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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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96화
096 검은 기운(2)
잠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던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아이네스는 손에 쥔 검으로 원형의 검기를 뿌리며 눈앞의 마물들을 향해 중앙으로 강행 돌파했다. 마물들의 저항이 뚫리자 무수한 기사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을 과감하게 휘두르던 아이네스는 기사들이 다시 몰려들자 무혼과 함께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아이네스의 의지와 함께 무혼의 마음이 실리자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공주를 중심으로 회오리치고 있었다.
미라크네의 기사 중에서는 이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기사들이 있었다.
바로 모레스 성에서 펼쳐 보인 아이네스 공주의 최고위의 마법을 구현할 때의 마법이다.
그녀의 몸은 마나의 빛에 휩싸여 점점 떠오르고 있었으며 그것을 본 미라크네의 기사들은 입술을 꽉 물고 아이네스의 주위로 몰려드는 마물들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드디어 아이네스의 시동어가 끝났을 때 그녀의 눈이 떠지며 시리도록 차가운 파란빛이 쏟아지며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블리자드!”
냉계의 제1위의 마법이자 냉계 대공간 마법의 최고위를 달리는 얼음의 폭풍이 한 여인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를 바탕으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아이네스는 수백 년간 누구도 구사하지 못했던 냉계의 최고위 마법, 대공간 마법인 블리자드와 대인 마법인 글레이셜 디스트로이어 두 가지를 모두 펼친 것이다.
엘프들도 그리고 뒤에 멀리 떨어져 지원을 하고 있던 마법사들도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고 있었다.
최근 수백 년간 그 누구도 구사한 적이 없는 7클래스의 마법이 세상에 구현됨으로써 과거에 나타났던 7클래스의 마법사들이 전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오오. 진짜 7클래스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었구나.”
“저것이 7클래스의 위력!”
아이네스가 이끌어낸 얼음의 폭풍에 마물들은 휩쓸리며 얼음의 폭풍을 벗어나고자 아우성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물들이 폭풍을 벗어나지 못하고 꽁꽁 얼어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바닥을 기는 마물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 아이네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만년목을 향해서!”
그제야 아이네스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모습에서 정신을 차린 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는 마물들을 공격하며 아이네스의 앞길을 열었다.
아이네스는 기사들이 열어준 길을 달려 만년목의 아래에 도착했다.
“아이네스 공주, 뒤는 걱정하지 마시오.”
아이네스가 뒤를 돌아보니 아이네스 뒤를 따라온 머레이 장로와 투돌 장로가 그녀의 양쪽에서 굳건히 서 있었고 속속들이 도착한 기사들이 그 두 사람을 기준으로 호위를 하기 위해 진을 펼쳤다.
아이네스는 만년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만년목의 따사로운 황금색 빛이 그녀의 팔을 감싸며 만년목의 의지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 빛과 얼음과 소녀여, 어둠과 불의 사내도 함께 와 있느냐?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무혼은 놀랐다. 그도 들을 수 있도록 마음에 직접 와닿고 있는 것이다.
- 만년목이시여, 어둠과 불의 사내도 왔사옵니다.
- 그러한가. 빛과 얼음 그리고 어둠과 불이여, 나를 도와주겠느냐?
-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 내가 이제 길을 열어 어둠과 불에서 빛과 얼음으로 흐르고 있는 기운을 돌려 내 몸속에 간직되어 있는 어둠을 어둠과 불로 다시 돌려보낼 것이다.
- 그렇게 한다면 무혼 경이…….
- 어둠과 불의 사내는 검은 기운을 소멸시키는 방법을 이미 알 것이다.
아이네스는 만년목의 말에 놀랐다. 만년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급격히 시들어가게 한 기운을 무혼이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다.
- 무혼 경, 이 기운을 소멸시킬 줄 안다는 게 사실인가요?
- 제 생각이 맞는다면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운을 처리하는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만년목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본 검은 기운이 명계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만년목의 말에 놀란 것은 무혼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명혼흡정술을 배우게 된 시간은 인간 세상의 시간으로 따지면 한 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년목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네스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했다.
- 그런데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 나의 뿌리의 끝에서 나뭇잎의 끝까지 흘러가는 물방울의 모습을 알 듯 아는 것이니라.
- 그것이 무슨 뜻인지요.
- 언젠가는 이 말의 뜻을 알게 되리니 그에 대한 의문은 거두어다오.
