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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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8화
18화 다음 목표
프랑스는 원래 역사대로 독일에 항복했다.
항복 직전, 프랑스 정부는 파리를 무방비 도시로 선언했고, 독일군은 개선문을 통과해 파리 시내를 행진했다.
군악대의 흥겨운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독일군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파리 시내를 거리낌 없이 활보했다.
반면, 패자인 파리 시민들은 '빛의 도시'의 점령자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독일 병사들은 파리 시내 곳곳에 하켄크로이츠기들을 걸어 파리가 완전히 독일의 수중에 넘어왔음을 알렸다.
프랑스의 삼색기가 있던 자리에는 독일의 하켄크로이츠기가 걸렸고, 사람들은 그 아래를 묵묵히 지나다녔다.
프랑스의 새 총리로 임명된, 1차대전의 영웅 필리프 페탱은 파리를 방문한 히틀러와 만나 굴욕적인 휴전 협정에 서명해야만 했다.
한쪽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인 반면, 한쪽은 1차대전 당시엔 일개 상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패전국의 총리와 승전국의 수장으로 위치가 완전히 바뀌었다.
참으로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히틀러는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항복 협정을 맺었던 콩피에뉴 숲을 회담장으로 골랐다. 그리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항복 협정이 맺어졌던 열차를 콩피에뉴 숲으로 가져왔다. 지난 전쟁의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
독일과 프랑스 수뇌부가 휴전 협정을 체결하고 열차에서 나오자 대기 중이던 독일군 군악대는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바덴바일러 행진곡을 연주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복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완벽한 굴욕도 없었다.
독일 시민들은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독일로 돌아온 히틀러를 환성과 꽃다발로 반겼다.
베를린의 모든 시민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으며, 경찰과 돌격대원들은 히틀러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시민들을 막아내느라 진땀을 뺐다.
집권 후 6년 만에 가난한 패전국이었던 나라를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든 것으로 모자라, 군사 대국 프랑스까지 무릎 꿇린 히틀러는 진정으로 신이 독일을 위해 내려준 구세주로 여겨졌다.
***
"역시 공기는 독일 공기가 가장 좋군. 프랑스도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그래도 독일만 못하지."
"하하하하......."
총통관저에서 열린 회의는 가벼운 농담과 웃음으로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의 측근들과 참모들도 마찬가지였고.
숙적이었던 그 프랑스를 쓰러뜨렸으니, 이제 무엇이 두려울까?
그들은 독일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승리를 이뤘으며,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모두 치워지거나 산산이 부서졌다.
그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자신감에 찬 히틀러는 이제 다음 목표를 골랐다.
회의실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탁자에는 유럽, 특히 영국이 그려진 지도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독일 총통의 시선은 자연스레 지도의 영국으로 향했다.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 직후, 히틀러는 처칠에게 강화를 제안했다.
훗날 유럽을 이끌어가야 할 문명국끼리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인류에게 큰 죄악이다.
싸움의 승패는 이미 정해졌지 않은가.
그러니 얌전히 강화조약을 맺어 공존과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했다.
엿이나 먹으쇼.
처칠은 히틀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강화조약 대신 계속 싸울 것을 선언했다.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군. 육군은 박살이 나고 남은 것이라곤 해군과 공군밖에 안 남은 것들이 뭘 믿고 저렇게 뻗대는지 원."
"그 갈리폴리를 만든 당사자가 어디 가겠습니까?"
괴링의 농담에 회의실은 금방 웃음바다가 되었다.
괴링과 사이가 좋지 않은 육해군의 장성들도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웃었다.
"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군. 그래, 처칠에겐 갈리폴리가 있었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만. 머리가 그렇게 굳었으니,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웃음을 그친 히틀러는 다시 시선을 지도로 돌렸다.
처칠이 강화를 거부했으니, 이제 그의 다음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영국이었다.
"처칠, 그 늙은 돼지가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이제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지.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총통 각하.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저희 공군이 나서서 존불(영국인의 멸칭) 녀석들이 가진 비행기를 죄다 격추해 버리겠습니다."
