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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33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33화

33화 어제의 동지, 오늘의 적 (1)

 

 

신형 탄약과 연료를 보충받은 중대는 아침 일찍 출발했다.

 

총사령부는 전군에게 하루라도 더 빨리, 더 멀리 서쪽으로 전진하라는 엄명을 내린 상태였다.

 

진급에 눈이 먼 상부는 쉬지 않고 일선 부대들을 쪼아댔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움직여야 해서 피로가 점차 몸에 쌓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별수 없었다. 명령은 명령이었으니까.

 

"소대장님, 이번 목적지는 또 어딥니까?"

"메크네스. 그리고 그다음은 페스로 가게 될 거야. 거기가 우리 연대의 최종 목적지라고 하더군."

"아니, 그때까지 이 X 같은 사막에서 굴러야 한다는 뜻입니까?"

 

애덤은 상상만으로도 질린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당연하지, 인마. 그럼 어디 휴양지라도 갈 줄 알았냐?"

"그건 아니지만......."

"조금만 참아라. 나도 참고 있으니까.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는 말도 있잖냐."

"오, 멋진 말입니다만 오늘 처음 듣는데....... 소대장님은 그런 말을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묻지 마. 나도 얼핏 들은 말이라서 자세한 건 몰라."

 

인터넷은커녕 컴퓨터도 알지 못하는 녀석에게 나무위키에서 본 말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 변명이 통했는지 애덤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중대는 보병들을 대동한 채 도로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각 소대 사이마다 보병들을 태운 트럭과 브렌건 캐리어들이 전차와 같은 속도로 달리면서 전차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햇볕은 뜨겁고, 바람은 건조했으며, 먼지와 미세한 모래가 섞여 있었다.

 

전차 안에만 있자니 쪄 죽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따가운 햇빛이 쏟아져 살이 타는 느낌이었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모래바람 때문에 목이 금방 칼칼해지는 것은 덤이었고.

 

"죽겠네, 진짜......."

 

타는 듯한 갈증에 나는 연신 수통에 든 물을 들이켰다. 그러다 보니 금방 물은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무리 물을 마셔도 이놈의 갈증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토마스, 물 좀 주게. 내 건 다 떨어졌어."

"여기 있습니다, 소대장님."

 

나는 녀석이 건네는 수통을 잡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 폭음이 들리면서 땅이 진동했다.

 

이어 자잘한 돌멩이들이 해치 안으로 쏟아져 내 등을 마구 때렸다.

 

"악! 또 뭐야?!"

"모, 모르겠습니다!"

 

폭음은 사방에서 들렸다.

근처에서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전차가 앞뒤로 흔들거렸다.

 

뒤늦게 우리가 포격을 당하는 중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적 포병대의 포격이었다.

 

***

 

"쏴!"

 

묵직한 포성과 함께 6문의 M1897 75mm 야포가 불을 뿜었다.

 

비록 만들어진 지 40년도 훨씬 넘었지만, 야포는 아직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메크네스로 향하는 길목에 매복 중이던 프랑스군 포병대는 영국군이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포격을 개시했다.

 

마음 놓고 느긋하게 진군하던 영국군에겐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포대장 드뮈에 쇼샤르 대위는 75mm 포탄을 직격으로 맞은 트럭이 창문 밖으로 던져진 항아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광경을 쌍안경으로 관찰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영국군 선두는 갑작스런 포격으로 인해 거의 괴멸 상태였다.

 

"다들 잘하고 있다! 계속 쏴! 포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예!"

 

포대장의 칭찬에 병사들이 힘을 얻었다.

 

프랑스군 포병들은 포탄을 쏘기 무섭게 새 포탄을 약실로 밀어 넣고, 방아끈을 당겨 야포를 격발시켰다.

 

탄피가 배출되면 탄약수가 능숙한 솜씨로 다음 포탄을 장전했다.

 

그들은 마치 기계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며 안정적인 속도로 포를 쏘았다.

 

오랜 훈련이 실전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드뮈에 대위는 첫 실전은 독일군의 공격을 피해 퇴각 중인 영국군 보병대대를 엄호하는 것이었다.

