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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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99화
099 새로운 위험(3)
아이네스는 중앙에 자리를 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 무혼 경.
-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서로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던 두 사람은 동시에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위에 붉은 기운이 흰 기운과 함께 휩싸이며 넓은 원형의 마법진이 그녀의 발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의 캐스팅이 진행될수록 마법진의 빛은 점점 강해져 갔고,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주위에서 폭풍과 같은 공기의 흐름이 휘몰아치자 병사들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작은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 아이네스와 성 밖의 검은 안개를 보았다.
아이네스의 눈이 떠졌다. 눈에서 푸르고 흰빛이 나오며 그 눈길은 검은 안개에 집중이 되었다.
이미 미라크네에서 온 기사들이 대형 방패를 들고 그녀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고 뒤에서 기사들은 검을 뽑고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아이네스 공주의 입에서 시동어가 흘러나왔다.
“글레이셜 디스트로이어(Glacial destroyer)!”
빙계 최강의 대인 마법이자 거대한 기둥의 두께를 가진 얼음의 창이 그녀의 의지를 받아 공중에 나타났다.
아이네스의 눈길은 여전히 검은 안개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며 그녀의 손이 내려지자 하얀빛을 남기고 빠른 속도로 질주를 했다.
폭발을 하듯 날아가던 빙계 최강의 마법의 뒤를 성벽 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기대감을 담은 눈길로 쫓아가고 있었다.
파파파파팟!
글레이셜 디스트로이어가 드디어 검은 안개를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갑자기 속도가 떨어지며 공중에 머물렀다.
그리고 검은 안개에 들어간 후 끊임없이 쏟아지던 흰 연기와 함께 얼음의 기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후작과 지휘관들의 입술 사이로 신음성과 비슷한 소리가 배여 나왔다.
“흐음…….”
“저것은 7클래스로도 안 되는 것인가?”
얼음의 기둥이 완전히 사라지자 지휘관들은 절망에 찬 모습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이네스도 허무했다. 수백 년간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마법을 이뤄냈는데도 그것으로 깨뜨릴 수 없는 술법이 있다는 것이 속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연합군에게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녀의 귀에 한 지휘관이 후작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이제 성을 버리고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7클래스로도 방법이 없다면 그 악마가 왔을 때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후작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물러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저 안개는 동쪽의 끝 아로에무트 산까지도 쫓아올 걸세. 가이오스트 대륙 어디에도 물러날 곳이 없네.”
그 말을 들은 지휘관은 눈을 질끈 감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들에게 눈길을 돌렸던 아이네스는 다시 검은 안개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그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네스 공주님, 이제 미라크네 왕국으로 돌아가셔도 될 듯하오.”
그 말에 아이네스는 후작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후작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엿보였고 그런 그를 아이네스는 조용한 눈길로 보았다.
“다른 방법이 있으십니까?”
“군인이 알고 있는 최후의 방법은 목숨으로서 명령받은 것을 지키는 것이라오. 머나먼 이곳까지 와주셔서 고마웠소.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좋은 차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소.”
그 말을 들은 아이네스는 눈앞에 있는 노장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길을 보던 후작은 미라크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아이네스를 따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연약해 보이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굳센 눈빛과 강인한 정신력을 보건대, 소문으로 들었던 내용이 사실이라고 느껴졌고 그 소문대로라면 눈앞의 공주는 어떠한 전사보다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여걸이었다.
한동안 후작을 보던 아이네스는 다시 검은 안개로 눈길을 돌리며 잠시 더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에게 군사들을 붙여주세요.”
“군사들을?”
“저 검은 안개에 가까이 가고자 합니다. 직접 안개에 접해보면 다른 해결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하오.”
그 말에 아이네스는 다시 후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라크네가 멸망하는 것보다는 위험하지 않아요.”
아이네스를 바라보던 후작은 조용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발시 백작, 그대가 기사들을 이끌고 아이네스 공주님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를 바라오.”
그러자 명령을 받은 백작은 군례를 취하고서는 전령을 보냈다. 그것을 본 후작은 아이네스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지휘하는 실프레이크 기사단은 언제나 출동대기 상태요.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을 것이오.”
후작의 호의에 감사의 뜻으로 예를 취한 아이네스는 그레발시 백작의 뒤를 따라갔고 그 모습을 보던 카세팜 후작은 감탄하듯 이야기를 했다.
“공주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군.”
“어째서입니까?”
“강인한 의지를 가진 전사. 아이네스 공주님에 대한 소문의 많은 것이 진실일지도 모르겠군.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미라크네 기사들의 눈을 보았나? 성녀나 영웅과 같은 그러한 존재를 보는 눈이었네. 아이네스 공주님의 명령이라면 지옥이라도 뛰어들 것 같더군. 작은 나라에 저런 의지를 가진 공주님이 나타나다니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
그 말을 들은 지휘관들은 다시 한번 멀어져가는 아이네스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검은 안개를 없앨 방법을 찾아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레발시 백작이 이끄는 기사단과 그녀를 언제나 따라다니는 미라크네의 호위기사단과 함께 적들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검은 안개로 다가간 아이네스는 적들이 성벽 근처에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여전히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은 백작은 아이네스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아니에요. 잠시의 시간이면 될 거예요.”
아이네스의 생각은 만년목을 좀먹은 검은 기운처럼 검은 안개를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성벽에 접근하기 전에 저 안개를 단계적으로 없앨 수 있을 것이다.
- 무혼 경, 약간의 기운만 흡수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 알겠습니다, 아이네스 소저.
아이네스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검은 안개로 다가갔다.
