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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75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75화

75화 악의 태양 (4)

 

 

어린이날인 5월 5일, 우리는 인도의 뭄바이에 도착했다.

 

시나이반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습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덤이었고.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이라 그런지 뭄바이는 평화로웠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상인들은 향신료와 견과류, 과일 따위를 팔기 위해 열심히 소리쳤고, 아이들은 짐을 옮기는 노가다꾼들 사이로 뛰어다니기 바빴다.

 

사방을 둘러봐도 전쟁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이곳만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커다란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뭄바이에서 다시 열차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거리가 거리다 보니, 이 역시 시간이 한참 걸렸다.

2주 가까이 열차-배-열차를 번갈아 가면서 타니 <걸어서 세계 속으로> 촬영 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 끝에 도착한 곳은 다카.

 

방글라데시의 수도가 되는 곳이지만, 아직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려면 한참 남았으므로 현재까지는 인도의 도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조차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우린 또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계속해서 이동, 국경을 넘어 버마로 들어섰다.

 

수도 랑군을 비롯, 버마의 주요 거점은 이미 일본군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상부 또한 버마의 방위를 포기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버마에 있는 일본군과 싸우는 것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대대의 임무는 아군 보병사단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도록 그들의 후미를 엄호하는 것이었다.

 

작전이랄 것도 딱히 없었다.

 

철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지정된 방어진지를 고수하면서 일본군이 공격해오면 격퇴하는 것. 참 쉽죠?

 

"......쉽기는 개뿔."

 

버마에 들어서자 날파리와 모기떼가 우릴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막이 물이 없어서 지옥이라면, 이곳 정글은 벌레들이 차고 넘쳐서 지옥이다.

 

정글에서의 위장을 위해 카키색 군복과 살충제가 지급되긴 했지만, 벌레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잇 X팔, 뭔 놈의 모기들이 이렇게 많아?"

"하도 못 해 살충제 정도는 줘야 할 거 아냐, 이 새끼들아!"

 

21세기 한국에도 모기들이 많긴 하지만, 이곳은 정말이지 차원이 다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모기들이 날아와 살갗에 빨대를 꽂으려고 하는 바람에, 모기들이 앉을 수 없도록 부지런히 팔다리를 휘저어야만 했다.

 

살충제를 뿌려 박멸을 시도하긴 했지만, 죽인 모기들보다 더 많은 모기가 달려드는 바람에 매번 무위에 그쳤다.

 

"쪽발이들이 오기도 전에 모기들 때문에 먼저 죽겠어."

"차라리 제리들과 싸우는 게 더 낫겠습니다."

 

허나, 모기나 파리는 정글에서 그나마 양반에 속하는 녀석들이었다.

진짜 괴물들은 따로 있었다.

 

비둘기만 한 크기의 나방과 주먹만 한 크기의 거미가 나타났을 땐, 진지하게 자해까지 고민했다.

 

밥 먹는데 갑자기 발밑에서 다리 여덟 개의 털복숭이 친구가 나타났다고 생각해봐라.

심장마비 안 걸린 게 천만다행이지.

 

토마스는 한술 더 떠 똥 싸다가 지네가 발목을 휘감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졸도할 뻔했다.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진정한 지옥이리라.

 

***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는 벌레 무리의 습격에 서서히 무너져갈 무렵,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처럼 모기들한테 시달리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점호를 받는데, 포성이 들렸다.

 

아주 먼 거리에서 들린 자그만 포성이었지만, 포성은 포성.

 

점호는 즉시 중단되었고, 우리는 즉시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대기에 들어갔다.

 

10분 후, 하늘에서 굉음이 울리면서 전투기 한 대가 불쑥 나타났다.

 

속도가 빨라서 기종을 정확히 확인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양쪽 날개와 꼬리에 그려진 커다란 붉은색 원만큼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틀림없는 일본기였다.

 

녀석은 정찰이 목적이었는지 주변을 한 바퀴 쭉 돌더니 기수를 돌려 동쪽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여러 번의 포성이 들렸다.

이번에는 제법 소리가 컸다.

 

-여기는 도마뱀. 코뿔소는 수신 바람.

 

"여기는 코뿔소. 무슨 일인가?"

 

-방금 동물원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왔다. 코뿔소는 보병 소대를 이끌고 A-3 지점으로 가서 대기하라는 명령이다.

 

"알겠다."

 

무어 대위의 말에 나는 지도를 펼쳐 A-3 지점이 어디인지 확인했다.

 

현 위치로부터 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으로, 바로 앞에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지형도 딱히 이상 없다.

 

"여기는 코뿔소 1. 지금부터 A-3 지점으로 이동한다. 각 차량 간의 거리는 30m를 유지하기 바란다."

-여기는 코뿔소 2, 수신.

-여기는 코뿔소 3, 수신.

-여기는 코뿔소 4, 수신.

 

***

 

"헉, 헉!"

 

버마의 정글은 지나(중국)의 오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군화에 차이는 자잘한 돌멩이들, 사람 팔뚝만큼이나 굵은 나무뿌리들, 본드처럼 군화 밑바닥에 들러붙는 진흙 덩어리들.

 

거기에 화룡정점으로 귓가에 앵앵거리는 날파리들과 모기떼까지.

