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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5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5화

5화 서부전선, 개막!

 

 

1939년 10월, 폴란드를 정복한 히틀러는 이다음 목표인 프랑스를 정복할 작전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육군참모총장 프란츠 할더는 1차대전 당시에 사용되었던 슐리펜 계획을 조금 수정해서 '황색 작전(Fall Gelb)'이라 명명하고 작전을 입안한다.

하지만 황색 작전의 세부 내용을 보고받은 히틀러는 노발대발했다.

 

"이딴 걸 계획이라고 세웠나? 슐리펜 계획의 재탕이잖아! 저 바게트 놈들이 같은 수법에 또 당하겠냐고!"

 

히틀러의 성화에도 독일군 수뇌부에겐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애초에 유럽 최강이라 자부하는 프랑스군을 상대로 싸움을 건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독일군은 아직 재무장조차 완료되지 않아 말이 병사지, 무기도 없이 군복만 덜렁 입은 예비역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폴란드 침략 때 입은 피해조차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반면, 프랑스는 완전무장한 600만의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가지고 있는 전차의 성능과 수량 모두 독일군을 훨씬 앞섰다.

거기다 영국군까지 더하면 그냥 게임 자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1918년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싸워 승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그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폴란드전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곧 있을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군부는 패닉에 빠진 상태였고, 한술 더 떠 할더는 아예 히틀러를 암살할 음모까지 꾸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히틀러는 프랑스군의 동원이 끝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쳐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부는 그런 히틀러를 만류하기 위해 매번 진땀을 흘렸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바로 이때, 만슈타인이 나타났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

훗날 2차대전 최고의 두뇌를 가진 명장이라 칭송받게 되는 전쟁의 천재이자 기회주의자.

 

인성은 둘째치고, 그가 천재라고 불리게 된 까닭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생각해냈기 때문이었다.

 

"왜 벽을 넘으려고만 생각합니까? 벽을 넘을 수 없다면, 돌아서 갈 생각을 해야지요!"

 

만슈타인이 세운 '낫질 작전'은 기존의 황색 작전과는 180도 다른 작전이었다.

 

기갑부대를 앞세워 전차의 통행이 힘들다고 여겨지는 아르덴 지역 일대를 돌파하여 영불 연합군을 포위, 섬멸하는 게 주목표였다.

 

하지만 원리원칙주의자였던 할더는 이런 만슈타인의 전략을 미친놈의 헛소리로 치부했고, 만슈타인이 '더는 설치지 못하도록' 후방으로 보내버렸다.

형식상으로는 승진이었지만, 실질적으론 명백한 좌천이었다.

 

그렇게 만슈타인과 낫질 작전은 역사에서 잊혀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1940년 1월 10일.

예기치 못한 사건의 발생이 역사의 물줄기를 뒤틀어 버렸다.

 

황색 작전의 계획서를 소유한 독일 공군의 헬무트 라인베르거 소령이 탄 비행기가 벨기에에 불시착한 것이다.

 

비행기가 벨기에에 불시착한 것을 깨달은 라인베르거는 서둘러 서류를 소작하려고 했지만, 서류가 재로 변하기 전에 현장에 출동한 벨기에군에게 생포됐다. 작전 서류는 벨기에군에게 그대로 노획되고 말았다.

 

1급 기밀이 타국, 그것도 잠재적 적성국에게 유출되는 초대형 사고가 터지고 만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독일군 사령부는 즉시 황색 작전을 폐기했고, 만슈타인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얼마나 기상천외한 작전이든 간에 당장은 프랑스를 꺾는 게 중요했다.

 

결국, 논의 끝에 낫질 작전은 채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은 프랑스를 공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데 열중했다.

 

시간은 흘러 5월이 되었고,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낫질 작전의 개시를 명령했다.

 

"총통 각하,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좋아, 시작하게."

 

***

 

1940년 5월 10일 새벽 5시 35분.

 

포격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일련의 대포들이 불을 토했다.

 

"쏘아!"

"쏴부려라!"

 

육중한 150mm sFH 18 중곡사포들이 쏜 포탄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국경 너머의 벨기에군 진지를 타격했다.

 

독일군의 포격을 뒤집어쓴 벨기에군에는 곧장 비상이 걸렸다.

 

"비상! 적의 포격이다!"

"모두 위치로!"

 

벨기에 병사들이 포격에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독일군의 선발대는 국경을 넘어 벨기에로 진격해 들어갔다.

 

같은 날, 벨기에와 마찬가지로 중립을 표방하던 네덜란드도 독일군의 침공을 받았다.

 

벨기에군과 네덜란드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독일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선은 순식간에 돌파당했다.

 

후방의 사령부로 적이 전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닿기도 전에 독일군의 장갑차가 후방을 급습했다.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은 지체 없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하지만 정작 독일군은 포로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진격, 진격뿐이었다.

 

선두의 부대가 삽시간 만에 붕괴하자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부대도 독일군이 온다는 말 한마디에 와해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이 온다!"

"도망쳐!"

 

한참 뒤에야 도착한 독일군은 벨기에군이 버리고 간 무기와 물자들을 발견하곤 헛웃음을 날렸다.

 

방치된 무기와 물자, 특히 연료와 차량은 독일군의 진격에 아주 큰 힘이 되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독일군이 마차를 놔두고 벨기에군의 트럭으로 진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군의 속도에는 불이 붙고 있었다.

 

***

 

독일군이 벨기에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은 프랑스군에게도 전해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프랑스군 총사령관 모리스 가믈랭은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세워둔 딜(Dyle) 계획에 따라 병력을 벨기에로 진군시켰다.

