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8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8화
108화 반격 (1)
해가 지나 1942년이 되었다.
겨울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영국 본토, 그리고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오는 물자와 병력을 꾸역꾸역 먹으며 몸집을 불린 아군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자 본격적인 반격에 들어갔다.
작전명은 버팔로.
목표는 튀니지 내 추축군 말소와 튀니지 전역 장악이었다.
활주로에서 이륙한 폭격기들이 독일군의 머리 위로 폭탄을 투하하고, 포병들은 열심히 야포와 곡사포를 쏘아댔다.
야포 한 문의 발사음도 어마어마한데 수십, 수백 문의 야포가 불을 뿜으니 땅이 흔들거리고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지켜보는 우리들조차 속이 울렁거릴 지경인데, 포격을 당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고역일까? 좀처럼 상상이 가질 않는군.
다시금 내가 영국군인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에 빙의했다면...... 어우.
"상상만으로도 토 나오는구만."
겨우내 새로 지급된 크롬웰 전차는 공장에서 갓 출고된 따끈따끈한 신품으로, 기존 엔진에서 문제점을 개선한 신형 엔진을 단 녀석이었다.
덕분에 그동안 전차병들의 복창을 터지게 만들었던 잔고장은 이제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선에서 크롬웰의 활약에 감명받은 상층부에선 기존에 생산하던 마틸다와 발렌타인, 크루세이더의 생산을 모두 중지하고, 크롬웰과 처칠로 차종을 통일한다고 한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전차들은 본토 훈련용으로 돌리거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군에 지급할 예정이었다.
전차병들은 새 전차를 받아서 좋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구식 전차들로 영연방 내 우애와 친목을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나 다름없다.
"야, 잭슨. 졸지 마라. 여기가 무슨 너희 집 안방이냐?"
오랫동안 좌석에 앉아 대기하느라 꾸벅꾸벅 졸던 잭슨의 어깨를 발로 툭툭 건들자 녀석은 화들짝 놀랐다.
이래놓고 한다는 소리가──.
"오해십니다, 소대장님. 저 안 졸았습니다."
"어이구, 방금 네 머리가 까딱거리는 거 내가 다 봤는데? 이게 어디서 구라를 치고 있어?"
대기가 길어지다 보니 이젠 조는 녀석들까지 나왔다.
일반인들이라면 폭음과 진동 때문에 있던 잠도 달아나겠지만, 전장의 군인들은 엉덩이만 깔고 앉으면 스르르 잠에 빠지는 마법을 부리게 된다.
공격 준비 명령이 떨어진 지 벌써 30분째.
아직도 포격은 계속되고 있다.
하늘에선 폭격기들이 쉬지 않고 하늘을 오가며 적진에 폭탄을 투하했다.
아무래도 상부에선 독일군을 완전히 몰살시키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가공할 포격에도 꼭 살아남는 놈들이 있단 말이지.
그런 놈들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운이 좋은 건지, 살고 싶다는 생존본능 덕분에 악착같이 살아남은 건지 도통 모르겠다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무어 소령으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5분 후, 포격이 끝나는 즉시 전진할 것.
그 전에 마지막으로 전차를 점검해두라는 소리였다.
"들었지? 5분 뒤 돌격이다. 마지막으로 볼일 급한 사람 있으면 미리 말해."
"알겠습니다."
볼일 급하다고 해서 전차에서 내리는 것은 금지지만, 탄약통에 보는 거라면 OK다.
포격이 끝나기 3분 전.
신호가 왔는지 토마스가 주섬주섬 바지를 내리더니 탄약통에 소변을 눴다.
그런데 녀석이 아직 소변을 누고 있을 때 포격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무어 소령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렸다.
-중대, 전진!
"들었지? 전진!"
전진 명령이 떨어지자 전차들이 일제히 돌격을 감행했다.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후에도 토마스는 계속 소변을 누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에선 당혹감이 강하게 묻어났다.
"야, 토마스, 언제까지 싸고 있을 거냐?"
"소대장님, 죄송합니다만 이게 제 마음대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이구. 아침에 목마르다고 물을 있는 대로 들이키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여기까지였다면 단순한 헤프닝에 끝났겠지만, 바로 이 순간 전차가 들썩거리면서 탄약통에 들어찬 오줌이 그대로 원주인에게 튀고 말았다.
"이런 X발!"
졸지에 오줌을 뒤집어쓴 토마스는 입에서 쌍욕을 내뱉었다.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이보다 더 진귀한 구경도 없었지만, 본인이 싼 오줌을 본인이 뒤집어쓰게 된 토마스 입장에선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뭐하냐? 아직 전투도 안 끝났는데 세수는 조금 이른데?"
"입 닥쳐!"
이죽거리는 잭슨에게 성질을 낸 토마스는 옷깃으로 얼굴에 묻은 소변을 닦아냈다.
안 그대로 땀내와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전차에서 암모니아 냄새까지 더해지자 숨 쉬는 것이 곤욕스러워졌다.
