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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10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0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10화

110 은휘성녀(銀暉聖女)(3)

 

 

 

 

 

지친 아이네스가 함께 다니는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쉬고 있을 때 능미류가 문득 물어보았다.

 

“왜 정파인들까지 치료해 주는 거죠?”

 

그러자 아이네스와 예소소가 고개를 돌렸다.

 

“무혼 경이 원하는 것이니까요”

 

“무혼이 정파를 도와주는 것을 원한다고요?”

 

그러자 예소소가 고개를 살짝 흔들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천마신교의 이번 행보는 1차 정사대전 때의 혈채를 갚고 백도의 세상이 된 무림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백도가 파멸하고 흑도만 남는다면 흑도도 오래 지나지 않아 파멸하게 되죠.”

 

모두의 머릿속에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될 시간을 기다린 후 예소소의 말은 계속되었다.

 

“공야 소협의 운명은 흑백공존의 길을 여는 것.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그 길을 찾고자 노력했어요. 아이네스 언니는 그런 공야 소협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계세요.”

 

무혼의 이름이 나오자 은소예와 능미류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들은 무혼에게 미움을 받고 싶진 않았다.

 

“정말 공야 소협이 원하는 것인가요?”

 

은소예가 고명우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이로대와 삼로대는 무림맹의 덕령합 분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자 청해의 전역으로 쏟아져 갔다.

 

청해에 있던 백도의 문파들은 모두 피난을 가야 했으며 교주의 명령에 따라 숱한 부상자와 투항자들이 본진에 끌려오고 있었다.

 

“전쟁임에는 틀림없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끌려오는 정파의 무사들을 보며 아이네스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덕령합에서 마법으로 성문을 부수지 않았더라면 마교가 고전했을 것이고 이들은 아직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혼 경을 생각한다면 멈출 수는 없어.’

 

오늘도 흥해(興海) 분타의 정문을 부수고 그들의 방어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한 아이네스는 서둘러 의원들이 모인 약전으로 돌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은휘성녀(銀暉聖女)님.”

 

“그렇게 부르지 말아 주세요.”

 

자신에게 붙여진 별호의 뜻을 알게 된 아이네스는 처음에 민망함에 고개를 들기도 힘들었다.

 

“언니, 잘 어울려요.”

 

“예동생까지 그러지 마.”

 

아이네스에게서 치료를 받은 자들이 부르기 시작한 그녀의 별호를 어느덧 정사 무림인 모두가 부르고 있었다.

 

그런 아이네스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눈이 있었다.

 

“이봐,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음식 안 가져갈 테냐? 다른 놈들은 이미 다 갔어.”

 

“아닙니다. 안 가져가면 저는 맞아 죽어요.”

 

아이네스를 보던 자는 허리에 매듭이 하나 있는 개방의 일결제자였다. 그가 음식통을 받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는 다른 개방도들이 멀리 가고 있었다.

 

재빠르게 음식통을 챙긴 그는 아이네스를 다시 한번 흘깃 본 후 먼저 출발한 거지들을 따라 개방도들이 갇혀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경을 쓰며 이로대의 진영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다.

 

‘이상하네? 지금 며칠째 살피는 데도 없어. 이틀 전에도 황중(湟中) 분타가 무너질 때 마교에서 사용했다고 했는데?’

 

어느새 개방도들이 갇혀 있는 곳에 도착한 그는 보초들이 몸을 수색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내가 거지라도 맨손으로 수색을 하라니.’

 

보초들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방에 거지들이 가득 누워 있었다.

 

“이거 이러다가 정사대전 끝나면 거지 짓을 못 하는 거 아냐?”

 

“그러게 말이야. 나가서 구걸을 해야 하는데 여기 갇혀서 편하게 받아먹으니 나도 슬슬 걱정되는데?”

 

‘역시 자랑스러운 개방도들.’

 

이곳에 모인 거지들은 일결과 이결제자들뿐이다. 삼결 이상의 제자들은 따로 갇혀 있다.

 

“음식 왔어요.”

 

그는 방 한가운데 음식통을 놓고서 다른 거지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그날 밤 혼자 잠에서 깬 그는 자리에 앉아 운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교도들이 개방의 일결과 이결의 제자들에게는 간단한 혈만을 짚었기에 그의 무공실력으로 풀어버렸다.

 

간간이 주위에서 들리는 잠꼬대가 있었지만 모두들 혈이 잡힌 상태라 몸이 둔하게 움직였고 항상 피곤해했다.

 

운기를 마친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성문을 일격에 부술만한 화포나 다른 무기를 찾지 못했다.’

 

비록 허리에는 매듭이 하나뿐이었지만 그는 개방의 4결 제자인 급난개였다. 제갈운혜의 납치사건 때 무혼의 정체를 알아차린 자이기도 하다.

 

그가 맡은 임무는 이로대에 잠입해 공성전용 무기와 혈랑환검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주술은 눈가림이고 실제로는 다른 무기로 성문을 부순 게 틀림없을 테니 무기를 찾아내라더니 뭐가 있어야 찾지. 그런데 은휘성녀(銀暉聖女)라니 별호가 참 웃기는군.’

 

그의 머리에 아이네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은색의 머리를 가진 여자 색목인이며 강력한 힘을 가진 주술자로서 이번 마교의 중원진출에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진짜 저 여자가 주술로 성문을 때려 부순 거야?’

