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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3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3화

23화 몰타 공방전 (1)

 

 

몰타의 밤하늘은 심해처럼 깊고 어두웠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구름 사이로 누런빛이 도는 백색의 달과 별들이 스치듯이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구름 뒤로 숨었다.

 

야간 경계 근무를 서는 병사들은 해변에 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어둠에 잠긴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탈리아 최남단의 시칠리아섬의 활주로에서 이륙한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항공기들은 얼마 뒤 목표인 몰타 상공에 도달했다.

 

적기가 출현하자 몰타에는 비상이 걸렸다.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자고 있던 병사들은 잽싸게 준비를 갖춰 막사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미 수차례 이탈리아군의 공습으로 몰타 수비군 병력은 공습이라면 이골이 난 상태였다.

 

병사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각자의 자리로 뛰어갔다. 아직 폭격이 떨어지지 않았다.

 

탐조등을 켜자 빛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며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었다.

 

기둥의 수는 빠르게 늘어갔다.

두 개, 세 개, 다섯 개, 아홉 개.......

 

"파스타 놈들, 질리지도 않나."

 

잠을 자다가 사이렌 소리에 튀어나온 영국군 대공포병들은 숙면을 방해한 이탈리아 공군을 욕하면서 보포스 40mm 대공포를 조작해 하늘을 겨냥했다.

 

발사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병사들의 눈에 적기들이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광경이 보였다.

 

대공포에 맞은 건가?

그런데 대공포에 맞았다면 섬광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괴하게 뒤틀린 듯한 사이렌 소리가 났다.

 

"슈투카다!"

 

대공포가 황급히 불을 뿜기 시작했지만, 이미 폭탄은 슈투카의 동체에서 분리되어 지상을 향해 낙하하는 중이었다.

 

슈투카가 투하한 폭탄은 대공포반의 바로 뒤에 떨어졌다.

 

육중한 폭음이 울리고, 폭탄의 화염이 대공포병들을 집어삼켰다.

 

"제리들이다!"

"맙소사, 슈투카다!"

"엎드려!"

 

난생처음 당하는 슈투카의 공격에 병사들은 얼이 나갔다.

 

슈투카의 등장은 독일군이 전투에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이제까지 만만한 이탈리아군만 상대해오던 영국군은 독일 공군의 출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들의 임무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사력을 다해 몰타를 지키는 것.

 

그게 그들의 임무였다.

 

"쏴! 쏴라!"

"엎드리지 말고 일어서! 적들은 사타구니 밑이 아니라 머리 위에 있단 말이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장교들은 병사들을 다그쳐 대공포와 기관총을 쏘게 했다.

 

대공포와 기관총의 예광탄 줄기가 하늘을 어지럽혔다.

 

그러는 동안에도 슈투카 편대의 공습은 계속되고 있었다.

 

***

 

"모두 주목!"

"주목!"

 

병사들의 이목이 모이자, 헤르베르트 라머스 대위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내 말 잘 들어라! 이제 곧 우리는 몰타 상공에 도착한다. 내가 알기론 이번이 첫 실전인 병사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안다. 두렵고, 떨리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무를 잊으면 안 된다! 알겠나?"

"예!"

"좋아. 목소리 하나는 기가 막히군. 임무를 또 설명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렇잖아도 목이 쉬어서 죽을 것 같았거든."

 

라머스 대위의 농담에 병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병사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올해로 스물여섯이 된 그는 본래 육군 소속이었지만, 공수부대가 창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공군으로 전속했다.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첫 실전을 가졌다.

 

노르웨이에 이어 벨기에에도 강하했고, 에방-에마엘 요새에 투입되어 용맹하게 싸웠다.

 

그 전투에서 라머스는 벨기에군 소령과 대위를 포로로 잡는 전공을 세웠고,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했다.

 

프랑스가 항복한 후에는 괴링한테서 1급 철십자 훈장까지 수여 받았다.

 

히틀러가 몰타를 공략하기로 마음먹자, 라머스는 부하들과 함께 맹훈련에 돌입했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무척 짧았기 때문에 라머스는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훈련에 매진했다.