검은 안개를 따라 방패로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는 기사들 사이로 파고든 아이네스는 방패의 틈을 이용해 그녀의 팔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엘라드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만년목이 없다면 검은 기운을 되돌릴 수 없을 텐데. 무엇보다도 아이네스 공주님은 어둠의 기운을 흡수하는 방법을 모른다. 무혼 경은 자신의 본신이 아니니 끌어내지 못할 것이고.’
엘라드의 예상대로 아이네스가 만년목 때의 기억을 되살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흡수되지 않았다.
한동안 계속 시도를 해보던 아이네스는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아이네스 공주님.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무혼 경. 무혼 경이 아니었다면 저 혼자로써는 어떠한 방법도 시도해 볼 수도 없었어요.
무혼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말을 달려 성문으로 돌아왔다.
성문 위쪽에 있는 카세팜 후작과 지휘관들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지나쳤고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본 그레발시 백작이 대신해서 성벽을 향해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것을 본 후작은 눈을 질끈 감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방법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아이네스와 연합군의 지휘관들은 맥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말없이 걷고 있자 미라크네의 기사들도 침묵을 지킨 채 그녀의 주위를 지키며 조용히 걸어갔다.
“무혼 경이 이곳에 있다면 마인들을 없애고 저 안개를 몰아낼 수 있을 텐데…….”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엘라드의 귀에는 똑똑히 들려왔다. 엘라드는 눈을 가늘게 떨고 있는 아이네스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엘라드는 그녀가 무엇을 시도한 것인지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도 안다.
단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법을 사용한다면…….’
이제껏 다른 자들이 죽는 것조차 신경을 쓰지 않던 엘라드였지만 눈앞의 아이네스는 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그가 되돌아가더라도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 것일까?’
아직 아버지의 생각을 알 수 없었고 이해도 할 수 없었기에 엘라드는 먼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눈앞의 아이네스를 보았다.
‘이대로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멸망하고 만다. 그 일을 막는 것은 미래에 내가 할 일. 지금 먼저 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진 않겠지.’
어느새 공주의 숙소 앞에 도착을 하자 엘라드는 아이네스에게 다가갔다.
“아이네스 공주님 할 말이 있습니다.”
아이네스는 고개를 돌려 엘라드를 보았다. 그는 어떠한 결심을 한 듯한 얼굴로 진지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
‘엘라드의 진지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되네?’
고개를 끄덕이고 응접실로 들어가니 엘라드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아이네스에게 눈짓을 했다. 그의 눈빛에 아이네스는 주위의 사람들을 내보냈다.
“무혼 경을 명계에서 이곳으로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자 꺼낸 엘라드의 말에 아이네스는 놀란 눈빛으로 엘라드를 보았다.
“엘라드 자세히 말해 주시겠어요?”
“아주 오래전 빛의 세계에 존재했었던 마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지되었던 마법이기에 어느새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 그 마법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오래된 금지 마법?”
“그렇습니다.”
그 말에 아이네스는 반색을 했다. 그러한 방법이 있다면 왜 이제야 말하는지 엘라드가 괜스레 원망스러워지는 아이네스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다음 말에 아이네스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로 두 세계의 존재를 바꾸는 마법이지요. 한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를 불러올 수는 없습니다. 한 존재가 차원을 넘어 이곳으로 올 때는 이곳에서도 한 존재가 차원을 넘어가야 합니다. 즉 아이네스 공주님은 중원으로 가게 되십니다.”
“왜 저는 그 마법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요? 그런 마법이라면 당연히…….”
“빛의 마법이면서 천신들의 뜻과 어긋나는 마법이기에 모든 기록에서 삭제된 마법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설명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어 쉽게 이룰 수도 없었기에 단 두 번만 시도되었던 마법입니다.”
엘라드의 말대로라면 빛의 신들조차 거부한 금단의 마법이라는 것이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차원을 넘어 그 신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신의 영역으로 가는 것을 신들이 허락할 리도 없고 다른 차원의 신도 불청객을 반길 리 없다.
“까다로운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조건을 맞춰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나요.”
그녀의 말에 엘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같은 순간 두 차원의 존재가 동시에 마법진을 발동시켜야 한다는 것이 조건입니다. 아이네스 공주님과 무혼 경은 이미 그 조건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
“어쩌면 무혼 경과 공주님 모두 각자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 더 마법을 쓰면 되지 않나요?”
“그게 가능할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네스는 물끄러미 엘라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알고 있는 무혼이라면 지금 그녀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성벽 밖의 안개를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혼을 빨리 명계에서 불러내지 않으면 영원히 명계의 존재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엘라드의 제의를 받아들여야 옳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혼과 자신은 가족과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된다.
엘라드의 계속되는 설명을 들으며 슬픈 표정으로 시선을 탁자에 떨어트린 아이네스는 한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주세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그리고 무혼 경과도 이야기를 해봐야 하고요.”
엘라드는 아이네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직도 탁자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아이네스를 보며 처음으로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나를 만날 무렵부터 지금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온 여자. 그 괴로움의 반은 나로 인해 생겼었지.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너무 악독한 짓을 했던 것 같군.’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엘라드의 눈에 슬픈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이네스는 엘라드가 사라진지도 모르고 혼자 남은 응접실에서 중얼거렸다.
“과연 내가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중원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개를 든 아이네스는 창문 사이로 보이는 산의 정상에 있는 만년설을 보았다.
“위대하신 스노샤니시여,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아이네스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성벽 너머에 있는 검은 안개를 보았다.
한없이 밀려드는 그 안개는 점점 국경을 넘어 빛의 도시들을 잠식해갈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라크네 왕국까지 몰려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아이네스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처연한 목소리가 빈방에 메아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