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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30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30화

130화 포로 (1)

 

 

디에프 상륙작전은 원래 역사에서처럼 연합군의 대패로 끝났다.

 

9시가 넘어서야 사령부는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퇴각 명령을 내렸지만, 사방에서 몰아치는 독일군의 맹공으로 후퇴조차 쉽지 않았다.

 

아군의 후퇴를 지원하기 위해 공군기들이 급히 이륙하여 디에프로 날아왔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들의 기습과 맹렬한 대공포화에 휩쓸렸다.

그 결과 출격에 나선 공군기 110기가 격추당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믿었던 공군마저 실패하자, 해군도 소수의 생존 병력만 태우곤 급히 해변을 떠났다. 제때 구조를 받지 못하고 해변에 고립된 병사들은 독일군에게 투항했다.

 

작전에 투입된 장병 대다수가 전사, 부상 혹은 포로가 되었고, 소수의 운 좋은 병사들만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독일군의 피해는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

 

"웃어요, 웃어!"

"자, 찍는다!"

"하하하하!"

 

전투가 끝난 직후, 디에프 일대는 승리자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독일군들은 격파된 영국군 전차와 좌초된 상륙정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바빴다. 노획한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병사도 있었다.

 

의기양양한 승자들과 달리, 패자들은 말이 없었다. 무기를 빼앗긴 포로들은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독일군의 감시를 받으며 거리를 행진했다.

 

전투 중에는 몸을 사리고 있던 프랑스인들이 창문을 열어 거리를 지나는 포로들을 구경했다.

 

독일군은 포로들을 어느 가정집 지하실에 분산시켜 수용했다.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지하실에 가두면, 보초를 한 명만 세워놔도 많은 포로를 감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에 갇혔다.

 

천장 구석구석에 희멀건 거미줄이 있었고, 곰팡이 슨 벽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과거 우리 부대 창고가 딱 이 수준이었는데.

 

"제리 새끼들, 하필이면 이런 더러운 곳에 가두다니."

"목말라. 누구 물 가지고 있는 사람 없어?"

"에휴. 다음 주면 휴가인데...... 전쟁 끝난 후에나 집에 갈 수 있겠네."

 

지하실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포로가 된 병사들의 푸념과 한탄, 그리고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뿐.

 

나는 일부러 병사들과 따로 떨어진 구석에 혼자 앉았다.

장교만의 특권의식 그런 게 아니라 그저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부하들은 모두 떼죽음을 당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게이츠 원사도 포로가 되었을까? 무어 소령과 브랜슨 대령은?

 

두 사람은 2, 3파로 나뉘어 오기로 했다.

나와 게이츠 원사가 1파였고.

 

운이 좋다면 영국으로 돌아가는 상륙정에 탑승했을 테고, 운이 나쁘다면 나처럼 포로가 되어 어딘가의 지하실에 갇혀 있을 것이다.

 

운이 억세게 좋지 않다면 지금쯤 시체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나는 이제 어떻게 되려나?

 

일단 포로가 되었으니,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포로수용소행 열차에 오르게 될 것이다.

 

별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베를린이 함락되기 전까지 갇혀 있겠지.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것이 아주 나쁜 일만은 아니다.

 

적어도 수용소에선 전쟁터와 달리 총알이 오가고 포탄이 떨어지진 않으니까.

 

게다가 독일군은 일본군이나 소련군, 인민군과 달리 포로들을 '나름' 신사적으로 대했다(유대인과 소련군 포로들은 예외였지만).

심기를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저기, 대위님......?"

"응?"

 

포로에 대한 대우와 수용소에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지저분하게 돋아난 병장이었다.

 

계급에 비해 나이가 제법 많은 편으로, 예비역으로 소집된 사람인 듯했다.

 

"혹시 아서 그레이 대위님 아니십니까?"

 

이래서 내가 혼자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까 일부러 구석에 자리 잡았는데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만."

 

아니라고 발뺌할까 싶다가도,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면 더 쪽팔릴 것 같아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에, 얼굴이 비슷해서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긴가민가했는데. 아, 참고로 저는 게일 프레드 병장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네. 그다지 반가운 상황은 아니지만."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의외입니다, 대위님."