 

대대장조차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정도로 독한 훈련이었지만, 훈련기간이 워낙 짧았던 탓에 라머스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중대원들의 얼굴을 보니, 그간의 시간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의 눈은 승리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투지로 불타고 있었다.

 

"총통 각하께서 직접 말씀하셨듯이, 이번 작전의 승패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팔슈름예거(Fallschirmjäger)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기립! 정렬!"

 

라머스 대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병사들은 일어서서 정렬했다.

 

"계류삭에 후크 걸어! 이상이 있나 없나 확인하도록, 실시!"

"실시!"

 

곧이어 그들을 태운 Ju52 수송기는 몰타 상공에 도달했다.

 

슈투카 편대의 공습으로 몰타는 불바다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상에는 아직 살아남은 대공포 진지들이 많이 있었다.

 

대공포의 예광탄 줄기가 하늘을 가르는 가운데 라머스 대위와 휘하 중대원들은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격렬한 대공포화로 인해 기체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하지만 기체를 모는 조종사는 여전히 느긋했다.

 

"지금이다! 가자!"

 

조종사가 신호를 보내자, 라머스 대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송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의 부하들도 줄줄이 그를 따라 수송기 밖으로 몸을 던졌다.

 

강풍에 살결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라머스 대위에겐 익숙한 감각이었다.

 

몰타의 하늘은 수백 개의 낙하산 꽃들로 채워졌다.

 

꽃들은 지상을 향해 내리고 있었다.

 

***

 

젠장, 젠장, 젠장!

X발! 빌어먹을!

 

닐 크레이그 상병은 속으로 온갖 쌍욕을 헤대며 진지로 뛰어갔다.

 

겨우 진지에 도착하자 동기인 대니 콜트먼 상병이 그를 반겨주었다.

 

"살아있었군, 닐! 하도 안 와서 폭탄 맞고 죽었나 생각했지."

"나는 니가 죽은 줄 알았는데."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참호 안으로 들어간 닐은 슈투카의 맹폭으로 불타는 비행장을 주시했다.

 

유리처럼 매끄럽던 비행장은 순식간에 달의 표면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해버렸다.

 

폭탄 구덩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탐조등 불빛을 가려 강하하는 독일군 공수부대원들을 이롭게 하고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구만."

 

대니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옆에서 듣던 닐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젠장! 왜 하필이면 지금이야, 지금이! 빌어먹을 감자와 소시지 새끼들 같으니라고!"

 

닐의 성토를 들은 대니는 나지막이 낄낄거렸다.

그는 왜 닐이 이렇게까지 분노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이 그의 외박날이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에 몰타에 배치된 닐은 외출을 나왔다가 산드라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어부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붉은 머리칼이 매력적인 여자로, 집에서 만든 피클과 사탕 등을 시장에다 내다 파는 일을 했는데, 그날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닐은 한눈에 산드라에게 반했고, 그녀를 도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지갑을 찾는 걸 도왔다.

산드라는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저녁을 샀다.

 

이후 닐은 외출을 나갈 때마다 그녀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의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산드라는 다음번 만남 때 닐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기로 했다.

 

그렇게 닐은 외박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영국에게 선전포고하면서 이 평화롭던 섬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말았다. 자연스레 모든 병사의 출타가 금지되었다.

 

닐은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에 애간장을 태우며 산드라와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공습이 있을 때마다, 닐은 혹시 그녀가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불행 중 다행히 그녀는 살아있었고, 집도 무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닐은 공습으로 부상을 입고 쓰러진 중령을 응급치료소로 데려가는 공을 세웠고, 상으로 중대의 병사들 중 유일하게 외박을 허락받았다.

 

닐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 산드라를 만날 수 있다!

 

어찌나 기쁜지 그 힘든 화장실 청소와 행보관의 꼬장, 배고픔(식량 수송선이 이탈리아군 잠수함에게 격침되는 바람에 배식이 줄었다)도 견딜 만했다.

 

그렇게 손꼽아서 기다려온 외박인데, 지금은 모두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닐은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이제까지 무슨 생각으로 버텼는데....... 개X발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X발."

