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03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03화
103 새로운 만남(1)
마교의 총단에 도착한 아이네스 일행은 마교의 총단 입구를 통과하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예소소, 능미류, 은소예. 무혼 경과 인연이 있는 여자들은 다 모여 있네.’
새침한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은 마음을 표출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네스가 그들에게 화를 낼 만한 입장도 아니다.
속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며 문을 지나니 사람들이 몰려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무혼을 결국 찾지 못한 중손면인은 고명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 소협, 공야 소협을 데리고 오는 임무를 맡은 것으로 아는데, 공야 소협은 지금 어디에 있나?”
“저…, 그것이…….”
고명우가 아이네스를 흘깃 본 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예소소의 눈길이 고명우를 따라 아이네스에게 머물렀다.
잠시 아이네스를 살펴보던 예소소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에 마주 섰다.
“……?”
눈앞에 다가온 예소소를 보던 아이네스는 그녀의 말에 놀라게 되었다.
“흰색 혈랑성의 주인이 소저인가요?”
예소소의 말을 들은 중손면인은 얼굴에 의아함을 가득 띄우고 가까이 다가왔다.
“소아야, 무슨 말이냐?”
“이유는 모르겠으나 혈랑성의 주인이 바뀐 듯해요. 소저는 누구죠? 공야 소협과 어떠한 사이이기에 그와 혈랑성을 공유하고 있는 건가요?”
‘이 여자, 무엇을 알고 있는 거지? 정말 놀라운 능력을 지녔네.’
아이네스는 예소소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눈앞의 황토인의 소녀는 무혼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무혼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혼 경과 바뀌게 되었다는 것도 알아낸 것을 보면 그녀의 능력은 대단했다.
이 소녀라면 지금 자신과 무혼의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반가워요. 예 소저, 예 소저에 대해서는 무혼 경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를 위해 소저의 시간을 할애해 주시겠어요?”
말투와 발음에는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으나 유창한 아이네스의 말에 예소소는 조용히 그녀의 눈을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소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공야 소협과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요.”
두 여인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궁금함이 가득한 눈빛이었으나 중손면인의 명에 따라 마존궁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중손면인의 배려로 예소소와 같은 방에 단둘이 있게 된 아이네스는 살짝 심호흡을 하였다.
“지금 무혼 경은 제가 살던 곳에 있어요.”
“그곳이 어디죠?”
아이네스는 예소소가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혼이 가이오스트 대륙으로 가게 된 까닭과 그녀가 중원으로 오게 된 까닭까지 이야기하자 아이네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던 예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혈랑성이 갑자기 흰색으로 바뀌게 된 것이군요. 하지만 혈랑성은 아직도 하늘의 천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아이네스가 말없이 예소소를 계속 보고 있자 예소소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아이네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아이네스 소저는 이제 어찌하실 건가요?”
“제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이네스 소저가 오면서 혈랑성의 색깔이 바뀌었어요. 그 말은 아이네스 소저가 중원으로 오게 된 것도 하늘이 이끌어 오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예소소는 아이네스를 보면서 다시 물었다.
“아이네스 소저는 무림의 흑도와 백도를 어떻게 생각하시죠? 소저께서 해주신 이야기대로라면 소저는 흑도가 아니라 백도에 어울리실 텐데요.”
그녀의 말에 아이네스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세계의 기준과 중원의 기준은 다르더군요. 이곳의 흑도가 결코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무혼 경의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예소소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고마워요. 공야 소협은 흑백공존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주었어요. 저는 그를 도와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에요.”
아이네스를 보며 예소소는 손을 내밀었다.
“도와주시겠어요?”
“물론이에요. 무혼 경이 원했던 길이니, 저도 힘이 되고 싶어요.”
예소소의 손을 맞잡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아이네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저는 동생이라 불러주세요.”
“예.”
예소소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존대하시면 어색해요. 아이네스 언니.”
“고마워, 예 동생.”
아이네스가 친근하게 부르자 예소소도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었다.
“우선은 공야 소협의 자리에 아이네스 언니가 대신 있으셔야 할 거예요. 게다가 그가 명계에 가게 되었을 무렵에 천기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어요.”
“새로운 흐름?”