만년목의 전신에서 묘한 울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혼과 아이네스는 그 울림이 두 사람마저 흔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온몸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으나 곧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 밀어오는 어둠의 기운은 아이네스로 하여금 놀라게 하였다.
‘이제까지 무혼 경과 내 몸을 통해 이러한 기운이 흘러 다녔던 것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아이네스는 만년목에게 물어보았다.
- 이 기운이 어찌해서 이곳으로 흘러오게 된 것인가요?
- 빛과 얼음의 신성력이 강대했기에 생겼던 일, 오늘 이후로 어둠과 불의 사내에게도 그러한 힘이 생길 것이니 검은 기운이 더 이상 흘러갈 것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 이제 해결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몸을 흘러들어오는 기운을 느끼며 생각을 하고 있다.
‘명계의 기운이다. 그런데 이 기운이 나와 아이네스 소저의 몸을 거쳐 가이오스트 대륙으로 흘러왔다니, 그렇다면 중원에도 명계의 기운이 있다는 말인가?’
만년목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네스도 마음이 놓였다. 자신 때문에 만년목이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지금의 만년목의 말은 그녀로 하여금 자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 빛과 얼음의 소녀는 어둠과 불의 사내가 그 기운에 잠식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어둠과 불의 사내는 그 기운을 감당하여라.
어느새 몸 가득히 검은 기운이 채워진 것을 느낀 무혼은 곧 명혼흡정술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인가?”
강대한 기운에 놀란 천마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여러 집에서 마을의 노인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옆으로 다가온 초 노인을 보며 물어보았지만, 초 노인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만 저을 뿐이다.
“이제까지 진을 뚫고 들어온 아귀나 맹수는 없었는데……. 아니 이것은 거의 아귀왕급의 마력이네. 대체 어떻게 이런 거대한 마력을 품고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마을의 모든 노인들이 전력으로 달려서 도착한 곳은 무혼의 방 앞이었다.
무혼의 방문을 열자 그들은 눈을 크게 떴다. 잠들어 있는 무혼의 몸이 방의 중앙에 떠 있었고 방을 가득 메우는 구의 안에는 무혼을 중심으로 거칠게 휘몰아치는 검은 기운들이 보였다.
보고 있는 노인들은 서로를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혼아가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 맞나?”
“자네 무슨 소리인가? 자네와 내가 같이 확인했던 것이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어떻게……. 아무래도 대귀나 귀왕이라도 된 것 같은데? 게다가 혼아는 이 정도의 강대한 마력을 감당하지 못할 터인데 이를 어찌해야 하나?”
그러자 천마가 갑자기 손에서 강기를 뽑아내더니 초 노인에게 한마디를 했다.
“내 힘으로 상쇄되지 않을까?”
“아서게. 자네가 저 힘과 충돌한다면 둘 다 자멸하게 될 것이고 이 마을은 붕괴되어 버릴 것일세.”
“그래도…….”
두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던 공야 노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최근에 혼아에게서 부탁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부탁인가?”
“혹시 자신이 긴 잠을 자더라도 절대로 놔두기를 부탁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저 모습을 보니…….”
“흐음…….”
공야 노인의 말을 들은 천마와 초 노인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 노인의 걱정을 덜어주기라도 하는 듯 무혼의 몸을 은은한 백은색의 빛이 감싸고 검은 기운들은 속도가 느려지더니 무혼의 몸으로 흡수되어 갔다.
그리고 무혼의 몸은 검게 변하다 본래의 색을 돌아가고 있었다.
눈을 뜬 무혼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성공했다. 아이네스의 신성력이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아이네스의 강한 염원이 담긴 신성력이 검은 기운의 반발력을 최대한 눌러주었고 무혼의 몸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아이네스 소저에게 계속 신세만 지게 되는군.’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의 노인들이 모두 걱정스러운 눈으로 무혼을 보고 있었다.
‘이런!’
머쓱해진 무혼은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혼아야, 무슨 일이 있었더냐?”
“그것이…….”
마당으로 나온 무혼을 보며 천마가 물어보자 무혼은 잠시 망설이다 주위의 노인들에게 중원에 대한 이야기와 예소소의 이야기 그리고 아이네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오호, 그러니까 그 여자아이와 혼아가 이어져 있다는 게냐?”
“그렇습니다.”
