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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8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8화

28화 횃불 작전 (2)

 

 

횃불 작전.

 

1942년 11월 8일에 미군과 영국군은 프랑스령 모로코와 알제리에 상륙했다.

 

미영 연합군은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상륙은 몽고메리의 영국군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던 아프리카 군단에겐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당장 눈앞의 적들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제는 양쪽에서 싸워야 한다니.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아프리카 군단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체급 차이와 양면 전선을 견디지 못하고 1943년 5월 튀니지에서 괴멸되면서 북아프리카 전선은 종결되었다.

 

처칠을 비롯한 런던의 높으신 분들이 2년 일찍 이 작전을 실행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적들의 시선을 서쪽으로 돌려서 이집트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고 싶었겠지.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발상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합리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양동작전이란 게 이런 거지.

 

하지만, 높으신 분들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비시 프랑스군이 아군에게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잊는지 망각한 것이다.

 

***

 

"발사!"

 

1차대전 당시에 건조된 리벤지급 전함 레졸루션이 불을 뿜자, 우렁찬 괴성이 울려 퍼졌다.

 

레졸루션을 시작으로, 리벤지, 로열 소버린, 라밀리즈 등 동료 전함들도 연달아 불을 토했다.

 

전함들을 호위하던 구축함들도 일제히 주포에 불을 당기자 평화롭던 해변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비시 프랑스군 함대는 이틀 전 모로코 앞바다에서 죄다 격침되었다.

수적, 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영국 함대와 맞서 싸우다가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그 해전으로 아군의 피해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작전 자체를 취소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큰 방해물이었던 비시 프랑스 함대가 사라지자 아군은 여유롭게 해변가를 향해 포격을 퍼부어댔다.

 

"명중, 계속 발사!"

 

이후 약 1시간 동안 포격은 계속되었다.

 

전함들이 일으키는 육중한 포성은 수송함 안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몇몇 병사들은 시끄러운지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구만."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전투 전 마지막으로 무전기를 점검했다.

전투 도중에 무전기가 고장 나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니 말이다.

 

"지금쯤 해변은 초토화되지 않았을까요?"

 

아침식사로 나온 비스킷을 한입 가득 우물거리던 애덤이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도? 그래도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지. 괜히 살아남은 적이 있으면 우리만 골치 아파지니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합니다."

 

포수 티모시 잭슨이 말했다.

그러자 전차에서 탄약수 역할을 맡고 있는 토마스 헤이들런도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은 나치들 밑에서 창녀 짓이나 하고 있는데 뭐. 당해도 싼 놈들이야."

 

두 놈 다 지난번 인원 보충 때 새로 중대에 전입 온 녀석들로, 계급은 애덤과 똑같이 이등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애덤도 아직도 이등병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번 공로도 있으니 일병으로 진급할 줄 알았는데(그렇게 말하는 나도 아직 소위지만).

 

그나저나 첫 실전이라 그런지 두 녀석 다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뒤통수만 봐도 바짝 긴장한 게 느껴질 정도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녀석들이 몸을 반쯤 굳힌 채 식은땀을 흘려대는 걸 보니 웃기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공감이 됐다.

 

나 역시 첫 전투 때도 그랬으니까.

 

"이 자식들아, 쫄리냐?"

"아닙니다, 소대장님!"

"구라치고 있네. 아까 전부터 땀 엄청 흘리고 있구만."

"더워서 그런 겁니다."

 

나 참. 끝까지 발뺌하기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질책이라도 들을 것 같아서 그러는지 몰라도 녀석들은 끝까지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카메라도 없는 허세 떨지 마. 원래 처음에는 다 그래. 나도 첫 전투 땐 엄청 쫄았어."

"아... 그렇습니까......?"

"그래. 내가 할 말은,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거야. 우리 상대는 프랑스군이잖아? 독일군한테 6주 만에 백기 올린 녀석들이 세봤자 얼마나 세겠어? 내가 장담하건데 틀림없이 지금쯤 백기 올릴 준비나 하고 있을걸? 그러니까 긴장 풀어."

"아, 알겠습니다!"

 

***

 

시간이 지나 포격이 끝나고, 수송함들과 상륙정들이 해변에 다가섰다.

 

우리가 상륙할 장소인 라바트 해변은 완전히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저 불지옥에서 살아있을 적군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상륙정의 병사들은 처참한 광경에 질색하면서도 한편으론 적이 전멸했으리라 예상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그들의 착각이 깨지기까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해변에 다가선 상륙정의 문이 열리면서 병사들이 상륙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이 날아왔다.

