은 비틀린 눈으로 북궁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외원을 빠져나갔다.
“후우!”
“헉!”
털썩! 털썩!
장추진이 떠나고 나자 잔뜩 긴장해서 불안해하던 천외당 무인들이 하나 둘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도대체 월상, 그놈은 무슨 생각으로 장 공자의 말을 엿들은 거야?”
“제기랄!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잘못했으면 우리까지 죽을 뻔했군!”
“그러게 말이야!”
“젠장! 반드시 놈에게 화를 풀어야겠어!”
“나 역시!”
여기저기에서 왕무적을 욕하는 천외당 무인들의 모습에 진평남은 두 주먹을 굳게 쥐었다. 생각 같아서는 주둥아리를 놀리는 인간들을 죄다 입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참으세요. 그나저나 그 여인은 누군데 왕 소협을 도와줬을까요?]
백서린은 북궁연으로 인해 왕무적이 위기를 모면했다는 걸 고마워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째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구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가 북궁연인가?”
“장 공자가 그리 불렀으니 그렇겠지!”
“캬! 천상의 선녀가 따로 없더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심성도 얼마나 착한지 이곳 혈외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도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
“하긴! 일면식도 없는 월상 놈을 구한 것을 보면 보통 착한 게 아니지!”
천외당 무인들의 대화에 백서린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여자도 왕 소협과 같은 사람인가 보네.”
그 중얼거림에 진평남도 동감한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第十三章. 다가오는 혈천대전!
“파파, 어떤가요?”
북궁연의 물음에 광한파파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예? 이상하다니요?”
북궁연이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자 광한파파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신을 잃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왕무적을 보며 말했다.
“예상보다 상처가 심하지 않습니다.”
광한파파의 대답에 북궁연은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그런가요? 장 공자가 생각보다는 마음이 여린 모양인가 보군요.”
광한파파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흥! 아가씨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으셨습니까? 장 공자는 분명히 이자를 죽이려고 도까지 뽑아 들고 휘두르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이자는 장 공자의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마음이 여리다고 생각하십니까?”
“…….”
북궁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광한파파의 말대로 북궁연이 보기에도 장추진은 왕무적을 죽이려고 도를 휘둘렀었다. 만약 자신이 그를 부르지 않았다면 분명히 왕무적은 죽었을 것이다.
물론 장추진이 왕무적을 죽인다 하여 누구도 그를 뭐라 탓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혈천신교 삼 가문인 장가의 후계자이고, 왕무적은 그저 잡일이나 하는 천외당 무인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북궁연이 나선 것도 우스운 일이라면 우스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다행스런 일이군요.”
북궁연은 눈을 감고 있는 왕무적을 다행이라는 듯한 얼굴로 바라봤다.
‘장 공자는 분명히 이자를 죽이려고 했을 만큼 지독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결코 적지 않은 부상을 당했어야 하는데…….’
광한파파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왕무적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는 광한파파의 모습에 북궁연도 잠시 그를 살펴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파파, 추연에게 말해서 당분간은 이곳에서 몸을 돌보도록 하게 하세요.”
광한파파는 놀란 얼굴로 대꾸했다.
“아가씨, 그건 안 될 말씀이십니다. 이자의 부상이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닌데 굳이 이곳에서 쉬도록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천외당 무인이라면 더욱더…….”
북궁연이 광한파파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파파도 신분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이었나요?”
“아가씨.”
“저는 파파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믿고 있어요.”
방을 빠져나가는 북궁연의 모습에 광한파파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북궁 공자와는 어찌도 저리 다른지.”
광한파파는 이내 고개를 돌려 왕무적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마치 들으라는 듯 입을 열었다.
“허튼 수작을 부릴 시에는 네놈의 몸을 조각조각 잘라버릴 것이다.”
이내 광한파파는 싸늘하게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왕무적은 천천히 눈을 떴다.
“휴우~!”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전신을 싸늘하게 훑고 지나가는 광한파파의 기세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자신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내공을 몸으로 주입할 때, 왕무적은 하바 터면 내공을 끌어 올려 대항할 뻔했었다.
더군다나 광한파파는 뭔가를 알아낸 사람처럼 마지막엔 들으라는 듯 경고의 말까지 하고 가지 않았던가?
“할머니… 조심해야겠어.”
왕무적을 그렇게 중얼거리곤 몸을 일으키려다 가라앉은 눈으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북궁연…….”
‘깨어났다!’
‘…누구?’
‘너희 둘, 내가 구해왔다! 하하하하!’
‘저, 저는 북궁연이라고 합니다.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은공.’
‘은공? 내 이름은 은공이 아닌데?’
‘뒤로 물러나 있어!’
‘네, 네…….’
‘은공, 괜찮으세요?’
‘쿨럭! 쿨럭! 너무 아파! 쳇!’
‘훗…….’
‘왜 웃어?’
‘죄송합니다.’
북궁연과의 일들을 하나씩 되돌아본 왕무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장추진으로 인해 옷은 피와 먼지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어째서 혈천신교 내에서 북궁연과 다시 만나게 되었냐는 것이다.
그때의 왕무적은 지금과 너무나도 달랐지만 북궁연은 같았다. 마치 3년 전의 그녀를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반가워해야 하는 건가…….”
북궁연이 나간 문 쪽을 바라보며 왕무적은 흐릿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갈 수 없었다.
‘아아아아악-!!’
‘오, 오라버니……!!’
‘미안하외다. 정말로 미안하외다… 이 죄는 내 육신과 영혼이 지옥 불에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으로 대신하겠소.’
왕무적의 머릿속에 자신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던 북궁휘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삼스럽게 가슴에 통증이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스윽.
손을 들어 가슴을 매만지며 왕무적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똑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