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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05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0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05화

105 새로운 만남(3)

 

 

 

 

 

“지금 그들은 어찌하고 있는가?”

 

“집법부의 뇌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체념을 한 듯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시혁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집법장로를 맡은 후 가장 큰 사건일 것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그들은 전원 오체분시형을 받게 될 것이다. 큰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이 시혁승을 기분 좋게 감쌌다.

 

하지만 그날 밤 집법부의 모든 무사들은 잠에서 깨어 집법부를 나서야만 했다.

 

“빌어먹을, 그러기에 그놈들을 조심하라 일렀건만…….”

 

뇌옥을 지키던 집법무사 두 명을 죽이고 추청령과 문종후가 탈출을 했다. 집법부에 이어 무림맹에서도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이쪽이군.”

 

급난개는 꺾인 풀을 집어 들며 뒤에 있는 무림맹의 무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발각되었다.

 

평소의 내력이었다면 이미 멀리 도망쳤겠지만, 뇌옥에 갇혔을 때 혈이 제압된 상태였다. 혈의 일부를 푸는 데 성공했지만, 내력이 거의 소진된 것이다.

 

“자네, 좀 도와주게.”

 

탈출하면서 집법무사에 의해 다리에 깊은 자상을 입은 추청령은 내력마저 바닥이 나자 힘겨움에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러나 추청령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멀리서 자신들의 뒤를 쫓는 자들을 한참이나 보던 문종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다가왔다.

 

“고맙네.”

 

추청령은 안심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손은 허공만을 휘저었으며 그의 마혈과 아혈이 봉쇄된 것을 알았다.

 

두 눈을 크게 뜬 추청령이 문종후를 보았을 때 그는 추청령의 뒤쪽을 보고 있었다.

 

‘설마.’

 

그러나 문종후의 눈빛이 불길하게 빛나는 순간 추청령은 산비탈을 굴러떨어지며 문종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꼭 복수할 테니 편히 눈을 감게.”

 

급난개와 무림맹의 무사들이 소리를 따라갔을 때는 피투성이로 가늘게 숨이 붙어 있는 추청령만 발견할 수 있었다.

 

“제길 끝까지 악독한 짓을 하는군.”

 

추청령이 굴러떨어진 산비탈을 노려보며 급난개는 이를 갈았으나 이미 문종후는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들어오시오.”

 

후작의 목소리가 들리자 문 옆에 있던 기사가 사령관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딱딱한 인상과 햇볕에 탄 얼굴을 가진 늙은 색목인이 굳센 기상을 띈 눈으로 무혼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요?”

 

후작이 자신에게 물었다는 것을 안 엘라드는 가볍게 예를 취한 뒤 무혼을 돌아보았다.

 

“며칠 전 아이네스 공주님께서 부탁하셨던 황토인입니다.”

 

“흐음.”

 

카세팜 후작은 무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륙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오래된 문헌에서만 등장하는 황토인이 눈앞에 서 있으니 아이네스가 말한 자인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무혼의 왜소한 체격이었다. 가이오스트의 기사들과 전사들은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서 몸의 크기가 줄어들긴 하지만 본래의 거대한 체구를 생각한다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대단한 덩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혼의 나이를 보이는 것보다 높게 잡는다 하더라도 저런 체구에서 대단한 능력이 나오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또한, 강자의 기세라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사인가?’

 

하지만 마법사의 느낌과는 달랐다. 무혼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후작의 감각은 무혼이 검사라고 알려왔다.

 

무혼의 모습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부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해 보이는 눈매였다.

 

‘분명 많은 수련을 쌓은 검사인 것이 확실한데 어찌 눈 외에는 느껴지는 것이 없을까?’

 

“나이를 물어봐도 되겠소?”

 

“올해 스물여섯입니다.”

 

무혼이 자신의 나이를 밝히자 후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는 아이네스가 스스로를 희생해 불러온 사람이다.

 

그리고 후작은 모든 것을 걸고 아이네스에게 맹세했다.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후작이었다.

 

“아이네스 공주님을 아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군. 나는 아이네스 공주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소.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소?”

 

“우선 검은 안개에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마련해 주시길 바랍니다.”

 

“검은 안개에?”

 

“예.”

