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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12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96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12화

112 무림맹과 마교의 의문(1)

 

 

 

 

 

입술 사이에서 나온 숨결이 흰색을 띠며 무혼의 얼굴 주위를 감싸고 그 얼굴을 따라 올라가니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눈앞에 보이는 성의 왼쪽에 펼쳐진 드넓은 평야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벌써 2년 반이 지났나?’

 

그의 머리에 있는 점의 숫자와 같은 24번째 생일에 아이네스와 영혼이 바뀐 후의 시간은 무공을 수련하며 보낸 20여 년의 세월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다.

 

물론 그에게 굳이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라도 그의 의지에 따라 오르는 혈랑검법의 선명한 검로는 그가 추구하는 길의 끝에 도달할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검마에게서 배운 흑명공은 그 길을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미완성인 흑성무를 더욱 수련하여 혈랑검법에 흑명공과 흑성무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가 원하는 길의 끝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이제 무혼의 머릿속에서 차지하는 것은 이곳 가이오스트의 검은 안개와 마인을 없애고 중원으로 돌아가 흑백공존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혼 경,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군요. 무슨 걱정이 있소?”

 

무혼이 옆을 보니 그의 바로 오른쪽에서 말머리를 나란히 하며 길을 가고 있는 카세팜 후작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입가에서도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얼굴 주위를 맴돌고 있었고 인생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낸 노장의 얼굴에는 가식 없는 눈빛으로 걱정하는 것이 드러났다.

 

“아닙니다. 그저 최근의 기억들을 되새겨보았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이곳의 추위도 만만치 않군요.”

 

무혼의 말에 후작도 주위를 둘러보며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주위에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입가에도 두 사람처럼 하얀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명계에서 소환마법을 통해 가이오스트 대륙으로 온 후 후작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5월 중순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마인을 쓰러뜨린 것이 그로부터 두 달 후였다.

 

무혼이 두 명의 마인을 쓰러뜨렸을 때만 해도 갑작스럽게 치열해진 국경의 전투가 곧 끝날 것으로 생각한 지휘관들이 많았지만, 그 이후 동맹군 쪽에서 잠잠해지며 전투가 소강상태로 시간만 흐른 것이다.

 

물론 싸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기나긴 거리에 펼쳐진 국경선을 따라 산발적인 전투는 보고가 올라왔다.

 

하지만 마인들을 동원한 대규모의 전투가 없었기에 무혼에게는 긴 시간이 흐른 것이다.

 

가이오스트에서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무혼은 대륙의 겨울을 맞이하며 검은 안개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미타모할 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행군 속도였기에 말을 타고 있는 무혼은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있었고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아이네스 소저가 보았다면 좋아했을 풍경이구나.”

 

무혼은 도시의 뒤로 있는 산으로 눈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서서히 해가 저물며 산 위에 있는 눈이 고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넓은 평야에는 노을에 물든 평원이 흰 눈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 풍경이 미라크네 왕국에 있는 볼리에노 산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자 무혼은 다시 후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미라크네 왕국에 가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글쎄…….”

 

무혼의 물음에 후작도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물론 그가 적절한 대답을 주기 힘들 것을 잘 알고 있는 무혼이었다.

 

카세팜 후작은 무혼처럼 일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온 무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질문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무혼이 그에게 물어본 이유는 무혼으로서도 답답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네스가 살아 있지만 되돌아오지 못하는 죽음과도 비슷한 이별 상태이기에 평소 미라크네의 왕이 아이네스 공주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를 들었던 후작으로서도 무혼에게 해줄 적당한 조언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초청을 미룰 만한 핑계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네.”

 

씁쓸한 미소를 짓는 후작의 얼굴을 보던 무혼도 겸연쩍은 모습일 수밖에 없다. 싫어서 피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네스도 그들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이상 시간이 있다면 미라크네 왕궁에 방문해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가족들을 만나지를 못했군.’

 

그도 아이네스와 비슷한 이유로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전혀 다르게 생긴 여자를 통해 아들을 만나게 될 그의 가족들에게 어떠한 말로 설명을 해야 할지 무혼도 찾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가이오스트와 중원의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이상 마냥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네스 소저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듯하군.’

 

어느새 무혼은 그와 동행하는 연합군과 함께 노우리오 왕국의 지방 도시인 테로유사 시로 다가가고 있었다.

 

테로유사 시의 정문의 안쪽에는 공포의 검은 안개와 악마를 무찌른 황토인을 보고자 많은 시민들이 줄지어 나와 있었고 그 뒤로 보이는 미라크네 왕국의 수도 미라쉘든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의 작은 도시를 보며 무혼은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다음날 테로유사의 시장이 마련해준 방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무혼에게 아이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혼 경? 무슨 고민에 잠겨 있나요?

 

- 예, 아이네스 소저. 미라크네 왕궁을 방문하는 일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혼의 나직한 음성에 아이네스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벌써 반년 이상을 보지 못한 가족을 보고 싶은 것은 아이네스의 마음도 같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기약이 없는 상태라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엘라드가 사라지기 전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상 다시 소환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 무혼 경은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할 생각인가요?

