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1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1화
101화 고난을 넘어서 (2)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소이까?"
패기 넘치는 답변을 들은 연대장 스콧 대령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옆에 서 있던 브랜슨 대령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군이 이 두 곳을 다 상대하겠다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예, 물론 제가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로이드 프레덴달 장군의 뜻입니다."
계급에 비해 무척 젊은 미군 중령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그런데 잠깐. 누구 뜻이라고?
"프레덴달?"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온 마음의 소리에 미군 중령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래, 우리 군단장님 성함일세.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그냥 말이 조금 헛나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미군 중령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고, 회의는 재개되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맙소사, 하필이면 그 프레덴달이라니.
프레덴달에 대해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2차대전 미군 장성들 중에서 가장 무능하기로 손꼽히는 작자다.
패튼은 물론이고, 그 사람 좋기로 유명한 아이젠하워와 브래들리조차 프레덴달을 졸장이라고 까댄 것을 보면 답 나오지.
이 인간이 저지른 여러 병크들을 나열하자면 그야말로 끝이 없다.
독일군의 역습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최전선에서 수십 km나 떨어진 후방에 지하 벙커를 지으라고 지시해서 애꿏은 시간과 비용만 날려먹지 않나, 전투 도중에 공중 지원을 끊거나 부대들을 너무 멀리 분산배치시켜서 상호 간의 지원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등,
이쯤 되면 독일군의 첩자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하필이면 그런 작자가 지휘하는 부대들과 함께 작전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뒷골이 땡기는군.
그러거나 말거나 스콧 대령과 미군 중령의 대화는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스콧 대령은 실전경험이 풍부한 우리가 선두에 서고, 미군이 그 지원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중령은 거절했다.
이번이 미군과 독일군의 첫 전투인 만큼, 미군이 선두에 서야 사기에 좋지 않겠느냐는 다소 몽상적인 얘기였다.
선두를 맡겠다고 한 것도 역시 그것 때문이었구만.
"그럼 중령, 이렇게 하지. 귀측이 선두에서 공격하고, 우리가 여차할 경우 지원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대기하겠소."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지원을 요청할 일은 없을 것 같군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소릴 하는 거지?
이해를 못 하겠네.
상관인 프레덴달이 얕잡아 보이면 안 되니까 강하게 나가라고 시킨 건가?
그런 것치곤 표정이 자연스러운데.
아무래도 독일군과 싸워본 적이 없어서 저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거라 확신이 든다.
1945년의 독일군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지금은 아직 1941년이다.
독일군이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인 시절이라고.
스콧 대령도 영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싸움하기 싫어서인지 미군 중령이 하는 말에 토 달지 않았다.
회의 결과, 미군이 선봉에서 공격하고, 아군은 그 뒤를 따르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내가 속한 1중대는 독일군 지역을 맡은 미군 제9중대의 지원을 맡게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던 나를 무어 소령이 불러세웠다.
"그레이 대위,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예? 무엇이 말입니까?"
"저 친구들 말이야."
무어 소령은 자기네 부대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는 미군 장교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눈빛에선 우려와 경멸이 반쯤 뒤섞여 있었다.
"나 참, 제리들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무슨 자신감으로 자기들이 다 맡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어."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와 달리 저들은 제리들과 싸워보지 못했으니까요. 전투 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원래 아군도 처음엔 독일군을 깔보다가 프랑스에서 큰코다친 후에야 정신을 차리지 않았던가.
독일군과 한 번 제대로 싸워보면 미군들도 많이 변하겠지.
아무튼 우리의 임무는 미군의 지원이었으므로, 병사들은 기뻐했다.
"캬, 역시 양키들은 통이 커. 이게 바로 진정한 동맹 아니겠습니까?"
내게서 작전 계획을 들은 애덤이 기뻐하며 외쳤다.
하긴, 높으신 분들이야 공을 뺏기게 생겼으니 기분이 언짢을 만하지만, 전공 따윈 관심 없는 일반 병사 입장에선 탱커로 독일군과 포화를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으니 기뻐할 만하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
지휘관들의 독단으로 난데없이 선두에 서게 된 미군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기들이 선두에 서게 된 걸 그리 반길 것 같지는 않은데.