오죽하면 해치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모래바람을 들이마시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포격으로 인해 형성된 연기구름이 걷히면서 회색 커튼 뒤에 감춰진 참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공할 포격으로 인해 땅은 달의 표면처럼 구덩이로 가득했고, 구덩이 주변에는 짓이겨진 살점과 팔다리 따위가 널려 있었다.
마치 운석이 충돌한 후의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 지옥 속에서도 생존자는 있었다.
-11시 방향 제리 놈이다!
3호차의 무전.
정말로 11시 방향에 적이 있었다.
땅에 차체를 파묻고 포탑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3호 전차였는데, 처음에는 격파된 전차에서 포탑만 따로 떨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포탑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잔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정지를 외치기 전에 적 전차의 주포가 불꽃을 토했다.
녀석의 목표는 구덩이를 타고 오르는 1소대 소속 전차였다.
포탄에 맞아 궤도가 끊어지는 바람에 전차는 그대로 정지하고 말았다.
"애덤, 정지. 토마스, 철갑탄 장전해!"
"옙!"
궤도가 끊어지는 바람에 발이 묶인 전차는 어쩔 줄 모르는 듯 좌우로 포탑을 돌리다가 뒤이어 날아온 포탑에 장갑이 얇은 차체 하부를 따이고 말았다.
포탄이 뚫고 들어간 자리에서 샛노란 화염이 새어 나오고, 포탑 해치로 생존자들이 뛰쳐나왔다.
중대의 첫 번째 피해였다.
"장전 끝!"
"조준 끝!"
"쏴!"
3호 전차를 노린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중대의 다른 두 전차도 녀석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총 세 발의 포탄이 3호 전차의 포탑에 작렬했는데, 그중 한 발은 포방패를 비껴 맞고 도탄 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발은 각각 포방패와 포탑 측면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명중!"
참호에 있던 독일군도 소화기를 쏘아대며 열심히 저항했지만, 아군 전차에 속수무책이었다.
전차들은 총알을 가뿐하게 튕겨내며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독일군을 비웃듯이 그들의 참호를 그대로 타 넘었다.
보병들도 열심히 전차들을 뒤 따라다니며 독일군의 참호를 하나씩 점령해나갔다.
그렇게 독일군의 첫 번째 방어선을 돌파했지만, 기뻐하기도 전에 두 번째 방어선이 나타났다.
겨울의 휴식기 동안 독일군은 이 일대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공격 개시 전에 실시된 포격과 공습도 독일군의 방어선에 균열을 내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실제로 아군의 포격으로 첫 번째 방어선은 상당한 타격을 입어 사실상 붕괴했지만, 문제는 두 번째 방어선이었다.
두 번째 방어선은 포격과 공습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은 탓에 전체적으로 멀쩡한 상태였다.
눈앞에 버티고 선 콘크리트 벙커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콘크리트 벙커를 향해 철갑탄 몇 발이 날아들었지만 허사였다.
포탄은 콘크리트 외벽을 뚫지 못했고, 벙커의 총안구 사이로 기관총이 불을 뿜어 아군 보병들을 사살했다.
철갑탄 서너 발이 콘크리트 벙커를 향해 날아갔지만, 허사였다.
포탄은 단단한 외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폭발했다.
폭발에 독일군의 사격은 잠시 멎었지만 연기가 걷히기 무섭게 재차 사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비밀병기가 있다.
속도가 느린 탓에 대열의 맨 뒤에 위치한 마틸다 헤지호그가 나타나 독일군의 벙커를 조준했다.
후면에 장착된 헤지호그에서 발사된 폭뢰들이 벙커를 강타하자 벙커는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져내렸다.
"그래, 저거야!"
비록 내가 직접 만든 물건은 아니지만, 내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전차가 전장에서 직접 활약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어디선가 날아든 포탄이 마틸다의 포탑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일격으로 유폭을 일으켜 포탑과 차체를 분리할 수 있는 대전차포는 흔하지 않다.
예상대로 마틸다를 일격에 격파한 괴물의 정체는 그놈의 88이었다.
-10시 방향에 88이다!
위풍당당하게 들어선 88이 돌격해오는 아군 전차들을 노리고 주포를 돌리고 있었다.
저 거대한 괴물의 포방패와 기다란 주포를 보자 온몸의 털들이 곤두서며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썅, 애덤! 좌측으로 돌아!"
살기 위해선 이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놈을 최대한 빨리 격파하는 수밖에 없다.
놈의 측면을 잡기 위해 좌측으로 도는 사이, 아군 전차들이 88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88을 향해 정면에서 돌격하며 포탄을 쏘아대던 크롬웰이 88의 일격을 받고 밥솥처럼 폭발했다.
차체는 포탑이 날아간 후에도 한동안 전진하다가 구덩이에 처박힌 후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아군 전차 두 대가 연속으로 터지는 것을 본 다른 전차들은 좀처럼 88에게 다가서질 못했다.
게다가 적은 88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곳에도 많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88을 제거하는 역할은 순전히 내게 돌아가고 말았다. 빌어먹을.