괴링이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하는 모습을 에리히 레더 원수를 비롯한 해군 장성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영국을 치기 위해선 괴링의 말대로 가장 큰 장애물인 RAF를 먼저 없애야 했다.
제공권을 장악해야만 영국에 상륙하든, 저들을 협상장으로 끌고 오든 뭐라도 할 수 있었다.
"그래야지. 영국을 공략하기 위해선 놈들의 공군과 해군을 모조리 쓸어버려야겠지. 그런 다음 영국에 상륙해서 런던을 장악한다면, 영국인들은 충격에 빠져서 평화를 애걸하겠지. 프랑스인들처럼!"
히틀러는 지난달 파리를 방문했을 때 봤던 프랑스인들의 절망 어린 얼굴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영국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영국까지 무너지면, 이제 서유럽 전역은 모두 독일의 수중에 놓인다.
그런 다음 전력을 몰아 소련을 공격한다.
저 작은 핀란드 하나를 상대로도 쩔쩔매는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이 무적의 독일군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길어봤자 3개월이 한계일 것이다.
내년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전쟁은 끝날 것이고, 히틀러 그 자신은 독일, 아니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환상에 젖어있던 그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태클을 걸어왔다.
"하지만 총통 각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히틀러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응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회의실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었다.
"음, 구데리안 장군. 말씀해보시오."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외람되오나, 지금 저희가 가진 전력으론 당장 영국을 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디 결정을 재고해주십시오."
구데리안의 '폭탄 발언'에 회의실은 술렁거렸다.
그러자 곧바로 괴링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구데리안을 타박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장군. 영국을 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니, 우리 공군을 무시하는 겁니까? 당장 그 발언 취소하시지요!"
"괴링 원수, 나는 공군을 모욕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실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사실이라니, 그 말 자체가 공군에 대한 모욕이란 말이외다!"
"원수, 이상만 좇을 게 아니라 현실을 보란 말입니다! 당신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오!"
"뭐요?"
구데리안도 예상했다는 듯이 괴링의 말에 반박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순식간에 회의장엔 어색한 기류가 돌았다.
보다 못한 히틀러가 직접 나서서 둘의 싸움을 중재했다.
"그만, 그만! 배우신 양반들이 이 무슨 짓인가!"
히틀러의 일갈에 괴링은 입을 다물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지만, 총통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참는다는 표정이었다.
히틀러는 구데리안이 진격을 멈추고 부대를 재정비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진격을 계속했던 것을 잊지 않았다.
이때 괴링과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상급 대장은 길길이 날뛰며 총통의 명령을 어겼으니 구데리안을 군사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히틀러도 자신의 명령을 씹은 구데리안을 그리 좋지 않게 봤지만, 육군 총사령관이었던 발터 폰 브라우히치와 총참모장 프란츠 할더가 필사적으로 그를 변호했다.
뒤이어 들려온 구데리안의 승전보-됭케르크에 포위된 영불 연합군 20만 명을 괴멸시켰다는 소식에 히틀러는 구데리안의 군사재판 회부를 철회했다.
비록 독단적인 면이 어느 정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충성하는 데다가 지금까지 늘 뛰어난 전과를 올렸던 그를 히틀러는 계속해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구데리안 장군, 계속해보시오."
"예, 애석하게도 저희가 가진 공군과 해군으론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영국의 해군과 공군을 상대로는 승리를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구데리안의 말에 괴링은 다시 발끈했지만, 히틀러가 눈앞에 있었기에 당장은 참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해군 장성들도 평정심을 지키고 있었다.
독일 해군이 영국 해군보다 약하다는 사실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데리안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따라서 지금 상태론 섣불리 영국 공략을 시도하다간 되려 큰 피해만 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국 본토 공략을 미루고, 영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들을 공격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영국인들이 가진 자산이라...... 인도를 말하는 거요? 유감스럽게도, 인도까지는 거리가 제법 먼데?"
"물론 인도는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이자 저들의 생명줄입니다. 인도 역시 장차 대독일의 손에 들어와야 하지만, 당장은 무리지요. 대신 인도로 가는 길을 장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로 가는 길 말이오?"
