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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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94화
신룡전설 4권 - 19화
강서성 수수의 한 객잔.
어둠이 세상에 내려앉은 시간, 객잔 3층에 있는 한 방 안에 4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왕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길은평의 노력으로 인해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뀐 백서린, 진평남과 어느새 천환역형공으로 또다시 모습을 바꾼 왕무적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왕무적의 모습은 본래 그의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보잘것없었다.
작은 키에 출렁거리는 뱃살과 턱살, 그리고 얼굴 가득 번들거리는 개기름은 누구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좋지 않았다.
왕무적 역시도 이런 모습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진평남과 백서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필이면 진평남과 백서린이 변한 모습은 그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아 대인관계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혈천신교로 들어가기 전이나 들어가서도 이들 두 사람과 만남을 자연스럽게 갖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는데, 하필이면 그에 알맞는 사람이 지금 왕무적이 변한 인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누누이 말을 했지만 각자 자신에게 맞는 행동을 해야 하오. 말투부터 표정, 버릇까지 어느 것 하나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되오.”
왕정의 말에 세 사람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수수로 오기 이전에 왕정에게서 각자 하나씩의 얇은 책을 받은 상태였다. 그 책에는 각자가 역용한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책의 내용을 달달 외운 상태였기에 누군가 태어난 곳, 가족 관계, 어릴 적의 기억, 심지어 이성과의 첫 잠자리에 대해 물어도 아주 세세하게 답을 할 수 있을 만큼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걸 받으시오.”
왕정은 품에서 3장의 종이를 꺼내 각자의 주인에게 나누어주었다.
“오늘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니 잘 기억하고 있도록 하시오.”
왕무적과 진평남, 백서린은 각자 한차례 종이에 기록된 내용을 스윽 훑어보고는 품에 넣었다.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설명을 다 했으니 더 이상 궁금한 것은 없을 테지만…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지금 묻도록 하시오.”
왕무적이 물었다.
“아직까지도 그 혈외원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요?”
“그렇소.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오.”
왕정의 대답에 왕무적을 비롯한 세 사람은 다소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위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되도록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일이 끝나기만을 빌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똑똑똑.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겠다.”
방 안에서 누군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방 밖에서 문을 두드린 사람이 말을 꺼냈고, 왕정은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갑시다.”
왕무적과 진평남, 백서린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먼저 방을 나서는 왕정의 뒤를 따라갔다.
왕정을 따라간 곳은 같은 객잔 3층의 방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왕무적 일행은 자신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세 사람이 나란히 탁자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각자 소지품을 챙기고, 옷을 벗기도록 하시오.”
“…….”
“…….”
왕정의 말에 왕무적 일행은 죽은 사람의 옷을 벗긴다는 것과 그 소지품을 챙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재촉하는 왕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챙기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이곳에서 반 시진 정도만 술을 마신 후에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하시오. 그럼.”
왕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간 후, 곧바로 복면을 뒤집어 쓴 3명의 사내가 방으로 들어와 왕무적 일행에게 옷과 소지품, 그리고… 그 모습까지 빼앗긴 이들을 짊어지고 사라졌다.
“…….”
“…….”
방 안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백서린의 말에 왕무적이 미안하다는 듯 대답했다.
“두 분께는 죄송할 뿐입니다.”
“왕 소협께서 사과할 일은 아니죠.”
“이 일은 제가 원한 일. 은공께선 제게 사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백서린과 진평남의 대답에 왕무적은 그저 고맙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단지 왕무적이 변한 자의 얼굴 모습으로 인해서 그 웃음이 약간은… 아주 약간은… 비열하게 보일 뿐이었다.
第十二章. 뜻밖의 재회, 그리고…….
“월상! 빨리빨리 움직여!”
“알았어.”
작은 키에 살집이 잔뜩 오른 30대 중반의 남자는 어설픈 몸짓으로 외원을 가로질러 내원으로 뛰었다. 움직일 적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살집이 보기 흉할 정도였지만, 의외로 내딛는 발걸음은 경쾌하다 싶을 정도로 둔탁함이 없었다.
