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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9화

109화 반격 (2)

 

 

"각하, 급보입니다! 제155보병연대의 방어 구역이 적에게 돌파당했다고 합니다!"

"제605대전차대대를 투입하도록."

"제433보병연대로부터 퇴각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안 돼. 예비대를 보낼 테니 끝까지 버티라고 해."

 

연합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롬멜의 사령부는 동시에 분주해졌다.

 

사방에서 전화기와 무전기가 울렸다.

참모들은 부리나케 뛰어다니며 전선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롬멜에게, 전방 부대에 롬멜의 명령을 전달했다.

 

겨울의 짧은 휴식기 동안 롬멜은 없는 살림을 쥐어짜 방어선을 구축하고 보강해왔다.

 

방어선 구축을 위해 필요한 물자와 병력을 베를린에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요청한 양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분량이었다.

 

"장군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동부전선의 상황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서 어쩔 수 없소. 보낸 물자와 병력을 활용해 최대한 버텨주길 바라오."

 

그놈의 동부전선!

아직 영국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마당에 어째서 소련을 친 것이란 말인가?

롬멜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과거에 총통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늦어도 겨울이 끝나기 전에 소련은 무너질 것이다. 소련 정복이 끝난 후, 아프리카로 무제한의 지원을 약속하겠다.......

 

하지만 소련은 무너지지 않았다.

 

되려 베를린 전략가의 예상보다 훨씬 악착같이 더 완강하게 버티며 싸우고 있었다.

 

무적을 자랑하던 독일 국방군은 모스크바는커녕 스몰렌스크도 겨우겨우 점령할 수 있었다.

 

차라리 소련은 그대로 놔뒀어야 했거늘.

롬멜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련을 무너뜨리고 광활한 러시아 영토를 강탈해 레벤스라움으로 삼겠다던 원대한 야망은 끝없는 수렁이 되어 귀중한 병력과 물자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었다.

 

덕분에 아프리카의 추축군은 죽을 맛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깔봤던 미군의 전투력까지 강화되었다.

 

아군 정보부의 첩보에 따르면, 이전에 미군을 지휘했던 장군은 무능력으로 인해 패튼이라는 자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패튼이란 작자가 워낙 별종이라서 미군을 혹독하게 훈련했고, 그 결과 미군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고 한다.

 

"갈수록 어째 일이 꼬이는 것 같구만."

 

롬멜은 혀를 차며 잔에 든 물을 마셨다.

 

의사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업무에 시달린 탓에 건강이 도로 악화하고 있었다.

 

그는 본국의 의사가 준 약을 입에 털어 넣곤 다시 작전현황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국군이 어디까지 전진했지?"

 

롬멜의 말에 부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작대기로 지도의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최전선의 아군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만...... 적이 너무 강력합니다. 추가 지원이 없다면 현 전선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크음......."

 

롬멜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필사의 노력으로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연합군의 공세를 막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아직 방어선을 사수하고 있는 부대도 있지만, 적에게 돌파당해 역으로 포위당하기 직전인 부대도 있었다.

 

참모들의 말대로 현 전선에서 퇴각해 새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저 개떼처럼 몰려드는 연합군을 막아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베를린에선 현 전선에서 퇴각하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는 버릇처럼 '후퇴 불가, 현 위치 사수'를 요구해왔다.

 

그런 그의 요구를 무시하고 계속 후퇴했다간 지금 이 자리조차 위태로울지 모른다.

 

"일단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자고. 적들도 무적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야. 우리가 악착같이 버티면 적들도 지치겠지."

 

그때 한 장교가 전보를 들고 달려왔다.

 

전보를 건네받은 롬멜의 얼굴이 굳어졌다.

 

'알렉산드리아 함락, 이탈리아군은 현재 퇴각 중.'

 

***

 

튀니지 방면에서 연합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연합군은 반격을 개시했다.

 

쥐꼬리만 한 보급을 받아 가며 겨우겨우 버티던 추축군의 수장 가리볼디는 결국 알렉산드리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도시를 버리고 메르사마트루까지 퇴각하여 새 방어선을 형성한다.

 

가리볼디의 결정을 들은 참모들은 너무 멀리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지만, 사실 그들도 지금 상황에선 퇴각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 알라메인까지만 퇴각하자는 참모들에게 가리볼디는 강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설파했다.

 

엘 알라메인은 알렉산드리아와 멀지 않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금방 영국군이 추격해올 것이다.

 

허나 메르사마트루는 거리가 제법 멀어서 적들도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리비아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보급이 원활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알아들었으면 짐이나 싸게. 영국 놈들이 오기 전에 이곳을 떠야 하니까."