“예. 중원의 사람들에게 결코 좋을 수가 없는, 아니 더 이상 나쁜 것을 찾기 힘들 정도로 좋지 않은 흐름이에요.”
“무혼 경이 그 흐름의 이유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
아이네스의 얘기에 예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야 소협을 위해서라도 언니와 제가 힘을 합쳐 그 기류를 막아야 해요. 그리고 아직도 흑도와 백도는 서로를 멸망시키려고만 하죠. 그 외에도 공야 소협이 받아들인 운명을 위해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많아요.”
그러자 아이네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혼 경에게 도움이 된다면 언제라도 노력하겠어.”
“언니, 같이 노력해요.”
무혼의 길에 밀접한 연관을 가진 두 여인은 그렇게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을 했고 두 여인의 웃음소리가 방을 가득히 채웠다.
몇 시진 뒤 예소소를 통해서 자초지종을 들은 중손면인은 아이네스를 보더니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소저를 통해서 공야 소협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예.”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하늘이 공야 소협을 중원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옆에 있던 능미류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무혼은 언제 돌아올 수 있나요?”
“아직 방법을 몰라요.”
“분명한 것은 아이네스 언니가 무사히 지낸다면 공야 소협은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방법을 찾아도 언니가 없다면 공야 소협은 올 수가 없겠죠.”
예소소의 말을 들은 능미류는 아이네스를 보았다. 신비로운 은발과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아이네스 소저를 보호하겠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은소예도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내가 아이네스 소저를 보호하겠어요.”
그러자 두 여인의 눈이 서로 공중에서 마주치며 불똥이 튈 듯했다.
‘흥. 대체 왜 끼어든 거예요?’
‘흥. 아이네스 소저를 통해서 공야 소협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하니까 호위를 자청한 것이 눈에 보이는데 그럼 가만있으리?’
두 여인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노려보는 것을 보던 중손면인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아도 아이네스 소저와 함께 다니기로 했으니, 두 소저가 호위를 맡으면 될 듯하군.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
그 말에 중손면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은소예와 능미류는 서로 얼굴을 돌리며 반대편으로 보았다.
“정사대전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예소소의 물음에 중손면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진지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래도 그게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현재 중원 전역에서 흑도의 신성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으니 그들의 배치가 끝난다면 곧 시작할 듯하구나.”
중손면인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혈채는 받아내야겠지만 혈채를 받는 만큼 친했던 사람 중 영영 못 보게 될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정사대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아이네스의 물음에 모두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중손면인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한이 너무 깊소. 그 원한이 해소되어야 공존의 길이 열릴 것이라오.”
그날 저녁 아이네스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의 창문에 기대어 혈랑성이라 설명을 들은 별을 보았다.
“무혼 경, 잘 부탁드려요.”
같은 시간 무혼은 지코네아 성이 보이는 언덕 위에서 가이오스트 대륙에 온 이후의 일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무혼이 엘라드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옷을 입고 아이네스의 지팡이와 옷을 들고 내려왔을 때 모든 기사들은 분노를 터뜨리며 검을 뽑았다.
“멈춰라!”
기사들의 움직임을 막고 나선 것은 스완킨 백작이었다.
그는 슬픈 눈으로 아이네스의 옷과 마법 지팡이를 보더니 무혼의 얼굴로 눈길을 던졌다.
“그대의 이름을 물어보겠소.”
“공야무혼.”
“공야무혼. 무혼 경이 그대를 지칭하는 말이오?”
무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완킨 백작은 계속 말을 이었다.
“공주님께서 그대의 이름을 이야기하시며 나에게 부탁을 하셨소.”
그리고 뒤를 돌아 기사들에게 말했다.
“공주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신 일이다. 그리고 무혼 경을 보호하고 그가 안개를 없애는데 도와줄 것을 나에게 부탁하셨다. 이 중에서 공주님의 부탁을 거스를 자가 있나?”
그 말을 들은 기사들은 손에 핏줄이 나타날 정도로 검을 잡은 팔을 천천히 내렸다.
스스로를 희생해 빛의 연합국과 미라크네를 구하고자 한 공주의 뜻을 거스를 기사는 없었다.
다만 폴레노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했다.
“그렇다면 다시는, 다시는 공주님을 볼 수 없다는 말입니까?”