 

하지만 급난개의 눈에는 약전의 의원으로만 생각이 될 정도로 약전에 자주 드나드는 여자였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 여자가 하는 것은 눈가림용이고 다른 공성 무기가 있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은데…….’

 

그가 잠입하기 위해 잡혀 온 지 벌써 7일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조사를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3일째였다.

 

‘제길 어떤 놈이 그따위 생각을 해서…….’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생각했다. 몸에 작은 상처를 내고 마교도들에게 잡혔다. 그리고 이로대에 끌려온 것까지는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자마자 마교도 한 명이 다른 거지 세 명과 함께 그를 잡아갔다.

 

순간 급난개는 힘으로 혈을 풀고 탈출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주위의 마교도들을 보니 이들을 때려눕히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로대의 한가운데서 소란을 피우며 탈출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결국, 그가 끌려간 곳은 평범해 보이는 좁은 방안이었다.

 

‘나를 왜 끌고 온 것이지? 눈치 채일 일이 없는데?’

 

그날 저녁, 청해 지역의 백도 문파인 청파문(靑波門)의 젊은 제자 하나가 들어왔다. 문파 내에서 꽤나 지위가 높았던 것 같지만 급난개가 느끼기에는 무공실력이 별 볼일이 없었다.

 

그리고 급난개는 그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언제 끌려나가서 고문을 당할지 몰랐기에 문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3일 동안이나 방안의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청파문의 제자만이 계속 부들부들 떨더니 3일째가 되는 날, 문을 두들기면서 악을 썼다.

 

“제발 내보내 주세요!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그는 거의 반울음 조로 문을 마구 두들겼다. 급난개는 시끄러웠지만 귀찮았기에 그냥 귀를 막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교도들이 오더니 그를 끌어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개방도하고 같이 5일을 살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더니 사실이군.”

 

“나라도 못 버티겠네. 게다가 음식에 저 거지들이 손을 대는데 어떻게 먹겠나?”

 

“게다가 저 방의 4명은 특별히 더러운 거지들로 엄선한 거라며? 아주 죽어나겠구먼.”

 

그 말을 듣던 급난개는 욕설이 나올 뻔했다.

 

‘빌어먹을! 대체 어떤 놈이 자랑스러운 개방도를 고문 도구로 활용할 생각을 한 거야?’

 

하지만 급난개는 좁은 이곳에 갇혀 지낼 수 는 없었다. 그는 그날 밤 생각다 못해 마침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씻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보초가 그날 아침 급난개를 끌어내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그곳에서 급난개는 모두가 맡기 싫어하는 배식 담당을 맡았다. 갇힌 곳에서 유일하게 나갈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급난개는 잠들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개방의 정예로서 임무를 이렇게까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게 처음이었다.

 

이로대에 들어온 지 칠 일이 지났지만, 그가 알아낸 것은 없었다.

 

‘그리고 혈랑환검은 어디를 간 것이지? 이로대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삼로대?’

 

하지만 곧 머리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혈랑환검이 있을 곳은 이로대가 틀림없었다.

 

‘우선은 좀 더 버텨보자. 뭔가 나오는 게 있겠지.’

 

 

 

 

 

다음날, 하늘이 급난개를 돕는 것인지 거지 중 하나가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누가 이놈을 좀 업어!”

 

“제가 하겠습니다.”

 

약전에 아이네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급난개는 스스로 자청하여 아픈 거지를 업게 되었다. 그리고 보초를 따라 약전의 입구까지 왔다.

 

기회가 없어 처음 들어서는 약전의 모습에 급난개의 눈초리가 예리하게 훑으며 지나갔다.

 

그곳은 아주 큰방으로 되어 있었고 많은 환자들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찾던 아이네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급난개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방금 실려 온 자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 여자, 무슨 생각이지?’

 

그녀가 다가서는 자는 정파의 무사였다. 배가 길게 갈라진 상처 사이로 창자가 보이는 것을 보니 급난개의 생각으로는 화타가 와도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은은한 백색의 빛이 감돌며 아이네스의 은발이 빛에 함께 일렁였다. 눈앞의 무사에 대한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아이네스의 얼굴은 성스럽게 보였다.

 

‘은휘성녀…….’

 

급난개는 그 순간 그녀의 별호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진심을 알아차린 듯 무사의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그 누구도 그녀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고 정파의 무사나 마교도나 모두가 익숙한 듯 잔잔한 미소를 띠고 치료를 하고 있는 아이네스를 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급난개는 다시 일어나 운기를 하고 자리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진짜 주술사였다. 하지만 그 느낌은 소림의 고승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던 것이었는데…….’

 

 

 

 

 

급난개의 조사는 계속되었다. 그는 이로대가 이동하는 대로 계속 끌려다니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았다.

 

특히 그가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네스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급난개는 결론을 냈다.

 

‘좋은 여자.’

 

급난개는 이제 이로대를 탈출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마교는 하급 무사 포로들에 대한 관리가 허술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무공이 낮고 숫자가 많아 마교로서도 많은 신경을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밤중에 일어난 급난개는 그의 사부에게서 전수받은 경공인 영조비형(影鳥飛形)으로 보초의 눈을 속이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미리 확인해 두었던 보초들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방위를 밟아가며 천천히 걸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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