 

멋모르고 유유자적하게 상륙하던 영국군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온 무수히 많은 총알을 맞고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엎드려!"

"우측으로! 서둘러!"

 

갑작스런 총알 세례에 영국군은 당황했다.

 

공격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서둘러 해변으로 올라와 바닥에 몸을 밀착시켰다.

총알이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 막 상륙정에서 내리는 병사들을 향해 쏟아졌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진 포격에도 살아남은 프랑스군 진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해군이 영국 함대에게 괴멸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진지를 보강하고, 예비용 진지와 이를 잇는 참호까지 완성해둔 상태였다.

 

그렇잖아도 캐터펄트 작전으로 영국에 대해 감정이 좋지 못했던 프랑스 병사들은 이어진 포격으로 완전히 악에 받친 상태였다.

 

그들에겐 더 이상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저 한 명의 영국군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길 뿐이었다.

 

"쏴라! 쏴라!"

 

호치키스 중기관총이 불을 토하자, 이제 막 상륙정에서 내리려던 영국군들은 총 한 발 쏴보지도 못하고 줄지어 쓰러졌다.

 

간신히 총알을 피한 병사들이 프랑스군 진지를 향해 사격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었다.

적을 제압하기 위해선, 보다 더 강력한 화력이 필요했다.

 

해안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구축함들이 재차 포격에 나섰다. 다만, 해변가에 상륙한 아군이 휘말릴 위험성 때문에 포탄은 전보다 더 먼 곳에 떨어졌다.

 

포격이 진행되는 중에도 프랑스군의 사격은 끊이질 않았다.

 

항공모함 아크로열에서 발진한 페어리 풀머 10기도 폭격에 참가했다.

 

풀머가 투하한 폭탄은 프랑스군의 진지 바로 위로 떨어졌다.

 

폭탄이 터지자, 진지 내에 있던 프랑스군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증발'했다.

 

주홍색 화염이 시체들의 조각들을 모두 태우고, 검은 연기를 하늘로 올려보냈다.

 

포격으로 프랑스군의 사격이 조금 잠잠해지자 영국군은 다시 전진했다.

 

상륙정에서 내린 병사들은 죽은 전우들을 지나 해변으로 신속하게 전개했다.

 

이어 전차를 실은 수송함들도 해변으로 다가가 도크를 열었다.

 

도크가 열리면서 빛이 어두운 선체 내부로 쏟아졌다.

 

이를 신호로 대기 중이던 마틸다 전차들이 일제히 시동을 걸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아, 우리 차례다. 전진!"

"예엡!"

 

애덤이 전차를 앞으로 기동시키자 잭슨과 토마스가 숨을 들이마셨다.

 

"잭슨, 너는 조준경에서 눈 떼지 말고. 토마스, 너는 포탄을 장전해라. 어차피 탄종은 한 가지뿐이니, 쏘면 내 지시 없어도 바로바로 장전하고."

"알겠습니다!"

 

전차의 무한궤도가 바닷물을 해치며 모래톱 위로 굴러가자 해변에 펼쳐진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줄지어 쓰러진 병사들의 처참한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진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처참한 광경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프랑스군의 저항은 내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물론 저들이 아군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리란 점도 알고, 실제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름 저항할 거란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잖아?!

 

"이, 이건 예상 밖인데......."

 

당황한 탓에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는데, 다른 녀석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전차 밖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폭음,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녀석들의 정신을 앗아간 모양이었다.

 

"적의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어, 나도 알아. 그래서 존나 당황스러워.

 

"저, 정말 프랑스군 맞아? 독일군이 아니라?"

 

잭슨은 지금 이 상황이 믿기 어려운 모양인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토마스 역시 당황했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시체들은 조금씩 전진했다.

 

병사들은 시체들 뒤에 숨어서 총을 쏘았고, 프랑스군은 참호에 몸을 숨긴 사격했다.

 

양쪽 모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여기는 선풍기 1, 전 차량은 앞으로 전진하며 보병들을 지원한다!"

 

정신을 차린 내가 무전기로 지시를 내리자 곧바로 응답이 돌아왔다.

 

-선풍기 2, 수신 완료!

-선풍기 3, 수신 완료!

-선풍기 4도 수신 완료!

 

4대의 마틸다 전차들이 전진하자, 아군 보병들의 사기가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지금쯤 프랑스군은 우릴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

 

"전진!"

 

셀 수 없이 많은 총탄이 날아들었지만, 마틸다 전차에 티끌만 한 흠집도 내지 못했다.

보병들은 전차 뒤에 숨어 전진했다.

 

어느새 우린 해변을 횡단해 프랑스군의 방어선 코앞까지 도달했다.

