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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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40화
40화 어제의 동지, 오늘의 적 (8)
티파자 상륙 자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원래 작은 도시다 보니, 전에 하던 것처럼 대규모 융단폭격에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포격을 퍼부을 필요도 없었다.
아군 함대가 함포 사격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티파자 주둔군은 금방 기가 죽어 백기를 내걸었다.
그렇게 아군은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티파자를 접수했단 말씀.
"이게 바로 무혈입성이지!"
"이대로 알제까지 달린다!!"
"가즈아!"
알제의 방어가 워낙 탄탄한 탓에 인접한 티파자에 상륙해 육로를 따라 알제로 진격하자는 발상 자체는 그럴듯했다.
알제 앞바다는 이미 기뢰로 도배가 된 후라 배들이 접근하고 싶어도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로를 택한 것인데, 이 방법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영국군이 온다! 사격 개시!"
"여기가 뚫리면, 다음은 알제다!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
"이곳을 영국 놈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주자!"
아군은 금방 프랑스군의 격렬한 저항에 마주했다.
병력의 수와 장비의 질 모두 아군이 저들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저들의 사기만큼은 최소 우리와 동급이었다.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하냐면, 만약 프랑스 침공전 때도 저랬다면 파리 함락 저지는 물론이고 베를린까지 진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전차포! 대전차포다!"
"피격당했다! 탈출한다!"
"적의 저항이 너무 거세다! 지원 바람!"
"젠장, 이쪽도 급해! 어떻게든 잘 해봐!"
결국,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공군과 해군의 힘을 빌려야 했다.
다행히 제공권과 제해권 둘 다 우리에게 있었기에,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받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무전을 넣으면 해상에 대기하던 아군 전함들이 불러준 좌표에 따라 함포 사격을 가하고, 항모에서 발진한 폭격기들이 프랑스군의 머리 위로 폭탄을 투하했다.
아무리 육군이 강하다고 한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법이다.
"방어선이 뚫렸다! 전진!"
"자, 드가자-!"
해공군이 날린 포탄에 적들이 진지째로 날아가면, 아군 전차들과 보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밀고 들어가기를 반복.
마침내 아군은 알제 코앞까지 도달에 성공했다.
그런데.......
"저...... 소대장님?"
"응? 왜 그러냐?"
"배, 배, 배가 너, 너무 아파서, 화, 화장실 좀......."
"또?"
당장이라도 바지에 지릴 것 같아 죽겠다는 애덤과 별개로, 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말만 벌써 다섯 번째였다.
아직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할 수 없지. 빨리 갖다 와. 곧 중대장님 간담회야."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애덤의 고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어 대위와 함께하는 즐겁고 지루한 간담회가 끝나기 무섭게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는 녀석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중독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식중독이 분명합니다."
분 단위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애덤을 보다 못한 내가 진료소로 끌고 가자, 젊은 군의관은 단호한 태도로 유죄를 선언했다.
피고 애덤 키드, 죄목은 식중독.
"뭐 잘못 먹은 게 있나?"
"음....... 저, 그게......."
녀석은 켕기는 구석이 있는지 명확하게 대답 못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어림없지.
본인이 말하기 싫어도 어쩔 거야.
"어이, 애덤."
"예."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해. 그냥 네가 뭘 잘못 먹었는지만 얘기해주면 되는 일이라니까?"
"실은......."
"실은?"
그렇잖아도 작은 애덤의 목소리는 이제는 모깃소리보다 더 작아졌다.
"배가 너무 고파서 취사병들 몰래 베이컨을 조금......."
으이구. 내 이럴 줄 알았다.
군의관은 어이가 없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거 말고는? 다른 건 없고?"
"이, 있습니다."
"뭔데? 다 말해봐."
"베이컨으론 간에 기별도 차지 않아서 비스킷이랑 도넛도 조금...... 생각해 보니 색이 너무 갈색이어서 이상하긴 했는데......."
"......."
***
애덤이 급성 식중독으로 진료소에서 치료받는 동안,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 용병이 소대에 도착했다.