 

적기의 공습으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포격을 가해 독일군 격퇴에 성공했다.

 

덕분에 영국군 보병대대는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고, 며칠 뒤 영국군 대대장은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선물을 보내왔다.

은으로 장식된 웨블리 리볼버 권총이었다.

 

지금도 그 리볼버는 드뮈에 대위의 옆구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불과 다섯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맹이었던 나라의 병사들을 향해 포탄을 쏘아대고 있다니.

정작 그때 맞서 싸웠던 적군은 지금은-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지만-동맹군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게 국제정세가 아니던가.

 

영국이 먼저 프랑스를 배신하고, 함대를 공격해 격침했으며, 이제는 정당한 프랑스의 영토까지 강탈하려고 하니 맞서 싸울 수밖에.

 

***

 

-전 차량 산개! 서둘러!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무어 대위의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전차들은 즉시 경로를 이탈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포탄은 쉬지 않고 떨어졌다.

 

불타오르는 전차에 가로막혀 우왕좌왕하던 트럭 한 대가 뒤늦게 후진을 하던 도중 위에서 날아온 포탄을 맞고 전복되었다.

트럭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차량에서 튕겨 나가 땅에 처박혔다.

 

지면에 처박힌 병사들 중에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것으로 끝난 이들은 운이 억세게 좋은 편이었다.

운이 나쁜 녀석들은 목뼈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으스러져 그대로 즉사했다.

 

"애덤! 후진해!"

 

포탄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애덤에게 후진을 명령했다.

 

같은 곳에 그대로 있다간 포탄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잭슨, 포탑 뒤로 돌려!"

"예? 아, 예!"

 

잭슨이 포탑을 뒤로 돌리자,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뒤를 보지 못하는 애덤을 대신해 직접 뒤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병사가 전차 바로 뒤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야, 거기 너! 거기서 당장 나와! 육포 되기 싫으면!"

 

내가 고함을 치자, 그 병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쏜살같이 뒤로 뛰어갔다.

하마터면 아군을 직접 밟아 죽일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바로 몇 초 뒤에 우리가 있던 자리에 포탄 한 발이 떨어져 큼지막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충격으로 전차가 흔들거리면서 그만 벽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피는 나지 않았지만, 망치로 맞은 것처럼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팠다.

그도 그럴 것이 통짜 쇳덩어리에 머리를 부딪혔으니 멀쩡할 리가.

 

더욱 서러웠던 건 하필이면 아무도 내가 머리를 부딪히는 걸 보지 못해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머리는 깨질 것 같은데, 부하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다고 소대장이 아프다고 징징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억울해서 미치겠네.

 

-여기는 민들레! 선풍기와 돌멩이는 수신 바람!

 

한창 정신없는 와중에 무어 대위의 무전이 들어왔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무척 다급한 목소리다.

 

"여기는 선풍기, 무슨 일인가?"

-선풍기는 보병들을 데리고 지금 당장 우회해서 적 포병대를 공격해라. 돌멩이는 나와 함께 좌측으로 이동해서 공격한다.

 

'위스키'로 불리는 1소대는 포격을 그대로 뒤집어쓴 탓에 피해가 컸다.

 

따라서 지금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내가 지휘하는 선풍기(3소대)와 돌멩이(2소대)뿐이었다.

 

-돌멩이, 수신 완료!

"선풍기도 수신 완료!"

 

나는 즉시 중대망을 소대망으로 바꾼 뒤, 휘하 전차들에게 무어 대위의 지시를 전달했다.

 

그런데 선풍기 3은 포격으로 좌측 궤도가 끊어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선풍기 4는 전차장이 파편을 맞아 위급한 상태였다.

결국 지금 당장 전투가 가능한 전차는 나와 선풍기 2뿐이었다.

 

아, 이거 참 골 때리는데.

 

어떡하지?

무어 대위에게 연락해서 지금 소대 사정이 이러해서 힘들다고 말할까?

 

그런데 상관없으니 그대로 공격해 라고 하면?