"지도를 봐주십시오, 총통 각하. 이탈리아 밑에 있는 작은 섬이 보이십니까?"
히틀러는 허리를 굽혀 지도에서 이탈리아를 찾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코딱지만 한 작은 섬을 응시했다.
섬 이름은 몰타였다.
"몰타 섬? 여길 노리자는 것이오?"
"맞습니다, 총통 각하. 비록 작은 섬이지만, 그 중요성은 감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중해에서 지브롤터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영국이 이집트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치는 섬입니다. 이탈리아도 그 중요성을 알기에 지금도 공격을 퍼붓는 중입니다만, 섬의 방비가 생각보다 단단해 공격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라고 합니다."
"파스타 녀석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우리가 파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을 때도 그 얼간이들은 국경도 넘지 못하고 빌빌거리지 않았던가."
말이 나온 김에 히틀러는 이탈리아군이 보여준 졸전을 비웃었다.
독일군 기갑부대가 파리를 점령하고 프랑스 정부의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자칭 열강이던 이탈리아는 국경지대의 프랑스 수비군에 막혀 패퇴만 거듭했다.
프랑스의 항복이 조금만 늦었어도, 프랑스 수비군이 되려 이탈리아 영토로 진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공수부대를 보내 이탈리아군과의 연합 작전으로 몰타를 점령하는 것이 제1단계입니다. 가능하다면, 비시 프랑스의 지중해 함대도 작전에 동원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우리 해군을 지중해로 보낼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몰타를 점령한 다음에는 육군을 이탈리아령 리비아로 보내 이탈리아군과 함께 이집트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2단계입니다."
미리 꼼꼼하게 준비했는지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3단계는 이집트를 장악해 수에즈 운하를 봉쇄하거나 수중에 넣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해 터키와 이란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동시에 수에즈 운하를 상실한 영국은 인도로 가기 위해서 멀리 희망봉을 돌아서 가야만 합니다. 비용은 물론이고, 시간의 훨씬 심해질 것입니다."
작전대로라면 영국을 완벽하게 압박할 수 있는 지중해 방벽 라인이 생기게 된다.
"자연스레 영국의 인도에 대한 장악력은 약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도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한층 쉬워질 것입니다. 인도가 위험해지면, 자연스레 영국은 인도를 지키기 위해 우리와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구데리안이 설명을 마치자, 히틀러는 매우 고심했다.
당장 영국 본토를 공략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구데리안의 말대로 해군만큼은 영국에 비해서 확실히 열세였다.
공군의 경우, 괴링은 공군이 RAF보다 더 뛰어나다고 큰소리치긴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RAF는 최소한 독일 공군과 동등했다.
공군은 좋게 봐줘서 적과 동등하다고 치더라도, 해군이 완벽하게 열세인데 어떻게 영국 본토 공략이 가능하겠는가?
차라리 구데리안의 말대로, 적의 본진을 치는 것보다 서서히 압박해가면서 적을 협상장으로 끌고 오는 편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구데리안은 자신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적을 공격하는 과감함을 보여주었다.
이는 명백한 명령 불복종으로, 총통이 내린 지시를 무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데리안은 충분히 반역죄에 적용될 수 있었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을 테고.
하지만 구데리안의 명령 불족종은 히틀러에게 연합군 20만 명의 괴멸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로 돌아왔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아군이 이토록 크나큰 승리를 거두게 될 거라고.
구데리안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그가 자신의 명령에 따랐다면 됭케르크에 포위된 연합군은 고스란히 영국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하지만 구데리안은 그걸 막아냈다.
구데리안이 총통인 자신보다 병법에 관해선 더 밝다는 사실을 히틀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히틀러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회의실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갈 무렵, 히틀러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과 눈으로 향했다.
"좋아, 결정했네. 괴링!"
"예, 총통 각하!"
"슈투덴트 장군(독일 공수부대 지휘관)에게 연락해서 이곳으로 부르게. 지금 당장!"
"초, 총통 각하. 그 말은 즉......."
괴링의 물음에 히틀러는 엄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몰타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