"매튜 브라운 일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3소대에 온 것을 환영하네."
이틀 전의 전투로 전차가 반파되는 바람에 졸지에 백수 신세가 된 2소대 인원을 데려와 임시 조종수에 임명했다.
이 매튜란 친구, 모병 포스터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반듯한 외모에 목소리도 굵고 듣기 좋았다.
애덤에겐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첫인상부터 호감이 가는 친구다.
아무튼 빈자리도 채웠으니, 이제 남은 것은 진격 명령뿐이다.
대대는 새벽부터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정비병들은 이미 정비를 끝낸 전차를 다시 이상이 있나 없나 점검하고, 전차병들은 늘 그렇듯 전투 전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빨아 재꼈다.
비흡연자인 나는 간이 화장실에서 오줌을 털어냈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초콜릿을 한 조각 씹어먹었다.
총상을 당했을 때, 위에 음식물이 있으면 더 위험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빵이나 비스킷 대신 초콜릿 정도면 괜찮겠지.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전차에 올라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 무전기가 울렸다.
-대대, 전진! 오늘 저녁은 알제에서 먹는다!
드디어 시작이군.
"소대, 전진! 매튜, 내가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 계속 밟아."
"알겠습니다!"
***
영국군이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모습은 멀리 떨어진 프랑스군 진지에서도 훤히 보였다.
"왔구만. 누가 개새끼들 아니랄까 봐 떼로 몰려오는군."
쥘 드 부크네 대위는 피우던 장초를 밖으로 힘껏 던진 뒤, 해치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쥘 대위다. 다들 조국 프랑스를 위해 전력으로 싸울 수 있도록, 이상."
쥘은 늘 짧고 간결하게 말하기로 유명했다.
전투 전일 때나, 전투 중일 때나, 전투 후일 때나.
"대위님, 슬슬 다른 멘트로 바뀔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조종수 클로드 코망 중사가 말했다.
늘 웃고 다녀서 중대에서 '광대'란 별명이 붙은 그는 항상 쾌활한 성격 덕분에 중대원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었다.
"내 마음일세, 클로드. 앞이나 보도록."
"예이, 예이."
쥘은 관측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국군과의 거리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었다.
적과 가까워질수록, 쥘은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쥘은 자기도 모르게 말라서 바스라진 입술을 핥았다.
마침내 적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쥘은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
지평선에서 섬광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이내 우렁찬 폭발음이 귀청을 때렸다. 동시에 모래와 파편도 쏟아졌다.
"적의 공격이다, 주의해!"
프랑스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조금 전의 폭발로 전차와 함께 돌격하던 보병 서너 명이 나자빠졌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다리의 절단면에서 흘러나온 피가 황금색 모래를 붉게 물들였다.
프랑스군 보병들도 총격을 가했다.
아군 보병들은 서둘러 전차 뒤로 피신해 적진으로 응사했다. 그동안 나는 잭슨에게 목표물을 지정해주었다.
"1시 방향에 적 기관총 진지!"
"조준 완료!"
약실에는 미리 유탄을 장전해두었다.
토마스는 다음 유탄을 들고 대기했다.
"매튜, 잠시 정지!"
"알겠습니다!"
매튜는 능숙한 솜씨로 전차를 부드럽게 멈춰 세웠다.
"발사!"
"발사!"
쿵.
주포를 떠난 유탄은 이윽고 적 기관총 진지 위로 지나갔다.
"불명중! 잭슨! 너무 높게 잡았잖아! 아래로 5도 낮춰!"
"죄, 죄송합니다!"
잭슨이 주포의 각도를 조절하는 사이, 적진에서 포가 발사되었다.
전차들 사이에 껴서 열심히 기관총을 쏘아대던 브렌건 캐리어 한 대가 폭발에 휩쓸려 전복되었다.
바닥에 엎드려 총을 쏘던 병사들도 파편과 불똥을 뒤집어쓰곤 고통에 몸부림치며 좌우로 데굴데굴 굴렀다.
