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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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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화

16화 됭케르크 철수작전 (3)

 

 

5월 26일.

 

"보슈(프랑스인들이 사용했던 독일인에 대한 멸칭)들이 온다!"

 

전방에 독일군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장 르노벨 중위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전차를 향해 뛰어갔다.

 

조종수 마리오 파르빌 하사는 이미 전차에 탑승한 상태였다.

 

장이 전차 안으로 들어서자 마리오는 능청을 떨었다.

 

"중위님,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지각입니다, 지각!"

"나도 알고 있어!"

 

빌어먹을 보슈 새끼들, 커피 마실 시간도 안 주나.

장은 투덜거리면서 포탑 구석에 처박아뒀던 전차병용 헬멧을 머리에 썼다. 그리고 수기를 꺼내 휘하 전차들에게 전투 준비 명령을 하달했다.

 

프랑스군의 전차들은 독일군의 전차들보다 성능이 더 우수했지만, 무전기가 달려 있지 않아 전근대적인 방식인 수기를 통한 신호로 명령을 전달했다.

 

반면, 전차의 성능은 떨어지지만 모든 차량마다 무전기가 장착된 독일군은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다.

 

이러다 보니 프랑스군은 우수한 전차들을 가지고도 소통의 부재 때문에 독일군 전차대에 의해 무너지기 일쑤였다.

 

장의 명령은 늘 간단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알아서 판단하고 싸우도록.

 

명령을 확인한 전차들이 녹색 수기를 위로 두 번 들어 올렸다.

 

'수신 완료'라는 뜻이었다.

 

"무전기만 달려 있었어도 그 X 같은 수기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죠. 높으신 분들은 왜 아직도 수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마리오의 말에 장도 동감을 표했다.

 

"원래 틀딱들이 다 그렇지 뭐. 오늘내일하는 노땅들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겠어?"

 

장은 37mm 철갑탄 한 발을 약실에 밀어 넣었다.

 

그가 탑승한 호치키스 H39 경전차는 승무원이 전차장과 조종수, 단 2명뿐이라 전차장이 탄약수와 포수까지 겸임해야 했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온다!"

 

준비가 끝나기 무섭게 독일군의 전차가 짙은 모래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첫 상대는 1호 전차였다.

 

목표물을 확인한 장은 핸들을 돌려 포탑을 회전시켰다.

1호 전차가 십자선의 정중앙에 놓이자 가차 없이 발사 페달을 밟았다.

 

"명중!"

 

차체 정면에 37mm 철갑탄을 맞은 1호 전차는 발에 채인 강아지처럼 좌측으로 획 돌더니 그대로 도랑에 처박혔다.

탈출한 인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방금 일격에 승무원 전원이 즉사한 듯했다.

 

뒤이어 나타난 2호 전차가 20mm 기관포를 발사했지만, 기관포탄은 H39의 전면을 뚫지 못하고 맞는 족족 도탄 되었다.

 

적이 열심히 기관포를 쏘는 동안, 장은 두 번째 철갑탄을 장전했다.

 

"발사!"

 

자신이 장전하고, 쏠 때도 직접 발사를 외치는 건 장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가 쏜 철갑탄은 2호 전차의 차체 하단을 직격 해 변속기를 망가뜨렸다. 적 전차는 전투 불능에 빠졌다.

 

"좋았어!"

 

장이 세 번째 철갑탄을 장전하는 사이, 우측에서 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관측창에 눈을 갖다댄 장은 불에 휩싸인 H39 2대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독일군 전차들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리오! 뒤로 후진!"

 

재빠른 판단이 그와 마리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3호 전차가 발사한 37mm 철갑탄은 간발의 차이로 장의 전차를 비켜나갔다.

 

장은 격파된 아군 전차의 뒤에 포탑을 돌렸다.

 

"빌어먹을 녀석들, 비겁하게 우측으로 돌아서 오다니."

 

조금 전 상대했던 녀석들은 아무래도 미끼였던 모양이었다.

 

측면을 책임지기로 한 대전차포병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장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었으므로, 눈앞의 적들부터 먼저 상대해야 했다.

 

3호 전차들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격해왔다.

장은 미리 정해둔 대로, 일단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부터 겨냥했다.

 

적의 직사각형 차체가 조준경에 잡히는 즉시 냅다 포탄을 발사했다.

 

결과는 명중이었다.

 

"맞았다!"

 

차체를 관통당한 3호 전차는 검은 연기를 뿜어대며 정지했다.

포탑의 해치가 열리더니, 부상 당한 독일군 전차병들이 튀어나왔다.

 

장은 공축기관총을 갈기고 싶었지만, 상대해야 할 적들이 아직 2대나 남았으므로 그들을 그냥 도망치게 내버려 두었다.

 

벌써 200m까지 다가온 3호 전차가 먼저 포에 불을 뿜었다.

 

다행히 적 전차의 포탄은 차체에 커다란 흠집만 남기고 도탄 되었다.

 

"우윽!"

 

허나 충격파는 전차 내부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차체의 각도가 5도만 더 틀어졌어도 포탄은 관통되었을 것이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도 전장에서는 생과 사가 갈렸다.

 

아직까진 행운의 여신이 장에게 미소를 짓는 듯했다.

