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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7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7화

7화 첫 전투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햇살은 기분 좋게 살갗을 내리쬐었고 바람은 아기 손처럼 부드러웠다.

그야말로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이 아닐 수 없었다.

 

"날씨 조오타~! 끝내주지 않습니까. 소대장님?"

"그래.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다."

 

애덤 녀석, 여기가 전쟁터라는 사실을 벌써 잊은 모양이다.

누구는 언제 적기가 나타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데 말이지.

 

나의 전차는 시속 13km의 속도로 프랑스의 들판을 달리는 중이다.

시속 13km면 사람이 걷는 속도나 다름없다.

 

이렇게 느려서야, 원.

 

슈투카라도 나타나면 도망도 못 치고 꼼짝없이 불타는 관이 될 판이다.

 

대신 장갑이 두꺼워 방어력이 좋다는 장점도 있지만, 장갑이 얇은 대신 속도가 빠른 경장갑차가 훨씬 낫다.

적기가 나타나면, 잽싸게 도망이라도 칠 수 있지, 이놈으론 도망도 칠 수 없으니 말이다.

 

"에휴, 내 팔자야.......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곳에......."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는 걸 잊지 않았다.

 

전차 좌우로 보병들이 함께 이동 중이지만, 그들에게만 주변의 감시를 맡겨놓기엔 뭔가 불안했다.

 

독일의 전설적인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 영감님도 전차장이 직접 해치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주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열심히 해야지. 적어도 제 목숨 하나 구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응? 갑자기 왜?"

"열차에서 또 술을 마시다 걸렸다고 하시던데......."

"그만. 거기까지."

 

그 말을 들으니 또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 같다.

 

수통에 든 술을 들킨 나는 그 자리에서 이성을 잃은 해리슨 대위에게 문자 그대로 복날 개 패듯이 두들겨 맞았다.

같은 열차 칸에 있던 사람들이 만류하지 않았다면, 난 그대로 창문 밖으로 내던졌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하려고 했었고.

이거 전쟁터에 가기도 전에 기차 밖으로 던져져 생을 마감할 뻔했다.

 

아무튼 간신히 살아나긴 했지만, 이로써 내 위신은 바닥을 뚫고 추락했다.

얼굴에 난 피멍과 띵띵 부은 눈은 덤이었고.

 

이미지 회복은 둘째치고, 당장은 사고나 더는 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쪽팔려서 죽기 싫다면.

 

......그런데 내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어떻게든 일이 터지고 마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지.

 

혹시 내가 어쩌지 못할 정도로 아서는 소동에 휘말릴 운명선에 놓인 게 아닐까.

 

하......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정말 별생각이 다 들게 하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숨을 내쉬는데, 무전이 들어왔다.

 

-여기는 황새 3. 황새 1은 응답 바람.

"아, 여기는 황새 1. 황새 3, 무슨 일인가?"

-전방에 정체불명의 물체를 발견했다. 거리는 약 300m. 어떻게 처.......

 

그 순간, 무전이 끊김과 거의 동시에 폭음이 들렸다.

 

나보다 앞서 움직이던 황새 3이 별안간 시뻘건 불길에 휩싸이며 검은 연기를 뿜어대는 게 보였다.

 

"적의 공격이다!"

"엎드려!"

 

독일군의 기습이었다!

 

지평선과 거의 겹치는 수풀 사이에 숨어있던 독일군은 우리가 다가오는 걸 보고 먼저 공격을 가한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자, 전차들을 좌우에서 호위하던 보병들도 제각기 흩어졌다.

 

콩알 볶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내 전차 옆에 있던 병사가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독일군의 기관총에 맞은 것이다.

 

춤을 추듯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아군 보병을 본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 위로 총알이 쉭쉭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적의 공격입니다, 소대장님!"

 

나도 알아, 인마!

 

애덤은 쓸데없는 말을 해서 그러잖아도 심란한 내 심기를 긁어놓았다.

 

하지만 난 녀석에게 불만을 쏟아내는 대신 명령을 내렸다. 일단 살고 보자!

 

"해치나 닫아, 새꺄! 총알 맞고 싶냐!"

"아, 알겠습니다!"

 

원래 전차는 평상시 해치를 열어두고 조종수가 직접 얼굴을 내밀어 주변을 살피면서 기동한다.

 

내가 탑승한 마틸다 1 전차도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른 전차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전투 중에도 해치가 열려 있다면?

적들에게 나 좀 죽여달라고 말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보아하니 황새3도 포탄이 해치 안으로 들어가 격파당한 듯했다.

 

솔직히 기습을 당했으니, 어떻게 대처할 방법은 애초에 없었겠지만.

 

-여기는 둥지. 황새와 부엉이는 앞으로 돌격하고, 올빼미는 우측으로 돌아서 공격해라!

-여기는 부엉이. 수신 완료!

-올빼미도 수신 완료함!

"여, 여기는 황새. 알겠다!"

 

해리슨 대위의 명령에 서둘러 답한 뒤, 휘하 전차들에 중대장의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총알은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여기는 황새 1. 좌우의 보병들과 협력해서 전진한다!"

-확인.

 

소대의 전차들로부터 확인 수신을 받은 나는 이제 눈앞의 적들을 상대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행히 적들이 쏜 총알은 전차의 장갑판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아무리 화력에서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장갑은 우수한 전차다. 고작 보병에게나 유효한 화력으로 마틸다 1의 장갑을 뚫을 순 없다고.

 

총알 튕겨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리 장전해둔 빅커스 기관총을 발사했다.

