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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44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44화

44화 사막의 여우들 (3)

 

 

"으아, 으아아!"

"야, 이 새꺄! 아가리 닥치지 못해?!"

 

이어지는 포격에 정신줄을 놔버린 신병이 괴성을 질러대자, 마찬가지로 인내심이 한계에 봉착한 고참병이 쌍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미 정신줄을 놔버린 이에게 고참의 쌍욕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으어, 우아아! 구와아아악!"

"이 씹새끼가 진짜!"

 

결국, 이성을 잃은 고참병이 신병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병사들이 뜯어말렸지만 한 번 잃어버린 이성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야, 야! 그만 둬!"

"뭐 하는 짓이야, 이게!"

"다들 비켜! 이 새끼 오늘 내가 죽여버릴 거니까!"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묵직한 150mm 유탄 한 발이 떨어졌다.

 

화산의 분화처럼 맹렬한 폭발이 일었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그을음과 바짝 타버린 육편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지옥과도 같았던 포격이 겨우 끝났을 때, 안심하며 참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영국군들은 자신들을 향해 노도처럼 밀려오는 독일군의 대열과 마주했다.

 

"도, 독일군이다!"

"전투 준비! 서둘러!"

 

영국군은 서둘러 전투를 준비했지만, 포격으로 몸과 정신 둘 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병사들은 잽싸게 움직이지 못했다.

 

전투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독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목표 1시 방향, 거리 500! 유탄 장전!"

"유탄 장전!"

"쏴!"

 

3호 전차의 50mm 유탄에 맞은 병사 둘이 공중으로 치솟고, 왼팔이 절단된 장교가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차체 전면에 달린 MG34도 불을 뿜어, 소총을 쏘아대던 영국군 병사들을 벌집 피자로 만들었다.

 

"적 전차다! 차체 하단을 노려!"

"발사!"

 

방어선에 배치된 2파운더가 불을 뿜자, 돌격하던 3호 전차는 차체 하단에 구멍이 뚫려 그대로 정지했다.

적 전차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본 포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맞았다!"

"한 발 더!"

 

이번에는 차체 중앙부를 향해서 포탄을 발사했다.

연속으로 포탄 두 발을 얻어맞은 3호 전차는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침묵했다.

살아남은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오다 총탄을 맞아 그대로 널브러졌다.

 

"적 전차 제압! 다음 목......."

 

목표 조준과 신속한 제압까지는 합격이었지만, 그 대가로 위치가 적들에게 노출되고 만 대전차포는 반쯤 시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독일군의 포탄이 날아왔다.

 

새 목표물을 찾던 대전차포병들은 유탄에 정통으로 맞아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영국군은 나름대로 저항했지만, 독일군의 맹공을 막지 못했다.

 

독일군은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영국군의 시체를 밟고, 그들의 시체로 메워진 참호를 건너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다가갔다.

 

***

 

"독일군이 온다!"

"이제 우린 다 죽었어!"

 

독일군이 알렉산드리아 근처까지 다가오자 알렉산드리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영국군 지휘관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고, 병사들은 문자 그대로 대패닉 상태.

 

일부 제정신 박히고 침착한 지휘관들은 병력을 긁어모아 도시 외곽에 방어선을 형성하고자 했지만, 문제는 그럴 병력도, 무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대다수 병력이 알렉산드리아 방어를 위해 차출되었으니.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방어선은 독일군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뚫려버렸다.

 

병사들? 장비?

전부 다 독일군에게 아작이 나거나 포로가 되어버렸습니다, 짠!

 

방어선을 만들고 싶어도 병력과 장비가 없다.

문자 그대로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영국군은 급히 카이로의 사령부에 'HELP'를 쳤지만, 그쪽도 상황이 다급하긴 마찬가지.

 

카이로의 영국군 사령부는 알렉산드리아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알렉산드리아로 병력과 물자를 보내는 사이 독일군이 먼저 알렉산드리아에 들이닥칠 게 너무나도 뻔했다.

 

어찌어찌 독일군보다 먼저 도착해 기적처럼 방어선 형성에 성공한다고 해도, 독일군에게 털리면? 카이로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리는데?

 

설상가상으로 적들은 독일군과 이탈리아군뿐만이 아니었다.

 

이집트 현지인들도 독일군의 공세에 동요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을 식민지처럼 대우하는 영국인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이참에 추축국과 힘을 합쳐 영국을 이집트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는 소리가 이집트 병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었다. 민간인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영국군 사령부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이집트군과 이집트 민간인들의 감시에 병력을 따로 배치했다.

그렇잖아도 병력과 물자 둘 다 부족한데, 그 둘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나도 많았다.

 

지옥이 다가오고 있었다.

 

***

 

"저곳이 바로 알렉산드리아로군!"

 

이탈리아군 총사령관 로돌포 그라치아니 원수는 참모들과 함께 언덕을 올라 알렉산드리아를 응시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의 맹폭으로, 알렉산드리아는 불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도시에서 수 km 떨어진 곳에서도 도시의 중심부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기 기둥을 쉽게 관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라치아니가 지휘하는 이탈리아 제23군은 롬멜이 지휘하는 DAK(Deutsche Afrikakorps,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뒤를 쫓아 밤낮으로 전진했다.

 

날마다 이어지는 전투와 강행군으로 병사들은 지쳐 있었지만, 사기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아직 알렉산드리아는 영국군의 수중에 있었지만, 그라치아니는 벌써 도시를 점령하기로 한 것처럼 들뜬 상태였다.

 

알렉산드리아, 고대 로마의 도시.

