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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31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31화

131화 포로 (2)

 

 

"이런 세상에, 그 아서 그레이가 눈앞에 있다니. 이거야 원.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내가 들으라고 일부러 영어로 말하는 게 분명했다.

소령은 히죽 웃으며 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피우겠나, 대위?"

"됐습니다. 비흡연자라서."

"그래? 의외구만. 보통 그 나이쯤 되면 담배가 없어서 난리인데."

 

비흡연자에 대한 배려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라 대놓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것까진 상관없었다.

 

소령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목에 카메라를 건 중사가 다가와 사진을 찍었다.

 

"Ich mache noch ein Foto(한 장 더 찍게)."

"Ja(예)."

"기분이 어떤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정말이지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질문이구만.

 

"개X같은데요."

"말이 너무 직설적이구만. 영국인은 조금 더 고급진 표현을 쓸 줄 알았는데?"

"그거 다 편견이에요."

 

소령은 내 대답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커피를 대접했다.

 

포로한테 커피까지 내주고, 이 정도면 제법 나쁘지 않은 대우인걸?

 

"당신 같은 영국인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네. 우리 독일인들끼리 하는 대화는 늘 결론이 하나일 수밖에 없거든. 하지만 난 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었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나와 대화하고 싶다, 뭐 이겁니까?"

"정답. 심문하는 건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니까 긴장할 필요는 없네. 그럼 뭐부터 물어볼까......."

 

암만 봐도 심문하는 것 같은데.

나를 안심시킨 뒤 은근슬쩍 중요 정보들을 발설하게 하려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물론 고문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대위, 자네 생각엔 이 전쟁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어떻게 되다니?"

"그러니까, 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 같냐는 질문일세."

 

갑자기?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정말로 본인 말대로 순전히 호기심에서 물어본 것일까?

 

어쩌면 이 질문도 고도의 술책일지도 몰랐지만, 나로서는 그가 호기심에서 한 질문인지 고도의 계략에서 한 질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일단 저자의 심기에 거스르지 않게끔 단어 사용에 주의하면서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영국의 승리로 끝나겠죠."

"흠,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당신네들, 그러니까 독일은 너무 많은 적하고 싸우고 있으니까. 1차대전 때처럼 말이오."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전쟁한 국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 대표적인 국가들을 뽑자면 영국, 프랑스, 폴란드, 미국, 소련.

이중 프랑스와 폴란드는 넉다운 시켰지만, 영국과 미국, 소련이 남아 있다.

 

이중 한 국가를 완전히 꺾는 것도 힘든데, 독일은 자그마치 세 개의 국가와 싸우고 있는 형편이다.

 

이탈리아나 헝가리, 일본, 핀란드 같은 동맹국들이 있긴 하지만, 전투력이 형편없거나 거리가 너무 멀어 도와줄 수 없거나 국력이 너무 작아 전황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국가들 뿐.

 

원래 싸움을 할 땐 적군을 최소화하고, 아군은 최대로 해야 승산이 있는데. 독일은 그 기본적인 규칙마저 깡그리 무시했다.

 

이러니 어떻게 전쟁에서 이겨?

 

내가 이유까지 차근차근 설명하자 소령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경청했다.

화를 내면 어쩌나 싶었지만, 의외로 그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설명이 끝난 후에도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뒤에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럴듯하군."

 

내 말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보군.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말투에서 팩폭의 흔적이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 독일에는 귀국에겐 없는 우수한 과학 병기들이 있지."

"V1 로켓, 티거 같은 것들요?"

"......? V1은 알지만 '호랑이'는 갑자기 왜? 호랑이는 영국에도 있을 텐데?"

 

이런 씹. 또 말이 헛나오고 말았다.

아직은 티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지.

 

이런 상황에선 구차하게 변명하는 게 더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그냥 농담한 건데요?"

"농담치곤 별로군. 우리 독일인들도 유머 감각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데, 이런 농담은 독일에서도 욕먹어. 좀 자제할 필요가 있군."

"옙......."

 

나도 모르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것도 적군 장교한테.

 

독일인한테서 농담이 재미있다고 욕먹은 영국인은 아마 내가 최초가 아닐까?

 

생각해 보니 너무 치욕스러운데.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요즘 같은 현대에는 쪽수만으로 전쟁이 결정 나지 않아. 우수한 과학병기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지."