 

가믈랭은 독일군이 1차대전 때처럼 벨기에 북부를 통과해 프랑스로 쳐들어올 것이라고 굳게 확신했다.

 

그러나 독일군은 정작 전차의 기동이 힘들어 프랑스군이 경시했던 아르덴 숲으로 진격해왔다.

 

5월 11일과 12일 사이, 프랑스 제9군 소속 정찰기는 아르덴 숲을 통과 중인 독일군의 대열을 발견하고 이를 보고했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9군 정보부는 이를 무시했고, 12일 아침에 들어온 새로운 보고도 연이어 묵살했다.

 

"독일놈들이 아르덴 숲을 통과 중이라고? 그 험난하기 짝이 없는 아르덴을? 헛소리! 우리를 속이기 위한 함정이야!"

 

12일과 13일 사이, 프랑스군 정찰기는 또 한 번 아르덴을 통과 중인 독일군을 발견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독일군 차량의 전조등 불빛은 수 km 떨어진 곳에서도 훤히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군 수뇌부는 이번에도 이 보고를 무시했다.

 

"독일군은 틀림없이 벨기에 북부로 올 걸세!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가, 놈들이 나타나면 그대로 한 방 먹이면 되는 거라고!"

"맞는 말씀입니다, 각하!"

 

가믈랭의 참모들은 가믈랭의 말에 맞장구치기 바빴다.

 

"괜한 걱정은 접어두자고. 자, 와인 좀 들겠나? 보르도산 와인일세."

 

***

 

내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낫질 작전은 시작된 후였다.

 

독일군의 본격적인 서유럽 침공이 시작된 후에도, 부대는 한동안 잠잠했다.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평범하게 아침을 먹고, 평범하게 일과를 보았다.

 

그동안 나는 뭘 했냐면.......

 

일과가 끝나면 바로 방으로 달려가 술을 있는 대로 들이켰다.

부디 이 모든 게 제발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몸 건강에 최악이란 걸 알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정신이 버틸 수가 없었으니까.

 

이때까지도 나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꽐라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쓰러지면 다시 내가 아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으리란 희망.

 

부질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뭐,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술에 잔뜩 취해 잠이 든 뒤, 일어날 때마다 매번 같은 절망을 맛봐야 했다.

 

나는 21세기 한국의 우리집 안방에서 일어나는 대신 1940년 프랑스의 막사에서 눈을 떴다. 그것도 매일매일.

 

계속된 음주로 몸도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 건 덤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신물이 올라오면서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으니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빨리 죽는지 이제 좀 알겠군.

 

하지만, 나중에는 이 짓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매일같이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는 걸 주변에 들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퇴근해서 이번에는 제발...... 하는 심정으로 술병을 꺼내는데, 해리슨 대위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난입했다.

 

갑작스런 사태에 나는 너무 놀라서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방안으로 들어온 대위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폐급 부하와 그 손에 들린 술병을 보자 금세 분노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붉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너 이 새끼......."

"소, 소위 아서 그레이!"

"퇴근하자마자 술이나 빨아재끼고......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냐?!"

"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니야! 당장 밖으로 튀어나와!"

 

결국,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술에 의존하던 내 생활은 그렇게 종말을 고했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결과로.

 

해리슨 대위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술을 압수했고, 행여 매점에서 술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강화했다.

덤으로 그날 해리슨 대위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나는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도는 형벌을 받았다.

 

벌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겨우 막사로 복귀한 내 발바닥에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물집이 두툼하게 박혀 있었다.

 

***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부대에도 차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었으니, 우리가 전선에 투입되는 일은 시간문제라는 걸 장교부터 이등병까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농담과 웃음소리가 줄어들었고,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군장을 꾸리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나는 다가올 운명을 직감하며 묵묵히 짐을 꾸렸다.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은 모두 정리해서 상자에 담은 뒤 후방으로 가는 트럭에 실었다.

 

이참에 옷장에 넘쳐나는 옷들을 몽땅 정리했다. 진짜 아서가 즐겨 입던 옷들로, 하나같이 가격이 제법 나갈 것처럼 보이는 고급 양복들이었다.

 

무슨 놈의 군인이 옷이 이렇게 많아?

 

처음엔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아서가 놀라나갈 때마다 입던 옷들이란 사실을 떠올리곤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날라리였구만, 이 새끼.

덕분에 내가 다 고생이다, 인마.

 

"어, 소대장님. 그 옷들, 평소에 아끼시던 옷들 아닙니까?"

 

소대원 중 한 놈-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이 내가 상자에 쑤셔 넣은 옷들을 보곤 놀라서 물었다.

 

"그래, 문제 있나?"

"아니, 평소에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다 정리하시는 겁니까?"

"그럼 전쟁터에 양복 입고 싸우리? 쓸모없는 옷들을 이참에 모두 정리해야지. 군장에 다 안 들어가니까?"

 

나는 당연한 말을 했지만, 녀석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벌린 입 안으로 주먹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시던 옷들을...... 소대장님, 진짜 어디 아프신 거 아닙니까? 그렇잖아도 이틀 전까지 술만 드시더니. 혹시 아직도 치료가 덜 된 것이 아니신지."

"난 멀쩡해. 내 걱정 말고 니 앞날이나 신경 쓰도록."

 

진짜 아서가 평소 소대원들에게 어떤 인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양복 입고 놀러 나가기 좋아하는 골칫덩이 장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겠지.

 

거기다 순수 내 잘못으로 인한 것도 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일과가 끝나면 방에 처박혀서 술만 빨아댔으니, 이미지가 좋을 턱이 없다.

 

진짜가 만들어낸 모습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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