내가 목표로 했던 기관총 진지는 다른 전차에 의해 제압되었다.
표적이 없어지자, 나는 잭슨에게 잠시 대기를 명한 뒤, 다른 목표물을 찾았다.
"찾았다. 잭슨, 정면으로! 포탑 돌려!"
"예!"
모래색 위장막을 두른 물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필시 적의 대전차포이리라.
"조준 끝!"
"쏴버려!"
발사 페달을 밟자 주포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목표물에서도 폭발이 일었다.
"좋아, 명중...... 어?"
유탄에 맞은 목표물은 멀쩡했다.
심지어 자력으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노, 놈이 움직입니다!"
"나도 보고 있어!"
이런. 아무래도 대전차포가 아니라 전차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유탄을 직격으로 맞고도 멀쩡할 수밖에.
그러나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적 전차의 정체였다.
"아니...... 저, 저게 왜 여기 있어?!"
***
"클로드, 이상 없나?"
"이상 없습니다, 대위님!"
"다행이군. 그럼 계속 쏴."
유탄이 날아와 폭발하는 바람에 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행히 전차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궤도와 엔진, 주포, 조준경 모두 멀쩡했다.
쥘이 지휘하는 샤르 B1 bis 중전차를 본 영국군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괴물이 왜 여기에 있지?
이제까지 낡아빠진 르노 FT-17이나 기껏해야 소뮤아 S35 정도만 상대했던 그들에게 샤르 B1의 등장은 충격을 넘어서 경악에 가까웠다.
프랑스 침공 당시 소뮤아 S35와 더불어 독일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안겼던 샤르 B1 bis.
프랑스가 항복한 직후 독일군에 의해 전량 압수되었지만, 페탱의 간곡한 요청으로 생각을 바꾼 히틀러는 알제리로 향하는 프랑스군에게 노획한 샤르 B1 bis 일부를 돌려주었다.
후에 프랑스로부터 많은 걸 얻어내기 위해선 무작정 핍박만 할 게 아니라 적당히 당근도 던져줘야 한다는 계산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덕분에 프랑스군은 알제리를 침공한 영국군에게 새로운 고난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
"클로드, 정지!"
전차를 멈춰 세운 쥘은 자신이 점찍은 표적으로 포탑을 돌렸다.
샤르 B1은 포탑에 장착된 47mm SA35 전차포 외에도 차체에 75mm 야포가 탑재되어 2개의 목표물을 동시 사격이 가능했다.
쥘이 주포를 격발시키자, 브렌건 캐리어가 요란한 폭발을 일으켰다.
온몸에 불이 붙은 기관총 사수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몸에 붙은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클로드도 차체의 전차포를 발사해 영국군 5명을 날려버렸다.
"좋았어! 에밀, 장전해!"
"계속 유탄으로 합니까?"
차체에 고정된 75mm 야포 전용 탄약수를 맡고 있는 에밀 올랑베르 병장이 물었다.
클로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아니. 철갑탄으로."
"알겠습니다!"
에밀이 철갑탄을 장전하는 사이, 쥘도 무전수 겸 포탑 전용 탄약수 기 메나르 하사로부터 47mm 유탄을 건네받았다.
"대위님! 유탄입니다!"
샤르 B1 전차에는 전차장과 조종수, 그리고 탄약수와 무전수까지 총 4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데, 주포가 2개나 되다 보니 무전수도 탄약수 역할을 겸했다.
기존의 탄약수가 차체의 75mm 야포를 담당하고, 무전수가 포탑의 47mm 전차포용 탄약을 담당하는 다소 기형적인 방식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저 무슨 해괴한 광경이냐고 혀를 찰 노릇이겠지만, 숙련된 인원들이 탑승한 샤르 B1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응속도를 보여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장전 끝!"
에밀의 외침이 귀에 닿자, 클로드는 75mm 야포 후미에 달린 발사판을 손으로 꽉 눌렀다. 그러자 야포의 포구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
그가 발사한 75mm 철갑탄은 정면의 마틸다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리고 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