***
작전 시간이 되자, 포병대의 야포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사격 개시!"
포반장의 외침에 M2 105mm 곡사포들이 연이어 포를 쏘자, 독일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포탄이 착탄 할 때마다 강렬한 화염이 일면서 회색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미군 포병대가 포격을 가하는 동안, 공격에 나서기로 한 미군 보병들과 전차들은 고지를 향해 접근했다.
"왜 우리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M3 중형전차 전차장 앤드류 콜 중사는 볼멘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어째서 실전 경험이 없는 자신들이, 실전 경험이 풍부한 영국군보다 앞서 돌격해야 하는지 그는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틀림없이 높으신 분들 전공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겠지. 그분들은 우리들과 달리 최전선에서 돌격하지 않으니까.
동료 전차장 헨리 윌포드 중사의 말.
첫 실전이라 긴장될 텐데도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참나, 우리 생각도 좀 해야지. 전공 하나 세우려고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게 자랑할 일인가?"
-모두 잡담은 그만두도록. 지금부턴 전투에 관한 일이 아니면 쓸데없이 무전하지 마라.
중대장의 일갈에 콜은 입을 다물었다.
중대장은 비록 깐깐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의 말이 맞았다.
이곳은 애리조나의 훈련소가 아니라 전선이다.
훈련에선 죽을 일이 없지만, 사소한 실수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해지는 곳이 바로 전선이었다.
포격이 끝나자, 전진 명령이 내려졌다.
"모두 전진!"
"앞으로!"
움직이는 요새처럼 거대한 전차의 위용에 힘입은 보병들이 위풍당당하게 전진하는 가운데, 전차들도 무한궤도를 굴러 무거운 몸집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독일군도 응사를 개시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독일군은 소총과 기관총만으로 응사했다.
적군의 사격에 보병들 사이에서 사상자가 나왔지만 전차들은 총탄을 가볍게 튕겨내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정면에 적 기관총 진지다. 폴, 조준해."
"조준 완료!"
"좋아, 발사!"
"발사!"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를 향해 37mm 유탄 한 발이 날아갔다.
포탄을 맞은 기관총 진지는 사격을 멈췄다.
적 진지 제압에 성공한 줄 알고 기뻐하던 콜은 이내 적 진지에서 다시 사격이 가해지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포탄은 분명 명중했다. 그런데 아직 살아있다니!
적이 살아남은 원인이 37mm 주포의 약한 화력이라 생각한 콜은 차체에 장착된 75mm 주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데이비드! 정면의 적 기관총 진지를 조준해라! 탄종은 유탄으로!"
"알겠습니다!"
승무원이 7명이나 되는 M3 리는 차체와 포탑에 제각기 따로 포수와 탄약수가 있었다.
탄약수가 75mm 포탄 장전을 보고하자, 콜은 사격 명령을 내렸다.
"쏴!"
묵직한 포성이 울리고, 주포가 뒤로 후퇴했다가 다시 전진했다.
이번에도 포탄은 명중이었다.
허나, 포탄은 터지지 않았다. 신관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야, 왜 안 터져? 제대로 유탄 쏜 거 맞아?"
그러나 콜은 탄약수가 실수로 철갑탄을 장전한 줄 알고 그를 탓했다.
당황한 탄약수가 뭐라 변명하려는 순간,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독일군의 전차가 불을 뿜었다.
"웃!"
M3 리는 3호 전차의 50mm 철갑탄을 용케 튕겨냈다.
하지만 그의 동료 윌포드는 그렇지 못했다.
"맙소사, 헨리!"
윌포드의 전차는 측면에서 날아든 적탄을 맞고 불덩이가 되었다.
불타오르는 강철 관짝에서 전차병들이 필사적으로 해치를 열고 나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뜨거운 화염과 독일군의 총알.