 

- 그게… 그래도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래요. 돌아갈 방법을 찾은 후 가족들과 만난다는 것이 너무 길어져 버렸네요. 무혼 경, 미라크네의 왕궁을 방문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족들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서로의 복잡한 심경을 잘 알기에 그것을 바꿀 만한 말이 머리에서 생각나지 않았기에 조용히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문을 살짝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무혼 경, 저녁 파티에 참석하실 준비를 돕기 위해서 온 스테더스라고 합니다.”

 

- 파티요?

 

- 예. 가는 곳마다 파티를 하더군요. 후작님이 꼭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해서 참석하는 것입니다만, 제가 가기에는 어색하기 그지없더군요.

 

무혼이 파티용 예복을 입고 파티장에서 멀뚱히 서 있는 모습을 머리에 떠올린 아이네스는 조금 전의 심각한 분위기를 잊어버린 듯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녀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파티장과 무혼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가이오스트 대륙의 많은 기사들도 파티장에서 무혼만큼 무뚝뚝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 풋.

 

- 왜, 왜 웃으십니까? 아이네스 소저.

 

- 아니요. 무혼 경이 파티장에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쿡쿡.

 

무혼은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그녀의 상상에 괜히 얼굴이 붉어지며 변명하듯이 이야기를 했다.

 

- 그게… 전 이곳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남녀가 그렇게 바짝 붙어서 추는 춤은 처음 보는 터라.

 

- 쿡쿡. 무혼 경, 제가 춤을 가르쳐 드릴까요?

 

- 아, 아닙니다. 춤을 몰라도…….

 

- 아니에요. 가이오스트에서는 사교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춤출 줄 모르는 야만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춤을 약간이라도 배워서 추시는 게 여러모로 좋아요.

 

스테더스가 방안으로 들어와 무혼의 파티용 예복을 손보고 나갈 때까지 계속된 아이네스의 설득에 무혼은 결국 넘어갔다.

 

 

 

 

 

‘세상에…….’

 

고급 장교들의 예복을 기초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무혼이 전신 거울 앞에 서자 아이네스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가이오스트의 남자들 중에서도 파티용 예복이 저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기사들은 너무 근육질의 몸이라 예복을 입으면 우람한 근육질의 몸이 여과 없이 배어 나왔기에 오히려 상대에게 위압감만 주기 일쑤였고 문사들이 예복을 입으면 허약한 몸매에 옷의 멋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무혼은 균형이 잘 잡힌 몸이었기에 기사들이 주는 위압감도 없었고 문사들처럼 옷의 멋을 죽이지도 않아 옷의 장점이 한껏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중원 특유의 긴 머리는 예복에 무척이나 어울렸다.

 

- 아이네스 소저?

 

무혼의 의외의 모습에 정신을 뺏긴 아이네스는 그가 부르는 소리를 놓치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한가? 혹시 웃음을 참고 있는가?’

 

아이네스가 아무런 말이 없자 오히려 자신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무혼이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어색한 부분을 찾으려고 하였지만, 그가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할 때 특이한 점을 찾지 못했다.

 

‘대체 왜 아이네스 소저도 그렇고 이곳의 다른 여인들은 내가 이 옷만 입고 있으면 아무 말이 없어지는 것일까?’

 

황토인 일뿐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파티장을 나갈 때마다 쏟아지는 무수한 여인들의 눈길과 무혼을 바라보며 나누는 그녀들만의 은밀한 대화는 무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 어딘가에 어색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숙녀들도 아이네스가 느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예복과 몸에서 자연스럽게 뿜어 나오는 당당함, 그리고 전설이 될지도 모르는 매력적인 남성에게 보내는 동경의 눈길이었고 가이오스트의 남자라면 여성들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검에 매진하며 살아온 무혼으로서는 의미를 알기 어려웠다.

 

- 아이네스 소저, 제 모습이 이상합니까?

 

무혼에게 두 번째 질문을 받자 겨우 정신을 차린 아이네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 무혼 경…….

 

갑자기 깔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무혼은 당황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목소리를 저음으로 내는 것일까?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할 때마다 난처한 이야기를 들었던 그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항상 그 옷으로 파티장에 나갔었나요?

 

- 그, 그렇습니다만…….

 

- 그 옷은 안 돼요!

 

- 그, 그럼?

 

아이네스는 머릿속을 지나가는 옷들을 무혼에게 입히는 상상을 해보았다.

 

문사의 분위기가 나는 옷은 지성적인 분위기가 날 것이기에 여성들의 시선을 받을 것이고 장교복은 환호를 받을 것이다. 마법사의 옷과 상인의 옷을 떠올려보았지만, 그 역시도 그에게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이 들자 아이네스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옷걸이가 너무 좋아도 문제네…….’

 

- 저기… 아이네스 소저, 어찌해야…….

 

- 몰라욧! 그냥 밀가루 포대를 뒤집어쓰고 나가욧!

 

- 예. 옛?

 

무혼은 전신 거울을 보며 눈 두 개만 구멍이 뚫려 있는 포대를 뒤집어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파티에 나갈 모습으로는 좀 이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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