비록 로마타가 멸망하고, 이탈리아가 수십 개의 조각으로 나뉘는 바람에 저 오랜 역사를 가진 로마의 도시는 이민족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탈리아는 다시 강력해졌고, 옛 로마의 영광을 되찾으려 비상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초석이 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를 시작으로 카이로, 수에즈까지, 이 모든 도시는 다시 로마의 품으로 돌아오리라!

 

비록 로마를 멸망시켰던 게르만 야만족들의 후손인 독일군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유감이긴 했지만, 아무려면 좋았다.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 위해선 고대의 적들과 손을 잡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

 

어쨌거나 독일이 프랑스를 물리치고 영국군을 괴멸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라치아니는 야심이 많고,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적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독일군은 언제 공격을 개시한다고 하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시간 뒤입니다, 원수 각하."

 

DAK가 먼저 공격을 개시하면 이탈리아군도 뒤따라 공격을 가하기로 했다.

 

그라치아니는 이번에도 알렉산드리아 점령이라는 영광을 독일군에게 돌려야 한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지만, 대신 자신이 지휘하는 23군의 피해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었다.

 

아쉽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있었다.

대신, 카이로 함락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지휘하는 이탈리아군이 앞장을 서기로 했다.

 

로마에 있는 두체로부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카이로 함락만큼은 이탈리아군이 주인공을 맡아야 한다는 엄명이 내려왔으니 말이다.

 

"그럼, 전투 전까지 커피라도 마실까?"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원수 각하."

 

그라치아니가 돌아서자 당번병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전자에 담은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

 

"이봐, 한스. 불 좀 빌려주게."

"여기 있습니다."

 

전차장 구스타프 베르거 상사의 부탁에 포수 한스 크라머 병장은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표면에 금박을 씌운 영국제 라이터였다.

 

"고맙네."

 

베르거는 유노 담배를 태우며 곧 자신들이 돌격하게 될 알렉산드리아의 전경을 주시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지금도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단 포병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의 폭격기들도 도시를 폭격하는 중이었다.

 

지금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영국군은 틀림없이 죽을 맛이리라.

 

"이거야 원, 저희 몫은 남아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조종수 발터 헤크 상병의 농담에 잠시 폭소가 이어졌다.

그러나 전투 시작을 알리는 무전이 들리자 웃음은 뚝 끊겼다.

 

이제 일할 시간이다.

 

"시작됐군. 발터, 전속 전진!"

"예!"

 

베르거 상사의 4호 전차는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도시 외곽으로 진입하자, 영국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비 오듯이 쏟아지는 총탄조차도 독일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성대한 환영 행사로군. 한스, 저놈들한테 답장을 전해줘라."

"어디로 보내주면 되겠습니까?"

"음, 어디 보자. 1시 방향으로, 거리는 300."

 

브렌 기관총을 사격 중인 영국군을 향해 짧고 굵은 75mm 주포가 조준되었다.

 

발포 명령이 떨어지기 전, 한스가 제대로 쏠 수 있도록 발터는 속도를 낮추었다.

 

"조준 완료!"

"쏴버려!"

 

영국군의 기관총 진지는 75mm 유탄을 맞고 침묵했다. 뒤따르는 전차들도 일제사격을 가해 영국군의 저항거점을 빠르게 제압했다.

 

참호에 있던 병사들은 총탄을 피해 엎드려 있다가 전차들을 따라 돌격해오는 독일군들이 던진 수류탄에 폭사했다.

 

좌우에서 돌격하던 전차들의 아래서 폭발이 일어났다.

적 전차나 대전차포의 공격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작고, 조용한 놈들이었다.

 

-지뢰다!

-여기는 늑대 3, 궤도가 파손되었다!

 

영국군 공병들이 땅에 파묻은 대전차지뢰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뢰에 궤도가 끊어진 전차들은 발이 그대로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지뢰를 밟지 않은 전차들을 발이 묶인 동료들을 놔두고 그대로 전진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진해라!

 

전투 전 롬멜이 DAK 전군에 내린 명령이었다.

 

망가진 전차들은 전투가 끝난 후 회수해서 정비중대에 맡기면 될 일이다. 그러니 지금은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여기는 늑대 9, 궤도 파손! 기동 불가!

-대전차포다, 주의해!

-당했다! 탈출하겠다!

 

무전기에선 아군 전차들이 대전차지뢰를 밟아 궤도가 끊어졌다더니, 포탄에 맞아 전차가 망가졌느니 하는 얘기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베르거는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했다.

 

누가 다치고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데 신경 쓸 바에는 앞이나 보는 게 훨씬 낫지.

 

앞에서 뭔가가 반짝이는가 싶더니, 차체 전면에 불꽃이 튀면서 깡 소리가 났다.

 

위험을 무릅쓰고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베르거는 즉시 포탑 안으로 들어왔다.

 

"발터! 정지! 한스, 11시 방향으로 포탑 돌려!"

"예!"

 

4호 전차의 포탑이 향한 곳에는 사막색으로 도색한 크루저 MK. I 전차가 있었다.

 

입사각이 나빠서 포탄은 튕겨 나가고 말았지만, 대신 전면장갑에는 기다란 탄흔이 생겼다.

 

"찾았다! 11시 방향에 적 전차, 거리 450! 철갑탄 장전해!"

 

탄약수 아우구스트 비르크 상병은 철갑탄을 약실로 밀어 넣었다.

 

"장전 완료!"

 

그 순간, 적이 2탄을 발사했다.

 

이번 포탄은 차체 측면을 긁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측면에 달아두었던 각종 공구 상자들과 와이어가 줄줄이 떨어지고 말았다.

 

"발사!"

 

75mm 주포에서 불꽃이 튀어나오자, 베르거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적 전차는 포탑 전면에 구멍이 뚫린 채 불타오르고 있었다.

 

"적 전차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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