"응? 뭐가?"

"솔직히 대위님 같은 분까지 제리들에게 포로로 잡히실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쿨럭. 이 인간, 초면인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허나 표정을 보면 악의를 가지고 한 질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냥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일 뿐.

 

그러니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냥 웃고 넘길 수밖에.

 

"나도 내가 포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예감이 안 좋긴 했지만, 이렇게나 처절하게 망할 줄은 몰랐다. 정말로.

 

"후우. 하긴 대위님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이런 병신 같은 작전을 계획한 윗대가리들이 문제죠. 빌어먹을."

"나도 동감이야."

 

평시라면 질책을 했어야 할 말이지만, 지금만큼은 그 말에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도 병신 같은 작전이 맞고, 덕분에 내 부하들을 죽고 나는 포로로 잡히기까지 했으니.

 

"그나저나 이제 저흰 어떻게 되는 겁니까?"

"포로수용소로 보내져서 베를린이 함락될 때까지 갇혀 있겠지."

"음, 듣자 하니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수용소에선 총 맞아 죽을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대신 휴가가 없고 여자들 구경 못 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프레드 병장의 말에 주변에 있던 포로들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딱딱하고 침울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잠시 후,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면서 햇빛이 쏟아지자 어둠에 익숙해진 포로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어지는 딱딱한 톤의 목소리.

 

"나와라!"

 

지하실 밖으로 나가자, 책상에 앉아 펜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3명의 장교가 보였다. 1명은 소위, 2명은 중위였다.

 

독일군이 부른 이유는 우리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일렬로 서라. 질문에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해라!"

"물 좀 줘. 목말라 죽겠어."

 

한 병사가 손으로 목을 가리키며 말하자, 독일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물과 빵은 인적 사항 기록이 끝난 후에 지급될 거다. 그때까지 기다리도록."

 

독일군의 질문은 간단했다.

 

이름과 나이, 계급, 소속을 물은 뒤 빠르게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다음!"

 

나와 프레드 병장, 그리고 이름 모르는 하사가 앞으로 나가 각자의 위치에 섰다.

 

"이름과 나이, 계급, 소속을 대라."

"아서 그레이, 나이는 20, 계급은 대위, 소속은 제7전차연대다."

"좋아, 다...... 잠깐만, 뭐라고?"

 

내가 불러준 말들을 서류에 기입하던 중위는 고개를 쳐들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내 눈이 점점 커다랗게 변하더니, 옆에 있던 두 장교에게 뭐라고 소리쳤다.

 

"다시 한번 말해봐. 이름이 뭐라고?"

"아서 그레이."

"아서 그레이?"

"그 아서 그레이란 말인가, 당신이?"

"그렇......소만?"

 

내게 질문을 던진 중위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잠시 뒤, 그는 왠 소령 한 명을 대동하고 돌아왔다.

 

모노클을 낀 전형적인 프로이센 장교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이는 소령이었는데, 그는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아서 그레이로군. 뉴스에서 본 모습이랑 똑같아."

 

***

 

히틀러가 잠에서 깼을 땐 이미 디에프에선 총성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총통 각하, 연합군이 프랑스 디에프에 공격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연합군의 공격 소식은 히틀러가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하던 중에 보고되었다.

 

보고를 들은 히틀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적은 모두 격퇴되어 현재 잔당들을 소탕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거 참 반가운 소식이군. 오늘 아침이 더욱 기대되는구만!"

 

히틀러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굳었던 얼굴을 피며 웃음을 터뜨렸다.

식당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다.

 

아침 식사를 끝낸 히틀러는 회의를 위해 이동했다.

 

회의실에는 이미 참모들이 모여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첫 안건은 동부전선 문제였다.

소련군의 저항으로 입은 손실과 독일군이 사살한 소련군의 수, 격파된 차량들의 보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들이 오갔다.

 

두 번째 안건으론 얼마 전 개발이 끝나 실전 배치를 앞둔 신형 중전차 '6호 전차 티거'가 언급되었다.

 

"티거는 언제쯤 실전 투입이 가능할 것 같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네만."

"예, 총통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재 티거를 운용할 인원들의 훈련도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으로 모든 과정을 종료하고 전선에 투입될 것입니다."

