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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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71화
71화 폭풍 속으로 (4)
"장전 완료!"
토마스가 포탄을 장전하는 사이, 잭슨은 적의 전면부를 조준했다.
"조준 완료!"
"발사!"
구령에 맞춰 발사페달을 밟자, 주포가 격발되며 일순간 끝에서 커다란 공 모양의 섬광이 일었다.
"명중입니다!"
잭슨의 포탄은 3호 전차의 차체 하단을 맞추었다. 변속기가 망가진 녀석은 곧바로 기동을 멈췄다.
하지만 포탑은 여전히 살아서 우릴 향해 돌리고 있었다.
"저놈 아직 안 죽었어! 재장전!"
소리치는 동시에 3호 전차가 쏜 포탄은 포탑 측면을 긁고 지나갔다.
엄청난 충격에 전차가 흔들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사이 재장전을 끝낸 토마스가 소리쳤다.
"장전 끝!"
"차체 정면을 노려! 기관총좌와 관측창 사이!"
"조준했습니다!"
"그럼 쏴!"
덜커덩 소리와 함께 탄피가 김을 뿜어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차체 정면에 구멍이 뚫린 3호 전차는 이윽고 과도할 정도로 많은 연기를 뿜어냈다.
잠시 후 포탑 해치가 열리고, 모래색 제복을 입은 전차병들이 밖으로 나왔다.
"적 전차 격파!"
"좋아, 다음!"
전투가 시작되고, 3호 전차 두 대가 연이어 불타올랐다.
불타는 전차에서 탈출하는 전차병들을 향해 총탄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전차를 잃은 전차병에게 자비는 없었다.
격전이라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1소대장이 탄 전차 한 대가 적탄에 맞았는데, 하필이면 포방패에 맞고 튕긴 포탄이 조종수 해치를 직격하는 바람에 그대로 격파되고 말았다.
해치를 열고 나오던 전차장은 적탄을 맞고 도로 들어가 버렸다.
"11시 방향에 적 4호 전차! 거리 400! 조준!"
"조준 완료!"
"쏴아!"
포탄은 명중했지만, 격파에는 실패했다.
차체 전면에 쌓아놓은 모래포대에 막혀 관통력이 떨어진 탓이었다.
"젠장, 재장전! 빨리!"
방어력이 형편없던 이탈리아군 전차들은 모래포대를 쌓아놨어도 거의 다 관통됐는데, 그보다 장갑이 두터운 독일군 전차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끼며 토마스에게 장전을 재촉했다.
그러나 발포하기 직전에 다른 전차가 선수를 쳤다. 게이츠 상사의 전차였다.
게이츠 상사의 전차가 쏜 포탄은 차체 전면의 관측창을 뚫고 들어가 전차를 유폭시켰다.
위기는 넘겼지만 실업자가 된 나는 다음 목표물을 찾아 부지런하게 시선을 돌리던 중, 좌회전 중인 적 전차를 발견했다.
"잭슨, 저기 좌회전 중인 놈! 조준해!"
잭슨은 서둘러 포탑을 회전시켰지만, 놈의 속도가 빨라 좀처럼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녀석은 사격을 위해 기동을 멈추었고, 그 틈을 타 잭슨은 녀석의 무방비한 측면을 조준할 수 있게 되었다.
"발사!"
측면에 철갑탄이 내리꽂히자, 3호 전차는 그대로 해치에서 불꽃을 토해냈다. 탄약고 유폭이었다.
"좋았─."
주홍색 화염을 쏟아내는 적을 보며 환호하려는 찰나, 전차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빰이 관측창에 부딪히는 바람에 살이 찢어지고 붉은 피가 흘렀다.
그러나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전차가 격파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모두 괜찮냐?"
"예!"
전차가 격파된 것은 아니었다.
조준경이나 약실, 엔진 모두 멀쩡했다.
이제 포탄을 날린 적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놈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주포를 이곳으로 고정한 채 다가오고 있는 4호 전차가 눈에 띄었다.
보아하니 방금 포격은 저놈의 짓인 듯싶었다.
잘도 공격했겠다.
"정면에 4호 전차! 거리 350, 조준!"
"포, 포탑이 안 돌아갑니다!"
"뭐?"
아니, 갑자기 이 중요한 순간에 왜 그러는 건데?!
***
"명중!"
적의 포탑과 차체 사이에 철갑탄이 내리꽂히는 것을 본 베르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가 적의 전차의 궤도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저놈 아직 안 죽었군. 비르크, 재장전!"
"예!"
역시 이 거리에서 마틸다의 장갑을 뚫기란 무리였다.
정면이 무리라면 측면으로 돌아서 공격할 수밖에.
"발터, 우측으로 돌아! 한스, 적의 측면을 노려!"
"알겠습니다!"
4호 전차가 빠르게 기동하기 시작했다.
적의 측면을 물어뜯기 위해서.
***
잭슨은 포탑을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뭔가에 걸린 것처럼 포탑은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방금 충격으로 포탑 터렛링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적이 우회전을 시도했다.
정면 공격은 무리니까 측면으로 돌아서 공격하려는 속셈이었다.
이대로 적에게 측면을 내주면 아무리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마틸다도 큰 대미지를 각오해야 한다.
절대 순순히 공격하게 둘 순 없지!
"애덤! 우측으로 돌려!"
"예!"
포탑이 고자가 됐으니, 지금 당장은 구축전차처럼 운용하는 수밖에 없다.
차체 자체를 포탑처럼 돌리는 것이다.
애덤이 우측으로 전차를 돌리는 사이, 잭슨은 핸들을 돌려 주포의 높이를 낮추었다.