 

이제는 내 눈에도 참호 속에서 우릴 보며 얼어붙은 프랑스군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이 보일 정도였다.

 

"기관총으로 쓸어버려!"

"옛!"

 

잭슨은 내 명령대로 공축기관총을 발사했다.

 

그런데 부각이 어긋나서 그런지, 총알은 적들의 머리에서 한참 위로 날아갔다.

 

"젠장, 사격 중지! 각도가 안 나와! 애덤, 조금 더 앞으로!"

 

5m를 더 전진하자 차체가 앞으로 기울면서 적들을 조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잭슨에게 다시 사격 명령을 내렸다.

 

"발사!"

 

공축기관총에 난사 당한 프랑스군 두어 명이 쓰러지고, 한 명은 무기도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나는 잭슨에게 도망치는 적들보단 싸우려고 드는 녀석들 먼저 처리하라고 일러두었다.

 

녀석은 내 명령대로 도망치지 않는 놈들부터 구멍투성이로 만들었다.

 

약실에 장전해둔 포탄은 쓸 일이 없었다.

 

앞에 보이는 적들은 모두 보병뿐, 기갑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고 생각하는 순간.

 

연기를 뚫고 전차가 나타났다.

 

"2시 방향에 적 전차다!"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2시 방향에 적 전차라고!"

 

나는 잭슨의 반문에 가벼운 짜증을 느끼며 적 전차를 주시했다.

 

기종은 르노 FT-17.

 

1차대전 때 쓰였던 구시대의 유물로, 프랑스군은 식민지뿐만 아니라 본국에서도 이놈을 수백 대나 굴렀다.

당연히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죄다 독일군에게 넘어가고 말았지만.

식민지 부대에서 굴리는 물건은 독일군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모양이다.

 

녀석도 우릴 발견했는지 이쪽으로 포탑을 돌렸다.

이어 짤막한 37mm 주포에서 불꽃이 튀었다.

 

전차 외부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포탄은 장갑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도탄되었다.

 

르노 FT-17에 장착된 퓌토 SA18 37mm 주포로는 무슨 수를 써도 마틸다의 장갑을 뚫을 수가 없다.

전면뿐만 아니라 측면과 후면을 향해 쏴도 말이다.

 

잭슨도 녀석을 향해 포탑을 회전시켰다.

그런데 이 녀석, 너무 돌리는 바람에 그만 표적을 지나치고 말았다.

 

"야, 어디까지 돌리는 거야? 적은 2시 방향에 있다니까!"

"죄,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도로 돌려!"

 

잭슨이 다시 포탑을 돌리는 사이, 다른 전차가 먼저 선수를 쳤다.

 

2파운더 포탄 한 발에 르노 FT-17은 장갑이 앞뒤로 관통되어 연기를 토해내며 정지했다.

 

허나 표적을 놓쳐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연기가 걷히면서 더 많은 전차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늘 그렇듯이 애덤의 당황한 목소리가 헤드폰을 타고 귓가에 울렸다.

 

"적 전차들입니다!"

"나도 알아, 새꺄! 근처에 있는 놈들부터 처리한다! 1시 방향!"

"1시 방향!"

 

잭슨은 내 말에 복창하며 포탑을 왼쪽으로 살짝 돌렸다.

 

놈은 아군 보병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가 자신의 탐스러운 옆구리를 노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조준했습니다!"

"그럼 쏴!"

"쏴!"

 

2파운더 주포가 불을 뿜자, 묵직한 포성이 울렸다.

뜨거운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청아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내 시선은 적 전차에 고정되어 있었다.

 

"명중!"

 

이로써 내 첫 전차 격파 스코어는 르노 FT-17로 시작하게 되었다.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녀석은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다.

 

전면의 해치가 열리더니, 조종수가 허겁지겁 튀어나왔다.

포탑 해치가 열리지 않는 걸로 봐선 전차장은 조금 전의 공격으로 죽은 모양이었다.

 

"재장전!"

 

토마스가 다음 포탄을 약실로 밀어넣는 사이 나는 새 목표물을 찾았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놈이다.

 

"목표, 정면! 이쪽으로 돌진하는 놈이다!"

"알겠습니다!"

 

포탑이 회전할 때 위이잉 소리가 났다.

 

곧 잭슨은 내게 표적을 조준했다고 알려왔다.

 

"목표 조준 끝! 쏩니까?"

"그래, 쏴!"

 

펑 소리가 나기 무섭게 적의 전면에 구멍이 뚫리면서 궤도가 우뚝 멈춰 섰다.

이어 후방의 엔진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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