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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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7화
17화 됭케르크 철수작전 (4)
프랑스군의 견고한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됭케르크를 향한 질주를 감행한 제10기갑사단은 5월 28일 오후 3시, 목표로 했던 됭케르크 근처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철수가 한창이었다.
해변에 몰린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소수의 벨기에 병사들은 무기고 뭐고 다 내던진 채 배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배들의 종류는 다양했다.
군함만큼이나 거대한 화물선부터 군사작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화려한 요트, 유람선과 작디작은 어선들까지.
이 모든 배들이 포위망에 갇힌 연합군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과연, 대영제국다운 모습이군."
해변에 모인 배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한 빌헬름 마이어 대위는 비록 적들이지만, 진심으로 그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국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직접 배를 몰아서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그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이었다.
지금은 맡은 바 책임을 다해 수행해야만 했다.
프랑스군 일부가 아직도 됭케르크 외곽에서 필사적으로 저항 중이었지만, 전멸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됭케르크 해안가가 한눈에 들어오는 상황에선 그들의 저항도 사실상 무의미했다.
"중대장님, 전 포대, 방열 완료했습니다!"
목표는 그가 따로 지정해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눈앞에 널린 게 목표물이었으니까.
"발사!"
마이어의 구령이 떨어지자 6문의 88mm 대공포가 불을 뿜었다.
곧이어 해변에선 6개의 폭발이 일었다.
88mm가 명중한 곳 주변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탄착점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주인을 잃은 팔과 다리 살점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일격에 즉사한 병사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리나 팔만 날아간 병사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죽음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졌다.
허나 이것이 전쟁이었다.
"재장전! 서둘러라!"
***
해변은 지옥 그 자체였다.
난데없이 가해진 포격으로 여태까지 유지되던 질서는 무너지고 혼란과 공포만이 남았다.
적기의 공습이 아니었으므로 대공포병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뒤이어 또 한 번의 포격이 지상을 강타했다.
포격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던 병사들이 폭발과 이어지는 연기 사이로 자취를 감추었다.
연기가 흩어진 자리에는 핏자국과 내장 조각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맙소사! 이게 대체......!"
뜻밖의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세상 느긋하게 움직이던 선원들도 해변에 가해지는 포격을 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배에 탄 모든 이들의 시선은 해변에 꽂혀 있었다.
"설마 독일군이 벌써 여기까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역사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독일군은 5월 24일 히틀러가 내린 진격 중지 명령에 가로막혀 3일하고 8시간 동안이나 손가락만 빨아야 했고, 27일이 되어서야 다시 공격을 재개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
결국, 독일군은 철수작전이 모두 끝난 후에야 됭케르크에 도달했다.
그대로 독일군의 포로가 될 뻔했던 연합군 34만 명은 영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영국과의 협상을 위해 그냥 보내준 것이라고 열심히 자위하긴 했지만, 되려 영국인들의 사기만 올려준 히틀러 최악의 실수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그래야 하는데.......
포탄은 이어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을 향해서도 날아왔다.
아무래도 적들은 해변에 널린 병사들을 공격하는 것보다 이미 병사들을 태우고 있는 배들을 격침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포탄 몇 발의 바다에 떨어지자 커다란 물기둥이 솟았다.
포탄에 직격당하지 않아도 병사들을 가득 태운 배들은 금방 균형을 잃고 전복되었다.
물에 빠진 병사들은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다른 배들도 포격 때문에 병사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질 못했다.
포격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던 요트 한 척이 포탄을 직격으로 맞고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며 침몰했다.
사람의 팔다리와 요트의 선체를 이루던 나무토막이 물 위를 두둥실 떠다녔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나무토막으로 몰려들었다.
포격이 점차 맹렬해지자 구조를 포기하고 속도를 올리는 배들이 늘었다. 당장 배에 탄 병사들만이라도 살리자는 주의였다.
배들이 하나둘씩 멀어지자 해변에 있던 병사들이 절망 어린 비명을 질렀다.
"돌아와! 이 겁쟁이들아!"
많은 병사가 포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뛰어들어 떠나는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하지만 거친 파도는 그들을 자꾸만 해변으로 몰아냈다.
물에 젖자마자 금방 무거워지는 코트와 군화도 병사들을 방해했다.
많은 병사가 배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해변에서 완전히 멀어져 바다 한가운데로 온 뒤에도 병사들의 시선은 해변 방향을 향해 있었다.