 

괜히 쪽만 팔고 겨우 얻은 신뢰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공격이다.

 

선풍기 2에 연락해서 보병들을 태우고 나를 따라 이동할 것을 명령하자, 금방 알겠다는 응답이 돌아왔다.

 

나는 포격을 피해 한쪽으로 물러서 있던 보병들에게 소리쳐 전차에 오르게 했다.

 

그런데 4명만 전차에 올라타고 나머지는 머뭇거리는 게 아닌가.

 

윽박지른다고 해도 내 말을 들은 것 같지도 않고, 전차에 태울 자리도 모자라니 어쩔 수 없이 남는 인원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일단 이 인원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는 수밖에.

 

"애덤, 전진이다! 전속력으로!"

 

***

 

처음 몇 분은 끝없는 전진의 연속이었다.

 

무어 대위가 적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기에(그 본인도 모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이 두 눈으로 직접 찾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소대장님, 계속 전진합니까?"

 

아무리 가도 가도 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애덤이 불안한 듯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어.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불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계속 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래. 일단 계속 전진...... 잠깐만! 정지!"

 

순간 내 눈에 몇 개의 섬광이 보였다.

쿵쿵거리는 듯한 소리도 함께 들렸다.

 

틀림없는 적 포병대였다!

 

"찾았다! 애덤, 우측으로 선회! 그리고 돌진해!"

"알겠습니다!"

 

나는 적 포병들과의 거리가 반으로 좁혀졌을 때, 보병들을 전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리고 곧장 포병대를 향해 돌진했다.

 

프랑스군 포병들은 뒤늦게 우릴 발견하곤 포격을 중지했다. 그리고 야포에 달라붙어 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허나 녀석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놈들에게로 다가가자, 우측에서 하얀 섬광이 뿜어졌다.

이어 날카로운 소음이 귀청을 때렸다.

 

"우측에 대전차포다! 차체 돌려!"

 

적의 기습으로부터 포병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근에 대전차포를 배치하는 것까진 훌륭했지만, 위장을 허술하게 하는 바람에 금방 들통이 나고 말았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당한 것도 모른 채 느긋하게 움직였다.

 

"유탄 장전!"

"유탄 장전!"

 

토마스가 내 지시를 복창하면서 포탄을 장전하는 동안, 잭슨은 핸들을 돌려 대전차포를 조준했다.

 

"조준 끝!"

"발사!"

 

포구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오면서 주포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프랑스군의 대전차포 진지에선 폭발이 일어났다.

 

"명중이다!"

 

***

 

"모두 서둘러라! 시간이 없어!"

 

영국군 전차들이 나타나자, 드뮈에 대위는 병사들을 다그쳐 야포의 방향을 바꾸게 했다.

 

장교들까지 모두 달라붙어 포를 겨우 돌렸을 무렵, 믿었던 대전차포 진지가 파괴되었다.

 

대전차포를 날려버린 전차들은 곧장 드뮈에 대위의 중대를 향해 돌격해왔다.

 

"장전 끝났습니다! 쏩니까?!"

"그래, 쏴!"

 

야포 6문이 2대의 전차들을 노리고 일제히 불을 뿜었다.

 

하지만 요란한 폭음과 별개로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조준경이 달린 대전차포와 달리, 야포는 조준경이 없는 탓에 대충 눈으로 어림짐작하고 쏴야만 했다.

 

근데 조준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급하게 쏜 탓에 6문 모두 명중률이 바닥을 기었다.

 

여섯 발의 포탄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거나 전차를 빗나가 앳된 땅에 착탄 했다.

 

전차를 뒤따르던 적 보병 일부가 폭발에 휩쓸렸지만, 전차들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제기랄! 조준 똑바로 안 해?!"

 

초조해진 드뮈에 대위가 병사들을 향해 소리칠 때, 영국군 전차들도 발포했다.

 

그중 한 발은 드뮈에 대위의 코앞에 착탄 했다.

 

지면에 닿은 Shell Mk. 2 유탄이 폭발하자, 무수히 많은 파편이 드뮈에 대위의 육체를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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