"맞는 말씀입니다만, 아무리 과학이 중요한 시대라곤 해도 쪽수가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엄청나거든요? 그리고 과학기술 말입니다, 독일이 우리보다 조금 더 우위에 있긴 하지만 완전히 압도할 정도는 못 돼요. 게다가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에 뒤지는 분야도 많고."

"으음......."

 

계속되는 팩트 폭력에 소령은 잠시 정신을 못 차리는 듯싶었다.

 

애초에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련을 치지 않거나 미국에 선전포고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던가, 아니면 핵폭탄이라도 만드는 것뿐인데.

 

독일은 모두 실패했다.

 

핵폭탄이야 원래 만들기 힘드니 그렇다 치더라도, 소련 침공과 대미 선전포고는 순전히 독일의 선택이었다.

 

자기 스스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 버리는데 어떻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냐고.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지."

"그러시죠."

"자네 말대로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끝난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나?"

"음, 아마도 세계는 두 패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게 되겠죠. 미국과 영국이 이끄는 자유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공산 진영으로. 지금은 서로 동맹이지만, 애초에 사상이 다르니 평생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리가 없죠."

"그건 내 생각과 같군. 그래, 공산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이 서로 공존한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런데 독일은? 독일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전쟁에서 패했으니까 아무래도 두 개로 갈라지겠죠.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군. 아니, 뭐 됐어. 어차피 우리 독일도 전쟁에서 이기면 자네들 영국과 소련을 일본과 반씩 나눌 계획이었으니까. 셈셈으로 치자고."

"소령님은 진심으로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럼, 당연하지! 원래 프로이센 장교는, 아니, 독일인은 승리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네!"

 

말투며 표정을 보아하니 소령은 진심으로 독일의 승전을 믿고 있었다.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독일인인 그가 저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1차대전이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유럽의 대다수 사람은 독일이 20년 안에 재기에 성공해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하고, 독일은 6년 만에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유럽 최강의 육군 보유국이라 자부하던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굴복시켰다.

 

이걸 한국에 대입하자면, 왠 독재자가 나타나 파탄 직전인 국가를 6년 만에 강대국으로 만들고, 전쟁을 일으킨 지 1년도 되지 않아 평양과 베이징에 잇달아 태극기를 꽂은 셈이다.

 

국뽕에 안 취할래야 안 취할 수가 없다.

 

기적이라는 말 외엔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은 직접 목격했으니, 아직도 승리를 맹신할 수밖에.

 

"지금 국방군이 모스크바로 진군 중이라는 것은 자네도 알겠지? 곧 우리 국방군은 러시아인들을 무찌르고 모스크바를 장악할 거야. 수도를 빼앗긴 스탈린은 얼마 못 가 협상을 애걸하겠지. 우리 독일인들은 자비로운 민족이니까, 적당히 우랄산맥까지만 차지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을 걸세. 그렇게 소련을 무너뜨리면, 이제 소련에 있는 무한한 자원은 모두 독일의 차지가 되네. 목재, 금속, 석탄, 석유 등등...... 이 광활한 자원은 국방군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거야. 소련의 자원으로 재정비를 끝내면 전력을 몰아 영국을 공격하는 거지."

 

소령은 이어 내게 독일이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지 열변을 토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쇼미더머니 오디션장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국방군이 영국에 상륙만 하면, 런던까지는 금방이야! 길어도 열흘이면 충분하지. 영국 전역을 집어삼키려면 두 달이면 충분하고. 그렇게 영국을 점령하면 미군은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철수시킬 수밖에 없겠지. 본토가 함락당했으니, 아프리카에 있는 영국군도 힘을 쓰지 못해. 지원이 끊겨 약화한 영국군을 이탈리아군과 함께 공격해 다시 수에즈 운하 너머로 쫓아내면, 아프리카 대륙은 우리 차지나 다름없어."

 

독일이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을 휩쓰는 동안, 일본은 하와이와 인도, 호주를 차례로 점령하고 마지막에는 미국 서부 해안을 타격한다.

 

그 사이 독일은 아이슬란드를 점령하고 대규모 비행기지를 건설하여 새로 개발한 장거리 폭격기로 미국 동부지역과 캐나다를 폭격하고, 최종적으로 미국인들의 사기를 꺾어 항복을 받아낸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령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는지 입꼬리를 좌우로 당겼다.

 

"어떤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놀랐나?"

"음, 다른 의미로요."

 

현실적인 건 모르겠고, 비현실적인 의미로는 놀랐다.

 

<높은 성의 사나이>나 <울펜슈타인> 시나리오라도 쓰는 줄 알았네.