"잭슨, 조준하면 내게 묻지 말고 바로 쏴,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 사이 측면으로 돌입한 4호 전차가 발포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포탄이 보였다. 도탄 된 것이다.
적이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잭슨은 서둘러 주포를 격발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불 명중.
포탄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적을 지나쳐 땅에 처박혔다.
포탑이 망가져서 임시방편으로 차체를 포탑으로 쓰다 보니 조준이 어긋난 모양이다.
"X발!"
조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모두의 신경이 저 4호 전차에 집중되어 있었던 탓에 내가 욕을 한 것에 대해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우리가 필사적으로 차체를 돌리는 동안 적은 우릴 약 올리듯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설마 하는 순간 주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이 보였다.
캉!
"튕겼다!"
허나 포탄은 이번에도 도탄이었다.
75mm나 되는 포탑 측면을 포탄이 뚫지 못하고 그만 튕겨 나간 것이었다.
이에 대항해 잭슨도 적을 향해 주포를 발사했다.
그러나 입사각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 방어력 향상을 위해 차체 전면에 부착한 예비 궤도 때문에 포탄은 장갑을 뚫지 못하고 도탄 되었다.
하필 맞아도 거길 맞냐!
"돌겠네, 진짜!"
이 싸움 생각보다 더 길어질 것 같았다.
***
베르거는 지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이 쏜 포탄은 매번 적을 맞추어도 관통하지 못하고 도탄 되기 일쑤였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방어력이 아닐 수 없었다.
저렇게 두꺼운 장갑을 발라놨으니, 속도가 느릴 수밖에.
그러나 적의 사정도 비슷했다.
포탑링이 고장 난 모양인지 적은 포탑이 고정된 채 차체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조준은 불가능했고, 대부분의 포격은 무위에 그쳤다.
"장전 완료!"
저 전차 한 대를 잡기 위해 지금까지 소모한 포탄만 3발.
아직 철갑탄 수는 충분했지만, 다른 전차들까지 상대하려면 조금 빠듯한 수준이었다.
이 시점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볼 필요가 있었다.
"발터, 적에게 돌진해서 박아 버려!"
"잘 못 들었습니다?"
"그대로 돌진해서 처박으라고! 이 거리에선 무리야! 적에게 근접한 상태에서 쏘는 수밖에 없어!"
적 전차와 충돌했다간 이쪽도 타격이 있을 터였지만, 당장은 적을 잡는 게 더 중요했다.
전차에 손상이 생기더라도, 기동이 가능하고 포탄만 쏠 수 있으면 되는 일이다.
베르거의 4호 전차는 속도를 올려 적을 향해 돌진했다.
두 강철 괴수가 서로 부딪히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
"욱!"
적 전차와 충돌하는 순간, 나는 그만 포탑 외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누군가 망치로 머리를 내리친 듯한 기분이다.
격한 통증에 말은커녕 숨조차 쉴 수 없다.
두개골에 금이 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적들도 타격이 제법 컸는지 바로 포탄을 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 사이 애덤은 필사적으로 차체를 회전시켰다.
애덤이 전차를 돌리는 동안, 적은 겨우 1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발포했다.
무지막지한 충격이 전차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신은 아직 우릴 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적탄이 장갑을 완전히 뚫지 못하고 도중에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적이 재장전하는 동안, 잭슨은 주포로 적의 차체 하단을 겨누었다. 그리고 발포.
맹렬한 화염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무지막지한 충격이었다.
발아래 쪽에서 뜨거운 불길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연기가 전차 내부에 가득 찼다.
베르거는 찢어진 이마의 상처에서 나온 피가 뺨을 타고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부하들의 상태부터 먼저 확인했다.
"이봐! 모두 살아있냐?"
"일단 전 살아있습니다......."
"저돕니다."
베르거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목소리는 포탑의 두 명뿐. 차체의 두 명은 대답이 없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는 매캐한 화약향과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베르거는 본능적으로 두 부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허나 슬퍼할 틈이 없었다.
적이 코앞에 있고, 아직 포탄은 약실 안에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죽은 부하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한스, 쏴!"
뭉툭한 주포의 끝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이 정도 거리면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신은 그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주지 않았다.
마틸다의 포방패를 맞고 튕긴 포탄은 적의 좌측 궤도를 박살 냈다.
이제 적은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 포탑은 살아있다.
적의 주포가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본 베르거는 절망 어린 한숨을 토해냈다.
"아, X발."
***
포방패에 맞고 튕긴 포탄에 궤도가 작살나긴 했지만, 다행히 내부는 멀쩡했다.
잭슨도 적의 전면부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포탑 정면에 구멍이 뚫리면서, 적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놈을 잡았습니다!"
"좋았어!"
겨우겨우 힘들게 잡은 녀석이라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남들처럼 안도하던 찰나, 해치가 열리면서 적 전차병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해치 위치로 봤을 땐 전차장인 듯했다.
독일군 전차장은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용케 두 다리로 걸어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본 잭슨이 공축기관총을 쏘았지만, 총탄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전차에 가해진 충격으로 조준점이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그 사이 적군의 모습은 전차의 잔해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전투는 곧 종료되었다.
싸움의 승자는 아군이었다.
독일군은 전차 7대의 잔해를 남기곤 퇴각했다.
하지만 아군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전차 5대 격파에 트럭과 브렌건 캐리어까지 합치면 10대.
그뿐만 아니라 내 전차도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을 입었다.
포탑이 망가진 상태에서 기동까지 불가능하니, 이건 더 이상 전차라 할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상황이 여의찮았다면 미련 없이 자폭을 택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으음, 정비병들에게 괜히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어째 찔리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