"그렇군. 늦어도 모스크바 공략 전에는 티거가 투입되어야 하네."

 

히틀러의 최근 관심사는 단연 신형 중전차 티거였다.

 

며칠 전에 그는 티거의 시제품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곧장 쿰머스도르프로 달려갔다.

 

실물로 본 티거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독일군 전차 특유의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어 겉으로 보기엔 투박해 보여도, 100mm나 되는 전면장갑은 모든 화기를 정면에서 튕겨낼 수 있었으며 측면장갑조차 80mm나 되어 방어력에선 현존하는 전차들 중 단연 최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포도 88mm 대공포를 탑재하여 화력도 뛰어났다.

 

숙련된 포수라면 2km 거리에 있는 전차도 능히 명중시킬 수 있으며, 관통력이 110mm나 된다!

 

보고를 들은 히틀러는 미소가 떠나질 않아 곤란할 지경이었다.

 

이 괴물만 있다면 독일군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리라!

 

히틀러의 머릿속에는 수백 대의 티거가 모스브카의 붉은 광장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티거와 마주한 러시아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척 궁금하구만. 호랑이와 마주친 사슴처럼 벌벌 떨면서 온갖 저주를 퍼붓겠지. 이런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냐고 말이야.

 

"총통 각하, 다음 안건입니다. 미리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오늘 북프랑스 디에프에 연합군의 침공이 있었습니다."

 

알프레트 요들 대장이 지도에서 디에프를 찾아 가리키자, 히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에 따르면, 전면적인 침공으로 보기엔 적의 규모가 무척이나 작다고 합니다. 덕분에 적들을 금방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보고된 아군의 피해는 전사 311명, 부상 280명으로, 연합군의 피해는......."

 

구체적인 수치를 읽어나가는 요들의 말이 끝난 후, 히틀러는 입을 열었다.

 

"적들이 디에프를 공격한 이유가 뭐 때문인 것 같나? 의견을 한번 듣고 싶군."

"이에 관해선 여러 분석이 진행 중입니다만, 제 사견으론 후일 진행할 프랑스 상륙에 대비한 사전연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아직 아프리카 전선도 다 정리하지 않았는데 사전연습을 한다는 것은...... 적들의 다음 목표가 프랑스라는 의미인가? 헷갈리는군."

 

히틀러는 아프리카 지도를 노려보았다.

 

리비아의 추축군은 악착같이 버티곤 있지만, 현재 연합군에게 앞뒤로 포위당한 상태라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아프리카의 완전 상실은 히틀러 자신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아무리 추축군이 열심히 버틴다고 하더라도 내년 봄이 되기 전에는 필시 아프리카 전역이 연합군에게 완전히 넘어갈 터.

 

이제는 그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연합군이 과연 어디에 상륙할 것인가.

 

"거리만 따지자면 이탈리아 남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적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역으로 다른 곳을 노리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르데냐나 크레타 말입니다."

"놈들이 바로 북프랑스로 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소이다. 이탈리아가 탐나는 목표이긴 하지만, 이탈리아반도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탓에 진격하기가 쉽지 않지. 따라서 바로 프랑스에 상륙해 파리로 직행할지도 모르오."

"맞소. 오늘 있었던 기습은 프랑스 상륙에 대비한 전초전일 수도 있소."

"적의 교란책일 가능성도 무시해선 안 됩니다."

 

여러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 어느새 휴식 시간이 되었다.

 

회의 시간 내내 서 있던 히틀러가 안락한 의자에 앉아 차를 기다리는 가운데, 그의 충실한 부하 하인츠 링에가 다가왔다.

 

"음? 링에, 무슨 일인가?"

"총통 각하. 방금 들려온 소식입니다."

"또 뭔 안 좋은 일이라고 생겼나?"

"그건 아닙니다, 총통 각하. 그다지 중요한 소식은 아닙니다만, 보고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대체 무슨 보고이길래?"

"혹시 아서 그레이라고 아십니까?"

"아서 그레이......? 아, 혹시 영국인들이 그렇게 띄어주던 장교 말인가? 갑자기 그건 왜?"

"아군이 확보한 포로들 중에 그자가 있다고 합니다.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확실히 본인이 맞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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