백작이 폴레노의 눈길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자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많은 일들이 폴레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아이네스 공주님.’
다른 사람들은 공주를 말괄량이라 말했지만 폴레노는 어릴 때의 아이네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의 약을 급하게 사러 가던 폴레노는 귀족의 마차를 보지 못하고 큰길로 뛰어들었다.
말과 마부가 폴레노에게 당황하였고 그 마차는 뒤집힐 뻔하였다.
“네 이놈! 네놈이 미친 게로구나!”
“죄송해요. 어머니께서 많아 아프셔서 급하게 약을…….”
어린 폴레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어머니의 약을 꼭 품고 정신없이 사죄를 하고 있었다.
“흥, 그따위 말 몇 마디로 용서받을 거라 생각하느냐? 네 이놈!”
당시 폴레노는 어렸지만 귀족가에 끌려가면 어찌 될지는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마차를 보니 아주 놓은 지위를 가진 귀족의 마차임이 틀림없었다.
“제발, 어머니께 약이라도 전해드리게 해주세요.”
“웃기지 마라. 이놈아!”
폴레노는 집에서 높은 열에 시달리고 있는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일 때였다.
“그만 하세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폴레노 앞에서 호통을 치던 자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니?”
그는 작은 천사가 있다면 바로 눈앞의 이 소녀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놈이…….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저씨도 제가 말하는데 끼어들면 안 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사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바닥에 부복을 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안 잡아먹으니까 걱정 마세요. 대신 이 소년의 집에 들렀다가 가요.”
“하, 하오나?”
“아니면 일러바칠 거예요.”
‘누구에게 일러바친다는 거지?’
그날 폴레노는 무사할 수 있었고 그의 어머니에게 약을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을 때 그는 자신의 앞에 있던 소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네스 공주님.”
그날, 그의 일생의 목표가 세워졌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모든 노력을 동원해서 아이네스를 지키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검을 휘둘렀었다.
그리고 더 좋은 조건도 마다하고 별궁으로 신청을 하고 아이네스를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감동했던가?
“실례이오만 한 가지만 묻겠소이다.”
폴레노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백작이 그를 말리고자 하였으나 폴레노는 침울한 목소리로 엘라드에게 물었다.
“공주님께서 진실로 원하신 일이오?”
엘라드는 눈앞의 기사를 보았다. 언제 검을 뽑아 달려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노와 슬픔, 격정 등이 어우러진 기세를 뽑아 올리고 있었다.
“스스로 선택하신 일이에요. 미라크네 왕국과 공주님의 가족들을 위해서죠.”
그 말을 들은 폴레노는 무혼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 목숨을 걸고 당신을 지켜주겠소. 부디, 부탁이니 공주님의 소원을 이루어주시오.”
그리고서 등을 돌려 그의 말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원래대로라면 환영을 해야 하겠지만, 이해해주시기 바라오, 무혼 경.”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네스 소…….”
순간 모든 기사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을 느낀 무혼은 급히 말을 바꾸어야만 했다.
“공주님의 뜻을 최선을 다해 지킬 것입니다.”
백작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 위에 올랐다.
모두가 각자의 말에 오르자 주인 없는 흰색의 말이 보였다. 무혼은 말의 모습이 상당히 익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가 아이네스 소저의 말이로구나.’
무혼은 천천히 흰색의 말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모든 기사들이 불만 어린 눈빛으로 보았다.
지금 무혼의 복장은 엘라드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옷으로 입은 것이라 꽤나 어색한 복장이었다.
특히 엘라드의 옷들이 레이스가 많이 달려 치렁치렁한 옷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미라크네의 기사들은 무혼을 노려만 볼뿐 감히 아이네스의 백마에 오를 생각을 하고 있는 자가 없었기에 그저 보고만 있었다.
‘네놈이 얼마나 쉽게 그 말을 타는지 보겠다.’
무혼과 흰말을 번갈아 보는 폴레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이네스의 백마에 거부당할 정도라면 엘라드의 말을 다시 의심해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흰말은 잠시 주춤하면서 무혼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곧 조용히 머리로 무혼의 가슴을 문질렀다.
‘나를 알아보는구나.’
놀라는 기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말에 오른 무혼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고 며칠 후 무혼은 지금 이곳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