이 정도면 망상을 넘어 정신병 수준인데?

 

나는 이제까지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 같은 추축군 상층부만 망상에 빠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랫것들도 죄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러니까 전쟁에서 지지.

제발 망상이 아니라 현실을 보라고.

 

"틀림없이 영국은 독일의 속국이 될 걸세. 그래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게. 총통께선 영국인들을 아리아인으로 보고 계시니까, 대우가 나쁘진 않을 거야. 전쟁이 끝나면 나를 찾아오게나. 전쟁에서 이겼으니까 술 한 잔 정도는 내가 사겠네."

"어, 음....... 감사합니다?"

"내 이름은 막시밀리안 폰 프로흐노일세. 쾨니히스베르크가 내 고향이지. 쾨니히스베르크 아돌프 히틀러 거리 3번지에 우리 집이 있네. 잊지 말게나."

"기억해두겠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라.

안타깝지만 이를 어쩌나. 나중에 그곳은 러시아 땅이 되는데. 이름이 칼리닌그라드였나?

 

아무튼 우리의 만남은 뜻밖에도 훈훈하게(?) 끝났다.

 

내가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독일군은 포로들에게 빵을 배급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껴서 흑빵 한 덩어리와 물 한 잔을 받았다.

 

"대위님! 여깁니다!"

 

프레드 병장은 이미 자기 몫의 빵을 뜯고 있었다.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금방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내가 독일군 소령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장면을 본 이들이었다.

 

"대위님? 제리 놈들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고문을 하던가요?"

"아니. 그냥 평범하게 대화를 했는데?"

"대화라고요?"

"무슨 대화?"

"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 같냐고 묻더군. 망상이 조금 심하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단순히 외국인과의 대화에 목말라 있던 양반이더군."

 

***

 

이 시각, 런던에선 충격과 공포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캐나다군 약 2900명이 전사, 부상 혹은 포로가 되었고, 코만도는 280명이 전사, 제7전차연대는 달랑 40여 명만 생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전사 혹은 포로, 전차들은 모두 손실......."

 

처칠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손에 들린 보고서에 적힌 숫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다른 각료들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말없이 눈앞의 보고서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군에선 600명이 전사하고 구축함 1척과 상륙정 33대가 격침, 공군은 항공기 110여 대가 격추당했다라...... 너무 처참해서 할 말이 없구만."

 

애당초 작전 자체를 반대했던 미군 쪽에선 영국에게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이럴 거면 앞으로의 작전은 자기네들이 전담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으나, 망신살을 제대로 뻗친 영국은 미군의 비아냥에도 제대로 반발하지 못했다.

 

"그, 그래도 아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총리. 이번 작전이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미군도 북프랑스의 방비가 무척 단단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시칠리아 침공은 예정대로 진행될 겁니다."

 

작전을 고안한 당사자 마운트배튼은 애써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그게 책임 회피용으로 내뱉은 발언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다.

 

허나 마운트배튼과 더불어 이번 작전에 적잖이 관여했던 처칠은 금방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렇지! 다소간의 희생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이 정도면 독일 놈들도 프랑스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거요. 그렇고 말고."

 

그는 서둘러 회의의 주제를 아프리카 전선으로 돌려 사람들의 관심을 흐리고자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로, 리비아 쪽 상황은 순조로웠다.

날마다 이탈리아군의 투항이 이어졌으며, 추축군 점령지는 날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었다.

 

"런던에 첫눈이 내리기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추축국 세력은 말소될 거요. 리비아가 정리되면 이 담은 시칠리아인데, 그 전에 몰타를 탈환할지, 아니면 그대로 놔두고 시칠리아로 직진할지 생각해 봅시다."

 

처칠의 입장은 반드시 몰타를 탈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자존심 문제도 있지만, 몰타를 탈환해야 시칠리아로 향하는 연합군이 후방에서 위협받지 않고 온전히 작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몰타를 건드렸다간 적들이 우리의 다음 목표가 이탈리아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겠습니까? 기껏 프랑스로 돌려놨던 적의 시선이 다시 이탈리아로 향하게 된다면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음......."

 

어려운 문제로군.

그렇다고 몰타를 가만히 놔뒀다간 시칠리아섬 공격에 큰 장애가 될 터.

 

이를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처칠에게 그의 보좌관이 다가와 쪽지를 건넸다.

 

쪽지를 펼친 처칠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니...... 이, 이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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