적의 일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화염과 총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머리에 총알을 맞고 도로 해치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동료 전차병을 본 콜은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저, 저 개새끼!"
콜의 시선은 정면의 적 대신 아군 전차를 격파한 측면의 전차로 향했다.
측면에 자리 잡은 전차는 정면의 3호 전차와 같은 3호 전차였지만, 주포가 더 짧은 F형이었다.
그러나 분노로 이성을 반쯤 잃은 콜에게 적 전차의 주포 길이 같은 사소한 차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종수, 뒤로 후진!"
약 30m가량 후진한 후에야 콜의 입에서 정지 명령이 나왔다.
그 사이 그는 포탑으로 적 전차를 조준케 했다.
"조준 끝! 쏠까요?"
"쏴!"
주포를 떠난 철갑탄은 적 전차의 정면에 명중했지만 관통에는 실패했다.
튕겨 나가는 포탄을 본 콜은 이를 악물며 차체를 선회시켰다.
"사격해!"
37mm 주포보다 크고 무거운 75mm 주포가 화염을 토했다.
포탄은 3호 전차의 차체 전면 상단을 맞추었다.
맞은 포탄이 철갑탄이 아닌 유탄이었던 탓에 전차는 격파되지 않았지만 피해가 상당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궤도가 끊어졌고, 관측창과 기관총 파손으로 조종수와 무전수가 부상을 입었다.
거기다 주포도 손상되어 사격이 불가능해졌다.
적 전차를 전투 불능에 빠뜨렸으니 충분히 격파라고 부를 수 있었지만, 콜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그는 철갑탄 장전을 명령한 뒤, 조금 전 목표물에 재차 사격할 것을 지시했다.
"장전 완료!"
"발사!"
조금 전에 발사된 유탄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이번에 발사된 놈은 철갑탄이었다.
75mm 철갑탄에 직격당한 3호 전차는 모든 해치를 활짝 열면서 맹렬하게 타올랐다. 완전 격파.
"격파! 격파입니다!!!"
"맛이 어떠냐, 이 더러운 크라우츠 새끼야!"
펑펑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적 전차를 보며 콜은 광기에 가득 찬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적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적에게 측면을 노출하는 최악의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널찍한 M3 리의 측면을 향해 50mm 철갑탄이 날아들었다.
첫 발은 내부의 승무원들을 휩쓸었고, 두 번째 포탄은 유폭을 일으켜 포탑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
전투가 시작되고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무어 소령의 무전이 들어왔다.
-미군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역시나. 안 좋은 예감은 늘 어긋난 적이 없다니까. 늘 이런 식이란 말이지.
이탈리아군 전선은 큰 피해를 입었어도 어떻게 돌파에 성공했지만, 독일군 전선은 그렇지 못했다.
전투 전, 아군 지휘관들은 독일군 진지를 정면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동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러, 나!
"다방면에서 공격하면 부대가 분산되어 화력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지형 면에서 보더라도 측면은 전차가 기동하기 힘듭니다. 고로 정면에서 모든 화력을 쏟아부으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군 측은 아군 지휘관들과 달리 모든 화력을 정면에 집중해야 적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오밀조밀하게 구성된 적의 화망에 대다수 전차가 격파당하고, 보병들은 현 위치에서 그대로 발이 묶여버렸다.
뒤늦게 병력을 뒤로 빼서 적의 측면을 공격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상황.
전투 현황을 관측하던 포병대가 보병들의 지원 요청을 받고 재차 포격에 나섰지만, 갑자기 포격을 중지했다.
지금 포탄을 너무 많이 쓰면 앞으로의 전투에 지장이 간다는 프레덴달의 말이 있었다나 뭐라나.
결국 미군은 여차하면 지원해주기로 한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사실, 아군 지휘부도 미군의 계획을 끝까지 말리기는커녕 그럴듯한데? 하며 그냥 넘겼으니 무작정 미군 지휘부만 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출격할 시간이다, 제군들. 현 시간부로 전투에 돌입한다.
드디어 우리가 나설 차례로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