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3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39화
39화 어제의 동지, 오늘의 적 (7)
"좋아, 좋아. 바로 이거지! 잘해주고 있구만!"
전선에서 들려오는 승전보 소식에 처칠의 입가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갈굼이 줄어든 각료들과 장군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특히,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침공을 건의했던 알렉산더는 매일같이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프랑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모로코의 술탄 무함마드 5세는 잽싸게 편을 바꿔 영국에게 전적으로 협조할 뜻을 밝혔고, 오늘 아침에는 아군의 오랑 함락 소식이 전해졌다.
원래 계획상으론 오랑과 알제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었지만, 알제는 프랑스군의 방비가 워낙 단단해 결국 오랑 공략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랑을 함락시켰으니, 프랑스군도 지금쯤 많이 동요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잖아도 최근 투항하는 프랑스군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독일 놈들 밑이나 닦아주는 것보다, 우리와 함께 싸우는 편이 그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들에겐 더 나은 선택일 테니 말이야."
처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자신 앞에 놓인 신형 전차의 개발에 관한 일련의 보고서들을 살펴보았다.
현재 영국군의 주력은 보병전차인 마틸다와 발렌타인, 그리고 얼마 전부터 생산이 시작된 크루세이더 순항전차, 크게 이 세 가지였다.
마틸다는 방어력은 좋지만 속도가 너무 느렸고, 발렌타인은 마틸다보단 빠르지만 어차피 둘 다 속도는 거기서 거기였다.
느려터진 마틸다와 발렌타인으론 기동전을 하기 어려우니.
장갑이 얇은 대신 속도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크루세이더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이놈도 문제가 참 많았다.
아니, 비싼 돈 들여가면서 차체 전방에 기관총탑을 달아놨더니 정작 환기가 안 돼서 사수가 화약 연기에 질식할 정도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결국 다시 제거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비용도 비용이고 시간도 시간대로 들었다.
전쟁을 치르느라 한 푼조차 아껴야 할 판인데, 이 무슨 낭비란 말인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셋 다 주포가 동일한 2파운더라, 대전차용이면 몰라도 대보병전에선 아주 환장할 성능이라는 점이다.
전방부대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들의 내용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2파운더 X 같아요, 다른 놈으로 달아주세요~~ 징징징.
예전의 그였다면 나약하다고 화부터 내거나 쿨하게 무시했겠지만,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아서 그레이 소위(이젠 중위라고 한다)의 진언대로, 철갑유탄과 유탄을 보급해줬을 뿐인데, 엄청난 반응들이 쏟아졌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줬냐고.
물론 화력이 거기서 거기라 한계가 명확했지만, 당장 일선의 병사들은 더 이상 공축 기관총으로 적 보병들과 대전차포를 상대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호평 일색이었다.
거기다가 독일에 잠입한 스파이들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군은 신형 전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한다.
히틀러가 직접 임명한 총책임자는, 자그마치 '됭케르크 학살'을 연출해낸 희대의 악마 하인츠 구데리안!
이러니 가만히 있을 수가.
하루라도 더 빨리 독일보다 먼저 신형 전차를 만들어 전선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잘나신 히틀러 놈 면상에 펀치를 날려줄 수 있지.
"역시...... 당장은 무리겠지?"
"그렇습니다, 각하."
보고서에는 처칠이 제안-이라 쓰고 요구라고 읽는다-한 75mm급 주포의 개발이 아직이라 당장은 6파운더를 탑재할 수밖에 없다고 적혀 있었다.
이 정도야 예상했던 일이라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추후 75mm급 주포를 장착해도 별문제가 없도록 포탑의 크기를 확장하라는 지시는 내려둘 필요가 있었다.
이놈의 개발자들이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을 작자들이거든.
그러니 더욱 더 빡세게 굴릴 수밖에.
***
"이거지! 바로 난 이걸 원했어!"
신형 3호 전차의 시제품을 본 히틀러는 생애 처음으로 동물원에 간 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뒤에서 히틀러를 바라보는 구데리안 역시 뿌듯한 표정으로 시제품을 바라보았다.
히틀러가 말하고, 구데리안이 실행에 옮긴 3호 전차에 50mm 60구경장 주포를 탑재하는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주포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탑재가 불가능하다는 병기국의 주장과 달리, 3호 전차는 50mm 60구경장 주포를 탑재하고도 잘만 기동했다.
화력 시험에서도 60구경장 주포는 기존의 42구경장 주포보다 더 높은 관통력을 보여주었다.
구데리안은 그와 동시에 Sd.Kfz 251 반궤도 장갑차와 Sd.Kfz 231 8륜 정찰장갑차에 75mm 24구경장 주포를 탑재한 버전도 선보였다.
본래 75mm 24구경장 주포를 탑재했던 4호 전차와 3호 돌격포는 그보다 더 강력한 신형 주포를 장착할 예정이었다.
"보병수송용 장갑차와 정찰장갑차에도 75mm 주포를 달면, 대보병전은 물론, 제한적인 전차전 또한 가능합니다. 물론, 전차나 돌격포처럼 운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매복하거나 제대로 구축한 진지에서 돌격해오는 적들을 상대하는 일에는 탁월할 겁니다"
"음, 한마디로 움직이는 보병포로군. 거기다 정찰 중 적과 조우했을 때도 나름 유용하게 쓰이겠어."
히틀러는 구데리안의 새 작품들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건? 자주포요?"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히틀러의 관심은 이번에는 신형 자주포로 향했다.