 

그렇게 알렉산드리아는 다시 영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빼앗기 위해 쓰러져간 병사들의 최후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허무한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

 

"모두 정지. 45분간 휴식한다."

"끼야호!"

 

휴식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환호 소리가 귀에 닿았다.

 

열과 땀내로 가득한 전차에서 탈출하자 갑갑한 기분이 한결 가셨다.

거기다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온몸이 나른해지는 기분이다.

 

독일군의 장벽을 드릴로 뚫어 박살 내고, 진격을 거듭하는 아군의 발목을 잡은 것은 기름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전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말짱 꽝이다.

 

2차대전 말기,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던 티거, 판터 같은 전차들도 기름이 없는 탓에 고철 더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병력이 병력이다 보니 그만큼 소요되는 기름의 양도 어마무시했다.

 

공격의 선두에 선 우리는 기름을 제때 보급받을 수 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린 후방 부대들의 경우, 기름이 없어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후방의 부대가 발이 묶인 탓에 선두의 병력도 멀리 진격할 수 없었다.

 

후방을 냅두고 혼자 멀리 진격했다가 적에게 옆구리라도 공격당하면 어쩌려고?

 

최선두 부대는 진격하다가 뒤따라오고 있는 아군을 생각해서 진격을 멈추고, 후방 부대가 열심히 따라와 선두를 따라잡으면 그제야 다시 출발하는 웃픈 광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의 전쟁이니까.

 

소설에서처럼 병력과 무기만 있으면 적국 수도까지 쾌속으로 진격할 수 없다고.

 

"소대장님, 저희 위치가 어디쯤 됩니까?"

"그건 갑자기 왜?"

"아뇨, 그냥 어디까지 왔나 궁금해서 그럽니다."

 

애덤의 물음에 나는 지도를 꺼내 펼쳤다.

어디 보자.......

 

"이쯤 되겠군. 실리아나 코앞."

 

엘케프를 점령한 아군의 다음 목표는 실리아나였다.

 

실리아나 다음은 엘 파스였고, 엘 파스 다음이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였다.

 

지금 같은 속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초여름쯤에 튀니지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과연 아군은 어디를 노리게 될까?

 

곧바로 시칠리아로 직행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남진하여 리비아를 공략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든 간에, 내 소망은 오직 하나다.

빨리 이 엿 같은 사막에서 탈출하는 것.

 

마실 물조차 부족해 손 씻는 것조차 할 수 없고, 밤에는 철원 뺨칠 정도로 추운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얘들아, 편지 받아라!"

"우와아아아!"

 

게이츠 원사가 품에 우편물을 한가득 안고 나타나자, 병사들은 환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게이츠 원사가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할 때마다 이름이 호명된 병사들은 기쁜 얼굴로 편지를 받아 돌아갔다.

 

"......그리고 아서 그레이 대위님! 여기 편지 받아가십쇼!"

"아, 고맙습니다."

 

우편물 중에는 내 몫의 편지도 있었다.

총 두 장으로 집에서 보낸 것이 하나, 또 하나는 레이첼이 보낸 편지였다.

 

집에서 보낸 편지는 내 안부를 묻는 것과 집안 사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 했던 샬롯은 현재 간호사가 되기 위해 실습 과정을 밟는 중이었고, 마이클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으로 입대를 했단다.

 

나처럼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나 뭐라나?

정신 나간 녀석 같으니라고.

 

아버지가 말려보려고 했지만, 이미 입대 신청이 받아들여진 후라 손 쓸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레이첼의 경우 전시인데도 장사가 너무 잘 되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버지인 찰리 씨 혼자선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기 힘든 탓에, 직원도 여러 명 새로 뽑았다고 한다.

 

아예 찰리 씨는 레이첼에게 기자 생활 그만두고 자기 도와서 일하라고 권유 중인데, 레이첼도 마침 기자 노릇하면서 여러 험한 꼴을 당했는지 결심이 흔들리고 있는 중이란다.

 

아무튼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모처럼 고향 소식을 접하게 되어 가슴이 훈훈해지는데 무어 소령이 다급한 얼굴로 소리치며 뛰어오는 것이 아닌가.

 

"비상! 모두 승차해라!"

"승차!"

 

편지를 읽으며 감상에 젖은 병사도,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병사들도 승차 소리를 듣기 무섭게 전차에 올랐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저렇게 급하게 소리치는 것을 보니 보통 일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소대장님, 갑자기 또 뭔 일이랍니까?"

"나도 몰라, 젠장! 일단 빨리 타기나 해!"

 

전 중대원들이 승차한 직후, 무어 소령의 무전이 전해졌다.