 

카세팜 후작은 무혼의 목소리에 서려 있는 기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네스가 가장 원했고 지금 빛의 연합군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을 거론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내일 그 기회를 마련해주겠소.”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 엄호를 부탁합니다.”

 

“엄호?”

 

“의외로 강한 자를 만나게 된다면 약한 병사들도 꽤나 위협이 됩니다. 그러니 그들을 견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흠. 알겠소. 그곳도 확실히 해결하리다. 오늘은 가서 쉬도록 하시오. 잘 부탁드리겠소.”

 

“알겠습니다.”

 

무혼이 가볍게 목례를 취하며 돌아서자 후작은 그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오래 살았다고 하기엔 어정쩡한 나이지만 이때까지 아이네스 공주님만큼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여걸은 보기 힘들었소. 어째서 당신이 공주님의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공주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하오.”

 

살짝 고개를 끄덕인 무혼은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후작은 창으로 눈길을 던지더니 아이네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공주, 당신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오.’

 

 

 

 

 

다음날 여전히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는 지코네아의 성벽 위로 무혼과 카세팜 후작 그리고 엘라드와 다른 지휘관들이 올라왔다.

 

“얼마 전 전투가 있었소. 벌써 6차례의 전투가 있었으니 그 악마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소.”

 

후작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혼은 성벽밖에 펼쳐진 안개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멀리 있기 때문에 검은색 안개라는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작은 그의 옆에 서 있는 그레발시 백작을 보았다.

 

“그대가 다시 한번 수고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군례를 취하고 사라지는 백작을 보며 무혼도 그레발시 백작을 따라 성벽 아래로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엘라드가 같이 걸어갔다.

 

무혼이 성문 쪽으로 가자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완전 무장상태로 있는 미라크네의 기사들이었다.

 

“무혼 경, 지금 어디를 가시는 길이오?”

 

“검은 안개의 앞으로 갑니다. 직접 가서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스완킨 백작과 폴레노는 서로 마주 보더니 무혼을 따라왔다.

 

“다른 분들이 저와 함께 가시기로 하셨으니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수는 없소. 공주님은 당신의 안전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소. 우리는 공주님의 명령을 수행할 것이오.”

 

“지금은 단순한 조사입니다. 그리고…….”

 

무혼은 미라크네의 기사들을 쭉 훑어보았다.

 

“당신들은 아이네스 공주님이 소중히 생각하셨던 사람들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당신들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스완킨 백작은 무혼의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깊은 눈빛을 가진 무혼의 눈에서 찾아낸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 나오는 느낌은 무혼이 진심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소. 우리는 여기서 대기하겠소.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곧 당신을 돕기 위해 달려갈 것이오.”

 

“대장님!”

 

“명령이다. 나는 공주님께 무혼 경의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맹세를 했다. 공주님과의 맹세를 깨는 자로 만들지 마라.”

 

그 말을 들은 미라크네의 기사들은 묵묵히 백작을 중심으로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섰다.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성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고맙습니다.”

 

짧은 목례와 함께 무혼은 아이네스의 지팡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그레발시 백작과 함께 성문을 나섰다.

 

성에서 검은 안개와의 거리는 200여 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위험한 거리이기도 했다.

 

“엘라드는 저 안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까?”

 

“글쎄요? 저도 저 안개에 접해보았지만, 효과밖에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말을 타고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백작의 실프레이크 기사단은 시체들을 한 번씩 찔러보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백작은 무혼이 그의 기사단의 용맹을 오해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며칠 전에 있었던 전투가 격렬하여 병사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보이는 행동입니다. 언제 검은 안개의 악마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몇 배의 정신력을 쏟아 싸우는 중입니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보이는 검은 안개를 노려보았다. 며칠 전 아이네스와 함께 이 안개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아이네스의 감각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분명 그때 아이네스 소저의 주위를 지나가는 바람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안개는 전혀 느낌이 오질 않았었다. 아무래도 공주가 품고 있는 신성력 때문이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 동안 어느새 검은 안개의 앞쪽에 도착을 했다.

 

일반적인 안개와 다르게 경계선이 뚜렷하게 보였다. 안개의 앞에 선 무혼은 검은 안개 속으로 서서히 팔을 내밀었다.