푸른색 무복의 등에는 붉은 글씨로 혈(血)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수놓아져 있었고, 왼쪽의 심장 부근에는 천외(天外)라는 글자가 검은색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혈천신교의 천외당 무인만이 입을 수 있는 무복이다.
남자가 내원으로 향하자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사람은 그와 똑같은 무복을 차려입은 내원 입구의 경비를 맡고 있던 거한의 사내와 냉랭한 눈초리의 사내였다.
“또 네놈이냐?”
냉랭한 눈초리의 사내는 이리저리 살집을 흔들어대며 다가오는 남자를 찌푸린 눈으로 바라봤다.
“하하하! 내가 하는 일이 그러니 뭐, 별수 없잖아.”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남자의 모습에 냉랭한 눈초리의 사내는 더욱더 눈을 찌푸렸다.
사내와 같이 경비를 서고 있던 거한의 사내가 보일 듯 말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어가게.”
“그럼 수고들 하라고.”
말을 마치고 남자가 내원으로 들어가자 냉랭한 눈초리의 사내가 차가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미련한 놈.”
중얼거림을 들은 거한의 사내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 월상을 싫어하나?”
그 물음에 사내가 아주 잠시 눈살을 찌푸리곤 대답했다.
“그놈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지 않아.”
“월상도 알고 보면…….”
“난 그딴 놈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게.”
“…….”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는 사내의 모습에, 거한의 사내 눈에서 아주 잠시 분노의 빛이 떠올랐지만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원으로 들어선 월상은 언제나처럼 곧바로 내원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으로 다가가자 곧바로 뜨거운 화기(火氣)와 군침이 돌 정도로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잔뜩 풍겨져 나왔다.
“월상 아저씨!”
주방으로 들어서는 월상의 모습에 10대 중반의 말라깽이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추연아!”
월상은 소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진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비록 보기에는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지만, 이미 소녀는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 한달음에 달려가 푹신한 그의 품에 안겼다.
“월상 아저씨!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야채가 떨어져서 제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었는지 알고 계세요?”
“벌써 야채가 떨어졌니?”
월상이 두 눈을 껌뻑이며 묻자 추연이 깜찍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우리 아가씨는 고기보다는 야채를 많이 드셔서 항상 신선한 야채가 부족하다고요!”
“미안하다. 내가 얼른 신선한 야채들로 가져오도록 하마!”
“빨리 가져오셔야 해요!”
“그래! 야채 말고 또 다른 거 필요한 건 없니?”
월상의 물음에 추연이 두 손을 ‘짝!’ 소리 나게 마주치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영월 아줌마가 마른 장작도 부족하다고 하셨어요.”
“마른 장작이라! 내 얼른 야채를 가져온 뒤에 장작을 패주도록 하마!”
“네!”
추연이 품에서 떨어져 나가자 월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외원을 향해서 뛰었다.
“퉷!”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도끼질을 하는 월상.
쩌- 억!!
도끼는 정확하게 나무의 중심을 쪼개버렸고, 좌우로 알맞은 크기의 장작이 나뒹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중얼거린 월상은 허리를 굽혀서 바닥에 널려 있는 마른 장작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상당히 많은 양을 팼음에도 불구하고 월상의 몸엔 땀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았다.
“왜… 왜 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 겁니까?”
장작을 줍고 있던 월상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에 고개를 들어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구지?”
월상은 가만히 그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장작을 줍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는 장작을 줍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저는 장 공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인의 음성이었다.
“…….”
월상은 잠시 멍한 눈으로 여인의 음성이 들려온 곳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두 눈을 반짝이며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 정녕 내 마, 마음을 이렇게 외, 외면할 생각입니까?”
남자는 습관인지,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지 꽤나 더듬거리며 말을 하고 있었다.
곧바로 다시 여인의 음성이 이어졌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직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장 공자님의 마음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누구냐!”
더듬거렸던 말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꽤나 우렁차고 힘 있는 음성이 남자에게서 터져 나왔다.
“……!”
월상은 남자가 자신을 향해서 외친 소리임을 뒤늦게 깨닫고는 당황한 얼굴로 서성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남자가 월상에게로 날듯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