무혼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들은 모두 신기하다는 듯이 보더니 한 노인이 생각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예소소라는 아이의 예언이 맞는다면 네가 흑도와 백도의 공존의 이유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색목인의 여자애와 영혼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겠구나. 색목인의 아이가 빛의 신의 아이라 했느냐?”
“그렇습니다. 그녀가 가진 강한 신성력 때문에 제 몸을 통해 중원의 많은 흑도의 기운이 아이네스 소저의 대륙으로 흘러간 듯하지만, 그곳에서도 많은 기운 때문에 문제가 생겨 저에게로 다시 돌려보낸 듯합니다. 만년목은 제가 명계의 기운을 해결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 만년목에도 내단이 있을까?”
“헛소리하지 말게. 설혹 있다고 해도 자네가 욕심낼 만한 것이 아니야.”
키가 작은 노인의 말에 천마가 호통을 치자 여기저기서 헐헐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만년목이라니 생각이 나는 것이 있구먼.”
“어떠한 것입니까?”
“서장의 아주 오래된 문헌에 있던 내용일세. 그 문헌 중에 신목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였네. 신목이 그 세계의 모든 어둠의 기운을 정화한다고 하던데…….”
“오호. 그렇다면 그 여자아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말인가?”
말을 꺼낸 노인은 고개를 저은 뒤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서장의 단체는 그곳의 악마들을 불러내어 중원을 침공하고자 했었네. 비록 그들이 말하는 문이라는 것이 열리지 않아 결국 하지 못했지만,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야기가 허구만은 아닌 모양이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네. 어찌 되었든 흑도와 백도의 공멸을 피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이 아이가 그 열쇠가 될 아이라면 우리는 이대로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흑백공존의 방법을 찾아 아이를 통해 중원에 전해지게 해야 하네.”
“흑도와 백도가 공생할 수 있는 길이라?”
“허어…….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참 문제로구나.”
“저 멍청한 손자 녀석이 그런 일에 끼어들었다니.”
도제의 조부가 도제를 노려보자 민망해진 그는 슬그머니 얼굴을 돌렸다.
“그래, 너도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흐음.”
그들의 후손이 두 패로 갈려 서로를 멸망시키려는 막기 위해 노인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각자 신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자 나중에 다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는 노인들을 보며 천마는 무혼에게 다가왔다.
“그래 몸에는 이상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네스 소저의 신성력이 저의 몸을 보호해준 듯합니다.”
“크나큰 기연으로 많은 힘을 얻은 만큼 많은 고생도 하게 되는 게야. 그래도 꺾이지 말고 힘을 내야 하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만년목의 검은 기운이 사라진 다음 날, 아이네스는 엘라드를 불렀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엘라드, 지금 무혼 경이 곤란한 지경에 있어요.”
“곤란한 지경이라니요?”
“중원에서는 명계라고 부르는 곳인데 이곳의 마계와 비슷한 곳이에요. 무혼 경이 지금 그곳에서 지내고 있나 봐요.”
아이네스의 말에 엘라드는 얼굴에 놀라운 빛을 띠었다.
그동안 아이네스에게 중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엘라드로서는 중원에 신계와 마계로 향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들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이곳의 통로처럼 무혼 경의 세계에도 마계로 통하는 통로가 있나 봐요. 문제는 그곳에서 돌아오는 통로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찾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요.”
그 말을 들은 엘라드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의 대답을 아이네스는 조용히 기다렸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물의 사냥이 끝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곧 왕궁으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크아아아!”
애처로이 괴성을 지르는 마물을 단칼에 베어버린 기사가 투구를 벗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옆의 기사에게 이야기를 했다.
“마물들이 모두 이렇게 허약하면 쉽게 처치를 할 수 있을 터인데.”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어둠의 기운이 사라지고 만년목의 기운이 뻗어나가면서 엘프의 숲에서 마물들이 힘을 쓰지 못하니 이 정도이지 만약 이놈들이 엘프의 숲을 빠져나가기라도 한다면 그 힘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놈이 될 걸세.”
그 말을 들은 기사는 다시 투구를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동맹군이 가끔 내세우는 마물들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기는 했다.
“자, 어서 서둘러 모든 마물들을 처치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세.”
“그러세.”
만년목이 다시 힘을 되찾고 어둠의 기운이 사라지자 남은 마물들은 힘을 잃고 엘프의 숲의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정령의 도움을 받으며 엘프들이 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내고 있었고 발각된 마물들은 연합군의 칼날 아래 조각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