포성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 배에 탄 병사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해변에서 본 충격적인 광경에 넋을 잃었다.
지옥이 있다면,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해변에서 본 참상이 떠올랐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폭탄들과 폭음, 병사들의 비명, 뒤집히는 배와 수면을 떠다니는 주인 없는 팔다리들.
필사적으로 헤엄치다 끝내 가라앉는 수많은 병사의 모습까지.......
잊으려고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우읍......!"
영 못 볼 꼴을 봐서 그런지 속이 메스꺼웠다.
이미 몇몇 병사들은 밖에 얼굴을 내민 채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배는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영국에 도착했다.
부둣가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아직 그들에겐 뒹케르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모양인지 하나같이 웃는 얼굴들로 우리를 환대했다.
사람들은 배에서 내린 병사들에게 몰려들어 담요를 건네고, 따뜻한 차를 권했다.
주민들의 진심 어린 환대는 지옥 같은 전장에서의 경험으로 얼이 나간 병사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잘 돌아왔소, 군인 나으리들!"
"스콘 좀 드시겠수?"
"자자, 따뜻한 커피 한 잔들 하시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내 몸에는 누군가가 주고 간 담요가 걸쳐져 있었고, 양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홍차와 잼과 크림이 발라진 스콘이 놓여 있었다.
다른 병사들의 사정도 모두 비슷했다.
오랫동안 굶주린 탓에 병사들은 주민들이 건네는 음료와 음식을 거절하지 않았다.
스콘의 달달한 향이 코에 닿자, 나도 이성을 잃고 그것을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스콘을 삼키고 차를 마시느라 여념이 없었다.
배에 음식이 들어가자 이제야 좀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말끔한 제복을 차려입은 중령이 나타나 우리를 역으로 인솔해서 데려갔다.
역에는 이미 우리를 내륙의 막사로 데려다줄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열을 맞춰 승차한다! 승차!"
열차에 오른 나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배는 끊임없이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병사들을 반기는 주민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사람들은 해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웃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사. 그냥 바깥 풍경을 좀 보고 싶어서 말이죠."
배에 오른 후 처음으로 입을 연 게이츠 상사의 물음에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게이츠 상사의 얼굴이 그리 좋지 않았다.
"저는 제가 잔인한 광경에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까 전부터 해변에서 봤던 광경이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말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10여 분 뒤 열차가 출발하자 그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몸에 긴장이 풀리자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애덤도, 다른 중대원들도 모두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긴 열차 칸에 깨어 있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는 듯했다.
난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장은 목숨을 건졌고, 무사히 영국까지 왔으니 한동안 무사하겠지만,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됭케르크에서 아군이 공격을 당했으니, 이것이 전쟁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정부는 과연 전쟁을 계속하려고 들까?
처칠 그 양반이야 뼛속까지 반나치였으니 무조건 전쟁을 지속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영국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됭케르크에서의 참사가 알려진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정부를 지지할까, 아니면 그 반대를 외치게 될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내 앞날도 거기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
1940년 5월 29일 저녁.
처칠은 램지 제독으로부터 다이나모 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보고를 받았다.
28일 오후 3시부터 해안을 덮친 독일군의 포격으로 인해 철수작전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작전은 포격이 가해지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병사들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을 감내하며 꾸역꾸역 해변으로 몰려들었고, 배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병사들을 구조했다.
이 같은 영웅적인 행위로, 약 13만 5천 명에 달하는 병력이 무사히 영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병력의 98%가 영국군이었고, 나머지 2%는 프랑스군이었다(해변에는 벨기에군도 있었지만, 탈출에 성공한 병사는 없는 것으로 나왔다).
29일 아침, 포위망 외곽을 필사적으로 방어하던 최후의 프랑스군이 항복하면서 독일군 전차부대는 해변으로 달려들었고,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해변에 남아있던 연합군을 휩쓸었다.
보고서에는 해변에 남겨진 병력들 중 전사자가 몇이나 되고, 부상자가 몇이나 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수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철수에 실패한 20만 병력이 모두 독일군에 의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단 거다.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자, 진실이었다.
그날 밤, 처칠은 잔뜩 취했다.
늘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며 언제든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부하던 그였지만, 막상 그 최악의 경우가 현실로 닥치자 도저히 술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다.
훗날 역사가들로부터 '영국 역사상 최악의 순간들 중 하나'로 기록된 됭케르크 철수는 막을 내렸다.
이제 곧 여름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 그리고 영국인들에겐 기나긴 겨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