 

잠시 팔을 감싸는 기운을 느껴보던 무혼은 곧 눈을 떴다. 그리고 검은 안개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같이 갔던 병사와 기사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그러한 무혼을 보고 있을 때 무혼은 그 안에서 혈랑검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혈랑초출의 초식을 마치고 다시 걸어 안개를 빠져나온 무혼은 엘라드를 보았다.

 

“만년목이 가졌던 어둠의 기운과 비슷하고 명계의 기운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군요.”

 

“명계요?”

 

생소한 단어를 들은 엘라드는 잠시 어리둥절하다는 듯 무혼을 보았지만, 그 단어를 들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들었지?’

 

천천히 기억을 되살려보는 엘라드의 머릿속에 아이네스가 말해주었던 명계가 떠올랐다.

 

‘그렇군. 그때 무혼 경이 머물던 곳이 명계라는 곳이었지?’

 

“그렇다면 무혼 경의 세계에 있는 기운이 이곳으로?”

 

“아니오. 나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중원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비슷한 세계에 존재하는 기운입니다. 누군가가 다른 세상을 옮겨놓은 것 같군요.”

 

“다른 세상을 옮겨놓았다고요?”

 

“예. 이 기운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던 존재는 이곳에서도 원래의 세상처럼 편안히 지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른 세상이죠.”

 

엘라드의 두 눈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문헌에 있는 마계의 구현이라는 게 마물들까지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세계의 기운을 가져오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말이 되긴 하는데…….”

 

“엘라드 무슨 말입니까?”

 

“다른 특별한 점은 찾을 수가 없었죠?”

 

“예.”

 

“무혼 경의 말을 듣고 생각난 마법이 있어요.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무혼 경의 말과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 안개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낼지도 몰라요.”

 

그레발시 백작은 무혼이 고개를 끄덕이자 후퇴의 명령을 내렸다.

 

실프레이크 기사단은 백작의 명령에 서둘러 성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병사들도 급히 뛰어 빠른 속도로 성문에 거의 도착을 했을 때 무혼이 갑자기 말을 세웠다.

 

‘뭐지? 잠시 검은 안개에 들어갔을 뿐이고 초식 하나를 펼쳤을 뿐인데…….’

 

그러나 무혼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노골적으로 그에게만 집중이 되어 있다.

 

뒤돌아보는 무혼의 입가에도 짙은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엘라드.”

 

“이 녀석을 데리고 빨리 성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다른 분들도 성안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말에서 내린 무혼은 마법 지팡이를 들고 고삐를 넘겨주었다.

 

“무혼 경은 어쩌시려고요?”

 

“마인이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마인!”

 

그레발시 백작과 실프레이크 기사단은 마인의 이야기를 듣자 얼굴을 굳히며 검은 안개를 보았다.

 

“출렁이고 있다.”

 

한 병사의 말대로 검은 안개의 한쪽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출렁임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것을 보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안색이 점점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한번 겨루어봐야겠습니다.”

 

그 말에 엘라드는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한 번 겨루어 본다고요? 무혼 경, 지면 무조건 죽는 생사투라고요.”

 

그 말에 무혼은 엘라드를 보며 한 번 웃어 보이고서 안개를 향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엘라드가 무혼을 다시 말리기 위해서 입을 열고자 했지만 검은 안개가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성문을 닫을 것이니 빨리 들어와라. 실프레이크 기사단은 속히 복귀하라!”

 

성벽 위에서 들려오는 말에 그레발시 백작은 성문과 무혼을 번갈아 보더니 다시 엘라드를 보았다.

 

“무혼 경은 여러분들이 성안으로 돌아가길 원했어요.”

 

그 말을 들은 백작은 마음을 결정한 듯 성문을 향해 달릴 것을 명령했다.

 

그들을 따라 함께 성문 안으로 달려간 엘라드는 성벽 위로 올라 검은 안개에 다가간 무혼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도우러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도 안개 속에서는 무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만일 저 안개가 무혼의 말대로라면 에너지 드레인(Energy Drain : 두 세계의 영역을 바꾸는 마법)마법으로 중간계에 끌어온 마계라는 말이 된다.

 

신계와 마계의 영역이라면 천신과 마신들도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고 자신과 같은 반신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존재라면 소멸될 수도 있다.

 

‘에라, 무혼 경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달려가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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