 

왜 사람들이 정글을 '녹색 지옥'이라 부르는지 알겠군.

 

다나카 히로시 오장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는 것도 잊은 채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는 120명이 넘는 병사들이 다나카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비록 고되고 힘든 행군이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황군의 일원으로, 자신의 손으로 대동아공영권(大東亜共栄圏)을 이륙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지친 몸에 계속해서 활기를 불어넣었다.

 

일본군의 사기는 가히 최상 수준이었다.

 

한 달 전, 진주만 기습의 대성공으로 미국은 손발이 잘린 상태였고, 영국군과 네덜란드군 모두 황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마테라스의 수호를 받는 황군은 무적이다!

그 누구도 황군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지나의 흉포한 비적들도, 오만한 영미군의 총칼도, 험난한 정글조차도!

 

"이것들 봐라. 너희들이 그러고도 황군이냐? 인도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더 힘을 내서 부지런히 걷도록!"

"예!!!"

 

중대장 오오카미 호무라 대위의 호통에 중대원들이 목청껏 소리를 쳤다.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전장에서 소리를 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연승으로 자신감에 가득 찬 일본군은 그런 기본적인 전투 규범 따위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나카의 발은 물집이 잡혀 뻘겋게 부어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다나카는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중대원이 같은 상황일 터, 혼자서만 아프다고 티를 내는 것은 무사의 수치다.

 

다나카가 고향인 나가노를 떠나 대륙에 발을 디딘 지도 어느새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일화사변(중일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다나카는 군대 최하위 계급인 이등병이었다.

 

군에서의 대우는 장교가 1위, 그다음이 오장, 그다음 말, 그다음이 병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군에서 병사 계급의 대우는 심히 좋지 않았다.

 

그중에서 특히 계급이 가장 낮은 이등병의 경우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나카도 이등병일 때는 매일같이 고참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구타와 욕설은 기본이고, 하루는 밥이 설익었다는 이유로 동기들과 함께 3시간 동안 나무 몽둥이로 매질을 당한 적이 있었다.

 

몸이 약했던 동기 한 명은 결국 죽었고, 두 명은 엉덩이가 심하게 부은 나머지 군의관의 진료를 받았다.

 

그들은 결국 장기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고 후송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구타한 고참들은 가벼운 질책만 들었을 뿐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때마다 다나카는 억울하고 분해서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늘도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겼는지, 그는 이어진 격전에서도 운 좋게 매번 살아남았다.

 

그를 구타한 고참들도 적군의 총탄에 맞아 죽을 때, 다나카는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다.

 

한 번은 코앞에 박격포탄이 떨어져 그만 튕겨 나간 적이 있었는데, 떨어진 곳이 깊은 연못이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살아남은 다나카는 살아남은 공로로 진급에 진급을 거듭했고, 올해 2월에는 꿈에 그리던 오장이 되었다.

드디어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주만 공습 직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이동한 다나카의 부대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한동안 대기하다가, 열흘 전에야 국경을 넘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버마.

 

더 정확하게는 버마 바로 너머에 있는 인도였다.

 

영국군은 오합지졸 그 자체.

5월이 끝나기 전에 버마를 모두 장악하여 지나로 통하는 뱃길을 끊어버린다.

나아가 인도로 진격하여, 영국의 압제에 신음하는 인도인들을 해방해 동지로 삼는다!

 

사단장의 훈시를 들은 다나카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시아 전역에 일장기가 휘날릴 때까지 진격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꾹 참고 버티면 된다.

 

승리가 눈앞에 있다.

 

열심히 행군하던 다나카는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드니, 하천이 보였다.

 

***

 

"애덤, 정지."

 

울창한 수풀과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자 하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도에 나와 있는 그대로였다.

 

무어 대위에게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자,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전차를 위장하고 대기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찰기의 보고에 따르면 적들이 이곳을 통과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확신은 없다고 한다.

 

적이 안 나타나는 게 가장 좋지만, 나타나도 싸워서 격퇴하면 그만이다.

 

살충제는 부족해도 포탄과 탄약은 넉넉하게 있으니 말이다.

 

휘하 전차들에게 전차를 위장할 것을 지시한 다음, 전차에서 내려 으쓱한 수풀로 들어갔다.

물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전차와 함께 이동한 보병들도 제각기 자리를 잡고 참호를 팠다.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닿았다.

 

"X발, 이런 벌레투성이인 곳에서 무작정 죽치고 있어야 한다니. 이집트에 있을 때가 그립구만."

"맞아. 여기에 비하면 그곳은 천국이었어."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전차병이 될 걸 그랬어. 적어도 진흙 바닥에 엎드려야 할 일은 없었을 거 아냐."

 

훗.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차병도 전차병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이런 환경에선 전차가 훨씬 낫다.

 

비록 내부가 찌는 듯이 덥긴 하지만, 그래도 보병들처럼 벌레가 득실거리는 맨땅에 엎드려 있을 일은 없으니 말이다.

 

아, 생각해 보니 참호도 팔 필요도 없다.

전차 자체가 훌륭한 이동식 벙커니까.

 

뿌듯함을 느끼며 바지춤을 올리는데, 건너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한두 사람이 아니고 수십 명이 걸으면서 내는 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나란히 서서 행군 중인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붉은 원이 그려진 하얀 깃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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