 

묵직한 진동이 손과 팔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5발에 1발씩 예광탄이 들어있어 탄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쏜 총알은 수풀 위로 날아갔다. 반면, 독일군의 총알은 수풀 아래서 날아왔다.

조준을 아래로 낮출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 순간, 전차에 크게 진동했다.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누르고 있던 손을 놓고 말았다.

 

"우악!"

 

애덤도 갑작스런 충격에 당황했는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야?"

"......녀, 녀석들이 포를 쏜 것 같습니다."

 

곧바로 전차 내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어디 하나 망가지거나 문제가 있는 곳은 없었다.

 

아마 실제로 포탄이 전차에 맞긴 했지만, 튕겨 나간 듯하다.

 

독일군이 보유한 PaK 36(37mm 대전차포)의 허접한 관통력으로 마틸다의 전면에 흠집만 겨우 내는 것이 전부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쫄지 마! 전차는 멀쩡하니까! 포탄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봤냐?"

"모, 모르겠습니다!"

"일단 계속 움직여! 멈춰있으면 적의 표적이 된다!"

"예, 예! 알겠습니다!"

 

애덤이 다시 전차를 움직이는 동안, 나는 사격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조준을 조금 아래로 내렸다.

명중이었다.

 

수풀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던 섬광을 향해 쏘니, 사람의 형체가 주저앉는 광경이 조준경의 렌즈에 비쳤다.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과 처음으로 적을 해치웠다는 생각이 더해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전투는 한창 진행 중이었고, 적들이 쏜 총알은 꾸준히 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포탑을 오른쪽으로 돌려 우측의 적들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그러자 독일군의 사격이 조금은 뜸해졌다.

 

그 사이 바닥에 엎드려 있던 아군 보병 셋이 벌떡 일어나 내 전차 뒤로 몸을 피했다.

 

전차 뒤에 몸을 숨긴 병사들이 영화 <퓨리>의 미군들이 그러던 것처럼 전차 뒤에 착 달라붙은 채 총을 쏘며 전진했다.

그때 또 한 발의 포탄이 날아와 전차에 명중했다.

 

쿵!

 

이번에도 포탄은 장갑을 꿰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충격에 좀 놀라긴 했지만, 전차 외부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마틸다 1은 장갑에 비해 빈약한 무장이랑 느려터진 속도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다.

총을 쏘면 화약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전차 내부에 남아 탑승자를 괴롭혔다.

화생방에 들어간 것처럼 눈과 코, 입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연기가 너무 매워서 사격은커녕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씨, 도저히 못 참겠다!"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나는 해치를 열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지끈거리던 머리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앞으론 사격할 때도 해치를 계속 열어둬야겠군. 호흡곤란으로 죽기 싫으면.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자, 나는 다시 포탑 안으로 들어와 사격을 재개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인 결과 어느새 나는 독일군의 방어선 코앞에 있었다.

이젠 육안으로도 적들의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적들의 공격이 내 전차를 향해 집중되었다.

총알이 마구 빗발쳐서 이젠 고개조차 함부로 내밀 수 없었다.

 

적들이 던진 수류탄이 해치 안으로 떨어지면 어쩌지 싶으면서도, 나는 기계처럼 눈앞의 적들을 향해 사격했다.

 

7.7mm 총탄에 난사 당한 독일군들은 온몸이 벌집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대전차포도 통하지 않자 독일군은 최후의 수단으로 수류탄을 사용했다.

 

"수류탄, 수류탄을 던져라!"

"무한궤도를 노려!"

 

놈들은 전차의 궤도를 향해 수류탄을 던져댔다. 연이은 폭발음에 전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궤도는 끊어지지 않았고, 내 전차는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

 

보병들도 전투에 가세해 코앞에서 독일군을 향해 총탄을 퍼붓고, 수류탄을 던졌다.

 

욕설과 고함이 오가고, 파편과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결국 독일군이 전투를 중단하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허나 아군은 멋대로 싸움을 건 적들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영국 보병들은 도망치는 적들의 뒤통수를 향해 쉬지 않고 총탄을 퍼부어댔다.

 

도망치던 독일군 병사가 등에 총알이 박혀 쓰러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맛 좀 봐라, 이놈들아!"

"개새끼처럼 도망치는구나! 안 창피하냐!"

 

도망치는 적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보병들은 환성을 질러댔는데, 그 모습이 마치 토끼 사냥 대회에 나온 사냥꾼들처럼 보였다.

 

5분 뒤, 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완전히 종결되었다.

독일군은 30명이 넘는 전사자들과 동수의 포로들을 남긴 채 퇴각했다.

 

중대는 일단 정지해서 본부에 무전을 넣었다.

본부는 우리의 보고를 듣곤 깜짝 놀라더니, 새 명령이 하달되기 전까지 현 위치에 대기를 명령했다.

 

"아이고~ 이제야 좀 살겠네."

 

전투가 완전히 끝난 후에야 나는 겨우 전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무심코 소매로 얼굴을 쓱 닦자 검고 미세한 입자들이 소매에 묻어나왔다.

 

"소대장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래,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잔뜩 들뜬 애덤의 말에 대충 대꾸한 뒤 전장을 쭉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전사한 독일군과 영국군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총알구멍만 빼면 비교적 멀쩡한 시체들도 있었고, 전차 궤도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진 시체들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아군보다 적군의 시체가 더 많았지만, 결코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공기에선 매캐한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서로 뒤섞여 지독한 악취가 났다.

 

앞으로 자주 맡게 될 냄새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처한 현실이 더 강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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