 

번개같인 속도로 장전을 끝낸 장은 망설임 없이 페달을 밟았다.

주포의 포구에서 불꽃이 튀면서 탄피가 사출되었다.

 

연대장으로부터 직접 연대 최고의 전차병이라 인정받은 그답게 이번에도 포탄은 적 전차의 정면에 명중했다.

 

폭발이 이는 모습을 본 장은 쾌재를 불렀다.

 

"좋았어! 어?!"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분명 격파되었어야 할 전차가 아무 이상 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포탄이 맞았던 부분에는 약간의 그을음만 있을 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구멍이 뚫려서 화염을 내뿜고 있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아, 젠장맞을! 내가 유탄을 쐈어!"

 

이유는 금방 풀렸다.

 

상황이 너무 급박했던 나머지 철갑탄 대신 유탄을 장전했던 것이었다.

 

장갑 관통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37mm 유탄을 쐈으니, 적이 멀쩡할 수밖에 없었다.

 

"중위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자신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3호 전차를 본 마리오가 기겁하며 물었다.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급했다.

 

"저, 전진해! 아니, 후진! 후진!"

 

장의 지시대로 마리오는 전차를 뒤로 후진시켰다. 그런데 적들의 속도가 더 빨랐다.

 

어어 하는 사이에 어느새 2대의 3호 전차는 장의 H39와 겨우 50m 거리까지 근접한 상태였다.

 

두 전차의 포탑이 회전하여 장의 전차를 조준했다.

 

두 개의 철갑탄은 각각 차체 측면과 포탑을 직격 했다.

 

장갑이 뚫고 안으로 들어온 철갑탄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염은 좁은 전차 내부를 휩쓸었다.

해치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면서 불기둥도 덩달아 솟구쳤다.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돌파한 독일 제10기갑사단는 됭케르크 포위망 내부로 물밀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5월 27일.

 

"각하, 큰일 났습니다!"

 

참모들과의 오랜 회의를 끝내고 겨우 잠을 청하려는 장-마리 샤를 아브리알 해군 중장에게 급보가 전해졌다.

 

"또 무슨 일인가?"

 

숙면을 방해받은 아브리알은 짜증이 역력한 티를 팍팍 내면서 간이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부관의 손에서 전보를 낚아챘다.

 

전보를 읽어 내려가던 아브리알의 얼굴이 곧 창백해졌다.

 

전보를 든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맙소사, 이게 대체......."

 

독일군 제10기갑사단의 맹공으로 전선을 지키던 프랑스군 32, 60보병사단의 방어선이 붕괴하였으며, 각 부대에서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독일군 기갑부대가 아군의 후방에까지 나타나 보급소를 유린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전선이 돌파당했다는 소식을 들리자 겁을 먹은 병사들의 탈영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를 막아야 할 장교들까지 탈영에 가담하는 사례까지 보고되고 있습니다."

"21보병사단과 62보병사단은? 어떻게 되었지?"

"두 부대와 교신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각하."

"그, 그렇다면 당장 전령을 보내게. 가서 1개 연대씩 차출해서 구멍이 난 전선으로......."

 

아브리알은 말꼬리를 흐렸다.

제 발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각하, 곧 독일군이 이곳에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속히 대피를!"

"하지만,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아브리알의 물음에 부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은 이미 독일군의 포위망 안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어쩌면 좋지?'

 

아브리알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전선으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진 보급소에까지 독일군이 나타났다면 이미 전선은 완전히 붕괴한 상황일 것이다.

 

그 말인즉, 이제까지 방어선에 부딪혀 꼼짝 못 하던 적 병력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그는 당번병을 시켜 물을 가져오게 했다.

 

당번병이 물이 담긴 잔을 쟁반에 담아 가져오는데,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엔진 소리도 함께 들렸다.

 

불길함을 감지한 부관은 밖으로 나갔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돌아왔다.

 

부관의 얼굴색을 본 아브리알은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각하, 독일군입니다!"

 

아브리알이 지휘소로 삼은 건물 앞까지 독일군이 온 것이다!

 

이미 전의를 잃은 프랑스군 병사들은 독일군이 나타나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거나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독일군은 항복하는 프랑스군은 놔둔 채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사격했다.

비명과 총성의 하모니가 휘몰아쳤다.

 

곧이어 아브리알이 있는 곳까지 독일군이 나타났다.

 

문을 거칠게 걷어차며 안으로 뛰쳐 든 독일 병사는 탁자에 모여있는 3명의 프랑스군을 발견하곤 한 달 전 급속으로 배웠던 프랑스어로 소리쳤다.

 

"Haut les mains(손 들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며 서투른 프랑스어로 소리치는 독일군을 향해 아브리알은 서글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권총은 탁자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잠시 후, 구데리안은 10기갑사단 선발대로부터 짧은 보고를 받았다.

 

'프랑스 해군 북부 해군사령관 장-마리 샤를 아브리알을 포로로 잡음. 진격을 계속함.'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보고에 구데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아까 전부터 베를린에서 온 무전으로 무전기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베를린의 질책보다 더 중요한 게 눈앞에 있었다.

 

"자, 이대로 됭케르크까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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