정면에 표적을 제거한 88은 이윽고 측면으로 도는 우릴 발견하고 즉시 회전했다.
88이 회전하는 모습을 본 나는 다급히 발포를 명했다.
"쏴!"
하지만 결과는 명중하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포탄은 88을 지나쳐 땅에 처박혔다.
사격과 동시에 공축 기관총도 사격을 가했지만, 포방패에 맞고 죄 튕겨 나갔다.
"애덤, 다시 전진! 서둘러!"
"예!"
엔진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초탄에 적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크롬웰의 빠른 속도 덕분에 적도 우릴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다.
88의 포구에서 섬광이 이는 순간, 몸 뒤로 뭔가가 슉 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표적을 빗 맞힌 88mm 철갑탄이 물수제비처럼 땅에 튕겨 어디론가 날아갔다.
이걸로 패는 다시 우리 쪽에게 넘어왔다.
애덤이 전차를 정지시키고 3초 뒤, 잭슨이 발사 페달을 밟았다.
포탄은 88의 본체를 맞추지 못하고 근처에 떨어졌지만, 파편만으로도 적 포병들에게 충분한 타격을 줬다.
적 포병들이 파편을 맞고 쓰러진 사이, 토마스는 냉큼 두 번째 유탄을 장전했다.
"발사!"
두 번째 포탄은 88의 포방패에 명중, 그 즉시 폭발하여 아직 남아있던 포병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가필드가 연기 속 적의 실루엣을 기관총으로 고꾸라뜨리고, 애덤은 88을 향해 돌격했다.
전차가 88에 충돌하기 전, 나는 포탑으로 들어와 충격에 대비했다.
콰자작!
전차의 단단한 몸체에 치인 88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믿었던 88이 쓰러지자, 인근 참호에 있던 독일군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공축 기관총 사격이 가해졌다.
***
영국군이 독일군의 방어선 북쪽과 서쪽을 공략하는 동안, 미군은 남쪽 공략을 맡았다.
미군도 영국군처럼 공격 개시 전 포격과 공중 폭격으로 적의 방어선을 약화시키고, 보병들과 전차들을 돌격시키는 전술을 택했다.
"모두 돌격 앞으로!"
"전진!"
공격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참호에서 대기하던 보병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불과 연기에 휩싸인 적진으로 돌격했다.
그런 보병들을 선두에 위치한 전차들이 적탄으로부터 보병들을 보호하는 방패이자 적진에 구멍을 뚫는 창 역할을 하며 나아갔다.
"정면에 적 기관총 진지다! 유탄 장전!"
"장전 완료!"
"발사!"
보병지원용으로 적절한 75mm 유탄이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를 때려 부수고, 포탑 상판에 설치된 기관총이 회전하며 독일군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대전차포가 불을 토해 전진하던 M3 리의 전면을 관통시켰다.
이로써 차체는 침묵했지만, 포탑은 여전히 살아서 포탄과 기관총을 쏘아댔다.
결국 포탑에도 한 발 먹인 후에야 전차를 완전히 잠재울 수 있었다.
곳곳에 배치된 대전차포의 공격으로 하나둘씩 격파되어 연기를 내뿜는 전차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미군의 공격 의지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되려 포탄이 터지고, 전차들이 격파당하며 쓰러지는 동료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미군은 광기에 가득 찬 함성을 내뱉으며 돌격해왔다.
"뭐야, 저 새끼들? 오늘따라 왜 저래?"
"양키들이 미쳤다!"
이런 미군의 광신적인 공격 의지는 독일군을 당황하게 했다.
이전의 경험으로 미군을 영국군보다 아래라고 얕잡아 보고 있던 그들에게 미군의 투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늘 이곳이 크라우츠들의 무덤이다!"
"돌격! 돌격!"
죽어간 전우들의 시체를 밟으며 전진하던 미군은 마침내 독일군 방어선에 도달, 문자 그대로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짓밟으며 전진했다.
참호에 있던 독일군이 어어 하는 사이에 목에 총검이 박혔다.
총검을 쑤셔 넣은 미군은 개머리판을 휘둘러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독일군의 턱을 깨부쉈다.
"좋아, 아주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잘해가고 있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가는 장군에게 참모가 걱정된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각하,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전선에서 조금 거리를 둔 곳으로 이동하심이......."
"떽!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곳도 충분히 먼데, 더 멀리 있으면 전투 상황을 제대로 지켜볼 수 있겠나?"
상관의 호통에 말을 꺼낸 참모는 불에 댄 듯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무릇이 군인은 앞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돼! 나는 말이야, 자네보다 더 젊었을 적엔 직접 제리들과 총싸움을 벌였다고! 프랑스에서!"
자신의 안전을 우려해 말을 꺼낸 참모에게 호통을 치는 이 남자의 이름은 조지 S. 패튼.
작년 겨울, 그는 졸렬한 지휘로 미군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혀 모가지가 날아간 프레덴달을 대신해 미 2군단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