 

-방금 연대본부에서 내려진 명령이다. 전 병력은 즉시 실리아나로 진격할 것.

 

휴식은 그렇게 중단되었다.

연대본부에서 내려진 명령에 따라 우리는 즉시 실리나아로 진격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타 부대들도 모두 같은 명령을 접하고 실리아나로 전진 중이었다.

 

***

 

10분 전.

 

"뭐라고?!"

 

한가롭게 앉아 홍차를 홀짝이던 몽고메리는 부관의 말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급히 일어서느라 찻잔 속의 홍차가 넘쳐흘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그게 사실인가?"

"예, 각하. 방금 전 미군으로부터 마크타르 점령을 완료했다는 보고가──."

"그럴 리 없어. 그 양키 놈들이 무슨 수로......."

 

몽고메리를 놀라게 한 소식은 다름이 아니라 미군이 마크타르를 점령하고 캐루안으로 진격 중이라는 보고였다.

 

미군의 전투력을 깔보고 있던 몽고메리는 자신이 실리아나를 점령한 후에야 미군이 마크타르에 도달할 거라 믿었다. 참모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군의 진격 속도는 그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상을 초월했다.

 

영국군이 실리아나 근처까지 왔을 때, 미군은 이미 마크타르를 손에 넣고 다음 목적지인 캐루안으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몽고메리는 자신이 그토록 깔보던 미군이 자신보다 빨리 목적지를 점령하고 다음 목적지로 진격 중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른 군대도 아니고 그 오합지졸 양키들이!

 

"대체 그놈들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

 

몽고메리를 경악하게 한 미군의 쾌속 진격의 비결은 바로 패튼이었다.

 

프레덴달을 대신해 군단장에 부임한 패튼은 즉시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속한 미군이 동맹군인 영국군으로부터 '무기만 좋은 오합지졸들'이란 소릴 듣는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오합지졸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독일군과 싸워서 이기는 것.

 

그것도 아주 제대로 싸워서 제대로 이기는 것. 그것뿐이다.

 

그런데 독일군과 싸워서 이기려면 지금의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독일군과 싸울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개조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개조하려면, 혹독한 훈련이 필수다.

 

훈련, 훈련만이 이 병신들을 진짜 군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오직 독일군과 싸워서 이기고, 영국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패튼은 병사들을 열심히 굴렸다.

 

훈련소에 직접 행차하여 땅바닥을 구르는 병사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훈련을 맡은 장교들에게도 호통을 쳤다.

 

"이게 지금 뭔가?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훈련이 이래서야 총이나 제대로 쏠 수 있겠어?"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군장을 짊어지고 5km 구보를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열외자는 밥도 주지 마. 기본적인 훈련도 통과하지 못하는 놈들은 밥 먹을 자격 없어."

 

"명심해라. 독일 놈들을 조지려면, 우리가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괴물이 되지 않으면 괴물을 잡을 수 없어, 알겠나?"

 

이러한 패튼의 방침 덕분에 영국군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미군은 겨울 동안 내내 지옥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악에 받친 미군은 필사의 각오로 독일군에 맞섰고, 예상을 뛰어넘는 미군의 맹공에 독일군은 서서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독일군 수뇌부가 영국군 전선에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하고, '전투력이 약한' 미군에 적은 병력만 배치한 것도 미군의 승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각하, 보고드립니다. 마크타르 주둔 독일군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나도 알아. 지금 보고 있으니까."

 

부하의 말을 자른 패튼은 곧이어 그다운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 잡일은 후속 부대에 맡기고 계속 전진하라고 전해."

"예에?!"

"하, 하지만 각하, 아직 저희는 도시를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습니다만."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 원래 군인은 기름과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전진해야 하는 법이야. 그래야 저 가증스러운 제리들도 잡고, 만만찮게 역겨운 영국 놈들 면상을 발로 짓밟아줄 수 있지."

 

패튼의 말에 그와 동행했던 영국군 연락 장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패튼은 노심초사하는 참모들을 둘러보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모두 명심하도록! 우리의 목표는 제리들을 몰살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영국 놈들이 다시는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그 긴 코를 꺾어버리는 것일세! 알겠나?"

 

그렇게 미군은 마크타르 점령을 완료하자마자 캐루안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몽고메리는 자연스레 똥줄이 탔다.

 

자신이 우습게 여기던 미군보다 진격이 늦으면,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지금 당장 전진 명령을 내리는 수밖에.

 

"즉시 전 병력에 전해. 당장 실리아나로 진격하라고. 절대로 저 양키 녀석들보다 뒤처질 수 없으니까. 절대로!"

 

두 장군의 자존심 대결로 피해 보는 것은 일선의 병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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