3호 전차의 차체에 150mm sIG 33 중보병포를 올려서 만들어낸 녀석이었다.
구데리안은 이 녀석을 '3호 자주포'란 이름으로 불렀다.
"이전에 만든 1호 자주포 비존(Bison, 들소)은 그렇잖아도 작고 약한 1호 전차의 차체에 너무 무거운 포를 올린 탓에 고장이 빈발했습니다만, 이렇게 넓고 튼튼한 3호 전차의 차체를 사용하면 신뢰성과 기동성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이번에도 자주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곤 자주포 옆에 서 있던 승무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에야 히틀러는 만족한 얼굴로 다음 시제품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아주 좋군. 완벽해. 이것들이 전장에 투입되면, 아군은 더 이상 프랑스 침공전에서 보여줬던 추태를 반복하지 않을 거요."
"맞습니다, 총통 각하."
프랑스 침공은 파리 함락과 프랑스의 항복이라는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지만, 히틀러는 그 과정에서 독일의 전차들이 영국과 프랑스 전차들에게 밥솥 터지듯이 터져나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영국에 상륙했을 때 같은 망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보다 더 강한 신형 전차가 꼭 필요했다.
"참, 그러고 보니 이집트 전선은 어찌 되어가고 있소? 요즘 소식을 못 들은 것 같은데."
히틀러의 물음에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알프레트 요들 대장이 말을 꺼냈다.
"현재 아군과 이탈리아군이 엘 알라메인에서 영국군과 교전 중입니다."
"아직도 엘 알라메인인가? 롬멜 장군에게 전하시오.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까지 카이로를 점령해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히틀러의 머릿속에는 다 계획이 잡혀있었다.
일단, 수에즈 운하를 봉쇄해 지중해를 완전히 장악하면, 터키와 이란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게 더 수월해질 것이다.
터키에겐 키프로스와 시리아 북부- 비시 프랑스가 반발하겠지만, 일본에게 빼앗긴 인도차이나를 되찾는 데 힘 좀 써주면 될 일이다-를, 이란에겐 발루치스탄(현 파키스탄 남부) 일부를 떼어준다고 하면 두 나라도 귀가 솔깃해지겠지.
그렇게 두 나라의 참전을 끌어낸다면, 인도는 물론 소련 남부까지 동시에 공략이 가능해진다.
아군이 수에즈 운하를 넘어 중동에 진출하면 영국은 알아서 고개를 조아리겠지.
다른 건 몰라도 인도만큼은 지켜야 하니까.
그렇게 영국을 꺾은 다음엔, 소련을 공격한다.
소련, 공산주의를 숭배하는 야만인들이 사는 나라.
그곳을 정복해야만 독일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다.
소련의 광활한 영토와 자원, 그리고 인구를 통제할 수 있다면 향후 수백 년 동안 세계의 그 어느 나라도 감히 독일에 맞서지 못 하리라.
독일 민족이 세계의 정상에 군림하는 일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히틀러는 생각했다.
***
"하아, 이젠 지친다, 지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과 푸념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곳곳에서 동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배에 타라는지 원."
"언제까지 이런 짓을 반복하게 될지 감도 안 잡힙니다."
오랑을 점령한 지 이제 겨우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번에도 수송선을 타고 한동안 바다 위를 떠다니다가 다시 상륙해서 적들과 전투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하, 환장하겠네.
열심히 통 안에서 쳇바퀴나 굴리는 햄스터가 된 기분이다.
그나마 햄스터는 지가 좋아서 하는 거지 우리는 뭐냐고.
그저 군인이라는 죄 밖에 없단 말이야.
"그나저나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간답니까?"
애덤의 질문에 나는 브랜슨 중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양반이 어디로 간다고 말했더라?
파자마 뭐시기였던 거 같은데.
그래, 이제 생각났다.
"티파자. 알제 코앞에 있는 작은 도시라는군. 거기가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될 거야."
"그냥 알제에 바로 상륙해버리면 되는데 뭣하러 그런 곳에 상륙한답니까?"
"나야 모르지. 장군님들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게 아니겠냐."
원래 역사처럼 오랑과 알제 두 곳에 동시에 상륙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별 수 있나.
이미 내가 알던 역사와는 거리가 1억 광년 정도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대충 추측해보자면, 원 역사보다 병력이랑 장비도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겠나 싶다.
원래 역사에서도 지금보다 2년 뒤에, 그것도 미군과 합동으로 작전을 감행했는데 지금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이다.
그뿐만 아니라, 됭케르크에서 털리고 몰타에서도 털렸다.
이렇게 날린 병력의 숫자만 거의 30만 가까이 된다.
영국 전역에서 대규모 징집을 실시해 대충 수는 보충했어도 아직 어중이떠중이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현실.
그나마 상대가 독일군보다 만만한 프랑스군이니 여기까지 왔지.
독일군이었다면 오랑은커녕 아직 모로코에서 빌빌대고 있을 게 분명하다.
1시간 후, 예정대로 우릴 실어 나를 수송선이 항구에 도착했다.
수송선 도크가 열리자, 일렬로 대기하던 전차들이 어미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처럼 나란히 수송선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정비중대가 열일해준 덕분에, 전차들은 모두 수리가 완료된 상태.
전투 중에 격파된 전차는 총 3대였지만, 그중 한 대만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2대는 정비병들의 피와 땀과 눈물 덕분에 금방 원대 복귀할 수 있었다.
도크가 닫히고, 수송선은 그 거대한 몸뚱이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