"그래, 좋은 마음가짐이다."

 

킬킬 웃던 대니의 얼굴이 갑자기 돌처럼 굳었다. 그의 눈이 허공을 향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허공으로 시선을 옮기던 닐도 덩달아 얼굴이 굳어졌다.

 

하늘에선 낙하산을 멘 병사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독일군이었다!

 

강하하는 공수부대원들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중대장도, 평소처럼 꼬장을 부리던 행보관도 모두 얼이 나간 채 지상을 향해 내려오는 낙하산들의 행렬을 응시했다.

 

"사격해! 사격!"

 

뒤늦게 정신을 차린 중대장이 사격을 명령하자 병사들은 총구를 하늘로 올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창공으로 총알이 빗발치자, 낙하산 몇 개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뒤이어 먼 곳에서 철푸덕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닐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격렬한 대공포화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공수부대원들은 영국군의 화망을 뚫고 하나둘 지상에 착륙했다.

 

운 좋게도, 그들이 착륙한 지점은 영국군 진지로부터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소총과 수류탄 등의 무기와 탄약이 담긴 컨테이너도 바로 근처에 떨어졌다.

 

먼저 착륙한 병사들은 서둘러 낙하산 줄을 대검으로 끊어낸 뒤, 컨테이너를 열어 무기를 챙겼다. 그리고 영국군 진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 사이 영국군은 머리 위 적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덕분에 착지에 성공한 독일군 공수부대원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영국군 진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뒤, 뒤다!"

"총구 돌려! 제리들이 뒤에서 나타났다!"

 

뒤늦게 진지를 향해 뛰어오는 독일군을 발견한 영국군 병사들이 총구를 돌려 사격했다.

 

곧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커헉!"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힘차게 뛰어가던 독일군 병장이 가슴팍에 총알이 박혀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가 던진 2개의 막대 수류탄은 영국군의 참호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콰광!

 

수류탄이 터지자 루이스 경기관총을 쏘아대던 사수와 부사수, 그리고 주변에 있던 병사 셋이 피칠갑이 되어 쓰러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상을 밟는 독일군의 수가 많아졌다.

 

초조해진 중대장은 연신 사격을 명령하며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적이 너무 많았다.

 

병사들이 위에서 내려오는 병사들을 먼저 쏴야 할지, 아니면 지상에 착륙한 적을 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X발, 쏴도 쏴도 끝이 없잖아!"

 

닐은 마른침을 삼키며 리-엔필드 소총의 노리쇠를 젖혔다.

 

이전의 분노와 투지는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지금은 전투의 압박감이 가져다주는 죽음의 공포가 그의 뇌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위에서 하얀 무언가가 떨어지면서 닐의 시야를 가렸다. 놀란 닐은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등 뒤에서 천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뭐, 뭐야?!"

 

자신을 감싼 하얀 막 때문에 닐은 당황했다.

 

그게 낙하산 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을 굽혀 낙하산 천을 들치고 밖으로 나오자, 코앞에 놓인 시체 한 구가 눈에 보였다.

 

시체의 정체는 지상의 영국군이 쏜 총에 맞아서 죽은 독일군 병사였다.

 

총알은 정확히 그의 턱을 맞추었고, 그대로 올라가다가 철모에 부딪혀 다시 안으로 튕겼다.

튕긴 총알은 반동의 작용으로 뇌를 헤집어놓음으로써 독일 병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닐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자신의 소총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땅에 얼굴을 박은 채 쓰러져 있는 대니를 발견했다.

 

"맙소사, 대니!"

 

닐은 서둘러 달려갔지만, 이미 그는 숨을 거둔 뒤였다.

목과 가슴팍에 난 구멍에서 피가 수돗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대니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오열하는 닐의 옆으로 수류탄이 떨어졌다.

 

"이, X새끼들이!"

 

분노에 찬 닐은 수류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적들에게 되 던지기 위해 참호 밖으로 몸을 내미는 순간, 어둠 속에서 날아온 총알이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크윽!"

 

닐은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쑤신 것만 같은 통증이 일었다.

 

손에서 놓친 수류탄은 다시 참호로 굴러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그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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